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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가 부른 행복의 노래3_앙굴리말라에 대한 붓다의 승리
앙굴리말라 스님은 수행한지 오래지 않아 아라한의 지위에 올랐다. 아라한이 된 후에도 사람들로부터 돌이나몽둥이를 맞았고, 칼에 찔리기도 했지만 저항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인내하고 수용했다. 사진은 부처님과 앙굴리말라가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간다라 시대의 부조.

‘멈추라’ 한마디로
앙굴리말라를 교화하다

자야망갈라가타(Jayamaṅgala Gāthā)의 네 번째 게송은 연쇄살인범 앙굴리말라에 대한 부처님의 승리 이야기이다. 앙굴리말라(Aṅgulimāla)는 극악무도한 연쇄살인자였다. 앙굴리(Aṅguli)는 ‘손가락’을 의미하고, 말라(Māla)는 ‘화환’을 의미한다. 두 글자가 합쳐져 ‘앙굴리말라’라는 이름이 부여 되었는데, ‘손가락 화환’이라는 의미이다. 앙굴리말라는 사람을 죽이고 죽은 사람들의 손가락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고 다녔다. 부처님은 이런 살인자를 몸소 찾아가 교화시킨 것이다.

앙굴리말라의 원래 이름은 ‘아힘사카(Ahimsaka, 비폭력)’였다. 그는 사위성(Sāvatthī)에서 태어나 지적인 청년으로 성장했으며, 학업이 뛰어나 스승이 가장 총애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동료 학생들이 시기하고 질투해 ‘앙굴리말라가 스승의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다.’고 거짓말을 퍼트렸다. 스승은 앙굴리말라를 없애기로 결심했다. 스승은 그를 죽이기 위해 1,000명의 사람을 죽여 손가락을 가져오면 졸업 요건을 갖추게 된다고 지시한다. 일설에는 스승의 아내가 앙굴리말라를 유혹하다가 실패하자 오히려 분풀이로 앙굴리말라가 자신을 겁탈했다고 남편에게 거짓말을 했다고도 한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앙굴리말라는 잔인한 살인마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왕은 살인범을 잡기 위해 군대를 보내지만 실패한다. 999명을 죽이고 한 명만 더 죽이면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편 앙굴리말라의 어머니는 살인 행각을 멈추기 위해 아들을 찾아갔는데, 앙굴리말라는 어머니조차 죽이려고 했다. 경전에는 앙굴리말라가 어머니를 죽이면 천상에 태어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고도 전한다. 부처님은 이런 극악한 악업을 막기 위해 앙굴리말라를 일부러 찾아간다.

부처님은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사밧티로 탁발하러 들어갔다. 탁발을 마치고 식후에 깔개를 정리하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흉적 앙굴리말라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앙굴리말라가 있는 곳으로 가는 부처님을 보고 말했다.

“수행자여! 이 길로 가지 마십시오. 이 길에는 흉적 앙굴리말라가 있습니다. 그는 잔인해 손에 피를 묻히고 살육을 일삼고 생명에 대한 자비가 없습니다. 그는 마을과 도시와 지방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그는 사람을 죽여서 손가락으로 화관을 만들고 있습니다. 수행자시여, 이 길을 열 사람, 스무 사람, 서른 사람, 마흔 사람, 쉰 사람이 모여서 가도 오히려 그들은 흉적인 앙굴리말라의 손아귀에 놓일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묵묵히 앙굴리말라를 향해 나아갔다. 앙굴리말라는 세존이 멀리서 오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 생각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참으로 이전에 없었던 일이다. 이 길을 열 사람, 스무 사람, 서른 사람, 마흔 사람, 쉰 사람이 모이고 모여서 가도, 오히려 그들은 나의 손아귀에 놓였다. 그런데 이 수행자는 혼자서 동료도 없이 오고 있다. 내가 어찌 이 수행자를 죽이지 않겠는가?’ 앙굴리말라는 칼과 방패를 꺼내 잡고 활과 화살을 메고 세존을 쫓아갔다.

그러나 세존은 신통력을 사용해 앙굴리말라가 온 힘을 다하여 달려도 보통 걸음으로 걷는 부처님을 따라잡을 수 없게 했다. 앙굴리말라는 생각했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나는 일찍이 질주하는 코끼리, 질주하는 말, 질주하는 수레, 질주하는 사슴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온 힘을 다해 달려도 보통 걸음으로 걷고 있는 이 수행자를 따라 잡을 수 없다.’

앙굴리말라는 걸음을 멈추고 부처님에게 외쳤다.

“수행자여! 걸음을 멈추어라.”

“앙굴리말라여, 나는 이미 멈추었다. 너도 멈추어라.”

