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 신뢰받는 간호사 되려 무소의 뿔처럼 걸어갈께요”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됐지만, 다행히 국내는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급한 불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잔불정리를 소홀히 하면 재확산의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사망률은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할 때 현저하게 낮다. 방역대책과 의료체계가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결과는 의료진의 노고 덕분이라 말할 수 있다. 특히 의사의 그늘에 가려져 좀체 드러나지 않는 간호사의 역할이 컸다. 이번 호 주인공은 혈액내과 병동에 근무하는 김유진(28) 간호사다.  
 

병원 정형외과에 입사한 후 3개월이 지났을 때 신규 간호사를 위한 격려의 백일잔치가 열렸다. 당시 케이크를 받아들었던 김유진 씨도 이제 선배 간호사에게 동료로 인정받는 4년차 간호사가 됐다.

김유진 간호사가 근무하는 서울의 혈액종양내과 병동에는 흉수(胸水, 가슴막에 고인 물)가 차올라 배액관을 삽관한 할머니 환자가 있다. 며칠 전 환자가 고통을 호소해 확인해봤더니 흉수가 잘 배출되지 않고 있었다. 경험이 많지 않은 수련의가 삽입한 배액관을 확인하며 흉수 배출을 유도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환자의 불안감은 점점 고조되어 갔다. 배액관 삽관은 간호사 우선 업무에 포함되지 않지만, 긴급한 상황이다 보니 머리보다 두 손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신중하게 관을 어루만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흉수는 관을 타고 배출되기 시작했다. 

희귀난치성 유전질환 앓던 아이

사실 김유진 씨는 태어날 때부터 희귀난치성 유전질환의 일종인 ‘랑뒤-오슬러-웨버병(Rendu-Osler-Weber disease)’을 앓고 있다. 혈관벽 탄력층과 근육층 변화로 인해 외상이 있을 때 출혈이 쉽게 일어나는 질환이다. 지금까지 큰 문제는 없었지만 언제든 병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일 년에 한두 번은 검사를 받고 있다.

어릴 때는 아토피가 심해 일주일에 한번 꼴로 큰 병원에 가야했다. 자립심 강한 딸로 자라길 바랐던 엄마는 버스로 40분 되는 거리를 혼자 다니게 했다. 당시 나이 아홉 살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을 때마다 피부과 외래창구에 앉아 있던 간호사는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맞아주었다. 대기인원이 많아 기다려야 할 때면 혼자 병원에 온 어린 소녀의 손을 잡고 옥상정원을 구경시켜주기도 하고, 사탕을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병원이 두렵기만 했던 아홉 살 소녀의 눈에 순백의 간호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마치 천사처럼 보였다.  

“어릴 때 병원을 자주 오가다보니 간호사 선생님과 친해지게 되었어요. 진료 후에는 병원 밖에 있는 약국까지 함께 가서 수납을 도와주셨어요. 어릴 때는 내성적인 성격에 낯을 많이 가렸는데, 친절하게 돌봐준 간호사 선생님 덕분에 병원에 대한 기억이 나쁘지 않습니다. 희귀난치성 질환이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지만, 한 번 출혈이 나면 잘 멈추지 않아 매사에 조심해야했어요. 또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사람 앞에 나서기를 꺼려했어요. 친한 친구와는 잘 놀았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움츠러들곤 했죠. 지금도 내성적인 편이지만 환자에게만은 적극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간호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시기는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다. 독실한 불자였던 엄마는 매일 독경 테이프를 틀어놔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새 불자가 되어 있었다. 당시에도 아토피로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힘이 들면 무작정 가까운 절을 찾았다.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법당에 앉아 있거나, 사찰 주변을 산책삼아 포행하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양주 묘적사에서 한 스님과 차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스님은 아토피로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그렇게 힘이 들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아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평소 아버지도 ‘어떤 사람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신 터였다. 스님과의 차담 이후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품게 됐다.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는 의사를 희망했지만 성적이 받쳐주지 않아 서울여자간호대학교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대불련 활동 당시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서울 우정국로에서 진행된 전통문화마당에 참여하고 있다

대불련 활동 자기개발 큰 도움

간호학과를 졸업하려면 1,000시간 이상 현장실습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대학생활 속에서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에 가입해 불교활동을 했다. 성적을 관리하면서 동아리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대불련 기획부장, 문화부장, 간사 등을 거치다보니 소극적이던 성격은 점점 적극적으로 변해갔다. 법우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의 대불련 활동은 자기 개발에 큰 도움이 됐을 뿐 아니라 가치관 형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동국대 일산병원과는 인연이 닿지 않아 2017년 11월 서울의 한 병원에 입사했다. 규모도 크지 않고 급여도 기대에 미치지 않았지만 베풀며 나누는 삶의 가치를 실현하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정형외과 병동으로 배치됐던 첫 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간호복을 입고 병동 앞에 섰다는 첫 설렘을 느낄 새도 없이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야 했다. 뛰어다니는 선배 간호사들은 흡사 전쟁터의 전사와 같았다. 3개월 정도 지났을까? 4년의 대학생활보다 더 길고 아찔한 순간들이 이어졌다.  

