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는 딸을 보내 유혹하고, 창과 칼을 든 군대를 보내 위협한다. 싯다르타 태자가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자 지신(地神)이 나와 조복한 채 태자의 전생 공덕을 증명하고 있다. 파키스탄 페샤와르 박물관 소장 간다라 유물.

무량겁 닦은 거룩한 공덕으로
마라를 물리치고 정각을 얻다

자야망갈라 가타(Jayamaṅgala Gāthā)의 첫 번째 게송은 붓다(Buddha)가 마라(Māra, 악마 파순)를 패배시키고 승리하는 이야기이다. 이 게송에는 보살(정각 이전의 싯다르타)이 보리수 아래 동쪽을 향해 앉은 시점을 중심으로 죽음의 마왕인 마라를 이겨내고 정각에 이르는 과정이 담겨 있다.

붓다의 정각은 불교의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인류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한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붓다의 정각을 전해 주는 문헌은 다양하다. 다양한 만큼 정각 내용이나 정각 과정이 동일하게 서술되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를 이겨내는 붓다의 정각 이야기에서는 세 가지 주요 사건을 언급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붓다의 정각 직전, 마라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각을 방해하는데 이를 세 가지로 나누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마라의 회유와 마라의 딸들이 유혹하는 장면, 둘째 마라가 폭력적인 방법으로 공격하는 장면, 셋째 마라가 보살로 하여금 보리수 아래의 금강좌를 포기시키려는 장면이다. 보살은 오랜 기간 금식의 고행으로 인하여 육신이 극도로 허약해지는 경험을 하면서 고행의 무익함을 자각한다. 단식을 그만두고 수자타(Sujata)의 공양을 받아 기력을 회복하게 된다. 보리수 아래 앉으면서 보살은 결심한다. “내 이곳에 앉아 모든 번뇌가 다 제거되지 않고 모든 것으로부터 해탈을 얻지 못하면 결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정각을 이루기전까지는 금강좌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살의 서원에 제석천 등 온갖 천신들이 즐거워하지만 악마의 신인 마라는 분노하며 생각한다. “이 왕자가 나의 영토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내가 그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마라는 보살에게 연민의 말을 걸며 다가왔다. “그대는 야위었고 안색이 나쁘다. 죽음이 그대의 면전에 와 있다. 그대여! 살아라! 사는 것이 더 좋다. 살아야 공덕(Puñña)을 지을 수 있다. 성화(聖火)를 모신다면 많은 공덕이 쌓일 것이다. 왜 이런 노력(Padhāna)을 하고 있는가?”

마라가 정진하고 있는 보살에게 다가가 수행을 포기하고 공덕을 쌓으라고 유혹하고 있다. 마라의 권유는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고 심지어 자상한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마라의 제안은 보살로 하여금 정각을 포기하고 세속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라는 유혹이다.

이렇게 유혹하는 마라에게 보살은 대답했다. “나의 진정한 목표에는 털끝만큼의 공덕도 없다. 나에게는 신심(信心, Saddhā)이 있고, 정진(精進, Viriya)이 있고, 그리고 지혜가 있다. 이처럼 고투(苦鬪)하는 나에게 생명의 보존을 말하는가?”

보살은 먼저 공덕을 지어 세속의 행복을 누리라는 마라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각을 위해 정진을 계속하겠다는 결의를 보인 것이다.

마라는 딸들에게 말했다. “너희 딸들은 함께 저 보리수 아래에 가서 이 석가 태자를 꾀어 그의 깨끗한 행을 무너뜨려야 하리라.”

딸들은 보리수에 나아가 보살 앞에서 아름다운 말과 요염한 자태로써 보살을 유혹했다. “우리 여인들은 천상의 과보를 받아 그 몸이 미묘하여 모두 볼 만하고 그대가 즐길 만하니 즐기시오. 우리들은 나이가 젊고 빛깔이 우담바라와 같사오니, 원컨대 밤낮으로 좌우에서 친히 가까이할 수 있게 하소서.”

그 때 보살은 자신을 홀리는 말을 듣고 마라의 딸들을 교화했다. “세간의 오욕(五欲)이 중생들을 태우는 게 마치 세찬 불이 마른 풀을 태우는 것과 같다. 이 몸도 허망하게 업을 따라 났으며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이 거짓 합해 이루어져 힘줄·뼈가 서로 얽혀 잠깐 동안 있으니 탐착할 것이 아니다. 가죽 주머니에 더러운 똥을 담은 물건들이 와서 무엇을 하려느냐. 떠나가라. 나는 기뻐하지 않노라.”

자야망갈라 가타의 게송 첫 부분은 코끼리 기리메칼라(Girimekhala)에 올라 탄 마라와 각종 무기와 깃발을 가진 수천의 마군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온통 주위에 포진한 군대와 코끼리를 탄 마라를 보고 나는 그들을 대항해 싸우러 나간다. 허공에서 칼과 창이 내 몸에 비처럼 내려 마디마디 조각조각 내 몸을 베어도, 내 만약 생사의 바다를 건너지 못하면 이 보리수에서 끝내 옮기지 않겠노라. 결코 나를 이 자리에서 물러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 장면은 보살과 마라의 긴박한 전면전을 그리고 있다. 마라를 향한 보살의 결전 의지가 아주 힘차게 느껴진다. 마라가 코끼리를 타고 군대를 포진하고 보살은 이에 맞서 영웅적인 항전 결의를 보여주고 있다. 임전 상황에서 비굴하게 패배해 살아남기보다 끝까지 싸우다가 죽는 편이 낫다고 비장한 각오를 새기고 있다.

