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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불교문화유산3_인도 아잔타석굴혹독한 기후 속 안정적 수행터 조각·벽화 등 인도 불교미술의 寶庫
돌로 만들어진 아잔타석굴 입구.

인도는 불교가 성립한 부처님의 나라다. 인도의 불교도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혀 자신들도 붓다가 되기 위해 용맹정진했다. 그러나 인도의 혹독한 날씨는 수행에 큰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날씨와 무관하게 수행을 할 수 있는 석굴을 조성했다. 현재 인도에는 1,300여 개의 석굴이 남아 있는데, 아잔타석굴은 그 중에서 종교적·예술적으로 가장 가치가 뛰어나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800년 간 1,300곳 석굴 조성

석굴사원은 수행자에게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최상의 수행공간이다.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도 않고, 항상 어두워서 수행에 집중할 수 있다. 예불을 올릴 때는 독경소리의 동공(洞空,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굴)현상으로 장엄함이 배가되었을 것이다. 특히 석굴사원은 종교적으로도 의미가 깊어 수행자들이 선호했다. 인도에서는 전통적으로 수미산을 우주의 중심축으로 여겼다. 이 중심축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통로이고, 산 아래 석굴은 하늘과 연결되는 통로에 자리하는 공간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최상의 수행공간을 조성하는 데에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현재 인도에는 불교석굴이 1,300여 곳 남아있다. 이 중 70%는 인도 서부 데칸고원 주변에 몰려있다. 이렇게 많은 석굴 중에 최고의 수행처이자 인도 불교미술의 보고(寶庫)로 알려진 곳은 아잔타석굴(Ajanta Caves)이다. 마하라슈트라주 북동부의 아잔타에 위치한 이 석굴은 좁은 협곡이 말발굽처럼 휘어 굽이치는 와고라(Waghora) 강변 바깥쪽 절벽 중간인 75m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29개의 석굴로 이뤄져 있으며, 1.5km에 걸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석굴 앞은 건너편 절벽에 막혀있어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29개의 석굴 중에 불상이나 탑을 안치한 예불공간 차이티야(Caitya)는 5개(9·10·19·26·29석굴)이고, 나머지 24개는 승려들이 수행을 하던 공간인 비하라(Vihara)다. 아잔타석굴은 기원전 2세기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사타바하나왕조(Sātavāhana Dynasty)의 지원을 받았으나, 기원후 3세기경 이 왕조가 멸망하면서 석굴조성도 중단됐다. 이후 5세기 바카타카왕조(Vākātaka Dynasty)의 후원을 받아 다시 조성되기 시작했지만, 6세기말에 힌두교를 신봉하는 팔라바왕조(Pallava Dynasty)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수백 년 간 이어져온 석굴사원 건축은 중단되고 말았다. 

당시 석굴사원 조성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준 시주자는 상인들이었다. 대상인들은 인도대륙을 남북으로 오가며 무역을 했다. 아잔타는 남북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와 인접해 있었고, 중국과 무역하는 항구와도 가까웠다. 그래서 상인들은 중간에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긴 여행 동안 무사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기꺼이 석굴사원 조성불사의 시주자가 되었다. 또 석굴사원은 경제력과 함께 권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대작불사였다. 만약 인도 왕조의 지원이 없었다면, 애당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좌) 아잔타벽화 중 예술성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연화수보살.(우) 탑과 입불상. 무불상시대와 불상시대의 전환점에 조성된 상징물.(19굴)

힌두교 번성과 함께 잊혀져 

아잔타석굴은 천 년이 넘도록 자연 속에 파묻혀 있다가 1819년 4월 28일 호랑이 사냥을 하던 영국군 병사 존 스미스(John Smith) 일행에 의해 발견됐고, 1839년 고고학자 퍼슨(Person)의 조사보고서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많은 학자와 순례자가 찾는 인도 최고의 관광지이자 불교도들의 성지가 되었다.

이곳에는 조성한지 2,0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당시의 생생한 원색을 그대로 간직한 벽화들이 많이 남아있다. 석굴의 특성상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이 차단돼 탈색을 막았고, 오랫동안 인간의 발길이 끊기면서 벽화에 먼지가 쌓여있었던 덕분에 미세하게 들어오는 빛마저도 차단이 돼 색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인적이 끊기자 시간이 멈추었고, 그것이 현재까지 소중한 불교유산을 지켜준 셈이다.

