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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길 순례2_해남 대흥사 ‘다도의 길’
  • 글·사진 이강식 기자
  • 승인 2020.03.1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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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는 경내에 초의선사 동상을 건립, 스님의 ‘다선일미’ 사상과 한국 차 문화 중흥의 업적을 선양하고 있다.

“초의선사 다선일미
시방세계 번뇌망상
모두 씻겨주네”

우리나라 차(茶)의 역사는 〈삼국유사〉에 기록돼 있듯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교와 왕실을 중심으로 발전된 차 문화는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대로 이어졌다. 특히 조선 후기 승려인 초의선사는 40여 년 간 해남 두륜산에 일지암을 짓고 주석하며 한국 차 문화를 재정립했다. 두륜산 케이블카 주차장에서 일지암까지 이어진 ‘다도의 길’을 걸으며 다성(茶聖) 초의선사의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을 되새겼다.

초의의순(草衣意恂, 1786~1866)선사는 15세 때 나주 운흥사(雲興寺)에서 출가해 19세에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완호(玩虎) 스님에게서 구족계(具足戒)와 ‘초의’라는 호를 받았다.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부흥을 이끈 대표적인 차인으로 잘 알려진 선사는 39세(1824년)에 두륜산의 품에 돌아와 일지암(一枝庵)을 짓고 40년 간 주석하며 차 관련 서적의 집필과 수행에 매진했다.

해남 대흥사는 신라 때 절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로 잘 알려진 청허당(淸虛堂) 휴정(休靜) 스님(1520~1604)에 의해 세간에 널리 알려진 도량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승병을 일으켜 왜군에 맞섰던 휴정 스님은 말년에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자신의 가사(袈裟)와 발우(鉢盂)를 해남 두륜산 대둔사(大芚寺, 현 대흥사)에 전하라는 말을 남기고 입적했다. 대사의 의발(衣鉢)을 전해 받은 대흥사는 이후 대종사(大宗師)와 대강사(大講師)를 각각 13명씩 배출하는 등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사찰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초의선사 차문화 중흥 업적 기려
대흥사~일지암 ‘다도의 길’ 조성

해남 대흥사 일원에는 한국 차 문화 중흥을 이끈 초의선사의 업적을 기리고 ‘다선일미’ 사상을 선양하기 위한 ‘다도의 길’이 있다. 이 길은 기존에 조성돼 있던 산책길과 일지암을 연결한 순례길로, 왕복 9.2㎞ 코스다. 쉬엄쉬엄 걸어도 4시간이면 충분히 오갈 수 있다. 출발점은 대흥사·두륜산 케이블카 대형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대흥사 방향으로 걷다보면 작은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지나 왼쪽으로 돌면 나무데크로 조성한 인도(人道)가 보이는데, 여기가 본격적인 ‘다도의 길’ 순례의 출발점이라고 보면 된다. 길 왼쪽에는 두륜산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주변에는 대흥사와 일지암을 소개하는 안내판과 다양한 조형물이 있어 기념사진 촬영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한국 차문화 성지’를 상징하듯 도로변에 차나무가 심겨 있어 이채롭다. 10월 경에 방문하면 하얗고 단아한 자태의 차꽃을 볼 수 있다.

‘다도의 길’이 시작되는 나무데크길에 있는 조형물.

대흥사 매표소를 지나면 오른쪽에 나 있는 ‘땅끝 천년숲 옛길’과 만난다. 숲길 구간은 편도 2.5㎞ 거리로 ‘다도의 길’ 코스 중 백미로 꼽을 수 있다. 훤칠하게 쭉쭉 뻗은 왕벚나무를 비롯해 다양한 나무와 땅에 낮게 깔린 꽃과 풀 등 1,120여 종의 아열대식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숲길이다. 길을 걷고 걸으면 머릿속에 가득하던 번뇌가 순식간에 달아난다. 숲길 곳곳에는 불자들이 염원을 담아 쌓아놓은 돌탑이 여럿 세워져 있다.

맑은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다보면 폐가 깨끗해지는 느낌이 든다. 숲길의 일부 구간은 나무데크, 일부 구간은 흙길로 돼 있어 걷기에 지루하지 않다. 숲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과 새의 지저귐 등 자연의 소리도 만끽하다보면 한줄기 바람이 불어오는데 청량하기 이를 데 없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숲길의 끝자락에 다다른다.

‘다도의 길’이 시작되는 나무데크길. 길 오른쪽 도로변에는 차나무가 심겨 있다.

