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이유나 양심적 이유로 살상 무기를 소지하거나, 또는 그런 무기를 소지하여 살상하는 기술 배우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군인이 되는 길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군인이란 사람을 죽이거나 또는 그것을 준비하는 단체이다. 이런 말을 하면 정당방위를 운운하면서, 군대란 바로 상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구성원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 행위에 속한다고 항변할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약간의 ‘기술적인 문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고 필자도 이런 입장을 옹호한다.

위에서 말한 ‘기술적인 문제'란 일본의 자위대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어디 까지가 ‘방어'이고 ‘지나침이 없는 정도'란 무엇인가? 이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공격과 방어가 확실히 구별되는가? 그리고 어디부터는 지나친 것이고 어디 까지는 괜찮은 것인가?
아무튼 이런 복잡한 문제가 모두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다른 신념 체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상대방이 불순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나의 생명이나 재산을 위협하더라도, 무기를 가지고 상대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다. 살생은 어느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는 신념이다. 이런 신념은 정당한 신념이다. 마치 자신의 생명이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무력을 허용하는 신념이 정당화되듯이 말이다.

필자는 최근의 국방부 발표를 보면서, 우리사회가 이제는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에 대하여 보다 성숙한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흐름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또 거역해서도 안 되는 역사이다.

정당방위 인정하듯
정당한 개인 신념
인정되고 보호해야


그것을 악용해서 군대 가는 것을 회피할 수 있다는 염려를 앞세워, 또는 특정 종교에로 신자들이 몰릴까를 염려해서 현 국방부의 발표에 제동을 건다면, 근본과 지말을 혼동한 것이거나 또는 이기주의적 발상이다.

제도가 있으면 그것을 악용하는 것은 어느 경우에나 있다. 이 문제는 제도를 잘 만들고 잘 운영해서 해결하려고 해야지, 제도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또 군 입대 문제로 특정 종교에 몰린다는 작은 것을 탐내다가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라는 큰 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오히려 이번 보도를 보면서 대체 복무 기간을 상대적으로 길게 잡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대체 복무 내용의 난이도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방부가 대체 복무 기간을 그렇게 상대적으로 길게 한 것에는 국민적 정서를 고려한 것 같다.

국방에 대한 필자의 입장은,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그리고 힘이 지배하는 국제사회 속에서 최소한의 정당방위를 위한 국방은 ‘필요악'이라고 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생명을 죽이면서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양심이나 신앙 또한 역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때문에 이번 국방부 발표를 가지고 국민 개병제의 근본이 흔들릴 거라는 개연성이 없는 명분을 내세워 소아(小我)적 이기주의는 극복되어야 마땅하다.

/ 신규탁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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