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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차밭기행3_포르투갈 상미겔섬 차밭
상미겔섬의 차밭과 잘 어우러지는 쪽빛 대서양.

포르투갈 서쪽 1,500km 대서양에서
유기농 재배하는 유럽 유일의 차밭

유럽 남서부 이베리아반도 북서쪽에 9개 섬이 가족처럼 옹기종기 모여 아조레스 제도(Azores Islands)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유럽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차밭이 13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이곳에서 품질 좋은 차가 생산될 수 있는 이유는 산성화된 화산 토양과 연중 10℃~26.7℃로 유지되는 기온, 연평균 1,270mm의 많은 강우량, 풍부한 일조량, 높은 습도 등 지중해성 기후로 차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조레스 제도의 9개 섬

필자는 수년 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소형 프로펠러비행기를 타고 상미겔섬(São Miguel)에 있는 폰타 델가다(Ponta Delgada) 공항에 도착했다. 유럽 대륙에서 두 시간을 날아 초록빛 섬에 다다르는 여정은 마치 지구 끝에 온 느낌이었다. 중세시대 유럽인은 포르투갈 북쪽이자 스페인 북서쪽 끝에 있는, 대서양을 마주보는 피니스테라를 지구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사람들이 피니스테라에서 1,500km 떨어진 바다에 아조레스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이 섬들을 지구 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조레스 제도가 유명세를 타게 된 건 2007년 무렵이다. 미국의 저명한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가고 싶은 세계의 섬 베스트 111’을 선정했는데, 이때 아조레스 제도가 2위에 꼽혔다.

상미겔섬의 중심 도시인 폰타 델가다 인근에 있는 화산 분화구와 호수. 산성화된 화산 토양은 차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아조레스 제도는 북대서양 망망대해에 떠있는 화산군도이다. 9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는데, 각 섬에는 아직도 유황온천과 회색 진흙이 곳곳에서 끓고 있다. 500여 년 전 포르투갈인에 의해 재발견됐으며, 현재 포르투갈령에 속하는 특별자치구이다. 그래서인지 포르투갈이면서도 본토와는 다른 섬 특유의 문화와 전통이 잘 보존되어 있다.

폰타 델가다는 아조레스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상미겔섬의 중심 도시다. 거리에 나가보니 특이한 건물들이 먼저 눈에 띈다. 큰 건물의 외벽은 하얀 색으로 칠한 반면 지붕과 가장자리, 창문 테두리는 진한 색의 벽돌로 둘렀다. 건물 바깥 선을 강조하는 독특한 건축양식인데 매우 이국적이었고, 단정해 보였다. 마을의 일반 주택은 주로 빨간 지붕과 흰 벽으로 되어 있는데, 초록과 파랑으로 무한하게 펼쳐진 자연경관과 조화롭다.

아조레스 제도는 일반적으로 ‘아조레스섬’이라고 부르지만 공식적으로는 크게 동부·중부·서부 등 세 권역으로 나뉜다. 9개 섬을 합한 전체면적은 약 2,346㎢로 제주도의 1.3배 정도이고 인구는 약 25만 명이다. 전체인구의 55%가 동부권에 속하는 상미겔섬에 살고 있다.

산과 계곡에는 짙푸른 숲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작은 마을이나 도시에도 공원과 녹지가 흔해 어딜 가나 파랑과 초록이 이랑처럼 물결친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흐르는 듯 자연스럽게 공생·공존하는 섬이다.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신작로를 따라 걷다보니 천상의 화원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조레스 제도는 사계절 내내 초록으로 덮여 있어 ‘초록섬(Green Island)’이라고도 불린다.

기온은 겨울 평균 15도, 여름 평균 25도 사이로 온화하다. 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먹구름이 몰려와 비가 쏟아지고, 금세 반짝이는 햇살이 눈을 찡그리게 하는 변덕스런 날씨가 반복된다. 빗줄기가 가시기도 전에 떠오르는 햇살에 ‘여우가 또 시집을 가는구나.’하고 읊조리다보면 저만치 오색 무지개가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아조레스 제도는 연 강우량이 많아 물이 풍부하다. 계곡과 호수마다 물이 가득하고 폭포는 우렁차게 물을 흘려보낸다. 비옥한 화산 토양 덕분에 농업과 목축업도 성행한다. 방목해 키운 소에게 얻은 우유와 치즈는 유럽 전역에 공급되고 있으며, 관광산업의 일환으로 꾸며놓은 파인애플 밭도 규모가 만만치 않다.

섬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포르투갈 본토의 ‘도우로 브랑코(Douro Branco)’에 견줄만하고, 대서양에서 건져 올리는 바다가재·조개류·농어 등 각종 해산물도 풍부하다. 상미겔섬에 머물다보면 이곳이 바다에 고립된 섬이 아니라 진정한 낙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풍요와 평화를 만끽할 수 있다.

