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법과 의례는 달라도 해탈 향한 열망은 ‘하나’

타쉬강 곰파 주지 덥왕 라마.

다양한 형태 수행·공부 필수
모든 사찰은 24시간 개방

저는 부탄 수도인 팀푸(Timphu)에서 동쪽 도츄라 방향으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타쉬강(Tashigang) 곰파(사원)의 주지를 맡고 있는 덥왕 라마입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타쉬강 곰파는 15세기 나왕 쵸겔에 의해 창건된 사원입니다. 저는 1940년 부탄 동부에 위치한 몽가르 현(Monger Dzongkhag)의 켕 닥사(Kheng Daksa)에서 태어났습니다. 7살 때 몽가르 현에서 북쪽 76km 떨어진 유서 깊은 룬체 현에서 출가해 예비 승려가 됐는데, 제게 계를 준 스님은 현 부탄 국교인 드럭파-각규파(일명 뇌룡파)의 최고 지도자인 제켄포 라마의 부친이기도 합니다. 

저는 룬체에서 6년간 기초 수행과 교육을 받았고, 인도 서뱅골주에 속한 다르질링으로 파견돼 당대의 고명한 선사이신 겔왕 드럭파 툭시(Gyelwang Drukpa Thuksey in Drukpa Thuksey Monastery)께서 주석하는 드럭파 툭시 승원에서 그분을 직접 사사하고, 제자 중 한 명이 됐습니다.

지금은 타쉬강 사원에서 학승(學僧)들에게 불교교리와 사상 등 불교 전반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불교 75% 그 외 종교도 인정

부탄인의 75%는 티베트 불교를 신앙합니다. 나머지 25% 중 힌두교를 믿는 사람이 22%, 민속종교를 믿는 사람도 약 2%에 해당합니다. 나머지 1%의 사람들은 기독교 등 외부 종교를 믿습니다. 전체 77만 명의 인구 중 등록된 승려는 5,000명을 조금 넘는데, 동진 출가해 사찰에서 공부하는 어린 스님들을 포함하면 전체 인구의 20%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부탄은 불교가 국교이지만 힌두교·기독교·이슬람교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들 종교는 실상 이름만 다르지 비슷한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랑·측은지심·배려심 등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불교사원은 365일 24시간 개방되고 있지만, 교회는 주중 혹은 특별한 날에만 대중들에게 개방됩니다. 아마도 부탄 내에 있는 소수종교의 특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탄의 불교는 대승불교계인 티베트 불교 중에 ‘드럭파-각규파(일명 뇌룡파)’에 속합니다. 현 부탄 국교가 된 뇌룡파는 11세기 초 티베트 중부의 각규파 사원인 ‘랄룽사원’에서 창파 갸레이 예셰 도르지(1161~1211)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당시 티베트는 다양한 종파가 생겨나면서 세력 간 다툼이 벌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박해를 받던 각규파가 부탄으로 본거지를 옮기게 됐고, 13세기 티베트의 파죠 드럭공 싱포 스님이 부탄으로 건너오면서 기존에 부탄에 남아있던 닝마파를 누르고 부탄 불교를 뇌룡파로 통일합니다. 

수 세기가 지난 1616년 창파 갸레이의 화신이라 불리는 샤브드룽 나왕 남걀(Shabdrung Ngawang Namgyal)이 부탄으로 건너오면서 뇌룡파는 확고히 자리 잡게 됩니다. 티베트에 달라이라마가 있다면 부탄에는 샤브드룽 나왕 남걀이 있는데, 그는 부탄의 국조이자 모든 부탄인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10여 년에 걸쳐 티베트 본토의 불교를 주도하던, 달라이라마가 속한 겔룩파와의 끝없는 항전의 역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샤브드룽 이후 뇌룡파는 현재까지도 부탄의 정체성을 지키는 국교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르질링의 툭시 승원에 머물고 있을 때 툭시 린포체 문하에는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30년 간 수행을 했고, 이후 부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1984년경 타쉬강 현에 있는 곰파에서 요가행의 대가이신 소남 장포 스님의 문하에 들어가 탄트라 요가를 배웠습니다. 저의 수행을 유심히 관찰하신 스님의 권유로 다른 사원으로 자리를 옮겨 3년간 명상 수행을 하면서 전통 부탄방식인 ‘로-숨-초에숨 과정’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라마교의 요가와 명상 과정까지 마치게 됐습니다.

