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모험가의 사막 행선(行禪) 일기

우리가 깃들어 살아가고 있는 이 행성을 ‘지구(地球)’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땅 위에서 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성의 전체 모습을 살펴보면 ‘수구(水球)’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싶습니다. 지구 표면의 71%가 바다거든요. 우주에서 바라보면 이 지구는 푸른색을 띈다고 합니다. 이 행성의 표면에 있는 그 많은 물 때문에 푸른색으로 보이는 것이지요. 결국 지구에서 육지 면적은 셋 중 하나도 안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지구 전체 면적 가운데 고작 29%밖에 안 되는 육지. 이 육지 면적의 10%가 또 이른바 불모지라 일컬어지는 사막입니다. 사전을 펼쳐보면 사막은 모래나 자갈 따위로 뒤덮인 불모의 벌판 또는 강수량이 적어서 식생을 보기 힘들고, 인간의 활동도 제약되는 지역이라고 풀이돼 있습니다.

위대한 산악인이자 모험가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 1944~)란 사람이 있습니다.

열다섯 살 때는 돌로미텐의 수직 암벽들 속을 누볐고, 스물다섯 살에는 낭가파르바트 산의 루팔 벽에 올라갔고, 서른다섯의 나이에는 단독으로 산소마스크도 없이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에 올라섰으며, 마흔다섯 살이 되어서는 남극 지방의 한가운데 있었다. 내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은 도서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길은 이제 예순 살의 나이에 나를 고비사막으로 이끌고 있다.

〈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 이 책 속에 스스로 적어 놓은 것처럼 라인홀트 메스너는 우리 시대 가장 탁월한 산악인이자 모험가입니다.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의 8,000m급 14좌를 완등했으며, 그린란드·티베트 동쪽·남극 지방 등을 횡단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등반가, 탐험가의 영역을 넘어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의 체험 속에서 건져 올린 어떤 ‘깨달음’을 글로 써서 전하는 철학자의 면모를 함께 이룩해왔습니다.

2004년 5월, 5년간의 유럽의회 의원 활동을 마친 메스너는 자신의 오랜 꿈을 좇아 단신으로 고비사막 횡단에 나섭니다. 그는 배낭, 특수 제작한 물통, 위성항법장치가 내장된 시계만을 지닌 채 동고비사막의 바얀트우카를 출발해 울란울 – 에르겔 – 코분 – 우르트 – 알타 - 보르 우자우르 – 체테크 – 다그루 - 알타이에 이르는 장장 2,000km의 대장정을 한 달 보름여 만에 달성합니다. 더러는 말이나 낙타 행렬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또 더러는 오토바이나 지프, 트럭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걷고 걸어서 그 광막한 사막을 가로지릅니다. 이따금 유목민들의 천막집에서 음식과 잠자리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사막이 아니다. 사막을 꼭 횡단해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는 없다. 사막 앞에 서면 나 역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출발에 대한 불안과 의심으로 감정이 복잡다단하다. 정작 내게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연에 대해 묻는 것이고,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방식대로 길을 떠나고 돌아다니는 것 역시 언제나 중요하다. …… 발로 걸어서 다니고 싶었던 것이다. 독자적으로 제 발로 걸어간다. 이것이 내가 길을 떠나는 전제 조건이었다.

사막에서의 처세술은 결국 생존기술을 몸소 습득하려는 시도이다. 나의 요령은 언제나 그렇듯이 걸어서 가는 것이다. 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면 땅은 밖에 있거나 우리 아래에 있게 된다. 우편엽서에서처럼 땅은 작고 말이 없다. 어떤 소리도 냄새도 없다. 그저 그림일 뿐이다. 걸어서 가면 모든 게 넓다. 그리고 땅은 감각적으로 지각되고, 냄새를 맡게 하며, 놀랍고 경이로운 일들을 늘 숨기고 있다. 걱정은 물론이고 심지어 공포마저 감추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은 밖의 광활함만이 아니다. 우리 안의 텅 빈 공간은 더욱 헤아릴 길이 없다.

<삽화= 배종훈>

꿈꿔오던 고비사막 횡단

라인홀트 메스너, 그가 고비사막 횡단이라는 도전을 앞두고 가졌던 내면의 풍경은 어떠했을까요?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모두 성공적으로 겪어낸 그였지만 속마음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엄습해 오는 불안과 의심이 왜 없었겠습니까? 다만 그것들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발로 걸어서 다니며’, ‘밖의 광활함’과 ‘우리 안의 텅 빈 공간’을 헤아리고자 애썼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여기에서 크게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남티롤 출신인 그에게서 불교적인 사유의 한 정점인 ‘텅 빔’이나 ‘무(無)’의 세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천착이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는 다름 아닌 걸출한 선객(禪客)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사막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 같았다. 내 안에 있는 사막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은 어쩌면 늙어가는 것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안의 사막 언저리에서 어느덧 인간이 더 이상 거주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예감이 자라나고 있었다. 내면의 황폐화에 대한 두려움도 생겼다. 사막은 소멸을 미리 조금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라는 고향으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사막은 또한 산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준다. 사막의 ‘텅 비어 있음’이 우리를 겸허하게 만들고 언제나 경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 자신 안의 텅 비어 있음에 대한 경탄은 아닐까? 모세·그리스도·무하마드 등 종교 창시자들만 사막에서 영감을 얻은 게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기 위해 사막으로 갔다. 그곳에 기분을 전환시켜 줄 수 있는 오락거리가 있는 게 아니다. 사막에서는 사방 어디서나 늘 똑같은 그림만 보일 뿐이고 모래알들 사이에서 들리는 것이라고는 바람 소리뿐이다. 이것이 정적이다. 그런데도 광활한 사막은 숨을 쉬고 말을 하고 빛을 발한다. 무한성과 영원성에 대한 예감이 사막에서는 우리 자신의 제한성과 연약함과 만난다. 사물과 자극이 없는 곳에서 인간은 우선 자기 자신에 놀라 움찔한다. 그리고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난다. 이런 긴장 속에서 자기 안에 있는 사막을 발견한다.

