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법과 의례는 달라도 해탈 향한 열망은 ‘하나’

불광산 총림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는 혜호 스님.

예불·공양 관리하는 규찰
소임자 스님 대상 범패 강의

안녕하세요. 저는 대만 가오슝(高雄)의 불광산(佛光山) 불광산사(佛光山寺)에서 수행하는 혜호(慧豪) 스님입니다. 저는 한국 출신으로 15살이 되던 1999년 대만 불광산사에서 출가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 불광산사의 호주도량인 남천사(南天寺)에서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저의 하루는 오전 5시 30분, 멀리서 들려오는 판(板)소리와 함께 시작합니다. 

저는 불광산사에서 ‘규찰(糾察)’ 소임을 3년째 맡아보고 있습니다. 규찰은 예불·공양 등을 관리해 대중스님의 생활을 보필하는 직책입니다. 규찰을 맡은 스님에게는 ‘혜명패’를 주는데, 명패에는 “대중의 혜명이 너 한 명에게 달려있다. 네가 보살피지 않으면, 그 죄는 네게 있다.(大眾慧命在汝一人, 汝若不顧罪歸汝身)”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며, 어느 누구보다 먼저 대웅전에 도착해 예불 준비가 여법하게 됐는지를 확인합니다.

대웅보전 예불. 가운데 주지스님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비구 스님과 재가자가, 서쪽에는 비구니 스님들이 정렬해 예불한다.

오전 6시 예불 후 묵언 발우공양

오전 5시 50분이 되면 아침예불이 시작되는데, 법당 중앙에 계신 심보(心保) 주지 스님을 기준으로 동쪽에는 비구 스님들과 재가자가, 서쪽에는 비구니 스님들이 정렬해 예불을 봉행합니다. 불광산사에서는 매일 새벽예불을 마치고 나면 출·재가자가 오전 6시 30분부터 공양간에 모여 계율을 잘 지키겠다는 기도를 한 뒤, 묵언으로 발우공양을 합니다.

저는 예불이 끝나기 30~40분 전에 먼저 대웅보전을 나와 공양간으로 향합니다. 공양간에는 행당(行堂, 발우공양을 위해 그릇·수저를 정돈하고 음식을 덜어주는 일. 공양 후에는 설거지를 한다.)을 맡은 불학원의 스님과 학생들이 모여 대중의 공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준비가 끝나면 목어 소리와 함께 대중스님들이 입장합니다. 공양할 준비가 끝나면 저는 공양간 가운데에서 불단을 향해 섭니다. 그러면 운판(雲板)이 울리고, 발우공양이 시작됩니다. 대중이 공양하는 동안 저는 대중스님들의 위의(威儀)가 여법한지, 음식은 부족함이 없는지 수시로 돌며 확인하고 챙깁니다. 결재게(結齋偈, 발우공양을 마치는 게송)를 마지막으로 아침공양이 끝나면, 행당을 맡았던 학생들과 함께 늦은 아침공양을 한 후 처소로 돌아와 오후 일과를 준비합니다.

저는 규찰과 함께 ‘불광산 총림학원’의 강사 소임도 겸하고 있습니다. 총림학원은 한국의 승가대학과 비슷한 곳으로, 불광산사의 시작이자 모든 대중스님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양성한 수많은 인재들이 있었기에, 전 세계 200여 곳에 도량을 세우고 국제적인 포교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총림학원에는 10여 개 국가에서 온 학생들이 함께 ‘인간불교’를 공부하며 그 원력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총림학원에서 오전 3시간, 오후 2시간의 강의를 진행합니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다른 스님들과 운력을 하고, 목욕과 빨래 등을 합니다. 저녁공양 전인 오후 5시에는 모두 모여 참선을 합니다. 중국 선종에서는 이 시간에 많은 조사 스님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혜명향(慧命香)’이라고 부릅니다.

참선이 끝나면 저녁공양인 약석(藥石) 시간입니다. 초기 불교에서는 오후불식을 해왔는데 시대의 흐름과 생활방식의 변화에 따라 저녁공양을 하게 됐고, 이를 참회하는 마음이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말 그대로 ‘약으로 먹고, 돌을 보듯 하라.’는 뜻입니다.

불광산사 신도들은 예불이 끝난 뒤 대중공양을 한다. 평상시에는 남녀가 나눠서 앉지만, 큰 행사가 있을 때는구분 없이 함께 앉는다. 사진은 불광산사에서 개최한 청년수련회에 참석한 신도들이 공양을 하는 장면이다.

매일 저녁 성운 대사께 문안

불광산사의 스님들은 낮에는 각자 맡은 소임에 따라 각 부서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자신의 원력·수행법문·취미 등에 따라 다양한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합니다. 저는 평소 저녁공양을 마친 뒤 성운(星雲) 대사께 찾아가 문안을 드립니다. 

성운 대사는 잘 알려져 있듯이 1927년 중국 강소성(江蘇省)에서 태어나 12세 때 난징(南京)의 서하사(棲霞寺)에서 출가해 임제종(臨濟宗) 48대의 법맥을 이었고, 훗날 불광산사를 개산한 분입니다. 성운 대사는 올해 94세의 고령이신데, 늘 “육근(六根, 안·이·비·설·신·의) 중 눈도 안보이고, 귀도 어둡고, 코는 둔해지고, 입맛도 없어졌으며, 몸은 휠체어 없이는 어디도 못가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또렷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성운 대사를 모시고 도량을 거닐며 스님의 눈과 귀가 되어 대중과 학생의 근황,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등을 전해드리곤 합니다. 성운 대사께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주저 말고 말해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보살 정신’을 잃지 않는 큰스님의 모습을 보며 제 스스로를 다잡게 됩니다.