제가 생활하고 있는 사원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의식은 ‘푸르파 드럽첸’입니다. 매년 음력 11월경에 열리는 이 의식은 30년간 지속돼오고 있습니다. 3면이 금강밀적보살로 장식된 퇴마도구인 금강저로 악귀를 무찌르고, 중생과 사바세계에 평화와 번영·행복을 기원하는 의식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퇴마의 대상인 마군은 현상적인 악귀와 마음을 어지럽히는 심적 마군을 포함합니다.

이 의식을 집전하는 승려는 수도원장을 포함해 고도로 숙련되고, 일정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인정받은 스님들입니다. 이들이 모여 충분히 의논해 세부사항을 정한 후 의식을 봉행합니다. 그리고 스님들은 일주일 또는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초를 녹여 만든 거대한 만다라를 제작합니다. 일부 다른 스님들은 사원 내·외부를 장식합니다. 이때 대중의 기원과 공양을 받는 장소도 만들고 장식합니다. 의식이 진행될 때는 평소보다 많은 스님과 신도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공간도 많이 필요합니다. 별도의 임시천막도 조성합니다. 

이 기간 사원 외부에는 수십 미터 혹은 1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탕카(唐卡, 초대형 만다라)도 조성합니다. 각기 다른 생업에 종사하던 각계각층의 신도들이 사원을 방문해 각자의 소구소원을 비는데, 행사 마지막 날에는 모두 모여서 거대한 탕카를 함께 들어 사원 옆의 산비탈에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길게 거는 의식을 진행합니다. 이 의식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쉬강 사원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돼 있다. 〈사진=김성철〉

출가 전 10년 이상 수행 필수

승려가 되기 위해서는 입산 후 은사 스님으로부터 9~10년간 불교 이론과 수행에 대해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 과정을 성공리에 마치면 최소 3년간 수도원의 특별한 공간에서 선수도(참선) 과정을 갖게 됩니다. 이를 ‘로-숨-초에숨’이라고 합니다. 이 과정을 마치면 해당 승원장으로 부터 지역 사원의 라마로 지명을 받게 됩니다. 이때부터 지역의 작은 사찰에서 소임을 맡을 수 있습니다. 그 후 다시 수행경지·능력·경험에 관한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학습을 통해 진정한 자격을 갖추고, 사원의 소임을 맡는 라마가 될 수 있습니다.

저와 함께 생활하는 모든 스님들은 사원 내에서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새벽 4시부터 기도가 시작되는데, 이 기도는 아침공양 시간인 오전 8시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아침공양 후 점심·저녁 공양시간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수행과 공부를 진행합니다. 간혹 망자의 가족과 지인들을 위해 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기도를 진행하고 공양을 받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부탄 마을은 인구가 몇 십 명에 불과하고, 많아도 몇 백 명을 넘지 않습니다. 때문에 49재나 장례의식을 자주 행하는 편은 아닙니다. 49재가 열리는 경우, 승원장과 스님들은 자신의 일상 수행시간을 평소보다 연장하곤 합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대중스님들은 지도해 주는 스님으로부터 부탄 전통 악기인 둥첸(Dungchen)을 비롯해 불교의식에 쓰이는 악기를 배웁니다. 또 부탄 최대 축제인 테츄(Tshechu)와 각종 의식에서 행해지는 가면춤도 배웁니다. 테츄는 주로 연화생보살이 마군(魔軍)을 조복시키고 불법의 수호신장으로 만드는 과정을 표현한 무용극입니다. 

