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바람 들어준 미륵
세상살이 힘들 때 찾아
희망과 위안 느껴보길

미륵은 희망의 신앙으로 수용되어 우리나라에서 폭넓게 전승되어 왔습니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시달릴 때면 사람들은 도처에 돌미륵을 세우고 기적을 염원했습니다. 절집에 모셔진 화려한 미륵도 있지만 이름 없는 마을 당집과 전각, 길가에 세워진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사찰과 암자, 마을에 뒤섞여 미륵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그 지역에서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는 석공은 사람들의 염원을 모아서 돌을 찾고, 미륵을 다듬어서 세웠습니다. 아마 그 가운데 석공이 가장 정성을 쏟은 곳은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각된 그 모습은 우리 자신들의 얼굴입니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입니다. 이 땅에 살았고, 살고 있고, 살아 갈 우리들의 얼굴입니다. 미륵의 모습은 바로 과거·현재·미래의 한국인 모습입니다.

미륵은 이 땅에서 대를 잇기 위한 어머니들에게 코를 내어주어 얼굴의 형체도 없어졌습니다. 세월 속에서 미륵은 한적한 원래의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시기도 하지만 넘어지고,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도 했습니다. 미륵은 본래 ‘공동체의 모든 것’입니다. 그런 미륵이 개인 집으로, 사찰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목도 부러지고, 손도 부러져 다른 돌로 의족(?)하고 계십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향을 피우고, 초를 밝히고 정한수를 떠놓고 세상사의 모든 고초와 바람을 미륵에게 이야기 합니다. 여전히 미륵은 민초들의 바람을 듣고 계십니다. 미륵은 그 모든 바람을 들어 주십니다. 그 바람과 사연들을 모우면 개인사가 되고, 마을의 역사, 고을의 역사, 나라의 역사로 엄청난 민중생활사가 될 것입니다.

박물관 입구나 야외전시장에서는 ‘목이 없는 부처님’이나 ‘목만 있는 부처님’을 많이 만납니다. 그 설명문은 어렵습니다. 그때마다 정호승 시인의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창비, 1999)〉라는 시집 속 ‘소년부처’라는 시를 전시 설명문으로 쓰고 싶었습니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 조르르 관광버스에서 내려 머리 없는 돌부처들한테 다가가 자기 머리를 얹어본다 소년부처다 누구나 일생에 한 번씩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라는 내용입니다.

부처님은 두상을 얻고, 얹은 이는 부처가 되니 서로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모든 관람객들은 눈으로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국립전주박물관에도 고려시대 정읍 무성리에서 출토된 목 없는 키 큰 미륵이 서 계십니다. 목 없는 미륵께 머리를 만들어 주고, 누구나 부처가 되어 보게 하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륵과 사진 찍으면 누구나 부처님 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적자생존’이란 말이 있습니다. 적어야 산다는 말입니다. ‘찍자생존’이란 말도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모두 사진 찍기를 좋아합니다. “거기 갔어?”, “그거 봤어?”, “그거랑 찍었어?”가 요즘 사람들 관심 대세입니다. 독자 여러분들로 한 번 미륵을 찾아서 떠나 보십시오. 정성과 염원을 모아 탄생한 미륵을 만나면 과거 현재 미래가 읽혀질 것입니다. 현세의 고난과 혼란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기원했던 간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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