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에세이

〈삽화=필몽 최은진〉

이사를 할 예정이다. 집 평수를 줄여서 간다. 짐을 반으로 줄여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이사를 기회 삼아 과감하게 살림을 정리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사 노트’를 만들었다. 버려야 할 항목들을 나열해 보았다. 너무 많아서 머릿속이 엉클어진다. 몸부터 움직여 보기로 했다.

맨 먼저 옷장을 열어 보았다. 즐겨 입는 옷은 몇 개 되지 않고, 오랫동안 입지 않은 옷들이 더 많다. 버리려고 잡는 순간 입어보고 싶어진다. 옷을 입고 다니는 내 모습도 상상했다. 언젠가는 입겠지 하고 다시 걸어 놓았다. 결국 버린 옷은 몇 개뿐이다. 마무리를 못하고 돌아섰다.

주방으로 갔다. 평소에 사용하고 있는 냄비는 두세 개, 밥공기, 국그릇, 접시 몇 개와 수저 젓가락이다. 나머지는 모두 싱크장 안에서 쉬고 있다. ‘얘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필요한 것만 두고 버려야 하는데 지금 보니 왜 이렇게 예쁘고 고급스럽지. 이것은 사위 올 때 잡채 담아줘야 하는데. 장미가 새겨진 부부 찻잔으로 비 오는 날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만져보기만 하고 다시 들여놓았다.

이곳저곳에 버릴 것이 많았지만 버리기 아까운 것도 많았다. 다시 넓은 집으로 이사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까지 하게 됐다. 머리가 아파서 털썩 주저앉았다. 문득 가까이 지내는 후배가 엄마 유품을 정리한 후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언니! 사람은 살면서 가끔 자기 짐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돌아가신 엄마 살림살이가 많아서 치우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남겨진 것은 유족의 짐이 되어요. 그래서 일본에는 유품정리사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다고 해요.”

후배의 말을 떠올리다 뜨끔해져서 내가 곧 죽는다면 어떤 상황이 될까 상상해 보았다. 자식들이 내 짐을 정리하면서 나를 생각하기는 하겠지만 이렇게 짐이 많으면 힘들어서 학을 뗄 것 같았다. 투덜거리는 자식들의 모습이 보인다. 어쩌면 나에 대한 좋은 추억들마저 짐 정리에 밀려 나쁜 기억으로 변하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살아서는 자식에게 짐이 될까봐 두렵지만 죽어서 많은 짐을 남기는 것도 싫다. 죽은 후의 일을 걱정한다는 것이 우스꽝스럽지만.

버릴 것이 거실 한 곳을 차지할 만큼 많이 쌓였다.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필요에 의해서 갖게 되었는가?’ 생각해 보았다. 이것은 내 욕심이 만든 산이었다.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의 증거들이다. 그동안 살림을 잘 한다고 생각했다. 잘한다는 기준은 어디에 근거한 것이었을까? 많이 갖는 것이었을까? 버리고 난 후 넓어지고 깔끔해진 빈 공간이 알 수 없는 기쁨을 주었다. 그것은 훨훨 털어버린 후의 가벼움 또는 소유하지 않은 것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었다.

몇 해 전 시골에 있는 시가에 불이 나서 건물이 전소됐다. 그 시간에 시어머니는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가서 집에 불이 났는지도 몰랐단다. 원인불명의 화재는 건물과 살림살이들을 다 태우고 시어머니가 입고 있던 옷 한 벌과 신고 나갔던 운동화 한 켤레만 남겼다. 건물이 없어진 충격이 컸겠지만 시어머니의 손때 묻은 살림살이들은 두고두고 당신을 괴롭혔다. 시부모 모시고 아들 다섯을 키웠던 삶의 증거가 흔적도 없이 재가 되어버렸다. 팔순이 될 때까지 쌓아온 살림살이들과 나눈 정을 누가 알 수 있으랴. 어쩌면 자식 보내는 마음처럼 아리고 허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모시고 왔는데 가끔 눈물을 글썽이며 혼잣말을 한다.

“너희들 오면 주려고 고들빼기김치 담아서 김치냉장고에 넣어 놨는데. 네가 사준 옷 아끼느라 한 번도 안 입어 봤는데…….”

나는 시어머니의 빈 둥지가 염려스러웠다. 다행히 신앙심이 좋은 시어머니는 잘 이겨냈다. 새로 집을 짓지 않고 혼자살기에 알맞은 집을 마련했다. 당시에는 잔인하다고 생각될 만큼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기에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지금은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집과 살림살이는 잃어버렸지만, 이 일을 통해 얻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우리가 겪는 일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한다는 것이 다행이다.

무엇보다도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구질구질한 물건들을 버리지 못했을 것인데 한 번에 깨끗이 정리되었다. 어떤 정리 전문가가 이렇게 유능할 수 있을까? 또 집이 넓지 않아 관리하기에 편해졌다. 청소가 간편하고 겨울에 난방비 부담이 없으니 또한 좋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없어진 덕택에 모든 것을 새것으로 살 수 있었다.

베란다로 나가 창고를 들여다보았다. 몇 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 절반이다. 손이 가지 않아 먼지가 쌓여있다. 이것들은 다시 창고로 갈 게 뻔하다. 하나씩 꺼낼 때마다 먼지가 흩날리며 재채기가 나온다.

문득 내 마음의 창고를 들여다보았다. 쌓여 있는 미움·질투·시기·원망이 보인다. 마음의 허기를 이런 것들로 채운 것일까? 그중에는 맞벌이할 때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은 남편에 대한 원망이 제일 컸다. 가부장제도 속에서 자라온 환경 탓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에 본인도 답답했단다. 은연중에 경쟁하며 시기해온 친구의 얼굴도 보인다. 쌓아두면 병이 되고 해롭기만 한 것을. 털어버리면 가벼워져서 자유로웠을 것을. 이제껏 껴안고 있느라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을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선 남편에 대한 원망부터 버려야겠다.

작아진 아파트 평수에 맞춰 살림살이를 버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를 잡고 있던 소유욕이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건에게 갖는 애착과 비례하는 아픔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버리는 것이 가능했다. 평생 곁에 두고 있던 라디오를 버릴 때는 팔 하나를 잘라내듯 아팠다. 모든 것을 두고 빈손으로 가야할 때를 생각하게 되었다.

법정 스님이 〈무소유〉에서 말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을 떠올렸다.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도 없고, 세상을 하직할 때 가져가는 것도 없다. 인연 따라 있었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마는 거다. 몸뚱이도 버리고 갈 것인데…….’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무소유를 생각해 본다. 어리석게도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나보다.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하는 습관을 몸에 들여야겠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가면 최소한의 물건으로도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미경
전남 영암에서 태어났다. 〈수필과 비평〉 및 〈에세이 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한국은행 문예작품 공모전 우수상(산문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공저)으로 〈익선동의 오후〉가 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