모든 사원이나 조직에 속한 스님들은 저마다 역할이 주어집니다. 사원을 예로 들어보면 지도를 하는 스승급 스님을 승원장에 임명하는데, 지식의 성취 정도와 법랍, 선임 순위에 따라 지명됩니다. 재무는 상대적으로 회계 지식이 많은 스님이 맡습니다. 축적된 경험이 있는 스님은 사원 재물의 목록을 관리하고, 경험이 없는 스님은 공양간·주방·사원 청소·사원 보수 등의 소임을 담당합니다. 이 중에서 징계를 담당하는 소임은 매우 중요합니다. 징계를 담당하는 스님을 ‘쿠드룽’이라고 부르는데 이 업무는 사원 내에서 가장 선임이 맡습니다. 반면 학승들은 대부분 소임을 맡지 않습니다. 더 많이 수행하고, 공부하라고 배려를 해주는 것입니다.

부탄은 왕정과 의회 민주주의를 함께 채택한 입헌군주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렇다보니 부탄 왕국이 법에 정한 세 가지를 부탄 불교는 수호하면서 잘 따르고 있습니다. 첫 번째, 불교(뇌룡파)는 부탄의 정신적 유산으로 평화·비폭력·측은지심과 관용의 불교적 원리와 가치를 지속적으로 증진해야 한다. 두 번째, 불교는 왕을 존중해야 한다. 세 번째, 종교기관(사원·승원)과 국민 개개인은 저마다의 책임을 다해 부탄의 정신적 유산을 고양·증진할 의무가 있으며, 승려와 종교기관은 부탄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타쉬강 사원의 내부. 한 스님이 경내를 걷고 있다. 〈사진=김성철〉

탄신일에 성도·열반 의미 포함
 
부탄어로 부처님오신날은 ‘뒤첸응아좀(Duechen Nga Zom)’입니다. 부탄 달력으로 4월 보름을 부처님탄신일로 삼고 있는데, 일 년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념일입니다. 부탄의 부처님오신날의 특징은 탄신 외에 성도절·열반절의 의미까지 함께 깃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탄생, 깨달음, 열반을 모두 하나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날은 모든 스님들이 각자의 사원에 모여 의식을 진행합니다. 스님들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성취하셨던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공양을 올리고, 신도들은 사원을 방문해 저마다 기원을 하고, 공양을 올립니다. 특히 버터등불 공양을 하는데, 무병장수와 가정의 무탈(無頉)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도 최초의 제자가 된 다섯 비구로 꾸민 옷을 입고 사찰을 찾습니다. 

부탄 승단의 최고위직은 ‘제켄포(Je Khenpo)’라고 불리는 대승원장입니다. 제켄포 제도는 샤브드릉 나왕 남걀 때(1637~)부터 시행된 초에시 제도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초에시 제도는 종교와 현실 정치의 분리를 위해 도입된 제도입니다. 제켄포는 부탄 내에서 티베트의 달라이라마와 같은 위치로 부탄 왕조에 대한 조언자이며,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지도자입니다. 

현재 부탄의 제켄포는 툴쿠 지그메 초에다(Trulku Jigme chhoeda, 1996~) 대사가 맡고 있습니다. 그는 초대 샤브드릉 이후 제70대 제켄포에 해당합니다. 제켄포의 선출은 2008년 신 제정 헌법에 의해 구성된 고위 승려위원회인 드라챵(Dratshang)에서 투표로 선출합니다. 드라챵의 회장이 곧 제켄포가 되는 셈입니다. 한국과 비교한다면 종정과 총무원장직을 겸한다고 볼 수 있는데, 국왕과 함께 자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공식 석상에서 국왕의 왼쪽 편에 섭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 불자들에게 부탄 불교를 조금이나마 알릴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이 글을 읽는 불자님들의 앞날에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항상 비춰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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