코끼리 기리메칼라(Girimekhala)에 올라 탄 마라가 정진하고 있는 보살에게 다가가 수행을 포기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마라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는 것을 막지 못했고 금강좌에 오르는 것도 막지 못했다.

악마가 사나운 코끼리 위에 타고 많은 손에 수천의 무기를 들고 군대를 동원했다. 악마는 험악한 얼굴을 하고, 불꽃과 같은 머리가 둥글게 붉어져 나오고, 입술을 깨무는 위협적인 얼굴을 하고, 뱀과 같은 긴 팔로 각종 무기를 든 마군을 데리고 그 장소에 와서 사나운 고함을 지르면서 ‘싯다르타를 포박하라.’고 외쳤다. 악마가 갖가지 방법으로 공격했으나 보살을 동요시킬 수 없었다. 마라는 온 세상을 무간지옥과 같은 칠흑으로 만들어 버렸다. 마라의 무리들이 여러 가지 무서운 형상으로 이렇게 보살을 위협할 때, 보살은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았다.

보살은 자비심으로 돌을 들어 올리려고 하는 자는 다 들어 올릴 수 없게 하고, 칼을 휘두르면 칼을 공중에 머물러 있게 하고, 나쁜 용이 독을 뿜으면 변하여 향기의 바람이 되게 하고, 모래·조약돌·기와·돌·비와 우박이 어지러이 내려오면 모조리 변화해 꽂이 되게 하고, 모든 활을 당겨 보살을 쏘면 그 화살이 시위에 붙어서 모두 나가지 못하게 하거나 혹은 나간 것은 공중에 머물러서 그 살촉 위에 다 연꽃이 피어나게 했다.

보살의 정력(定力)과 출세(出世)의 자비는 독과 불과 칼로 해칠 수 없었고 몽둥이와 칼을 가져 보살을 해치려고 하면 공중으로 흩어지며 죄다 꽃이 되었다. 비록 마라가 세력을 일으키고 병사를 모아 거칠고 해치려는 마음을 낸다 하더라도 보살은 병기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자비로 악마의 신 마라를 물리치고 있는 것이다. 보살은 어떠한 폭력에도 언제나 인자와 온화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마라는 유혹과 폭력으로 보살을 이기지 못하자 마지막으로 금강좌에 앉아 있는 보살에게 자리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이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없으니 비켜달라고 요청한다. 보살은 마라에게 말했다. “너는 조그마한 선행 때문에 지금 천상의 과보를 얻었지만, 나는 옛날 한량없는 겁으로부터 오면서 거룩한 선행을 닦아 익혔기에 이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야 하므로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에 마라는 보살에게 말했다. “내가 옛날 선행을 닦았다 함은 너도 알 수 있는 것인데, 그대가 공덕을 쌓았다는 것은 누가 믿겠느냐?”

그 때 보살이 천천히 오른손을 올려 대지를 가리키자 지신(地神)은 형체가 미묘하게 갖가지의 진주와 영락으로 몸을 장엄하고서 보살의 앞 땅으로부터 솟아 나와 몸을 굽혀 공경하며 받든 칠보(七寶)의 병에 향과 꽃을 가득히 담아 공양하면서 보살에게 아뢰었다. “제가 증명하겠습니다. 보살은 옛날 한량없는 겁 동안에 거룩한 도를 닦아 수많은 공덕을 지어왔으므로 이제 성불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이 땅은 금강의 배꼽인지라 딴 지방은 죄다 움직여도 이 땅만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신이 이 말을 할 때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여 큰 소리를 내었다. 이에 놀란 마라와 권속들은 흩어져 도망쳐 버렸다.

이상 세 가지 장면에서 금강좌에 앉은 보살은 마라의 회유·공격·논리를 격파해 간다. 첫째 장면에서 마라는 오욕락을 제안하지만 보살은 감각적 쾌락의 무상(無常)을 알고 탐착할 것이 아님을 자각하고 동요하지 않는다. 둘째 장면에서 보살은 각종 무기와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보살을 공격하지만 보살은 자비로 막아낸다. 셋째 장면에서 마라는 보살의 공덕을 시험하지만 보살은 지신(地神)을 불러들여 수 억겁 동안 선업을 지었음을 증명하게 한다. 보리수 아래에서 보살은 불퇴전의 서원을 세워 마라를 이겨냄으로써 마침내 붓다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안양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불교문화대학장과 불교문화대학원장을 겸하고 있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학사,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일본 동경대(東京大) 외국인연구원,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특별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불교상담학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 〈행복을 가져오는 붓다의 말씀〉·〈붓다의 입멸에 관한 연구〉·〈The Buddha’s Last Day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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