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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속 동물마음 엿보기3_소“묵직한 화두 인간에게 안기는 고마운 동물이지요”

재산을 불려주는 소

아주 오래 전 인도 땅에 바라문 한 사람이 송아지 한 마리를 사왔습니다. 이 송아지는 동물희생제에 쓰일 운명이었지만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건지게 됐습니다. 바라문은 송아지를 데려와서는 난디 비살라라는 이름도 붙여주고 사랑을 담뿍 담아서 길렀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난 난디 비살라가 어느 날 바라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인도 땅에서 가장 힘이 센 소입니다. 그러니 소를 많이 키우고 있는 부유한 상인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십시오. ‘우리 집 수소는 짐을 가득 실은 수레 백 냥(輛)을 한 번에 끌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소가 있다면 내기를 해볼까요? 금화 천 냥을 걸지요.’라고요.”

난디 비살라의 제안을 받은 바라문은 소가 시키는 대로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우리 집 소는 수레 백 냥도 한 번에 끌 수 있는데…….”

이 말을 들은 상인이 비웃습니다.

“뭘 모르시는 말씀이군요. 가장 힘센 소는 우리 집에 있습니다. 우리 집 소도 못하는 걸 당신네 소가 할 수 있다고요? 좋습니다. 어디 한 번 내기해보지요.”

난디 비살라가 의도한 대로 두 사람은 천 냥의 금화를 걸었습니다. 바라문은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 돌·자갈·모래를 가득 실은 수레 백 냥을 준비한 뒤 난디 비살라를 훌륭하게 치장해서 멍에를 씌웠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끌채 위에 올라타 채찍을 휘두르며 소리쳤습니다.

“자, 어디 한 번 끌어봐라, 거짓말쟁이야, 앞으로 가라, 허풍쟁이야!”

그런데 정작 내기를 걸라고 제안한 소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네 발이 기둥처럼 땅에 붙박인 채 수레 백 냥을 끌기는커녕 눈곱만큼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상인은 그 자리에서 바라문에게 금화 천 냥을 받아 가버렸습니다. 순식간에 거금을 날려버린 바라문은 너무나 상심한 나머지 집으로 돌아와서 그만 앓아 눕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난디 비살라가 말했지요.

“나는 지금까지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데 왜 나를 그렇게 불렀습니까? 당신이 돈을 잃은 건 당신이 허풍을 떨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지, 내 탓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니 기회를 한 번 더 드리겠습니다. 어서 일어나 그 상인에게 가서 다시 한 번 내기를 하십시오. 이번에는 금화 2천 냥을 거세요. 단, 이번에는 절대로 나를 거짓말쟁이나 허풍쟁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단단히 약속한 바라문은 상인에게 달려갔고 두 배의 돈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바라문은 백 냥의 수레를 끌게 된 난디 비살라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자, 앞으로 가거라, 현명한 자야. 어서 수레를 끌어라, 수소여.”

난디 비살라는 바라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 냥의 수레를 거뜬히 끌고 앞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바라문은 금화 2천 냥을 얻었고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본생경〉에는 주인을 큰 부자로 만들어준 강직한 수소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왜 소는 자꾸 도망칠까?

우리 소들은 이렇게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줍니다. 우리는 아주 특별하게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가 쟁기를 끌고 밭을 갈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000년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는 인간에게 길들여지고 개량된 대표적인 동물이며, 철저하게 사람을 위해 태어나 평생 농사를 돕고 짐과 사람을 실어 나르다가 죽어서는 머리부터 꼬리와 가죽까지 사람에게 내주는 몇 안 되는 동물이지요. 

사람들은 우리 힘을 이용해서 농사를 짓고 재산을 늘려갔습니다. 우리를 몇 마리 가지고 있느냐로 부를 가늠했고, 심지어 신을 위한 희생제에서 우리는 가장 선호하는 동물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하는 주공급원이고, 우리 몸에서 짜낸 우유는 고대 문명에서 아주 귀하게 다룬 음식물인데, 경전에서는 우유를 발효한 음식 가운데 가장 영양가 높은 제호(醍醐)를 최고의 맛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들이 정말 소중한 재산이라 말할 수 있지요? 사람들은 우리를 세어보면서 ‘나의 것[我所]’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졌고, 그럴수록 ‘나의 것’에 대한 애착도 덩달아 강렬해졌습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것은, 경전 속에서 우리는 대체로 자주 달아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잃어버린 ‘자신의 소유물’을 찾기 위해 눈이 벌게져서 온 산천을 헤매고 다닙니다. 〈법구경〉 이야기를 소개해보지요.

