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에세이

〈삽화=필몽 최은진〉

코로나19로 세상이 흉흉하다. 딱히 갈 만한 곳도 없고 해서 주말농장을 찾았다. 굼실굼실 부풀어 오르는 흙을 보면 절로 호미가 잡고 싶어진다. 아홉 평 채마밭에 나를 격리시키다 보면 꽃도 새도 꼼지락거리는 땅강아지 한 마리도 새롭게 보인다. 가쟁이 같은 햇살을 타고 고물고물 일어서는 생명들이 경이롭다. 이랑을 만들고 열무씨앗을 묻는데 아까부터 한 무리의 개들이 나를 보고 서있다. 개구쟁이들처럼 무리지어 밭두렁을 쏘다니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곤 한다. 생긴 모양들이 모두가 다르다. 복실이도 있고 껑충이도 있고 푸들이도 있고 발바리도 있다. 모두가 집 잃은 고아들처럼 몰골이 꾀죄죄하다. 아마 주인 잃은 유기견이지 싶다. 줄지어 달리는 모양새를 보니 나름의 영역과 서열도 있는 듯하다. 한 놈이 달리면 따라서 달리고 한 놈이 멈추면 따라 멈춘다. 그새 야성을 찾았는지 눈매들이 날카롭다. 정이라도 붙이려고 손을 내밀면 으르렁거리며 경계신호를 보낸다.

한때 누군가의 집에서 반려견이라는 이름으로 애지중지 사랑을 받고 자랐을 개들이 지금은 거리의 천사로 전락했다. 종묘나 탑골공원 주변에도 밤이면 고양이나 개들이 무리지어 나타난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주인의 자동차를 쫓아 필사적으로 고속도로를 달려가던 어느 반려견의 영상도 떠오른다. 동물학대 뉴스도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버려진 개들은 저희들끼리 세를 불리고 군집을 이루며 거리를 떠돈다. 정착지를 찾아 산과 들을 유랑한다. 돌아갈 집도 반겨줄 주인도 없건만 그래도 따뜻했던 한 시절이 그리운지 가끔 퀭한 눈동자를 껌뻑이며 허공을 바라본다. 왠지 짠한 생각이 든다. 저 유랑견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때까지 개를 길러 본 적이 없다. 어릴 적 시골집 마당을 지키던 누렁이가 개에 대한 기억의 전부다. 그나마 누렁이도 건성으로 지나쳤다. 그 누렁이가 행방불명되었을 때 막내가 며칠을 울었다. 유독 막내가 정붙이던 개였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처럼 개에 대한 일견이 없으니 자연히 나는 시대적 추세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반려견 호텔, 반려견 장례식장, 반려견 추모공원’ 등이 성업을 이룬다는 뉴스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거기다가 좌욕을 시키고 사골을 달여 먹이고 관절에 좋다는 고가의 약을 구입해 먹인다니 동의될 리 없다. ‘그 돈 있으면 독거노인들이나 돕지.’ 하는 냉소적인 생각이 먼저 든다. 어쩌다 조카들이 반려견을 데리고 와서 “엄마다, 콩이야 이리 온!” 하며 애정세례를 퍼 부울 때면 그런 행동이 영 못마땅하다. “그래도 그렇지 개보고 엄마라니.” 조카들에게 퉁을 주면 조카들은 “외삼촌은 구닥다리”라며 입을 샐쭉거린다. 그래서 가끔 ‘꼰대’ 소릴 듣는 지도 모른다.

나와 친한 지인 K도 개를 키운다. 반려견이라고 하기엔 덩치가 좀 큰 믹스견이다. 말 그대로 잡종 개다. 몇 해 전 영주 오일장을 다녀오다 난전에 풀어놓은 강아지가 하도 귀여워서 오천 원을 주고 샀다고 했다. 즉흥구매를 한 셈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집안이 좀 적적했던 모양이다. ‘두부처럼 희다.’고 이름도 ‘두부’로 지었단다. 두부는 아이들의 극진한 영접을 받으며 도시의 입주견이 되었다. 그런데 수놈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발정기가 되니 연신 으르렁거리고 욕구불만으로 소파를 물어뜯고 거실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아파트 주민들에게도 미안했고 딸들의 정서에도 좋지 않았다. K는 아내와 의논 끝에 예천에 있는 어느 암자에 두부를 맡겼다. 아이들이 한바탕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저러다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두부가 떠난 후 집안은 적막강산이 되었다. 부부는 부부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집안이 집단우울증에 빠졌다. 매일 밤 두부가 눈에 밟히는 것이다. 비로소 후회가 밀려왔다. K부부는 고민 끝에 두부를 다시 데려오기로 결심하고 예천 암자를 찾아갔다. 그런데 암자에는 두부가 없었다. 노스님께 여쭈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글쎄, 그놈이 곡기를 끊고 며칠을 짓더니만 줄을 끊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니더. 예천 비행장소리에 놀랐는지 내사 잘 몰시더…….”

