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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3_〈신갈나무 투쟁기〉신갈나무가 그려가는 우리 숲 이야기
  • 글 윤효 삽화 배종훈
  • 승인 2020.05.1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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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벚나무 화기(花期)는 유난히 길었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의 방음둑에 길게 줄지어 선 벚나무들도 열흘 넘게 꽃구름을 드리워 주었습니다. 벚꽃은 거의 안쓰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었지요. 봄날 얄궂은 날씨 탓에 꽃잎을 터뜨리자마자 폭설처럼 속절없이 져야 했던 해가 다반사였으니까요. 그런데 올해는 벚나무의 그 화사한 꽃들이 사람들의 눈시울 위에 열흘도 넘게 둥두렷이 머물렀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알아채셨겠지요? 그렇습니다. 새로운 바이러스 감염병인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여느 해와 달리 여러 날 꽃을 매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초록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으로서,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각별한 도반으로서 벚나무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그렇게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 벚나무뿐이겠습니까? 나무들은 예로부터 사람들과 애환을 함께해왔습니다. 농경시절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집안어른들은 아기의 나무를 심었지요. 그 나무처럼 씩씩하게 잘 자랄 것을 염원하면서 말입니다. 나무는 아기의 ‘내 나무’가 되어 생을 함께 일궈갔습니다. 또 마을에는 동네의 표상으로서 우람한 정자나무가 있었지요. 요즘이라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반려식물’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푸나무와 인간의 관계는 오히려 돈독해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 으스대면서 수 만년 동안 인간 본위의 사고와 행동을 해온 탓에 생태계 구성원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와 배려가 아직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들도 분명 이 생태계의 일원이건만 독자적인 생명체로 인식하기보다 인간의 한낱 부속물로 여기고 있으니까요.  

처절하고 치열한 삶 사는 존재

1999년, 사람들의 이러한 인식에 일대 전환을 불러일으킨 기념비적인 책이 세상에 나옵니다. 30대 부부 산림생태학자인 차윤정과 전승훈이 쓴 〈신갈나무 투쟁기〉입니다. 저자들은 서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왜 투쟁기이어야 하는가. 나무에게도 치열한 삶이 있다. 작은 종자 하나에서 얼어붙은 땅을 헤집고 싹을 틔우는 일에서부터 잎을 만들고, 줄기를 키우고, 뿌리를 키우고, 꽃을 만들고, 열매를 만드는 어느 것 하나 거저 되는 법이 없다.

이 책은 철저하게 나무의 관점에서 씌어졌다. 나무를, 자연을 그저 정신적 위안처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나무는 또 하나의 긴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무에게서 일어나는 살 떨리는 삶의 현장들을 정확하게 인정해야 한다. 나무로부터 받는 위안은 도피적 위안이 아니라 지구상 생물들의 숙명적 삶을 이해함으로써 얻는 공감적 위안이어야 한다. 

두 저자는 2009년 출간 10주년을 맞아 개정판을 냅니다. 이 개정판의 마지막 장인 제7부 ‘나무가 있는 숲’ 말미에 저자들은 이렇게 적습니다.  

신갈나무는 식물인간, 식물국회 등등의 말에 무척 가슴이 아프다. 식물처럼 처절하고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어디 있을까? 또 식물만큼 훌륭히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하는 생물이 어디 있을까? 모두가 식물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발상이다. 아니, 지독한 동물 중심적 발상에서 오는 편견이다. 이 지구상에서 신갈나무가 사라지는 날 모든 생명은 사라진다.

