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잇는 농부의 길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우리는 수입농산물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55개국과 16건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시장이나 마트에서 중국산 참깨와 고춧가루, 고사리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하다보니 소비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이 관세무역 장벽까지 세워 국내 농가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이번 호 주인공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전남 강진에서 2대째 농업을 이어 단감 생산·마케팅·판매를 책임지고 있는 토룡단감 대표 김지용(37) 씨다.

토룡단감 대표 김지용 씨는 10년 차 청년농부다.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단감 농사를 지을 때 제초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전남 강진 신전면 용월리는 젊은 농부 김지용 대표가 사는 곳이다. 그의 단감 농장은 주작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김 대표는 현재 14,000평(4만 6,300m²)에 단감과 대봉을 재배하고 있다. 이와 함께 13,000평(4만 3,000m²)에 논농사, 3,000평(1만m²)에 참다래와 콩·고사리 등의 밭농사를 일구고 있다.

컴퓨터공학도 꿈꿔

어린 시절 김지용 씨는 산과 바다를 놀이터 삼아 뛰놀던 개구쟁이였다. 형들과 어울려 헌집을 아지트 삼아 놀았는데, 어느 해 겨울에는 추위를 참지 못하고 누군가 버리고 간 옷장을 난로 삼아 불을 피웠다가 집 한 채를 홀랑 태우기도 했다. 집주인은 자연발화로 보상을 받았지만, 그는 외할머니가 계신 이웃 봉황마을로 가서 한동안 돌아오지 못하는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었지만 김지용 씨는 농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도와 뙤약볕에 쭈그려 앉아 고생을 했던 기억 때문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IT업계의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은 큰누나를 위해 당시 2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컴퓨터를 사주셨는데, 정작 누나는 컴퓨터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게임을 즐기며 컴퓨터와 친해졌고, 컴퓨터 활용프로그램을 익히기 위해 학원을 다니면서 정보기기운용 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2003년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목포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다.

공학도의 꿈을 키우던 그가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결심한 시기는 2010년이다. 대학교 졸업 후 전공 관련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에서 지내던 중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비보를 전해 들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부재는 취업의 기로에 서 있던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어 놓았다. 그는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가 짓고 있었던 감 농사를 이어 받았다. 쉽지 않을 거라는 주변의 만류와 우려가 있었지만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이 산부처라고 말할 정도로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셨어요. 집에 든 도둑이 잡혀 수감돼 있는 동안 딱한 마음이 든다며 사식을 넣어줄 정도였으니까요. 가끔은 IT 회사에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해요. 그랬다가도 느긋한 제 성격 상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컴퓨터 프로세서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아마 바쁜 도시생활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고요.”

감이 익어가기 전에 밭에 풀을 베고 있다. 그는 무성한 풀에 고전하면서도 “풀이 자라는 땅이라야 열매도 맺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막연하게 시작한 귀농생활

고향에 내려왔을 때는 관리가 되지 않은 7,000평(2만 3,000m²)에 13년생 감나무들이 말라 병들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장사를 해왔던 어머니도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는 경상도와 전남 영암군 등 우수 농가를 찾아가 재배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관련분야의 책을 붙잡고 읽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다. 고민을 거듭하다 농업기술을 익히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강진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갔다.

재배기술을 익힐 수 있는 교육이라면 빼놓지 않고 들었다. 그 덕분에 수확이 어려워 애를 먹이던 감나무에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다양한 영농정착지원금도 적극 활용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완벽하게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생각지 못한 수많은 난관에 봉착했다. 나무를 제때 솎아주지 않아 감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수확을 못하기도 하고, 수확하는 날을 놓치는 바람에 상품성이 크게 떨어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매년 발생하는 이상기온에 병충해가 들끓어 몸살을 앓기도 했다.

2012년에는 초대형 태풍 볼라벤이 불어 닥쳐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혔다.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마을을 덮치고 지나간 탓에 감나무 잎사귀가 모두 떨어져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고, 참다래를 심어놓은 1,000평(3,300m²) 밭은 처참하게 무너져 버렸다.

“여름 내내 피 땀 흘려서 기른 농작물이 제값을 못 받고 헐값으로 팔려나갈 때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농사는 내가 짓는 게 아니라 하늘이 짓는 거라고 말을 하나 봅니다. 보통 농사를 지을 때 자연이 70%, 인간이 30%를 짓는다고 표현하는데 직접 해보니 사람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단 1%도 채 안 되는 것 같아요.”