대흥사 부도전엔 초의선사 부도
선사 정신 기려 경내 동상 세워

숲길을 벗어나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돼 제법 유명해진 유선여관이 나온다. 100년 역사를 지닌 한옥여관이다. 길을 따라 나지막한 언덕길을 오르면 오른편에 대흥사 부도전이 자리하고 있다. 이 부도전에는 서산대사, 초의선사, 만화·원오 스님 부도를 비롯해 54기의 부도와 27기의 탑비가 있다. 부도가 많아 어느 것이 초의선사의 부도인지 찾기가 쉽지 않다. 초의선사의 부도 몸체에는 ‘艸衣塔(초의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부도의 형태나 위치를 사전에 확인하고 가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부도전으로 들어가는 문인 진화문(眞化門)은 늘 굳게 닫혀 있기에 낮은 담장 너머로만 볼 수 있다.

대흥사 경내에 조성돼 있는 초의선사 동상.
땅끝 천년숲 옛길. 왼쪽에는 두륜산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대흥사는 경내에 초의선사 동상을 조성해 스님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고 있다. 동상을 기점으로 왼쪽 선원 방향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가면 일지암이 나온다. 초의선사 동상에서 일지암까지는 약 1㎞ 남짓. 거리는 길지 않지만 순례길 치고는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경사가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인 만큼 쉬엄쉬엄 오르는 게 좋다. 그래도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어서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나무향기를 맡으면 머리가 상쾌해진다.

대흥사 부도전에 위치한 초의선사 부도. 부도의 몸체에 ‘초의탑(艸衣塔)’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唐 한산 스님 詩서 따온 ‘일지’
〈동다송〉·〈다신전〉 등 교범 저술

일지암 입구에는 예전에 암자를 드나들었던 길이 보이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현재의 일지암은 1970년대 중반 응송·낭월 스님 주도 아래 한국차인회가 힘을 보태 옛터를 확인하고 복원을 추진했다. 경내로 들어서면 근래에 건립된 대웅전과 요사채, 그리고 ‘一枝庵(일지암)’ 현판이 걸려있는 정자 형태의 초암, 초의선사가 기거했던 원래 일지암터에 세워진 ‘자우홍련사(紫芋紅蓮社)’가 있다.

4평 규모의 띠집인 초암의 중앙에는 한 칸짜리 방이 있고, 사면은 툇마루로 돼 있다. 초암과 연못 사이 석축의 한쪽 면석(面石)에는 ‘다감(茶龕)’이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 넓은 판석이 놓여 있다. 판석의 용도는 분명치 않지만, 초의선사가 차를 마시며 참선을 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일지암 곳곳에는 차나무가 심어져 있다. 초암 옆에는 집 뒤 바위틈에서 흐르는 물을 나무 대롱으로 연결해 흐르게 하는 장치인 물확도 있다.

초의선사가 기거했던 원래의 일지암터에 세워진 자우홍련사.

초의선사는 암자를 짓고 중국 당나라의 시인이자 승려인 한산(寒山) 스님의 시 중 ‘뱁새는 언제나 한마음이기 때문에 나무 끝 한 가지(一枝)에 살아도 편안하다.’에서 따온 ‘일지’란 단어를 암자 이름으로 삼았다. 선사는 일지암을 건립하고 5년쯤 뒤 중건하고 ‘중성일지암(重成一枝庵)-일지암을 다시 짓다’라는 제목으로 시를 썼다. 이 시는 〈일지암시고(一枝庵詩稿)〉 권2에 수록돼 있다.

중성일지암(重成一枝庵)

烟霞難沒舊因緣 안개 덮여도 옛 인연 끊기 어려워
甁鉢居然屋數椽 중이 살만한 집 몇 칸을 지었네.
鑿沼明涵空界月 연못 파서 허공 달빛 비추게 하고
連竿遙取白雲泉 대통 이어 멀리 구름 샘 끌어왔네.
新添香譜搜靈藥 향보 새로 뒤져 영약 찾아보고
時接圓機展妙蓮 깨달음을 얻으면 묘련을 펼치노라.
礙眼花枝剗却了 눈앞 가린 꽃가지 말끔히 자르니
好山仍在夕陽天 석양 하늘에 멋진 산이 드러나네.

‘일지암(一枝庵)’ 현판이 걸려 있는 초암.