이 책은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신갈나무를 ‘새로운 숲의 주인공’이라고 일컬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전 숲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요? 소나무입니다. 소나무는 지금도 우리나라 산림에서 가장 넓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누대에 걸쳐 왕실의 강력한 보호를 받아온 결과입니다. 소나무가 아닌 나무들을 싸잡아 ‘잡목(雜木)’이라 일컬었으니까요.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인위적인 간여가 끊기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참나무과 활엽수들의 기세에 눌려 소나무가 점점 쇠퇴의 길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빛을 좋아하는 대표적인 양수(陽樹)인 소나무가 햇빛 경쟁에서 밀리다보니 어쩔 수 없이 감당하게 된 운명이지요. 침엽수와 활엽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지금의 우리나라 숲은 바야흐로 활엽수림으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 이 변화를 앞장서서 이끌고 있는 나무가 바로 신갈나무입니다. 참고로 ‘참나무’라는 나무는 없습니다. 분류학적으로 참나무과 참나무속에 속하는 신갈나무를 비롯한 상수리나무·굴참나무·떡갈나무·졸참나무·갈참나무 등을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개정판을 함께 읽으며 신갈나무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장차 우리 숲의 아름드리 주인공이 될 신갈나무 씨앗이 땅 위에 막 발을 내디디려는 순간입니다. 

소나무가 주인인 숲의 틈새로 일찌감치 자라고자 하는 본능이 억제된 나무가 있다. 오래된 몸통에는 흰 버섯이 여기저기 피어 있고 밑동에는 이끼가 번져 있는 나무이지만, 이파리는 어느 젊은 것 못지않게 싱싱하고 푸르며 그 속에 알알이 박혀 있는 열매들 역시 푸르고 윤이 날 지경이다. 열매의 머리에는 관록이나 되는 듯 겹겹으로 모자가 씌워져 있다.

가을볕에 그을린 열매는 동료들과 더불어 어미를 떠나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긴장되어 있다. 열매의 끝은 마치 궁금한 세상을 훔쳐보기라도 하려는 듯 삐죽 나와 있다. 가을이 익어갈수록 열매들은 자신들을 실어다 줄 바람을 기다리며 서서히 깍지에서 몸을 반쯤 내민다. 그리고 곧 바람이 분다.

땅에 떨어진 도토리가 하나의 나무로서 자라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은산철벽(銀山鐵壁) 백척간두(百尺竿頭)의 나날을 견디면서 뜨겁게 딛고 일어서야 가능한 일입니다. 저자들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사실 식물의 종자가 싹이 터 제대로 자라기까지는 실로 무수한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어미에서 떨어져 나온 종자 수의 백 분의 일도 안 되는 종자만이 겨우 자리를 잡고 싹을 틔울 수 있다. 나무에서 쏟아지는 종자들은 많은 동물들의 먹이가 된다. 사람 역시 종자를 노리는 약탈자들이다. 

싹이 나왔다고 해서 모두가 성공적으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물기 가득하고 연한 조직들은 다시 많은 동물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땅속의 수많은 생물집단이 그렇고 땅 위의 수많은 곤충 무리가 또한 그렇다. 작고 연약한 조직은 조금의 가뭄에도 쉽게 말라 버리고 약간의 압력에도 찢어진다. 어린 싹이라고 따로 보호해 주는 이는 없다. 어미마저 곁에 없다. 

이 절체절명의 고투를 그려가면서 저자들은 “지금 생을 영위하고 있는 생명들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담보로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권합니다. 모든 생명의 고귀함과 책임감을 거듭 일깨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어린 신갈나무가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몸은 성장을 개시한다. 점점 길어지고 강해지는 빛이 어린나무를 감싸고 자극한다. …… 본능적으로 어린나무는 빛이 강력한 생존의 에너지임을 인식한다. …… 빛을 모으자. 나무에게 공간이란 바로 빛에 대한 경쟁력을 나타낸다. 빨리 자라는 것이 최우선이다. …… 오로지 위로 향해라. 그래서 고지를 점령하여라. 어린나무에게 있어 수직상승은 절대적 사명이다. 나무의 형태가 제대로 갖추어지는지 혹은 얼마나 많은 빛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어린 시기에 얼마나 빨리 자라는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나무는 당분간 하나의 줄기만을 고집하면서 오로지 위로 자라는 데만 온 힘을 기울인다.

