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바카 야차가 숙소에 도착했을 때 부처님은 그의 부인과 하인들에게 설법을 하고 있었다. 격노한 야차가 부처님을 죽이기 위해 격렬한 폭풍을 쏘아 보내는 모습이다.

폭력 대신 순응으로
격분한 야차를 교화하다

이번 이야기는 자야망갈라 가타의 8개 에피소드 중 두 번째로 부처님께서 알라바카 (Alavaka) 야차를 조복시키는 내용이다. 알라바카 야차는 매우 난폭하고 잔인했으며, 교만에 가득 차 있었다. 알라비(Alavi) 왕국에 살고 있던 알라바카는 사람들을 매일 한 명씩 제물로 받으며 살고 있었는데, 마침내 알라비 왕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게 됐을 때 세존이 알라바카의 거주처로 가서 알라바카를 교화시킨다는 내용이다. 알라바카는 인생의 주요 질문들로 부처님을 시험한다. 하지만 결국 부처님의 대답을 듣고 곧바로 불법에 귀의하게 된다.

알라바카 야차는 알라비 근처의 반얀 나무에서 살고 있었다. 알라바카는 큰 힘을 가진 야차로 매우 사납고 자만(自慢)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멋진 흰 가운 형태로 된 특별한 무기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가 그 특별한 무기를 하늘로 던졌을 때 12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만약 그가 땅에 그 무기를 떨어지게 한다면, 모든 식물은 죽고 12년 동안은 자라지 않을 것이다. 또 그가 무기를 바다에 던진다면 바다가 마르고, 수메르 산만큼이나 큰 산에 그 무기를 던진다면 그 산이 조각조각 부서질 것이다. 그는 결코 수행자에게, 심지어 자신의 부모에게조차도 존경하거나 순종하지 않았다. 알라바카는 천신의 왕인 벳사바나(Vessavana)로부터 정오에 자신의 반얀 나무 그늘로 덮인 지역에 들어오는 사람을 죽이고 먹을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일찍이 알라비(Alavi) 왕은 홀로 사슴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우연히 반얀 나무 아래에서 쉬게 되었다. 이때 왕은 알라바카 야차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에 처했다. 왕이 매일 사람 한 명과 항아리를 채운 쌀을 야차에게 보내겠다고 약속하자, 알라바카는 이를 받아들여 왕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궁전에 도착하자마자 왕은 신하의 제안에 따라 사형을 선고받은 죄수를 매일 야차에게 보냈다. 더 이상 감옥에 죄수가 남아 있지 않게 되자, 왕은 신하들로 하여금 보석을 길에 놓아두게 하고 그 보석을 집어든 사람을 체포하게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이전과 같이 쌀과 함께 알라바카에게 보냈다. 그러자 어느 누구도 길에 놓여 있는 보석을 감히 집어 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왕은 신하들과 상의한 후 사람들에게 어린 아기를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매일 아이 한 명이 야차에게 보내졌다.

12년 후, 왕의 아들을 제외하고는 야차에게 보내질 아이가 없게 되었다. 왕은 그의 부하들에게 여왕에게서 왕자를 빼앗아 야차에게 보내라고 명령했다. 그날 저녁 부처님은 야차를 교화하기 위해 알라바카의 저택으로 혼자 갔다. 그 당시 알라바카는 야차들의 집회에 가 있었고, 부처님은 야차의 왕좌에 앉아 야차를 기다렸다. 문지기인 가드라바(Gadrabha) 야차는 부처님의 방문을 알라바카에게 알렸다. 두 명의 야차 즉 헤마바타(Hemavata)와 사타기리(Satagiri)도 부처님께서 알라바카의 하인들에게 법문하는 것을 보고 알라바카 야차에게 부처님께 경의를 표시하라고 권했다. 알라바카는 그 이야기를 듣고 격분해서 켈라사(Kelasa) 산을 오른발로 밟아 찍었다. 그는 산 정상에 서서 자신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나는 알라바카이다.” 그의 외침에 전 세계가 두려움에 흔들렸다.

알라바카가 자신의 처소에 도착했을 때 자신의 부인들과 하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 이 모습을 발견한 알라바카는 더욱 격노했다. 그래서 부처님을 죽이기 위해 격렬한 폭풍을 쏘아 보냈다. 그러나 폭풍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부처님을 익사시키기 위해 비를 크게 내렸다. 그의 시도는 다시 허사가 됐다. 또한 그는 돌·무기·불·뜨거운 재·모래 및 진흙 등을 부처님께 차례로 떨어지게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부처님을 해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부처님을 공포에 떨게 하기 위해 깜깜한 어둠을 만들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 모든 공격에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고 어떤 해침도 당하지 않았다.