앙굴리말라는 생각했다. ‘수행자는 진실을 말하는데 이 수행자는 자신은 걷고 있으면서 이미 멈추었다라고 말하고, 나는 이미 멈추었는데 나를 보고 멈추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앙굴리말라가 질문을 하자 세존은 이렇게 대답했다.

“앙굴리말라여! 나는 언제나 일체의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폭력을 멈추고 있다. 그러나 그대는 살아있는 존재에 대해 절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미 멈추었고 그대는 멈추지 않았다.”

부처님은 이미 일체 살아있는 중생에 대한 자비심으로 가득 차 있어 죽이거나 다치게 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어 멈추어 있지만, 앙굴리말라는 중생을 살해하려는 마음이 멈추지 못한 채 달리고 있었다. 외형적으로 앙굴리말라는 멈추었지만, 내면의 살심(殺心)은 쉬지 않고 달리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교화되었다.

“위대한 선인께서 나를 위해 이 커다란 숲에 오셨습니다. 진리에 일치하는 말씀을 듣고서 나는 앞으로 악을 버리고 살아가겠습니다.”

마침내 살인마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의 두 발에 예경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출가 허락을 간청했다. 부처님께서 출가를 허락하시고 그를 시자(侍者)로 두었다.

부처님은 잔인한 살인마 앙굴리말라에게 “나는 이미 멈추었다. 너도 멈추어라.”고 말했다. 그 말은 살심(殺心)을 멈추라는 지적이었다. 이 한마디로 부처님은 앙굴리말라를 교화시켰다.

코살라 국왕 파세나디왕은 앙굴리말라가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을 목격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경이로운 일입니다. 세존께서 길들여지기 어려운 자를 교화하셨습니다. 저희들은 둔탁하거나 날카로운 무기를 가지고도 교화하지 못했는데 세존께서는 그런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교화하셨으니 놀라운 일입니다.”

어느 날, 앙굴리말라 스님이 사밧티에서 걸식을 하던 도중에 산고(産苦)로 괴로워하는 임산부를 보고 ‘살아있는 생명들은 정말 괴롭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앙굴리말라 스님은 탁발을 마치고 세존께 가서 임산부의 고통을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앙굴리말라 스님에게 이런 경우, 그 임산부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말하라고 가르쳤다.

“여인이여! 나는 태어난 이래 의도적으로 단 하나의 생명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진실에 의해 그대에게 안녕이 있고 그대의 아이에게도 안녕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렇지만, 세존이시여! 이것은 거짓말이 아닙니까? 왜냐하면 저는 의도적으로 많은 생명들을 죽였습니다.”

“그럼 이 경우에는 앙굴리말라여! 너는 저 여인에게 가서 ‘여인이시여! 나는 성인(聖人)의 집에 태어난 이래 의도적으로 단 하나의 생명도 죽이지 아니했습니다. 이런 진실에 의해 그대에게 안녕이 있고 그대의 아이에게도 안녕이 있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말하거라.”

앙굴리말라는 그 여인에게 가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말했다. 그후 임산부도 아이도 모두 건강하게 되었다. 참고로 지금도 스리랑카 등 동남아시아 상좌부불교 국가에서는 앙굴리말라 스님의 이 말씀을 임산부와 아이의 안전한 출산과 건강을 위한 보호주(保護咒, Paritta)로 사용하고 있다.

앙굴리말라 스님은 수행한지 오래지 않아 아라한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아라한이 되고 나서도 사람들로부터 돌이나 몽둥이를 맞기도 하고 심지어 칼에 찔리기도 했지만 저항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인내하며 수용했다.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일국의 군대를 동원할 정도로 흉악한 살인마였지만 부처님의 교화를 받은 후에는 모든 폭력을 내려놓았다. 임산부의 고통을 보고 가슴 아파하는 제자가 되었다. 출가 수행하여 아라한이 된 후에는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향해 공격하거나 조금도 미워하지 않고 인욕했다.

모두 무서워하여 군대까지 동원하여 잡으려고 하였던 연쇄살인범을 부처님이 직접 찾아가 교화한 이야기는 아무리 흉악한 인간도 부처님의 교화에 의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파세나디왕은 그토록 난폭한 살인마가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을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하지만 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부처님의 교화 방법에 감동하게 됐다. 부처님께서 몽둥이와 칼로 다스리지 않고 말씀으로 다스리는 것에 감탄하게 됐다. 연쇄살인범조차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근거해 영국 등 몇몇 나라에서는 죄수를 상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리는 단체마저 생겨났다고 하니 불법(佛法)의 교화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안양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불교문화대학장과 불교문화대학원장을 겸하고 있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학사,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일본 동경대(東京大) 외국인연구원,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특별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불교상담학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 〈행복을 가져오는 붓다의 말씀〉·〈붓다의 입멸에 관한 연구〉·〈The Buddha’s Last Days〉 등이 있다.

글 안양규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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