빛은 식물이 스스로 양분을 만들게 하는 근원적인 에너지원입니다. 빛의 활동에 따라 식물의 생존양상이 결정되는 것이지요. 음수(陰樹)이면서도 이 점을 본능적으로 인식한 어린 신갈나무가 벌이는 각고의 모습이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귀가수분득자량’의 실천자

첫봄을 무사히 보낸 어린 신갈나무가 첫여름을 맞아 내보이는 삶의 지혜는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합니다.

어린나무의 잎은 연한 빛을 잃고 시간이 묻어 다소 두툼하고 투박스러워졌다. …… 잎의 물을 모으기 위해 잎은 위로 살짝 세워져 있으며 바람으로부터 체열을 조절하기 위해 가장자리는 물결치는 톱니 모양을 이루고 있다. 몇 장의 잎무리는 햇빛을 고루 나누기 위해 줄기를 중심으로 방석처럼 빙 둘러 하늘을 똑바로 보고 누워 있다. 햇빛을 바로 보면 숨이 가빠지고 그렇게 되면 수분손실도 많아진다. 아, 숨구멍이 잎 뒷면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 이뿐이 아니다. 어린나무는 자신의 잎이 필요로 하는 원료물질이 뿌리를 통해 끌어올려진 물속에 녹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어린나무는 잎이 성장하고 줄기가 성장함에 따라 더 많은 양분을 퍼 올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지하에서 조달되어야 함을 또한 깨닫게 되었다. …… 문제는 과도하게 끌어올려진 물에서 필요한 것을 골라내고 나면 이 물은 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물이 잎 전체에 가득 차게 되니 몸이 터질 것같이 쑤시고 숨쉬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더 이상 물을 끌어올릴 힘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래, 물 자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어. 나무는 과감히 물을 버리기로 결정했다. 일단 버리기로 마음먹으니 모든 것이 한꺼번에 해결되었다. 버릴수록 얻게 되는구나. 참으로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가면서 깨달음을 향해 하나하나 터득해 나가는 과정이 마치 수행자처럼 성스럽습니다. 어린 신갈나무가 숲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한 지혜와 실행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됩니다. 가을과 겨울을 앞두고 나무들이 보여주는 단호하고도 결연한 자세는 또 어떻습니까?  

치열한 봄과 여름이 지나가면 정리의 시간 가을이 오고 곧 휴식의 시간 겨울이 닥친다. 나무의 한 해 살림도 사람 사는 것과 똑같다. 나무든 짐승이든 사람이든 지구라는 공동의 별에서 태양이라는 공동의 에너지원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운명체임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 따라서 나무는 일체의 몸을 정리하고 속을 정리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보강할 것은 보강하는 일, 나무에게 미련과 집착은 절대 금물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나라 숲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변화양상과 함께 지구 생물들의 엄혹한 삶의 실상을 신갈나무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식물들의 삶을 이해하면 할수록 의상조사(義湘祖師)의 저 유명한 ‘법성게(法性偈)’에 나오는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이란 구절이 단순한 비유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식물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귀가수분득자량(歸家隨分得資糧)’의 실천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신갈나무 투쟁기〉에는 신갈나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식물들의 흥미롭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이야기들을 시나브로 따라가다 보면 한 나라나 사회의 구성원을 넘어 이 초록별 생태계의 일원으로 거듭나는 푸르른 기쁨을 스스로 맛보게 될 것입니다. 

윤 효
시인. 본명은 창식(昶植). 1956년 논산에서 태어나 1984년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얼음새꽃〉·〈참말〉·〈배꼽〉 등 다수의 시집과 시선집 〈언어경제학서설〉이 있다. 제16회 편운문학상 우수상, 제7회 영랑시문학상 우수상, 제1회 풀꽃문학상, 제31회 동국문학상, 제13회 충남시협상을 받았다. 현재 〈작은詩앗·채송화〉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글 윤효 삽화 배종훈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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