아잔타석굴이 왜 버려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당시 팔라바왕조가 세력을 키워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힌두사원 조성을 위해 석공들을 모두 이주시켰다는 설과 인근에 발생한 혹독한 가뭄으로 주민들이 모두 떠나자 승려들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설이 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보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 복합적인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는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고 힌두교가 번성하던 시기이기에 신도들의 시주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불교 세력이 약화되면서 승려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그나마도 마을과 더 가까운 곳에 엘로라석굴(Ellora Caves)이 조성되면서 모두 이동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힌두교를 신봉하는 팔라바왕조의 왕들이 대규모 힌두사원을 곳곳에 신축하면서 많은 석공을 필요로 했기에 아잔타에 더 이상의 석굴조성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재 아잔타석굴을 보면 미완성으로 남은 부분이 많은데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해준다.

석굴 조성 중단의 이유가 무엇이었든, 아잔타석굴은 천 년의 공백기 덕분에 초기불교미술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었다. 아잔타석굴은 기원전 2세기 무불상시대부터 시작해 불상 탄생 이후 최절정기라고 할 수 있는 굽타시대(Gupta Dynasty, 320~550년경)의 불교미술, 그리고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는 시기까지의 불교미술사를 모두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도불교미술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자타카〉 중 코끼리왕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샤단타 자타카’.

29개 석굴사원 세 시기로 구분

아잔타석굴을 살펴보면 무불상시대의 예불공간부터 불상이 안치된 예불공간까지 석굴사원의 변화를 알 수 있다. 29개의 석굴사원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무불상시대에 조성된 사원이다. 석가모니 입멸 후 제자들은 부처님의 뜻에 따라 상(Image, 像)을 만들지 않고 법(法, Dharma) 즉 말씀을 스승으로 삼았다. 그러나 예불공간에 붓다를 상징할 무언가가 필요해졌다. 무불상시대 초기에 부처님 상징물은 탑(Stūpa)이었다. 또 예불공간을 장엄하기 위해 벽화를 조성했는데, 이때 부처님의 모습은 녹야원의 사슴·족적·빈 대좌·보리수 등으로 대체됐다.

아잔타에서 가장 먼저 조성된 제10굴에는 당시 사원의 특징적인 요소가 모두 나타난다. 예불 공간 전면 중앙에 원형의 탑이 있고, 천정은 원형으로 조성돼 지상고(地上高)가 높다. 또한 좌우측으로는 팔각기둥이 나열돼 있어 공간 확장과 함께 예불공간과 복도공간이 구분돼 있다. 복도공간은 탑을 감싸듯 원형으로 조성됐는데, 탑돌이를 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갖추기 위함이다. 원형의 탑은 인도의 전통적인 형태인데, 탑 위에는 노반(露盤)·산개(傘蓋)·찰주(刹柱)가 있다. 팔각기둥과 벽면에는 벽화가 조성된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이렇게 조성된 예불공간은 화려함을 넘어 장엄하다. 

두 번째 시기는 탑과 초기 불상의 모습이 함께 조성된 사원이다. 부처님을 상징하는 불상 조성은 1세기 무렵 간다라와 마투라에서 시작됐다. 이 무렵 아잔타석굴의 예불공간에도 붓다의 상징물로 불상이 등장하는데, 탑에 불상을 조성하는 형태였다. 19굴의 탑에는 입불상, 26굴의 탑에는 좌불상이 조성돼 있다. 당시 조성된 석굴사원은 인도 조각기술과 벽화조성기술의 결정체라고 할 만하다. 이 석굴사원 예불공간의 기본적인 형태는 초기불교시대와 거의 흡사하지만 벽과 기둥, 상인방(上引枋) 등을 유려한 조각으로 가득 채웠다. 조각에 채색하는 기법도 발달했는데, 조각의 음영에 따라 색채를 달리해 석굴로 들어오는 아주 적은 양의 빛에도 원근감이 또렷하게 나타나도록 생동감을 더했다.

이후 아잔타에서는 석굴조성이 중단됐다가 5세기에 다시 시작되는데, 이때가 세 번째 시기이자 마지막 조성시기다. 아잔타석굴 중 가장 후대에 조성된 사원은 19굴로, 인도미술사에서 가장 화려한 굽타양식으로 조성됐다. 이 시기는 탑 대신 불상을 안치하고, 벽·천정·기둥 등을 섬세한 조각과 화려한 벽화로 장엄하는 형태로 변했다. 또한 벽화와 조각 내용도 많이 변했는데, 이는 인도 불교가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 바뀐 탓이다. 

