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2019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3,000달러를 넘었고, 세계 6위의 수출대국에 이름을 올렸다. 이렇게 경제대국이 되었어도 충분한 복지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특히 기본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과 외국인 근로자의 사정은 절박하다. 국내에는 이런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의료지원을 하는 봉사단체가 여럿 있다. 이중 사단법인 전국병원불자연합회는 불자 의료진이 주축이 돼 결성한 의료봉사단체다. 2007년부터 이 단체를 이끌어 오고 있는 류재환(64)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주임교수를 만났다.

류재환 (사)전국병원불자연합회장.

중생 아픔 돌보는 약사여래처럼
의료 소외계층 위해 45년 봉사

(사)병원불자연합회(이하 병불련)는 1999년 10월 서울 시내 8개 병원에서 근무하는 20여 명의 불자 의사·간호사가 모여 창립한 단체다. 2000년 10월 강원도 홍천군 구만리에서 첫 무료진료를 실시한 이후 전국의 의료 소외지역과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124회에 걸쳐 총 8만 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했다. 창립 21년차인 현재는 회원이 늘어 전국 20여 병원에서 400여 명의 불자 의료진이 활동하고 있다.

6남매 건강 발원하던 어머니

류재환 회장은 1999년 창립 당시부터 활동해온 회원 중 한 명이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3·4·5대 회장을 맡았고, 병불련이 사단법인으로 전환된 2016년부터 현재까지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부모님은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데, 큰 부자였다. 아버지가 남한으로 내려올 때 가져온 앨범 속 사진에서 살던 집을 확인할 수 있는데 무려 99칸이나 되었다. 소유하고 있는 땅도 끝 모를 정도로 넓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 후 인민군들의 위협을 느끼고 1·4후퇴가 한참 지난 1951년 5월경 남한으로 내려오게 된다. 어머니는 고향인 황해도 신천군 구월산에 있는 사찰에 다니던 독실한 불자였다. 

류재환 회장은 부모님이 서울에 터를 잡은 지 몇 해가 지난 1956년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어린 류재환의 손을 잡고 서울 조계사·정릉 경국사 등 큰 사찰을 찾아다녔다. 그는 여러 불교행사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바라춤도 보고, 목탁소리도 듣고, 법고소리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불교에 젖어들었다. 

“어머니는 절에 갈 때마다 ‘자식들이 병에 안 걸리고 건강히 오래 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셨어요. 고생 없이 부잣집에서 곱게 사시다가 큰 전쟁을 겪다보니 무엇보다 자식들의 건강이 염려되셨던 모양이에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수학여행은커녕 지방에도 한 번 내려가지 못했어요. 어머니가 위험하다고 안 보내셨거든요. 그 대신 제 손을 잡고 사찰에 데려가셨죠.”

경희의료원에서 만난 류재환 회장이 후배 의사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다.

고교시절 건축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첫째·둘째 아들이 이미 의사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내아들도 의사가 되길 희망했다. 또 류 회장의 고조부가 북한에서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고, 외조부와 부모님도 한의사 출신이었다. 서울 경신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류재환은 어머니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한 채 건축학도의 꿈을 접고 1975년 경희대학교 한의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성격이 내성적이었다. 대학 진학을 계기로 이런 성격을 고치고 싶어서 과대표에 지원했고, 투표를 통해 선출됐다. 첫 엠티[School field trip]를 오대산으로 가게 됐는데, 일정 중에 월정사를 참배했다. 그곳에서 운 좋게도 대강백으로 잘 알려진 탄허(1913~1983) 스님을 뵙게 된다. 탄허 스님은 과대표인 류 회장을 바로 옆에 앉게 한 후 자신의 건강에 대해 질문을 했다.

질문 중에는 타인에게 드러내기 어려운 개인적인 질문도 있었는데, 스님은 스스럼없이 물으셨다. 한의대에 갓 입학한 신입생의 의학 지식이 일천(日淺)하다는 걸 잘 아시면서도 보여주신 소탈한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그는 ‘이렇게 청정하고 깨끗한 스님을 만나서 참 영광이다.’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당시 탄허 스님은 몸이 불편하셔서 사람들을 잘 안 만나려고 하셨대요. 그런데 어린 학생들이 절에 찾아왔다고 해서 특별히 만나주신 거였어요. 참 인자하신 분이셨죠. 탄허 스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월정사 현판의 서체가 궁금해 질문을 드렸어요. ‘스님, 현판 글씨는 어떤 서체(書體)입니까?’하고 여쭈니 ‘저건 수행을 하면 몸에서 저절로 나타나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선체(禪體)다.’하고 말씀하시더라고요. ”