가난한 농부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부처님이 자기 마을에 오셔서 법문을 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간밤에 소가 달아나버린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가난한 농부에게 소 한 마리는 너무나도 소중한 재산입니다. 소를 잃는다는 것은 전 재산을 잃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농부는 일단 소부터 찾기로 했습니다. 온 들판을 헤맨 끝에 간신히 소를 찾아 마구간에 매어놓고 농부는 허겁지겁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러 달려갔습니다. 멀리서 농부가 달려오는 모습을 본 부처님은 그에게 음식부터 내어주라고 이릅니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귀한 진리가 귀에 들어오겠느냐는 것이지요. 당시 부처님은 ‘중생에게 배고픔은 가장 무서운 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것’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충격인지 자기 재산을 잃어본 사람은 압니다. 소 한 마리의 의미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그토록 자신의 소를 가지려고 애를 쓰고, 가지면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 버둥대고, 놓치면 혈안이 되어서 그걸 찾아 산천을 헤매고 다닙니다. 가난한 농부가 잃어버렸다 되찾은 한 마리 소처럼, 당신에게도 그런 ‘소’가 있겠지요.  

오기웅 作심우도.

당신의 소는 어디에 있는가?

소를 잃어버린 사람은 소를 찾아 나섭니다. 소를 잃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으려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소’는 무엇인가요? 부동산, 자동차, 자식, 명예, 권력 등등 일생을 쏟아 붓고 찾아 헤매는 소는 사람마다 다양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 소가 그런 재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세속 사람들이 찾아 헤매는 소와 달리 부처님이 사람들에게 찾기를 권하는 소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참다운 성품입니다. 본래성품, 즉 본성(本性)이라고도 하지요. 사람들은 세속의 재산을 움켜쥘수록 기대치가 높아가고 배는 점점 더 고파질 뿐입니다. 하지만 종교적 차원에서 반드시 찾아 나서야 할 참다운 성품이라는 재산은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바로 이런 재산을 역시나 우리 소에 비유하면서 그걸 찾으라고 당부합니다. 저 유명한 십우도(十牛圖)가 그것입니다. 

진정 내 인생의 주인이 되려면 내 본래 성품[소]을 찾아야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소’를 잃어버린 지 오래이건만 사람들은 정작 잃어버린 줄도 모릅니다. 그러니 찾아 나설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지요. 그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소를 찾아야겠다고 나서는 일입니다[尋牛]. 소는 어디로 갔을까요? 찬찬히 주변을 살피며 소의 발자국을 찾아봐야 합니다[見跡]. 발자국을 찾아서 따라가다 보면 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見牛]. 발견했다면 조심스레 다가가서 대번에 소를 붙잡아야 합니다. 자칫 놓칠 수가 있으니 온 마음을 다 쏟고 지혜를 짜내서 붙잡아야 합니다[得牛]. 그런데 자유로이 노닐던 소가 고분고분 말을 들을 리 없습니다. 어르고 달래어서 소를 길들여야 합니다[牧牛]. 그렇게 해서 길들여진 소는 자신의 등을 내어줍니다. 이제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騎牛歸家]. 소를 우리에 넣으니 그 소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사람만 남습니다[忘牛存人].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소도 사람도 사라집니다[人牛俱忘]. 날이 밝으면 사람은 다시 소를 몰고 밭을 갈며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잡니다[返本還源].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번화한 시장통으로 가서 소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소 찾는 방법을 일러줍니다[入纏垂手]. 

세상은 소를 많이 가진 사람이 최고라 하지만 사람은 남이 가진 소를 세기만 할 뿐 자기 소를 헤아릴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자기 삶을 남과 비교하고 세상의 가치기준에 맹목적으로 휘둘립니다. 세상이 부의 기준으로 삼는 소가 진짜 우리가 찾아 헤매야 하는 소인가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정말로 찾아야 하는 소인지를 생각하고, 그 소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찾아야합니다. 내 본래성품을 찾아 주인의 자리에 확고하게 서야 합니다.

잃어버린 당신의 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소의 흔적을 발견하였다면, 잘 붙잡았고 잘 길들였습니까? 잘 길들였다면 이제 같이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의 빛이 되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우리 소는 이 묵직한 화두를 안겨주는, 정말 고마운 동물입니다.

이미령
동국대학교에서 불교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전번역가이자 불교대학 전임강사, 북 칼럼니스트이다. 현재 BBS불교방송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 〈붓다 한 말씀〉·〈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이미령의 명작산책〉 등이 있다. 또 〈직지〉·〈대당서역기〉 등 많은 번역서가 있다

글 이미령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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