만시지탄, 너무 늦었다. K는 고민 끝에 현수막을 달기로 했다. 동네 전신주에 ‘두부를 찾는다’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수원으로 올라왔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두부의 소식은 없었다. 체념이 깊어질 쯤 연락이 왔다. 산 밑 밭둑을 어슬렁거리는 개가 두부 같더란다. K는 즉시 회사에 연차를 내고 예천으로 달려갔다. 도착하니 이미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K는 밭둑에 서 있는 희끄무레한 물체를 보고 반신반의하며 ‘두부야!’하고 불러보았다. 개는 멀뚱거리기만 할 뿐 그대로 서 있었다. “털이 시커먼 걸 보니 두부가 아닌 모양일시더.” K가 실망하며 돌아서려는 순간 개가 쏜살같이 달려와 K의 품에 안기는 게 아닌가. 풍찬노숙으로 털이 꼬질꼬질해지긴 했지만 두부가 분명했다. 그새 많이 야위었다. K의 아내가 두부를 와락 끌어안고 “두부야 미안해, 잘못했어. 두부야 미안해!”를 연발하며 볼을 부비고 한바탕 울음판을 벌였다. 이산가족 상봉장면과 다를 바 없었다. 두부가 옛 주인을 한눈에 알아보는 것이 여간 기특하지 않았다. K는 두부를 데려와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사 입히며 부산을 떨었다. 금세 집안분위기는 밝아졌다. 두부는 ‘거세(去勢)’라는 굴욕을 당했지만 쫓겨난 기억 때문인지 매사에 순둥이처럼 고분해졌다.

나는 K의 ‘웃픈’ 두부 상봉기를 들으며 공감의 박수를 보냈다. 그나마 도리를 다한 듯싶어 다행이다. 그런데 거리를 유랑하고 있는 저 많은 반려견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란 성어가 저 반려견들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반려(伴侶)’란 동반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배우자를 가리켜 종종 ‘반려자’로 부르기도 한다. 반려견 역시 그렇다. 개에게 살붙이 이상의 감정을 부여하고 상호 교감한다. 가족의 일원으로 승격시켜 평생 희로애락을 함께 한다. 반면 애완견은 말 그대로 놀다가 버려도 되는 노리개쯤으로 생각한다. 주체가 대상으로 강등되는 일방의 사랑법이다. K역시 처음에는 두부를 버려도 되는 애완견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떠난 뒤에 비로소 두부가 가족구성원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명체였음을 깨달았던 것이리라. 두부는 이미 K의 가족에게는 반려견이었던 셈이다. 가족들 간의 서먹한 관계를 복원시켜주고 날마다 웃음과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던 두부. 두부 때문에 K의 가족은 행복했던 것이리라.

개들이 밭둑 어귀로 사라진다. 오늘은 어느 산 밑에서 바람찬 노숙을 할까? 인간이 버린 이기심들이 무리지어 거리를 유랑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진다. 정붙이기보다는 정 떼기가 더 어려운 것이 인지상정일진데, 어찌 키우던 반려견을 매몰차게 버리는 것일까. 늙고 병들어 효용가치가 떨어졌다고 살붙이 가족을 내다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전생의 업연(業緣)이 윤회의 순환 고리 속에서 오고간다는 불가(佛家)의 이치로 생각해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책임지지 못할 일이라면 함부로 인연을 맺어서는 안 될 일이다. 행복은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한다.

K의 집에는 아직 두부가 산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중년이 되었다. 눈치가 9단이란다. 주인의 표정을 살피는 폼이 이제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이치까지 터득한 모양이다. 언젠가 나도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면 튼실한 백구(白狗) 정도는 노우(老友)삼아 정붙여 볼 생각이다.

김만년
수필가.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문학석사.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당선됐다. 근로자문화예술제 시부문 대통령상, 공무원문예대전 수필부문 국무총리상, 전태일문학상 등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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