최근 장로 스님들의 추천을 받아 소임자 스님을 대상으로 하는 범패 강의를 맡았습니다. 저는 동진 출가를 해서 일찍부터 불광산에서 자라다보니, 범패와 법구를 다루는데 익숙한 편입니다. 이번 학기에는 ‘염구시식(焰口施食)’이라는 중국불교에서도 가장 장엄한 법회의식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강의를 듣는 스님들은 총림학원의 학생과 같이 숙제도 하고, 시험도 봐야합니다.

강의를 듣는 스님 중에는 저보다 법랍이 두 배나 많은 스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광산사에서는 법랍이 높다고 반드시 높은 위치에 있지는 않습니다. 3년마다 부서이동이 진행되는데, 출가인은 모든 집착을 버려야하므로, 이때 자리와 권위에 대한 욕심도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보니 불광산사에는 한 사찰의 주지 소임을 맡았다가 본사에 돌아와 빗자루를 잡는 스님도 계시고, 젊은 주지 스님을 돕고자 사찰 총무를 자원한 스님도 있습니다. 

불광산사 수륙대재. 12월에 열리는 수륙대재는 평안등 법회, 공승법회와 함께 불광산사를 대표하는 행사다.

불광산사, 세계적인 승단

명·청 교체기 때 명나라 장수 정성공(1624~1662)이 ‘반청복명(反淸復明)’을 내세우며 대항하다가 대만으로 건너갈 때, 복건성(福建省) 주민들이 따라 이주하면서 대만에 정식으로 불교가 전파됐다고 합니다. 이후 토속신앙·도교 등과 융합해 민간신앙의 성격이 강한 ‘재교(齋敎)’가 성행합니다. 1895년, 중국의 청일전쟁 패배로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데, 이때 일본은 식민통치를 위해 대만의 사회·경제·문화 등을 규제하는 대대적인 조치를 단행합니다. 종교 역시 이런 제제 속에서 통제됐는데, 이때 일본 조동종·임제종 등이 유입됩니다. 

1943년 말 ‘카이로 선언’에 따라 중국에 귀속되지만 3년 뒤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발발하고, 1949년 장개석(蔣介石)의 국민당이 대만으로 후퇴하는데, 이때 성운 스님을 비롯한 강소성 북부 지역 출신의 스님들도 함께 넘어옵니다. 당시 이 지역은 거대한 총림(叢林) 등 승려교육기관을 중심으로 불교를 수행하던 곳으로 유명했는데, 이주한 스님들 중에는 유명 사찰의 주지를 지낸 장로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때 대만에서는 앞서 1947년 난징(南京)에서 다양한 불교조직 통합을 위해 창립한 중화민국불교회(中華民國佛敎會, 이하 중국불교회)를 새롭게 개편했습니다. 중국불교협회는 당시 대만에 남아있던 일본 불교의 영향을 지우고, 중국불교의 전통을 잇고자 노력했습니다. 성운 스님도 중국불교협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1953년부터 이란현(宜蘭縣)에서 전법활동을 시작해 50여 년 만에 불광산사를 세계적인 승단으로 일궈냅니다.

현재 불광산사에는 500여 명의 스님이 상주하고, 전 세계에 약 1,500명 정도의 스님들이 불법홍포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중화권 비영리단체 중 가장 규모가 큰 재가조직인 불광회에는 100만여 명의 재가자가 활동 중입니다. 이들은 성운 스님이 세운 △문화를 통한 불법 선양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 △자선을 통한 사회복지 △공동수행을 통한 마음 정화 등 4대 종지를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신심 안정·환희·편리·희망을 준다는 신조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운 스님은 1985년 불광산사 규장에 따라 심평(心平) 스님에게 법통을 전하고 퇴임하셨습니다. 

대만의 불교명절은 크게 불보절(佛寶節)·법보절(法寶節)·승보절(僧寶節)이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인 불보절은 한국과 같이 음력 4월 8일입니다. 이날에는 봉축법요식과 욕불(浴佛)법회 등이 진행됩니다. 최근에는 ‘운수욕불(雲水浴佛)’도 운영합니다. 운수관불은 작은 트럭이나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이동식 관불단을 만들어, 광장·병원·양로원·학교 등을 다니면서 더 많은 사람과 부처님오신날을 함께 기리는 행사입니다. 성도재일인 법보절에는 납팥죽을 나눠먹는 풍습이 있고, 우란분절인 승보절에는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는 ‘공승법회’를 봉행하면서 조상을 위한 기도를 합니다. 불광산사에서는 1년에 수백 개의 행사가 열리는데, 정월에 열리는 ‘평안등 법회’, 음력 7월에 열리는 ‘공승법회’, 12월에 열리는 ‘수륙법회’의 규모가 가장 큽니다.

현재 불광산사의 스님들은 소박하면서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현대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꾸준히 포교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불광산사의 스님들은 오늘도 전통과 현대의 조화 속에서 인간정토 건설을 위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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