폰타 델가다의 주택은 주로 빨간 지붕과 흰 벽으로 도색돼 있는데, 초록과 파랑으로 무한하게 펼쳐진 자연경관과 조화롭다.

19세기 초중반 차나무 심어

19세기 초까지 아조레스 제도의 주민들은 오렌지 농사를 지었다. 질 좋은 오렌지를 수확한 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 수출해 얻은 소득이 수백만 파운드에 달해 지역 경제를 이끌어가는 버팀목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9세기 초 오렌지나무에 퍼진 병충해로 농사를 망치게 됐다. 잎과 줄기가 말라서 죽는 마름병은 ‘오렌지 섬’을 침몰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농부들은 대체할 작물을 찾아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찾은 농작물이 패션 후르츠(Passion Fruits)와 바나나인데, 현재 이 지역의 대표 작물이 되었다. 섬 주민들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작물을 찾았는데, 1750년 경 아시아를 오가던 무역선이 전해준 녹차의 재배가 아조레스 제도의 기후나 토양과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섬에서 차를 처음 재배한 사람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먼저 1820년경 자킨토 레이트(Jacinto Leite)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가져온 씨앗으로 재배했다는 설이고, 두 번째는 1860년에 주세 도 칸토(Jose do Canto)라는 농부가 일본과 인도에서 차 씨앗을 들여왔다는 설이다.

19세기 초중반 차 씨앗을 가져와 재배를 시작했지만 주민들은 차나무를 어떻게 키워야하는지 몰랐다. 뿐만 아니라 찻잎을 어떤 방법으로 가공하고, 어떻게 차를 우려내는지도 몰랐다. 그 당시 아조레스 제도에는 차 재배에 대해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차나무를 심기는 했지만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결국 상미겔섬의 사업가들은 중국에서 차 전문가를 초빙하기로 결정했다. 텅(Teng)과 그의 조수 팬(Pan), 두 중국인이 1874년 9월 상미겔섬으로 건너와 사람들에게 차 재배기술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아조레스 제도에 차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중국의 차 전문가 텅은 유럽에서 전설적인 인물이 된다. 그는 상미겔섬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에게 유럽 땅에서 찻잎을 재배하는 법을 전수한 초기 차 마스터 중 한 사람이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상미겔섬의 차 공장은 14개에 이르렀고, 연간 차 생산량은 250톤에 달했다. 이때가 차 생산의 최고점이었다. 2차 대전을 고비로 많은 공장이 폐업을 했고, 1966년까지 5개 공장이 남아 있었지만 이마저도 하나 둘 문을 닫았다. 결국 1883년에 설립된 고레아나 차 공장만이 홀로 130년 간 6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상미겔섬의 차 관련 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한 이유는 전기료 상승으로 인한 생산원가의 상승이다. 당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재배된 차가 싼 가격으로 유럽에 공급되면서 가격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과거 문을 닫았던 포르토 포르모소(Porto Formoso) 공장이 8년 전부터 재가동을 시작했다. 현재 차를 생산 중인데, 재배면적을 넓혀가고 있다. 그래서 현재 상미겔섬에는 두 곳의 차밭과 두 곳의 공장이 운영되고 있다.

고레아나 차밭에서 직원들이 차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김선인〉

고레아나 차밭과 차 공장

고레아나 차 공장은 병충해로 오렌지 농사를 망친 농부 중 한 사람인 에레린다 가고 다 카마라(Ermelinda Gago da Câmara)와 그녀의 아들인 주세 오노라토(José Honorato)가 설립했다.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차 재배와 공장 설립은 그 당시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차를 재배하는 일은 차나무를 돌보는 일 외에도 제조공정 상 수많은 시설이 필요했다. 찻잎을 따서 건조·발효시키는 일 뿐만 아니라 말리고 돌리고 선별하는 작업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고레아나 차 공장은 19세기 당시 최고 기술로 여겼던 전통적인 기계로 지금까지 차 재배와 제다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방법은 수작업과 더불어 좋은 제품을 뽑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손에 오랫동안 익은 시설이라 쉽게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포장 쪽으로만 현대적인 시설을 추가했고, 그 외의 공정은 19세기 영국에서 제조한 기계를 사용하는 전통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고레아나는 상미겔섬에서 첫 번째로 수력 전기시설을 갖춘 곳이다. 2차 대전 후 불황으로 모든 차 공장이 문을 닫을 때도 고레아나 공장 홀로 도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자체적인 수력 발전시설을 통해 비싼 전기료의 충격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레아나 차 공장은 상미겔섬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리베리아 그란지(Riberia Grande)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19세기 전성기 때보다는 재배량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13만㎡의 차밭에서 매년 33톤의 차를 생산하고 있다. 고레아나에서 생산한 녹차와 홍차는 국제 차 대회에서도 품질을 인정받아 여러 차례 수상을 했으며, 포르투갈 본토와 영국·독일·헝가리·미국·캐나다 등으로 활발히 수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찻잎을 따는 시점에 따라 우전·세작·중작·대작으로 나눈다. 고레아나에서도 녹차와 홍차로 나누어 찻잎의 채취시기에 따라 ‘Orange Pekoe Leaf(세작)’, ‘Pekoe Leaf(중작)’, ‘Broken Leaf(대작)’로 분류해 각 제품의 등급을 나누고 있다. 또한 녹차와 홍차에 다른 식물 또는 향을 첨가한 ‘칸토 티(Canto Tea)’도 생산하고 있다.

