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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삼국유사〉 권4~5’ 국보 승격 지정예고
보물 제419-3호 '<삼국유사> 권4-5' 표지.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 6월 29일, 부산 범어사 소장본 1책
정조 친위부대 장용영 본영도 등 보물 지정예고

보물 제419-3호 ‘〈삼국유사〉 권4~5’는 국보로,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원나라 법전인 ‘〈지정조격(至正條格)〉 권1~12, 23~34’와 조선 정조의 친위부대 장용영(壯勇營) 본영을 그린 ‘장용영 본영도형 일괄’은 보물로 지정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6월 29일 부산 범어사가 소장하고 있는 보물 제419-3호 ‘〈삼국유사〉 권4~5’ 1책을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아울러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진 원(元)나라 법전인 〈지정조격(至正條格)〉 권1~12, 23~34, ‘장용영 본영 도형 일괄’은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2002년 19월 보물로 지정된 ‘〈삼국유사〉 권4~5’는 부산 범어사 소장본이다. 전체 5권 중 권4~5만 남아 있다. 이 책은 범어사 초대 주지를 역임한 오성월(吳惺月, 1865~1943) 스님 소장본이며, 1907년경 범어사에 기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는 처음 간행한 시기나 간행 여부에 대해서는 △일연 스님이 입적하기 전 간행했다는 설 △1323년(고려 충숙왕 10년)경 무극(無極) 스님이 간행했다는 설 △1394년(태조 3년) 경 경주부사 김거두(金居斗)가 〈삼국사기〉를 중간(重刊)하면서 함께 간행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 현재 고려시대 판본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현존하는 가장 이른 판본은 1394년 경 판각된 조선 초기 판본이다.

현재 동일판본으로 지정된 국보 2건(국보 제306호, 국보 제306-2호)과 비교했을 때 범어사 소장본은 완질(完帙)은 아니지만 1394년 처음 판각된 후 인출(印出) 시기가 가장 빠른 자료로 서지학적 의미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기존 지정본에서 빠진 제28∼30장을 보완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며, 1512년(중종 7년) 간행본의 오탈자를 확인할 수 있어 현재까지 알려진 〈삼국유사〉 판본에 대한 교감(校勘)과 원판(原板) 복원을 위한 자료로서 역사·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범어사 소장본은 서체·규격·행간(行間) 등에 있어 후대에 간행된 1512년 간행된 판본과 밀접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조선시대부터 판본학적으로도 중요하게 인식됐다. 그리고 단군신화(檀君神話)를 비롯해 향찰(鄕札, 신라식 음운 표기방식)로 쓴 향가(鄕歌) 14수가 수록돼 있어 우리나라 고대 언어 연구에도 참고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보물 제419-3호 ‘〈삼국유사〉 권4∼5’는 현존하는 동종 문화재 가운데 가장 빠른 인출본이자 보존상태가 양호해 기타 지정본의 훼손되거나 결락된 내용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 종교·역사·지리·문학·언어·민속·사상 등 다양한 분야에 거쳐 고대 우리 민족의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사료의 집합체라는 인류문화사적 의의를 감안한다면 국보로 지정해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 보존‧관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국보로 승격 지정예고한 이유를 밝혔다.

문화재청은 또 완질은 아니지만 국내·외를 통틀어 현존하는 유일의 원나라 법전인 ‘〈지정조격〉 권1~12, 23~34’와 정조(正祖, 재위 1776~1800)의 친위부대였던 장용영(壯勇營)이 주둔한 청사의 본영(本營)을 1799년(정조 23년, 기미본, 고려대박물관 소장), 1801년(순조 1년, 신유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에 그린 건축화인 ‘장용영 본영도형 일괄(壯勇營 本營圖形 一括)’은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지정조격〉은 1346년(고려 충목왕 2년, 원나라 순제 6년)에 간행된 원나라 최후의 법전으로, 지정 연간(至正 年間, 1341~1367)에 법률 조목의 일종인 ‘조격(條格)’을 모았다는 의미다. ‘〈지정조격〉 권1~12, 23~34’는 경주 양동마을의 경주 손씨 문중에 600년 넘게 전래되어 온 문적이다.

학계에서는 손사성(孫士晟, 1396~1435), 손소(孫昭, 1433~1484) 등 조선 초기에 활동한 선조들이 승문원(承文院, 조선 시대 외교문서를 담당한 관청)에서 외교문서를 담당하면서 외국의 법률·풍습 등을 습득하고자 〈지정조격〉을 접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정조격〉의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고, 서명과 목록만이 〈흠정사고전서총목(欽定四庫全書總目)〉(청나라 건륭제 명에 의해 간행한 역대 중국서적 목록) 등 후대의 문헌에 전해져 개략적인 내용만 알려져 있다.

‘장용영 본영도형 일괄’은 채색화 1점과 일종의 평면도안인 간가도(間架圖) 2점으로 구성돼 있다. 장용영은 도성 안에 본영(本營)을, 수원화성에 외영(外營)을 두고 운영됐기 때문에 이 자료는 도성 안(지금의 서울 종로 4가 이현궁 터 추정)에 설치된 장용영 본영의 현황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도형은 장용영의 전반적인 현황과 관청의 증·개축 변화를 기록해 왕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든 자료이기 때문에 정확한 축적에 기초한 평면도와 정교한 필치로 건축물을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지금은 없어져 형체를 알 수 없는 장용영의 정확한 규모 및 세부 건물의 배치와 기능을 알려주는 자료로, 정간 구획의 대형 평면도와 채색건물도가 함께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례이자 유일한 도형이다.

‘장용영 본영도형 일괄’은 △제작시기와 목적이 명확하고 건축기록화의 제작 방법, 활용과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실증유물이라는 점 △간가도(間架圖)와 채색도를 함께 제작해 기타 간가도와 차별성이 돋보인다는 점 △측량에 기반을 둔 대지 형태를 반영해 단순한 기록화의 수준을 벗어나 뛰어난 기술적 성취를 보여준다는 점 △건물에 대한 사실적 묘사로 회화적 예술성과 더불어 풍부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역사·예술·학술적 가치가 충분한 자료로 평가받았다.

문화재청은 이 3건의 문화재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장용영 본영도형 일괄' 도형 기미본 채색도(한국학중앙연구원). <사진=문화재청>
'장용영 본영도형 일괄' 기미본(고려대박물관). <사진=문화재청>
'장용영 본영도형 일괄' 정간 신유본(한국학중앙연구원). <사진=문화재청>
'<지정조격> 권1-12, 23-34' 내지. <사진=문화재청>

 

이강식 기자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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