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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역경을 이겨낸 보리처럼
  •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장
  • 승인 2020.05.2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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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또다른 보릿고개
고난 속에서 결실 맺듯이
또다른 결실 준비할 때

어떤 사람이 나비가 고치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다가, 너무 느린 것이 안타까워 조금씩 입김을 불어넣었다. 과연 입김의 온기는 성장과정을 촉진시켰다. 그래서 다른 고치보다 빨리 밖으로 나왔는데, 그것은 나비가 아니라 날개가 망가진 애벌레였다.

애벌레에게 캄캄한 고치 안은 고통의 시간일 수 있지만, 스스로 고난을 겪으며 극복했을 때만이 아름다운 날개 짓으로 밝음과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 조급함은 나비의 꿈을 깨어버릴 수 있으니, 때를 아는 것은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는 일이다.

그렇기에 차가운 땅속에서 긴 겨울의 모진 추위를 견디면서도 푸른 생명력을 잃지 않는 보리는 감동을 준다. 음기가 천하를 뒤덮은 겨울일수록 과일 속의 씨앗처럼 엄청난 생명력의 양기를 응축시켜 품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아 새로운 봄을 맞겠다는 의지이며, 다음 해에 활짝 꽃을 피우겠다는 꿈이다. 농가에서도 한겨울에 보리밟기를 한다. 땅이 얼어서 부풀어 오르면 보리 뿌리가 바깥으로 나와 얼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튼튼히 뿌리 내려 혹한을 뚫고 초봄에 푸른 보리 싹이 뾰족이 얼굴을 내밀더니, 마침내 온 들판에 건강한 보리가 누렇게 익어 출렁이는 계절이 왔다. 더없이 힘든 보릿고개를 넘는 순간이다. 지난해 거둔 양식들은 바닥나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먹지 못한 아이들의 입가에는 버짐이 하얗게 피던 시절이 있었다. ‘보릿고개’는 옛말이 되었지만 언제나 또 다른 모습의 보릿고개들이 삶을 가로막곤 한다. 처음 겪어보는 코로나사태로 우리 모두 거대한 보릿고개를 조심스레 넘어가고 있다.

“세상살이에 고난 없기를 바라지 말라. 고난이 없으면 교만과 자랑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교만과 자랑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남을 속이고 억압하게 되느니라. 고난의 경계를 잘 살펴 고난이 본래 허망한 것임을 알면 고난이 어찌 나를 상하게 하랴.” 〈보왕삼매론〉의 가르침은 고난 자체가 우리를 상하게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는가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보릿고개를 넘는다는 말은 우리 앞에 ‘보리’라는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보리는 혼자 우뚝 선 나무가 아니다. 바람에 넘실대는 보리밭은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같은 방향으로 바람을 맞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각자 우뚝한 나무이지만, 보리처럼 서로 기대고 보살피며 함께 살아내야 한다.

‘보리는 익어서 먹고, 모는 자라서 심으니 망종’이라 한다. 망종 무렵은 보리를 베고 모를 심는 절기다. 한해의 절반을 넘기는 유월에, 보리를 수확하면서 한편으로 모를 준비하는 이치가 절묘하다. 가을에 심은 보리가 겨울추위를 견디며 자라서 알곡을 맺고, 또 이때 심은 볏모가 여름 더위를 견디며 자라서 황금빛 벼이삭을 선사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고난 속에서 결실을 맺고 또 다른 결실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전무후무한 ‘윤사월 초파일의 부처님오신날’을 맞으며, 두려움 없이 불퇴전하라는 부처님의 응원말씀이 들려오는 듯하다. 부처님께서 “무명은 도를 이루는 바탕이요 삼독번뇌는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라 하신 뜻을 새기며, 희망과 행복은 시련의 담금질 속에서 꽃핀다는 가르침으로 유월을 맞아야겠다.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장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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