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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멈추니 보인 것들
  • 이미령 불광불교대학 전임강사·불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2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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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은 멈춤이지만
허상·왜곡 확인한 기회
멈춤의 교훈 잊지 말자

연쇄살인마 앙굴리마라가 마지막 희생자를 기다리고 있을 때 비극을 막기 위해 붓다가 나섰다. 붓다는 이 살인마가 있는 곳을 스치듯 덤덤하게 지나쳐갔다. 그러자 흉기를 든 앙굴리마라는 붓다의 뒤를 쫓아가며 소리쳤다.

“멈춰라!”

“나는 이미 멈췄다. 너야말로 멈춰라.”

이 한 마디에 잠시 생각에 빠진 앙굴리마라는 칼을 내던졌다. 믿기 힘든 일이다. 99명이나 죽인 자가 고작 ‘멈추어라.’라는 한 마디에 칼을 내던졌다고? 이토록 싱겁게 살인마를 제압할 수 있었는데 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단 말일까?

하지만 이 일화에서 생각해볼 것은 멈춘다는 말이다. 붓다는 무엇을 멈춘 사람이며 앙굴리마라는 무엇을 멈추지 않고 있었던 것일까? 멈추라는 말 한 마디에 그가 멈춘 것은 살인이라는 행위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내리달리고 치달렸는지를 알아차린 것이다. 멈추고 나니 자신의 모습이 보였고, 자기 행위가 저지른 결과와 여파가 보였다.
지금 세상은 코로나19로 난리다. 전쟁이 나면 피난이라도 가겠지만 이번 난리는 도망칠 곳도 없다. 청정지역이 있기나 할지, 있다 하더라도 비행기를 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그저 모든 일상을 멈추고 집에 혼자 있어야 한다.

멈추었다. 멈추니 텅 비었다. 도로와 쇼핑가가 텅 비고, 공항이 텅 비고, 학교가 텅 비었다. 그리고 그 텅 빈 공간 속에서 그동안 우리가 무엇을 채우며 살아왔는지가 보였다.

멈추니 소상인들의 생계가 막막해졌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람들이 당장 궁해졌다. 멈추니 어린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맞벌이 가정이 발을 동동 굴렀다. 멈추니 택시기사들의 하루 수입이 형편없어졌다. 멈추니 면세점도 민박집도 관광지 식당도 사람 그림자를 볼 수 없다고 하소연이다. 멈추니 중국발 미세먼지 소식이 잦아들었다. 

멈추니 태국에서는 원숭이들이 패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관광객이 급감하는 바람에 간식이 줄어든 탓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운하가 맑아졌다는 소식이 들리고, 배달 업계는 지금 때 아닌 호황을 맞고 있어서 직원을 늘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40대 배달원이 그 이른 새벽 배달을 하다가 숨졌다는 가슴 아픈 소식도 지금 우리가 멈춘 바람에 듣게 된 비보다. 멈추니 이른바 선진국이니 강대국이니 하던 나라의 의료체계와 시민의식의 민낯이 보인다. 우리는 그 나라들의 무엇을 그리 부러워했던가.

멈추니 종교계가 얼마나 민폐덩어리인지가 대번에 드러났다.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으로 중무장한 사이비 종교단체가 모습을 드러냈고, 정부의 간곡한 당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현장예배를 감행하는 종교인들도 보인다.

멈추니 보이는 것들이 이뿐이랴. 나 한 사람의 소소한 소비가 이웃의 생계를 지탱해주었고, 나 한 사람의 작은 양보와 헌신이 어떤 이의 목숨을 살린 현장도 보았다.

멈추니 그동안의 허상과 왜곡이 보였다. 그리고 멈추니 작지만 진실한 영웅들의 모습도 보였다. 원치 않게 멈추게 됐지만 멈춘 바람에 보인 것들을 잊지 말자. 그 교훈이라도 챙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멈춘 보람이 없을 것이다.

 

이미령 불광불교대학 전임강사·불교칼럼니스트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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