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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 돋아나는 여름 숲_밀양 표충사 죽전수림(竹田樹林)과거로 떠난 여름 숲에는 초록 佛心 ‘주렁주렁’
  • 글·사진 이강식 기자
  • 승인 2020.07.1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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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대사는 재약산에 올라 아래를 보던 중 다섯 색깔의 상스러운 구름이 피어오르는 죽전수림에 사찰을 건립했는데, 이곳이 현재의 밀양 표충사다. 하늘에서 본 표충사 죽전수림. 〈사진=배재흥 밀양 풍경사진 작가〉

임란 때 사명대사 죽창 만들어
나라 지킨 호국신장의 터전

오랜 역사를 간직한 산지 사찰에는 사찰보다 더 오래된 숲이 있다. 이 숲을 사찰림(寺刹林)이라 부르는데, 대부분 자연적으로 형성됐지만 화재예방 등을 목적으로 인공조림 한 경우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아름드리 수목에 둘러싸인 사찰은 아늑할 뿐만 아니라 더위를 피하기에도 제격이다. 사찰림에 특정 수목이 많을 경우, 해당 사찰명에 수목의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백련사 동백나무숲’과 같은 예다. 밀양 표충사도 그런 경우다.

사명대사(四溟大師) 유정(惟政, 1544∼1610) 스님의 호국불교 정신이 깃든 대표적인 호국성지 밀양 표충사에는 죽전수림(竹田樹林)이 있다. 지금은 ‘표충사 대나무숲’으로 잘 알려져 있다. 표충사 창건 설화에 따르면 원효(元曉, 617~686) 스님은 태종 무열왕 원년(654)에 삼국 통일을 기원하고자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렸다. 원효 스님은 재약산(載藥山, 또는 載岳山)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던 중 푸른 대밭과 무성한 숲이 있는 남쪽 계곡에서 다섯 색깔의 상스러운 구름[五色祥雲]이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죽원정사(竹園精舍)라 붙였다.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위해 왕사성 남쪽 죽림에 지은 불교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와 이름이 유사하다. 인도 죽림정사 이후 불교 수행자들은 사원 주변에 대나무를 많이 심었다. 부처님이 머물던 죽림정사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불퇴전의 정신으로 용맹정진해 성불을 이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듯싶다.

단풍이 짙게 물든 숲과 대숲(왼쪽 위)에 둘러싸인 밀양 표충사.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승병을 양성했고, 죽창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고 전한다. 〈사진=배재흥 밀양 풍경사진 작가〉

표충사 죽전수림은 1,4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원효 스님이 죽원정사를 창건한 이후 이 사찰에서 수행한 스님들은 대숲을 정성스레 가꾸고 활용했을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저자 일연 스님도 표충사에 주석하며 선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당시에도 이 대숲이 존재했으니, 일연 스님도 후학들과 이 청량한 숲을 포행하고 이곳에서 법거량(法擧量)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특히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밀양 표충사를 감싸고 있는 재약산 사자평(獅子坪)에서 승병을 훈련시켜 왜적에 맞섰다. 이 숲의 대나무로 죽창을 만들어 무기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죽전수림은 사찰을 수호하고, 나라를 지키는 호법신장의 역할도 한 셈이다.

표충사 죽전수림과 관련된 자료 중에는 〈한국불교전서〉에 수록된 경일(敬一, 1636~1695) 스님의 시문집인 〈동계집(東溪集)〉 권3 ‘밀양재악산영정사전후창건기(密陽載岳山靈井寺前後創建記)’가 있는데, 다음의 내용이 나온다.

산의 메마른 땅은 낙엽이 수북하고 대나무숲을 등지고 시원스럽게 툭 트여 있는데, 남향의 터가 옛날에 이루어졌다. 그 터를 처음 점지한 사람은 황발노선(黃髮老仙)이다. 서천에서 온 황발노선이 이곳에 은둔하고 있었는데, 어떤 이인(異人)이 병에 걸려 노선을 찾아와 치료방법을 물었다. 이에 황발노선은 흐르는 샘물을 가리키며 “이 물을 마시면 병이 나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대로 따라하자 효험이 있었다. …… 마을사람들에게 말하니 듣는 사람들이 기뻐하면서 재물을 보시했고 이를 근간으로 사찰이 세워졌다. 그 샘물을 ‘영정’이라 불렀는데, 절 동쪽 모퉁이의 작은 샘이다.

‘영정사창건기’에 등장하는 병을 치료한 이인은 흥덕왕의 셋째 왕자라는 설이 있다. 왕자의 나병이 낫자, 크게 기뻐한 흥덕왕은 가람을 부흥시키고, 이 사찰을 영정사(靈井寺)로 명명했다. 다른 이야기로는 신라 흥덕왕 4년 인도 출신의 황면(黃面) 스님이 죽림사를 재건할 당시 건립한 삼층석탑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사찰 이름을 ‘영정사’로 바꿨다고 한다. 다만 ‘영정사창건기’에는 영정사 터를 점지한 이를 황발노선으로 기록하고 있어 원효 스님 창건설과는 차이가 있다.

훗날 사명당 유정 스님의 고향인 밀양 무안면에 스님을 기리는 ‘표충서원(表忠書院)’이 건립됐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표충서원이 피폐해지자 사명대사의 8세손인 천유(天有) 스님이 주도해 사당을 영정사로 이건한 뒤 사명을 표충사(表忠寺)로 바꿨다. 표충사 경내에 들어서면 대나무 군락이 서산·사명·기허대사의 진영을 모셔 놓은 표충사(表忠祠)와 도량 맨 위쪽에 위치한 관음전까지 도량 전체를 든든히 감싸고 있다. 바람 방향에 따라 무리지어 이리저리 흔들리는데, 그 청량한 소리만으로도 복잡하던 머릿속이 가벼워진다.

대숲 가장자리로 등산로가 나 있다. 표충사 수충루(酬忠樓)를 바라보고 왼쪽 길로 가면 부도(浮屠)와 효봉(曉峰, 1888~1966) 스님의 사리탑이 있고, 그 옆으로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면 오른쪽으로 대숲이 펼쳐져 있지만, 돌담을 쌓아놓아 들어갈 수 없다. 30여 분 가량 올라가면 나무 사이로 대숲과 그 아래의 표충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부지만, 대숲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재약산 중턱에서도 대숲 전체를 볼 수 있지만, 나뭇잎이 무성한 계절에는 시야가 가로막힌다.

재약산 북쪽 중턱 해발 600~750m 지점에는 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얼음골’이 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바깥 공기를 쐬러 나가기가 주저되는 이때, 대숲과 얼음골을 떠올리며 코로나와 무더위를 이겨내 보자. 

표충사 삼층석탑 뒤로 짙은 연둣빛 대숲이 눈에 띈다.
표충사 사천왕문과 전각 뒤로 펼쳐진 죽전수림.

글·사진 이강식 기자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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