남인도 후불리 대붕사원 의료봉사

대학 새내기 때부터 46년째 의료봉사

그는 경희대 새내기 시절 연합봉사모임인 ‘녹원회’ 활동을 시작으로 의료봉사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녹원회에는 한의대를 비롯해 치대·의대·약대·간호대 학생들이 참여했다. 지도교수님과 함께 의료 낙후 지역이나 학교에서 추천해 주는 곳으로 가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학생 신분이어서 직접적인 의료행위는 하지 못하고 지도교수님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당시를 의료봉사의 출발점으로 본다면 어느덧 46년 째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병불련과 인연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아직 병불련의 체계가 잡혀있지 않던 1999년, 지인의 부탁에 비회원 자격으로 몇 차례 봉사에 참여했다. 어느 날은 조계사에서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의료 봉사활동를 하고 있는데, 함께 봉사활동을 하던 기독교 봉사단체에 환자가 더 많이 몰리고 있었다. 그 이류를 알아봤더니 치과 의료장비를 가지고 와서 진료를 해주고 있었다. 이에 비해 병불련은 일반내과·정형외과 진료만 하다 보니 환자수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인 조계사 앞마당에서 벌어진 당황스러운 상황을 보면서 뒤쳐진 불교계 의료봉사 현실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창기 병원불자연합회는 의료장비가 변변치 않았어요. 현재는 최신 혈액분석기와 초음파기 2대를 비롯해 노트북 초음파기·초소형 포켓 초음파기·심전도기 등 다양한 장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저희가 의료봉사를 나갈 때마다 국제의료재단과 결핵협회에서 엑스레이 기기 등을 지원해 주고 있어요. 그렇다보니 지금은 타 기관·타 종교 봉사단체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오히려 우수한 기기와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단체가 됐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전자기록차트를 구비하는 게 목표입니다.”

병불련은 2010년부터 매년 인도 중남부에 위치한 대붕사원과 간덴사원을 찾아 현지 스님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펼치고 있다. 이곳을 봉사 지역으로 선택한 이유는 서울 구룡사 회주 정우 스님과의 인연 때문이다. 

국내 봉사활동을 다닐 때 크게 지출되는 비용 중 하나가 버스 대절 비용이다. 그러던 중 통도사 의료봉사 때 정우 스님을 만났는데, 서울 구룡사에 있는 버스를 흔쾌히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그 일로 인연이 된 정우 스님이 어느 날 “류 회장, 내가 몇 년째 신도들과 함께 인도 대붕사원으로 자원봉사를 가고 있는데, 병불련이 이곳의 스님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해주면 정말 고맙겠어요.”하고 부탁을 해왔다. 정우 스님의 부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도 스님들이 있다는 소식에 2010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자비인술을 펼치게 됐다. 특히 진료와 치료를 할 때는 현지의 의사가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의약품을 넉넉하게 준비해 봉사 후에는 남는 의약품을 현지 의사가 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류 회장에게 해외봉사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느냐고 물었다. 

“2010년 처음 인도를 방문했을 때 400kg이 넘는 의약품을 가지고 갔어요. 그런데 현지 세관원이 돈을 요구하더군요. 여행사도 처음 겪는 일이었는지 당황했고, 저희도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어요. 인도 특유의 ‘뇌물문화’를 조금은 알고 있던 여행사 사장이 ‘술을 줘라.’, ‘돈을 줘라.’고 말했지만 그런 걸로 해결될 것 같지가 않았어요. 

그러다가 부세관장에게 제가 갖고 있던 UN 소속의 의료진 명함을 보여줬어요. 명함 뒷면에 ‘이 사람은 UN 소속 의료진이다. 어느 나라에 가건 이 사람이 그 나라에서 하는 의료활동을 도와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거든요. 그걸 보고나서 복사를 하더니 바로 통과를 시켜주더라고요. 하마터면 크게 곤란을 겪을 뻔한 일이었죠.”

류재환 회장은 2016년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 존자를 친견했다.

2016년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 존자를 만났을 때의 추억도 떠올렸다. 당시 달라이라마 존자는 통역을 통해 “우리 티베트 스님들과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도 사람들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한 후 “회장님 얼굴이 나와 닮았다.”고 웃음 지으며 말을 건넸다. 칭찬인지 장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전 세계인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스님이 환한 미소와 함께 건넨 한마디에 큰 감동을 받았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인도 지역 대신 동남아 국가로 해외 의료봉사를 계획하고 있다.