이 시기에 조성된 석굴의 천장은 기존의 돔형 대신 평면으로 만들어졌다. 그만큼 개착(開鑿) 공법이 발달했다고 볼 수 있다. 또 두 줄로 세웠던 기둥은 사라지고 내부 공간도 예불공간인 전실과 불상을 안치하는 후실로 구분했다. 아잔타석굴의 내부는 화려함을 자랑한다. 예술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그리고 인도의 전통적인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수준 높은 벽화가 있기 때문이다. 석굴사원에 벽화를 조성하려면 많은 정성과 노고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정과 망치로 돌을 파서 벽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망치로 때려 파낸 정의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거친 벽면에 가장 먼저 마른 풀이나 동물의 털을 섞은 거친 진흙으로 면을 다듬는다. 이때 진흙에 풀이나 털을 넣는 이유는 갈라짐을 방지하고 접착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 위에 곱게 정제된 진흙을 발라 면을 고른 후 흰 석고를 다시 발라 도화지처럼 만든 뒤 그리는 방식으로 조성됐다. 

화려한 굽타양식으로 조성된 설법상.(제1굴)

부처님 전생담 벽화 가장 많아

벽화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는 25편에 달하는 붓다의 본생담, 즉 〈자타카(Jātaka)〉이다. 그런데 조성하는 방식은 다른 지역의 불화와 많은 차이가 있다. 아잔타의 벽화는 종교화의 틀에 얽매이지 않아 자유분방하면서도 매우 상징적이며, 인물들의 감정적 표현이 뛰어나다. 〈자타카〉 중에서 가장 교훈적이고 중요한 장면을 가장 많은 공간에 할애하면서 붓다의 모습을 유난히 크게 그렸다. 또 색을 달리해 주변과 차이를 둬 벽화의 상징성을 부각하려 했다. 전생담을 모르는 이들이 보면 무슨 내용인지 혼란을 일으킬 수 있지만, 내용을 아는 이들은 강한 메시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예불공간인 차이티야는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동원해 당시 유행하는 형태로 조성했지만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비하라는 거의 대부분 동일한 양식으로 조성했다. 비하라에는 중앙공간을 중심으로 작은 방이 조성돼 있다. 각 방에는 좁은 돌침대가 놓여있어서 수행자의 사적인 공간임을 짐작케 한다. 반면 중앙공간에는 벽화를 장식한 것으로 보아 승려들의 공동 생활공간과 소단위의 수행공간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아잔타석굴은 삭발한 채 붉은 가사를 입고 수행하는 승려들의 공간일 뿐 아니라 거친 손에 망치와 붓을 든 수많은 석공과 화공들의 장인 혼이 깃든 평생의 결과물이다. 절벽에 걸린 밧줄에 의지해 수백 년간 반복한 망치질과 붓질은 결국 위대한 유산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아잔타석굴은 한 점의 거대한 예술조각이고, 한 폭의 장대한 예술화이며, 인도불교사원의 결정체이다.

아잔타석굴은 오늘도 쉼 없이 이어지는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인근에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 불심으로 먼 곳에서 찾아온 수많은 순례객들, 한 가닥 호기심을 안고 찾아온 서양 관광객까지. 인종도 찾아온 이유도 다르지만 어둔 동굴 안에서 느낀 감동만은 모두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에 한 평생 잊혀 지지 않을 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탁발을 위해 카필라성을 방문한 부처님이 아내 야소다라와 아들 라훌라를 만나는 장면.(17굴)
(좌) 아잔타석굴 중 가장 화려한 석굴에 안치된 탑과 좌불상.(26굴)(우)아잔타석굴 중 최초로 조성된 10굴 예불공간. 무불상시대에 조성되었기 때문에 불상 대신 스투파가 조성됐다. 영국 병사가 최초로 발견한 석굴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와고라강과 계단으로 연결된 16굴. 입구 양옆에 코끼리가 조성된 게 특징이다. 비하라의 내부. 중앙공간에서 개인생활공간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들이 보인다.석굴입구에 출입문 위쪽으로 빛이 들어 올 수 있도록 광창(光窓)을 조성했다.(19굴)
김성철
사진작가. 대학에서 사진을, 대학원에서 문화재를 전공했다. 문화재전문작가이자 여행작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문화재 관련 책에 사진을 찍었다. 현재 문화재를 전문으로 촬영하는 ‘스튜디오49’와 해외유적도시 전문출판사인 ‘두르가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글·사진 김성철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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