초의선사는 일지암에서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 등 차 관련 서적을 집필했다. 〈동다송〉은 ‘한국의 다경(茶經)’으로 불리는 차 전문서다. 초의선사는 조선 정조의 사위인 홍현주(1793~1865)가 ‘다도(茶道)’에 대해 묻자 우리나라 차와 중국 차에 대한 내용을 총 31송으로 정리했는데, 바로 〈동다송〉이다. 각 송구(頌句)에는 주(註)를 달아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초의선사는 〈동다송〉에서 “녹아차와 자순차여 / 구름 속 돌부리 뚫고 나와 / 오랑캐 신발 들소 목주름에 / 물결무늬 주름이어라. / 간밤 맑은 이슬 / 흠뻑 머금은 잎 / 삼매의 솜씨로 차를 달이니 / 기이한 차향이 피어오르네.”라고 읊었다. 〈동다송〉에는 이렇게 초의 선사의 ‘다선일미’ 사상이 잘 녹아 있다.

선사는 또 세납 45세(1830) 때 차 생활의 지침서인 〈다신전〉을 펴냈다. 〈다신전〉은 중국의 백과사전인 〈만보전서(萬寶全書)〉에 수록돼 있는 ‘다경채요(茶經採要)’에서 필요한 부분을 가려 뽑은 후 제목과 발문을 단 책이기 때문에 스님의 창작물로 볼 수는 없다. 책에는 찻잎을 채취하는 방법〔채다론(採茶論)〕부터 차의 위생관리[다위(茶衛)]에 이르기까지 22개 항목의 끽다법(喫茶法)과 제다법(製茶法)이 수록돼 있다.

초의선사는 이밖에도 선의 요지를 밝힌 〈선문염송(禪門拈頌)〉 중에서 골자를 뽑아 주석을 달아 〈초의선과(艸衣禪課)〉를, 백파 선사의 법제자로부터 백파 선사의 선론(禪論)을 듣고 틀린 곳을 바로 잡기 위해 지은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를, 진묵 대사의 행장이 실린 유일한 책인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攷)〉 등을 저술했다. 또 선사가 평소에 지었던 제문(祭文)·서간(書簡) 등 11편을 수록한 〈문자반야집(文字般若集)〉과 〈일지암문집(一枝庵文集)〉, 일생동안 지은 시 146편과 산문 16편을 수록한 〈일지암시고(一枝庵詩稿)〉가 전하고 있다.

수행으로 ‘茶禪一味’ 사상 깨쳐
정약용·추사 김정희 등과 교유

초의선사는 일지암에 주석하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해거도인으로 불리는 홍현주,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7)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석학은 물론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유(許維, 1807~1892) 등 예인들과도 교유하며 우리나라 다도의 중흥을 일궈냈다.

정약용 선생은 해남에서 가까운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할 때 대둔사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김정희 선생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며 초의 선사와 남다른 친교를 가졌다. 신위 선생은 추사와 같이 불교를 공부한 인물이다. 초의선사는 특히 동년배인 추사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자신이 만든 차를 추사에게 보내주고, 추사는 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명선(茗禪)’이란 글씨를 보내기도 했다.

명선(茗禪)

草衣寄來自製茶 초의 그대가 만들어 보낸 차
不滅夢頂露芽 몽정·노아에 비해 부족치 않다
書比爲報 이 글을 써서 보답하는데
用白石神君碑意 백석신군비의 필의로 쓴다
病居士隸 병거사가 예서로 쓰다

일지암 경내 곳곳에는 차나무가 있다. 차나무 뒤에 보이는 산이 두륜산이다.

42년 간 친분을 쌓은 두 노장의 두터운 우정이 느껴지는 짧지만 강렬한 글이다. 초의선사는 이처럼 차를 매개로 학자·예인들과 교유하는 한편 한국 다도의 중흥에 크게 이바지했다. 스님과 교유한 이들 또한 그 공로가 적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분들의 차에 대한 애정과 차 문화 발전을 위한 노고가 없었다면 한국 다도는 지금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일지암에서 내려다보이는 대흥사와 눈앞에 펼쳐진 두륜산, 그리고 두륜산 너머 일렁이는 푸르른 해남 앞바다를 보며 초의선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라보고만 있어도 세상 모든 번뇌가 사라지는 대자연. 초봄이라 그윽한 차꽃 향기를 맡을 수 없었지만, 두륜산에 피어오르는 산안개마냥 초의선사가 내려주는 차의 향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듯 했다.

일지암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묵직했던 발걸음도 심난했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초의선사가 남긴 진한 차 향기가 멀리 멀리 퍼져 각종 바이러스와 질병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길 간절히 기원해본다.

글·사진 이강식 기자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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