그러자 알라바카는 다양한 무기를 가진 악마 군대를 이끌었다. 야차의 군대는 갖가지 두려운 형상으로 큰소리를 지르며 부처님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야차 군단은 마치 파리가 붉고 뜨거운 철 막대기 위에 앉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부처님 근처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알라바카는 한밤중을 넘어서까지 여러 방법으로 부처님을 끊임없이 공격했지만 부처님을 패배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마지막 무기인 둣사부다(Dussavuda), 즉 멋진 흰 가운을 사용했다. 특별한 무기인 둣사부다는 연기와 불 속에서 천둥과 번개처럼 부처님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둣사부다가 부처님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평범한 깔개가 되어 있었다. 알라바카는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윽고 부처님께서 모든 존재에게 보내는 자애(Metta)의 힘 때문에 실패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부처님을 비난함으로써 부처님의 힘을 파괴하기로 결심했다.

야차는 부처님에게 다가가 말했다.

“사문 고타마여! 왜 내 허락 없이 내 집에 침입하는가? 지금 내 집에서 나가시오.”

부처님께서 대답을 하면서 나갔다.

“좋아, 내 친구야.”

야차가 다시 명령했다.

“들어오시오, 사문아!”

부처님께서 대답하면서 들어갔다.

“좋아, 내 친구야.”

두 번째, 세 번째 알라바카 야차가 부처님에게 같은 방식으로 말했다.

부처님은 대답하시면서 나갔다.

“좋아, 내 친구야.”

야차가 명령하였다.

“사문아, 들어와라!”

부처님이 대답하며 들어갔다.

“좋아, 내 친구야.”

그리고 네 번째 알라바카 야차는 부처님에게 말했다.

“나가시오, 사문아”.

그러나 이번엔 부처님이 거절을 했다.

“나가지 않을 것이다. 친구야, 그대가 해야 할 일을 하시오.”

알라바카는 부처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으면 갠지스 강의 맞은 편 언덕으로 부처님을 던져 버릴 계획이었다.

야차가 협박했다.

“사문아, 나는 너에게 질문을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나는 그대의 심장을 찢어 열거나, 발을 붙잡어서 그대를 갠지스 강에 던져버릴 것이다.”

부처님은 야차에게 단호하게 말씀했다,

“나의 친구야, 나는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천신·마라·브라흐만·사문·크샤트리아·바이샤 등) 나의 심장을 찢어 열거나, 나의 발을 붙잡아서 나를 갠지스 강에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당신이 원하는 것을 나에게 물어보라.”

알라바카는 먼저 이렇게 물었다.

“사문 고타마여,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보물은 무엇인가? 행복을 가져오는 실천은 무엇인가? 가장 맛있는 맛은 무엇이며, 가장 고귀한 생계 수단은 무엇인가?”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알라바카여! 이 세상에서 삼보에 귀의하고 업보를 믿는 것이 가장 좋은 보물이다. 선업을 행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가장 맛있는 맛이다. 현재와 미래에 이익을 가져 오는 지혜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가장 고귀하다.”

태국 방콕에 있는 에메랄드 사원을 지키고 있는 야차의 모습.

부처님은 야차의 다른 질문에 계속 대답했다. 자비심으로 주어진 응답을 들으면서 야차는 조금씩 온화해졌다. 마침내 그는 예류과(豫流果, Sotapanna)를 성취하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왕의 신하들이 야차에게 와서 왕자를 건네주었다. 야차는 부처님의 면전에서 왕자를 제물로 받는 것이 부끄러워서 왕자를 부처님에게 바쳤다. 나중에 왕자는 자라서 하타라바카(Hatthalavaka)로 불리게 되었고, 선업을 지으면서 불교를 널리 포교하고 진흥시켰다.

야차는 마라만큼이나 위협적이고 무서운 존재로 초기불교 경전에 등장하고 있다. 사람들, 특히 아이들을 잡아먹는 두려운 존재이다. 이러한 야차를 부처님은 교화했다. 알라바카 야차가 심지어 왕자까지 먹으려고 하는 것을 아시고 야차의 처소로 가서 야차의 왕좌에 앉아 야차의 시중드는 여인들에게 법문을 하셨다. 야차가 이런 사실을 듣고 격노해 자신의 처소로 돌아와 부처님에게 즉시 떠나라고 요구했다.

부처님은 야차의 요구를 일단 세 번 들어주었는데, 순응하는 것이 야차의 분노심을 부드럽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야차의 요구에 순순히 따른 것은 야차가 무서워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야차의 가득 찬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방편이었다. 분노로 인한 도전을 부처님은 분노로 대응하지 않았다.

부처님이 자신의 말에 순응하자 야차는 분노가 사라지게 되었다. 네 번째로 부처님을 야차가 안팎으로 출입하라고 했을 때, 부처님은 단호히 거절했다. 야차의 격분을 다스리는 부처님의 방편이 굴종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다. 폭력적인 사람은 결코 폭력적인 방식으로 교화할 수 없다는 것을 부처님은 보여주셨다.

안양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불교문화대학장과 불교문화대학원장을 겸하고 있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학사,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일본 동경대(東京大) 외국인연구원,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특별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불교상담학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 〈행복을 가져오는 붓다의 말씀〉·〈붓다의 입멸에 관한 연구〉·〈The Buddha’s Last Days〉 등이 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