‘사막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 같았다. 내 안에 있는 사막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라거나 ‘사막은 소멸을 미리 조금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라는 고향으로 넘어가는 단계였다.’는 진술을 다시 새겨 읽어 보십시오. ‘이런 긴장 속에서 자기 안에 있는 사막을 발견한다.’는 부분은 또 어떻습니까? 그는 결국 ‘내 안의 사막’을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 속의 다음 구절들 속에는 〈금강경〉 제1장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의 분위기마저 서려 있습니다.

대상 행렬은 해가 지고 나서야 걸음을 멈춘다. 삼십 분 후에는 야영장이 설치되고,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서 저녁식사를 한다. 이보다 더 집약적인 현존의 형태가 있을까? 낙원이 정말 있다면, 대도시에 있지 않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 그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수십만 년 전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두려워하고 있는 저 광활함과 정적 속에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삽화=배종훈>

자아탐색과 성찰의 기록

그가 보여주는 자아탐색과 성찰의 기록은 페이지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다음에서는, 불안을 딛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 한껏 부풀어 오른 나의 자아상이 밤과 고독의 공포와 더불어 다시 줄어들곤 하는 내적 길항(拮抗)의 모습을 서늘하리만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메스너의 페이지를 넘겨가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막을 뚫고 지나가는 나의 길이 이렇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길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나의 자기 이해가 점점 커졌다. 나의 자아상은 또한 빛이 강해지는 것과 더불어 커졌다가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나의 자아상은 극복된 불안의 여운이나 매번 목표를 달성한 하루 일정과 함께 커졌다. 그리고 밤과 고독의 공포와 더불어 다시 줄어들었다.

그의 걸음을 따라 고비사막을 횡단하면서 우리가 기억해두어야 할 대목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유목민들이 지니고 있는 인간적인 따뜻함에 대한 증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며 무수히 잃어버린 삶의 덕목 중에서 하나를 살리라면 이 ‘따뜻함’을 꼽고 싶습니다.

그들은 내게 아이락을 많이 따라 주었다. 말젖을 발효시킨 이 술은 갈증을 달래 주는 동시에 기력을 북돋아 주었다. 나는 아이락을 엄청나게 많이 마셨다. 또 기름이 두껍게 떠 있는 국수 수프도 먹었다. 손님이 올 때마다 그릇에 담아 바닥에 내놓는 구운 과자도 먹었다. 나는 유목민들의 친절에 새삼 부끄러웠다. 나는 고비사막 언저리에 사는 유목민들보다 더 친절하고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을 그 어디서도 만나 보지 못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저절로 스님 한 분을 떠올렸습니다. 그 스님은 남에게, 중생에게 모름지기 친절해야 한다고 설파하셨지요. 이 절 저 절 중에서 가장 큰 절은 ‘친절(親切)’이라고 하시면서요. 이웃에게, 산천초목에게 친절해야겠습니다.

앞서 지구 면적의 셋 중 둘은 바다라고 했지요. 그 하나만이 겨우 육지인데 그 중 10%는 사막이라고 했습니다. 육지의 온갖 고산과 극지를 탐험한 라인홀트 메스너, 그가 나이 예순에 이르러 찾은 곳은 바로 사막이었습니다. 고비사막 횡단이라는 고행을 통해 스스로와 마주하며 어떤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백척간두에 선 선객의 풍모를 자아내며 말입니다.

무릇 책을 읽는다는 것은 글쓴이라고 하는 어떤 사람과 만나는 일입니다. 그것도 대충 스치듯 건성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속 깊은 대화를 은은히 주고받는 일입니다. 한 줄 한 줄 속에 펼쳐진 그 사람의 내면 풍경과 나의 그것을 서로 내보이며 서로를 나누는 일이지요. 따라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 자신과 만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라인홀트 메스너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 내 안의 그 사람, 참나와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윤효
시인. 본명은 창식(昶植). 1956년 논산에서 태어나 1984년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얼음새꽃〉·〈참말〉·〈배꼽〉 등 다수의 시집과 시선집 〈언어경제학서설〉이 있다. 제16회 편운문학상 우수상, 제7회 영랑시문학상 우수상, 제1회 풀꽃문학상, 제31회 동국문학상, 제13회 충남시협상을 받았다. 현재 〈작은詩앗·채송화〉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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