농사도 힘들지만 가장 어려운 일은 판로를 개척하는 일이다. 그는 올해 초 전라남도 지역 사업에 공모해 글로벌 리더스 현장연수를 다녀왔다. 10박12일 간 이탈리아의 올리브농장, 독일의 와인공장, 오스트리아의 농업도시 등 해외 농업 선진국들을 돌며 농업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날씨와 출하량에 따라 가격이 변동되는 우리나라 경매시장의 유통구조와 달리 조합에 의해 자신이 생산한 농작물 가격을 직접 책정하는 등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고 있었다.

자신이 생산한 농작물이 고객의 신뢰를 얻을 때 비로소 자부심 있는 농업인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고, 2017년부터 ‘토룡단감’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브랜드가 생기고 석 달 만에 ‘인터넷을 보고 연락드린다.’며 단감을 구입하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터넷 판매는 입소문을 타면서 매년 수요가 조금씩 늘고 있다.

최근에는 장기 보관이 가능한 단감말랭이를 생산해 ‘토룡단감 단감말랭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포장 디자인까지 마쳤는데, 쫀득한 식감과 달콤한 맛이 좋아 인기다.

농사일 외에도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배움과 소통이다.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관련 교육을 듣고 정보를 공유하는 시간은 그에게 특별한 즐거움이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녹색문화대학을 다니며, 강진에서 가업을 잇는 2세들의 모임인 ‘나와 아버지는 농부입니다’에서 활동하는 이유도 농업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단감·참다래 모임·마을청년회·독서모임 등 12개의 다양한 모임에 가입해 회원들과 소통하고 있다.

“귀농 초기에는 무작정 부딪혀 힘들기만 했는데 10년 째 농사를 짓다보니 이제는 조금 요령을 터득하고 있어요. 농사의 가장 큰 장점은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매일 아침 6시에 과수원으로 출근해서 계절에 따라 가지치기, 잡초 베기, 감꽃 솎기 등의 작업을 합니다. 쉴 틈 없이 바쁘다가도 해가 지면 여지없이 퇴근하죠. 농사꾼도 시간배분을 잘하면 여가시간을 활용해 다양한 자기계발을 할 수 있어요.”

지난 6월, 이앙기로 모를 심고 있다. 처음에는 논에 물 대는 방법도 몰랐지만 10년의 노하우가 생겨 이제는 제법 농부의 틀이 잡혀 있다.

법륜 스님 강의 인생고민 큰 도움

조급해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욕심을 내려놓기까지는 법륜 스님의 강의가 큰 도움이 됐다. 우연히 팟캐스트에서 ‘즉문즉설’ 동영상을 접하고, 많은 사람의 고민과 법륜 스님의 명쾌한 답변을 들으며 혼자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고민을 풀어낼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다스려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은 모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열쇠가 되었다.

그는 매일 하루를 소중히 살며 건강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10년 전에는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들이 부럽지 않다. 그들보다 멋진 꿈이 그의 가슴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농사는 내가 흘린 땀만큼 벌수 있는 정직한 분야입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되죠. 좋은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농사를 짓고 있어요. 비록 그 과정이 쉽지 않지만 제가 선택한 일이라 그런지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귀농 20년 차가 되면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후배 농사꾼들은 겪지 않도록 씨 뿌리기 단계부터 수확, 농기계 작동, 판로 개척까지 농사의 A to Z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저와 같이 농업 관련 지식이 없는 청년 창업농들도 현장에서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김지용 대표는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긴 호흡과 느린 발걸음으로 오늘도 성공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비바람과 폭풍우를 견뎌내야 명품 열매가 탄생하는 것처럼 좌절과 시련이라는 어려움을 이겨내야 명품 농부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걸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는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계절과 농작물에 따라 그리고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 일한다. 논에 콩을 파종하고 있는 모습.
2019년 1년간 전남생명과학고 산학겸임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을 당시, 학생들이 그의 감나무밭에서 농장체험을 하고 있다.
2019년 8월, 청자골 단감출하회 회원들과 경남 진영을 찾아 우수농가 현장을 둘러봤다.(왼쪽에서 세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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