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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설법> 향상일로의 삶
  • 천태종 운덕 대종사
  • 승인 2020.07.2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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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한 긴장과 간절한 염원은 자기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팽팽한 긴장이란 게으른 사람에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염원 역시 지극하고 간절해야 합니다. 막연한 목적의식으로는 그 어떤 것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늘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부단히 자신을 채찍질할 때 자기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씨가 뿌리를 내리려면 건강한 씨앗을 보존하고 있어야 합니다. 썩은 씨는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풍성한 수확은 단지 씨 뿌리는 작업만으로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거름을 주고 물이 잘 스며들 수 있도록 지반(地盤)을 다지며 따뜻한 햇볕을 충분히 쬐이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자기발전의 토대를 만드는 일은 이처럼 농사짓는 행위와도 같습니다. 

자기발전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향상일로(向上一路)’와 맥을 같이 합니다. 향상일로란 말은 〈벽암록〉 제12칙 ‘동산마삼근(東山麻三斤)’에 나옵니다. 

“(수시하기를)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칼은 예로부터의 법도이니[殺人刀活人劒 乃上古之風規] 오늘 날에도 꼭 필요한 것이라.[亦今時之樞要] 만약 죽인다 해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若論殺也 不傷一毫], 살린다 해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若論活也 喪身失命] 그런 까닭으로 향상의 한 길은 온갖 성인들도 전할 수 없다 하였다.[所以道 向上一路  千聖不傳]”

그리고 본칙에서 어떤 스님이 부처가 무엇이냐고 묻자 동산 화상은 “삼베가 삼 세근이라지.”라고 답합니다. 당시 한 뭉치의 마사(麻絲) 무게가 세 근이었다고 합니다. 이 세 근은 승복 한 벌을 만들 수 있는 재료였습니다. 즉 동산 화상은 납의를 걸친 출가수행자들이 부처라는 걸 암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부처가 무엇이냐고 묻는 승려에게 “네가 부처다.”라고 일깨워주고 있는 대목이 바로 이것입니다.

앞서 수시에서 ‘향상일로 천성부전’이라 했는데 이는 향상의 길은 어느 성인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당사자 본인의 철저한 노력과 피나는 정진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게 향상일로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산 스님이 일러주는 ‘삼베가 세 근’이라는 말입니다. 

향상일로가 있어야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피나는 정진을 거듭해야 하는 그 삶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전적으로 자신의 몫입니다. 부처님께서도 향상일로의 삶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엔 ‘무상정등각’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한 수행자가 오랜 세월 히말라야 설산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치열한 정진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설산동자라 불렀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행에 여념이 없었는데 한 게송이 들려왔습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이라. 모든 것은 무상하다. 생하고 멸하는 것이 법이기 때문이다.”

설산동자는 이 게송의 의미가 매우 심오한 것에 놀라 소리의 주인공을 찾느라 사방을 살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보이지 않고 험상궂게 생긴 나찰만이 눈에 띠었습니다. 설산동자는 나찰에게 물었습니다.

“조금 전의 게송을 그대가 읊었습니까?”

“여기 나 말고 또 누가 있나? 내가 읊었지.”

“그런데 그 구절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 구절도 들려주십시오.”

“나도 들려주고 싶지만 너무 배가 고프다.”

“나머지 구절을 들려주시면 제가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나는 사람의 따뜻한 피를 먹는다. 너의 피를 주겠느냐?”

“제 몸을 공양해 올릴 테니 나머지 구절을 부디 들려주십시오.”

설산동자는 도를 깨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나찰에게 자신의 몸을 바치겠다며 나머지 구절을 듣고자 염원했습니다.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생하고 멸함을 뛰어넘으면 고요한 열반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나머지 구절을 들려 준 나찰은 설산동자에게 빨리 몸을 바치라고 요구했습니다. 설산동자는 이 구절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낸 다음 나무와 바위 등에 새기기 시작했습니다. 

‘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

그리곤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 나찰에게 공양하기로 한 자신의 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설산동자의 몸이 땅에 닿기 전 나찰이 신들의 왕인 제석천왕으로 변하여 설산동자를 받아 정좌케 한 후 절을 올렸습니다. 제석천왕이 나찰로 변하여 설산동자의 구도심을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이 설산동자가 바로 부처님의 전생입니다. 부처님은 과거생부터 부처를 이루기 위해 이처럼 향상일로의 수행을 닦았습니다. 

여러분도 각자 세운 목표를 향해 향상일로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포기하고픈 나약한 마음에 빠질 때 설산동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오롯이 나아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천태종 운덕 대종사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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