“간호사는 항상 긴장을 해야 해요. 사소한 실수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죠. 그렇다보니 신입 때는 혼나는 일이 많아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어요. 어느 날, 환자 상태가 악화돼 혈당을 확인했는데 저혈당이었어요. 환자의 의식이 혼미해지는 위험하고 긴급한 상황이었죠. 고농도의 포도당을 재빨리 투입해야 했는데 처음 접한 상황에 머릿속이 하얘져 천천히 투여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어요.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후속 조치를 받았지만, 저는 전혀 괜찮지 않았어요. ‘이것밖에 못하느냐?’는 선배 간호사의 질책을 받아야 했고, 제 스스로도 차분하게 대응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후회가 밀려와 눈물을 흘렸어요.”

그녀는 2019년 3월 서울의 병원으로 옮겨와 혈액내과에서 일하고 있다. 70년 가까이 된 병원이 청량리 주변 재개발로 인해 부속병원과 통합이 됐기 때문이다. 경력 4년차에 접어든 김유진 간호사. 그녀는 이젠 초보딱지를 떼고 선배 간호사들에게 동료로 인정받고 있다. 

종합병원의 병동은 주로 ‘데이(Day)’, ‘이브닝(Evening)’, ‘나이트(Night)’ 등 3교대로 근무를 한다. 3교대 근무에서 공통적으로 살펴야 하는 업무는 바이탈 싸인(Vital sign, 맥박·혈압·호흡·체온), 처방에 따른 투약사항, 혈당검사, 섭취량과 배설량, 간호일지 기록 등이다. 모든 근무는 환자인계로 시작해 환자인계로 끝난다. 24시간 내내 환자를 가까이서 돌봐야하기 때문에 세 사람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대근무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인계해야 하고, 집중해서 인계를 받아야 해요. 신규 간호사 때는 혹시 놓친 부분이 있지는 않을까하는 부담감에 잠을 잘 못이루기도 했어요. 어떤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직업이니까요. 투약량을 잘못 계산하거나 의료기기 버튼 하나를 잘못 눌러도 환자는 위험에 빠질 수 있어요. 언제 어떻게 응급상황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극도의 긴장을 안고 일을 해요. 한 번은 퇴근을 했다가 챙기지 못한 부분이 생각나 다시 병원에 와서 체크를 하고 돌아오기도 했어요.”

간호사 업무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쁘다. 환자를 챙기다보면 정시 출·퇴근을 못하는 날이 많다. 또 인력이 부족해 연차는 사용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 정도의 업무량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지치게 하는 건 일부 환자와 보호자들의 예의 없는 행동이다. ‘어이’, ‘아가씨’하며 간호사를 불러놓고 마치 심부름꾼 취급을 하기도 하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내뱉거나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는 건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힘들고 지칠 때 힘이 되어 주는 사람 역시 환자와 보호자다. ‘수고하셨다’는 감사인사와 함께 손에 음료수를 쥐어주기도 하고, ‘덕분에 건강하게 퇴원한다’면서 건네주는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위로를 받는다. 한 번은 퇴원한 환자가 일부러 찾아와서 부러졌다가 붙은 다리를 보여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도 했다. 잊지 않고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  

정규 채혈을 나가기 전에 환자의 증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는 김유진 간호사.

병원 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지난 2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우리나라 첫 확진자를 보살피던 의사도, 같은 공간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도 격리 대상자가 되었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2월 21일 그녀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 이송요원과 입원환자가 잇따라 확진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확진환자와 밀착·접촉했던 담당 간호사 중 한 명이었다. 

이로 인해 병원 내 모든 시설은 17일간 폐쇄 조치됐다. 의료진도 집에서 자가격리를 해야 했고, 이 기간 동안 환자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병원 내 모든 의료진과 환자를 대상으로 밤낮없이 진단검사를 실시한 결과, 그녀를 포함한 2,700여 명의 의료진과 환자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다. 이후 감염 방지를 위해 많은 부분을 신경 써야 하다 보니 업무량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료진에 비할 수는 없다.        

“간호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등불이 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어요. 몸과 마음이 힘들 때면 평정심이 흔들리기도 해요. 보살피던 환자가 사망하면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시신을 수습해야 해요. 굳어버린 환자의 몸을 닦고, 흘러나오는 대소변을 씻어내고, 새 환자복을 갈아입히는 일은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너무 힘들다고 친구들에게 투정을 부리다가도 어느 순간 일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요. 거창한 목표는 없어요. 초심(初心)을 유지하면서 그렇게 현재에 충실하고 싶어요.” 

김유진 간호사는 임상실습 전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 선서합니다.”라고 나이팅게일 선서를 했을 당시의 가슴 떨림을 아직 기억한다. 환자들에게 신뢰받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그녀는 자신의 발자국이 후배 간호사와 간호사를 희망하는 예비 간호사들에게 이정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그저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나아갈 뿐이다.

그녀는 2018년 5월 근무한지 6개월 만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녀는 대불련에서 기획부장을 맡아 프로그램을 기획해 발표하는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당시 ‘속마음 토크’, ‘19금 붓다’ 등을 기획했다.
환자에게 수액을 달기 전 수액 줄에 공기가 있는지 살피고 있다. 혈액 내과에서 다루는 항암제는 피부에 노출되면 구역감이 생기거나 피부가 벗겨질 수 있어 환자의 안전은 물론 간호사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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