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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 돋아나는 여름 숲_경주 낭산 신유림(神遊林)과거로 떠난 여름 숲에는 초록 佛心 ‘주렁주렁’
  • 글·사진 윤완수 기자
  • 승인 2020.07.1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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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山地)다보니 도시나 마을이 형성된 곳 인근에도 숲이 산재해 있다. 이들 숲에는 선조들이 살아왔던 수많은 흔적과 추억이 서려 있다.

특히 1,700년 전 전래된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지금도 나무들이 뿌리 내린 흙과 가지를 뻗은 공간 사이사이에 송골송골 돋아나 있다. 

코로나19로 여행 떠나기가 꺼려지는 계절, 독자 여러분을 대신해 불심(佛心)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여름 숲을 다녀왔다. 

경주 신유림과 선덕여왕릉의 2013년 항공사진. 〈사진=경주시〉

선덕여왕이 묻히길 원했던
불국토 신라의 도리천

신라는 불교의 나라다. 신라인은 그들이 사는 땅이 부처님의 나라, 즉 불국토(佛國土)라고 믿었다. 그래서 서라벌(지금의 경주)에는 전불시대(前佛時代,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한 과거칠불의 시대) 때 일곱 가람이 있었다고 확신했다. 오늘날 경주시 배반동에 위치한 신유림(神遊林)은 바로 칠처가람터 중 한 곳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 옛 사료에는 낭산(狼山)과 신유림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장소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신유림 위가 낭산, 낭산과 신유림 사이에 선덕여왕의 무덤, 그 아래에 사천왕사가 있었다는 기록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신유림은 시내를 기준으로 국립경주박물관에서 1.2km 지점에 있는데, 선덕여왕릉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서 찾아가기에 어렵지는 않다.

신유림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인물은 바로 선덕여왕(?~647)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으로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다고 평가받는 그녀는 진평왕의 장녀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시호가 선덕여대왕(善德女大王)이다. 아버지 뒤를 이어 신라 27대 왕에 올라 동아시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첨성대를 세웠고,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고, 분황사를 창건했다.

〈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과 관련한 ‘지기삼사(知幾三事)’가 전한다. 선덕여왕이 예측한 세 가지 신비로운 일화인데, 그 중 하나가 그녀의 능(陵, 무덤)에 대한 내용이다. 불심이 돈독했던 선덕여왕은 말년에 신하들을 불러놓고 “내가 아무 해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내가 죽거든 도리천(忉利天, 욕계의 육천 중 제2천)에 묻으라.”고 왕명을 내렸다.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디를 말하느냐?”고 되묻자 여왕은 “낭산의 남쪽이다.”하고 답했다. 지기삼사 중 나머지 두 가지는 당나라 태종이 보낸 나비 없는 족자를 보고 모란에 향기가 없음을 예측한 것이고, 한 겨울에 개구리가 우는 것을 보고 여근곡에 백제군이 매복한 것을 알아낸 것이다.

그녀는 정말로 자신이 예언한 날에 세상을 떠났고, 신하들은 유언대로 낭산 남쪽 기슭에 왕릉을 만들었다. 10년 뒤인 문무왕 때 그 왕릉 아래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우게 된다. 당나라 50만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불심으로 물리치겠다며 사찰을 건립하는데, 완공하기도 전에 당군이 출전을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때 명랑법사가 사천왕사에서 문두루비법(文豆婁祕法, 밀교의 술법)을 사용해 서해에 풍랑을 일으켜 당군의 배를 모두 침몰시켰다고 전한다. 불교의 세계관에서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으니, 선덕여왕의 능은 정확히 도리천에 조성된 게 확인된 셈이다.

선덕여왕릉 주차장에서 이정표를 따라 왕릉으로 가다보면 신유림을 만날 수 있다.

낭산은 해발 100m에도 미치지 않는 낮은 산인데, 산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높이요, 규모다. 하지만 선덕여왕릉 주차장에서 걸어 들어가는 신유림은 꽤나 울창하다. 스쳐보면 제멋대로 자라고 뒤틀린 듯하지만, 가만히 멈춰 살펴보면 한 폭의 동양화 속에 들어온 듯 휘어지고 굽어진 모양에도 질서가 깃들어 있다.

신유림에 서식하고 있는 소나무는 ‘안강형(安康型) 소나무’로 불리고 있다. 삼릉 등 경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소나무의 형태다. 인근 안강 지방의 명칭에서 따온 이름인데, 줄기가 심하게 구부러지고 뒤틀려 재목으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게 특징이다. 학자들은 경주 지역의 소나무가 이런 특징을 보이는 이유를 신라 때부터 왕궁과 사찰을 짓느라 남벌(濫伐)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즉, 곧고 굵게 자라서 잘 생긴 나무만 베어 내다보니,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소나무만 못난 외모 덕분에 살아남았다는 말이다.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휘어지고, 굽어지고, 배배 꼬인 신유림의 소나무들이 선덕여왕을 기리는 백성의 춤사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신들이 노닐던 숲, 신유림은 극락정토를 염원하던 1,300년 전 신라의 백성을 만날 수 있는 역사의 터널이다. 

왕릉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잘 정돈돼 있다. 
혹자는 신유림의 소나무를 선덕여왕을 기리는 백성의 춤사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울창한 숲을 지나면 선덕여왕릉이 모습을 드러낸다.
선덕여왕릉 전경.

글·사진 윤완수 기자  yws3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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