고레아나 차 공장안에는 공장의 역사를 보여주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는 커다란 사진이 하나 걸려 있는데, 바로 상미겔섬에 차 재배기술을 전수해줘 차 산업을 발전시켜준 중국인 텅이다. 우리나라에서 차를 언급할 때 주저 없이 초의 선사를 꼽듯이 텅은 이곳에서 초의 선사와 같은 인물이다. 전시·보관된 사진 속의 텅은 망토를 두르고 동그란 얼굴에 슬픈 눈빛을 하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아편 중독자였다.

박물관에는 차를 무료로 시음할 수 있는 다실도 갖춰져 있다. 이곳에서 차 한 잔을 음미한 후 공장 앞에 펼쳐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넓은 차밭을 거닐다가 문득 유배지에서 차 연구를 하며 자신의 신병을 치료했던 정약용을 떠올렸다. 마당에 편평한 바위 하나를 의자삼아 차 부뚜막이라 부르며 한 잔의 차를 우려 마시던 그의 모습. 혀끝에 남아 있는 녹차의 맛을 음미하고 있으니 감미로운 여행의 기쁨이 배가되는 기분이다.

고레아나 차밭은 상미겔섬 북쪽 해안에 자리하고 있다.

농약과 방부제 없는 차 생산

상미겔섬은 유럽 대륙, 정확히는 포르투갈의 수도이자 항구도시인 리스본에서 1,500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만큼 자연환경이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지역이다. 상미겔섬 차밭에서는 제초제·살충제·농약·살진균제는 물론 방부제와 보존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차를 재배·판매한다.

기원전 3,000년 경 차 문화가 시작된 중국에 비하면 200년 밖에 안 된 짧은 차 재배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상미겔섬은 청정한 자연환경 속에서 유기농으로 좋은 품질의 차를 생산한다고 정평이 나기 시작했고, 이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차 소비량이 높은 영국과 아일랜드 등의 큰 시장이 멀지 않은 거리에 있고, 상미겔섬의 차밭이 유럽의 관광명소로 떠오르면서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아조레스 제도의 모든 레스토랑에는 고레아나에서 생산되는 차가 판매되고 있다. 차 공장 근처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는 지역에서 나는 온천수로 차를 우려내준다. 온천수의 철분이 녹차 잎과 만나면 찻물은 라일락 색으로 변한다. 이런 화학작용을 거치면 철분 맛이 나지만 마음과 혀가 청량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푸르나스(Furnas) 마을은 ‘보랏빛 차’로 유명해졌다.

섬에서의 삶은 육지에서의 그것보다 느리고 단순하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일상은 늘 반복적이고 한정적이다. 상미겔섬 여행은 시간에 쫓겨 쳇바퀴 돌 듯 바쁘게 살아가던 내 삶의 속도를 떠올리면서 느리게 산다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섬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은 그 자체가 풍경이었다. 대서양이 내려다보이는 차밭 맞은편에 앉아 있으니, 수확을 기다리는 찻잎들이 멀리 밀려오는 하얀 포말과 더불어 서로를 향해 손짓하듯 반짝였다. 차 한 잔을 우려 마시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살아오면서 잃어버리거나 놓친 것들을 조금은 되찾는 여유를 재충전할 수 있었다. 모두 차의 정기(精氣) 덕분일 듯싶다. 

화산섬인 상미겔섬 곳곳에는 온천이 솟는다. 대부분 별다른 시설이 없는 노천온천이다. 〈우측 사진=김선인〉
(시계방향으로) 고레아나 차 공장 전경. 공장 이름 아래 창립년도를 의미하는 ‘1883’이 작게 보인다.
직원이 19세기 때만든 영국제 기계로 제다작업을 하고 있다.
차 공장 내에 있는 박물관 내부. 1874년 9월 초청을 받고 섬에와 차 재배기술을 전수한 중국인 텅의 사진도 걸려 있다. 〈이상, 사진=김선인〉
한 직원이 건조 작업을 하고있다. 〈사진=고레아나 차 공장 홈페이지〉

김선인
수필가이자 여행작가. 주로 섬을 여행해 〈Life & travel〉에 ‘우리나라 섬 걷기 여행’, 〈여행 작가〉에 ‘힐링 섬 기행’, 〈시니어 시대〉에 ‘세계 명섬 기행’, 〈현대 수필〉에 수사 에세이를 연재했다. 검색포털 줌(ZUM)닷컴 허브줌 여행코너의 고정필진이다.

글 김선인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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