류 회장은 지난 45년 동안 토요일마다 봉사활동을 해왔다. 그렇다면 과연 가족들은 불만이 없었을까? 다행히도 류 회장의 아내 역시 경희대병원 류마티스 내과에서 일하는 의사이고, 자녀들도 학창시절에는 학업에 바빠 그의 봉사활동에 큰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매주 봉사활동을 가는 남편·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다. 아들도 정형외과 의사가 되어 기회가 될 때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류 회장은 그간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제26회 포교대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2016년에는 제14회 대원상 재가부문 특별상을, 2017년에는 제32회 불이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삶이란 찰나의 순간, 바르게 살자

의료봉사와 함께 그는 꾸준히 불교공부와 수행에도 매진하고 있다. 조계사불교대학에서 공부했으며, 동국대 불교대학원 최고위과정을 5기로 졸업했다. 2009년에는 경희의료원 불자회인 ‘반야회’ 창립도 주도했다. 현재 ‘반야회’는 경희의료원 옆에 위치한 연화사에서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법회를 진행하며, 수시로 경전공부도 하고 있다. 

류 회장은 하루도 빠짐없이 연화사 법당을 참배한다. 밤에 당직을 설 때 연화사에서 들려오는 새벽예불 소리는 항상 그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준다. 경희의료원에는 법당이 없는데, 류 회장은 입원해 있는 불자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 의료원과 연화사 사이에 연결 통로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병원 측이 반대해 공사를 하지 못한 점을 지금도 안타까워한다.

“현재 병원에서 연화사를 가려면 일주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면 빙 돌아가기도 하지만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 가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제가 공사비를 전액 부담하는 조건으로 통로를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병원 측에서 환자들의 안전과 범죄의 위험성을 이유로 들어주지 않고 있어요. 일과시간에만 개방하면 되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번에는 병원 내에 법당을 만들자고 건의를 했더니 연화사가 근처에 있어서 또 안된다고 하네요. 불자 환자와 보호자들이 쉽게 부처님을 만나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두 사안을 꾸준히 병원 측에 건의하고 있습니다. 노력한 만큼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해인사 자비원에서 어르신을 진료하고 있는 류재환 회장.

최근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힘들어하고 있다. 불교계는 정부 시책에 따라 사찰법회와 기도·행사 등을 자제해왔다. 류 회장은 이 같은 불교계의 행보에 불자이자 한 사람의 의료인으로서 ‘매우 현명한 결정이고, 대처였다.’고 칭찬했다. 류 회장에 따르면 2월 중순부터 불교계 여러곳에서 법회와 각종 행사를 개최해도 될지 문의가 잇따랐다고 한다. 그는 “전염 질환은 무조건 차단해야하기 때문에 법회나 행사를 취소하는 게 마땅하다.”고 조언을 했다.

다행히 불교계는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기 이전에 ‘법회 및 행사 중단’을 당부하는 대책과 지침을 여러 차례 하달했고, 부처님오신날 행사도 한 달 연기했다. 류 회장은 “만약 이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여러 사찰에서 법회와 행사를 봉행해 환자가 발생했다면 불교계는 국민의 원성과 비난을 받았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와 함께 현재 서울재활병원을 비롯한 전국 병원에서 코로나19와 사투 중인 병불련 소속 300여 의료인에 대한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류 회장이 현재 몸담고 있는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은 의사와 한의사만 진학할 수 있는 곳이다. 2007년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복수면허자의 한·양방 병원 동시 개설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의료보험이 치료 하나에만 적용되는 등 현 제도의 미비점이 있어 복수면허자 가운데 동시 개설자의 수는 소수에 불과하다. 류 회장은 “대장암 수술 후 대변 장애가 있는 환자에게 보조치료로 장운동을 개선시키는 한방치료를 병행한다면 더 빨리 회복할 수 있다.”며 “한·양방이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완한다면 향후 의학계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년 가까이 중환자실을 맡은 바 있는 류재환 회장은 중환자실을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장소’라고 정의했다. 그곳에서 환자들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노라면 삶이란 찰나의 순간이라는 게 느껴지고, 살아가면서 바르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저절로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류 회장은 의료인을 꿈꾸는 청년 불자들에게 “항상 성실하고, 진솔하고, 전문성을 갖춘 자격 있는 의료인이 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불자로서 내생은 확실히 있으니, 인과응보의 삶을 살면 바람직하다고도 덧붙였다. 

46년 간 ‘무주상보시’를 하듯 의료봉사에 매진하고 있는 류재환 회장. 그는 “기나긴 세월만큼이나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그에 비해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훨씬 더 많았다.”면서 “마음을 다해 봉사를 하면 힘든 순간도 절대 힘들지 않게 넘길 수 있다.”고 웃어보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수많은 이들을 위해 노고를 아기지 않는 병불련 회원들. 이들이야 말로 ‘약사여래(藥師如來)’요, ‘대의왕불(大醫王佛)’이 아닐 수 없다. 불교계의 응원과 격려와 지원 속에 병불련이 한걸음 더 도약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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