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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차밭기행2_스리랑카 누와라 엘리야·하푸탈레 차밭

영국 식민지배 때부터 홍차 재배
타밀족 여인 땀과 눈물로 일궈내

‘동양의 진주’로 불리는 스리랑카는 해상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인도양 한 가운데 눈물방울처럼 떨어져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인도양의 눈물’이란 별칭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별칭은 일찍이 유럽 열강의 침입을 받았던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 아름다운 섬나라를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실론티(Ceylon Tea)’다. 홍차의 나라로 불리는 스리랑카의 차밭으로 떠나보자.

스리랑카는 1505년부터 약 440년 간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 등 유럽 열강의 식민지배를 받은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스리랑카의 마지막 왕조인 캔디 왕국은 명맥을 유지했지만, 1815년 영국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영국은 1860년대부터 스리랑카의 거대한 원시 정글에 세계 최대의 커피재배지를 만든다. 하지만 20년 뒤 커피나무가 병충해를 입어 재배가 어려워지자 대안으로 차나무를 심었다.

영국은 커피 재배를 시작할 때 자신들의 또다른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타밀족을 스리랑카로 이주시켜 노동을 하게 했다. 이로 인해 스리랑카 내 타밀족은 토착 타밀족인 실론계 타밀족과 인도에서 유입된 타밀족으로 나뉘게 됐다. 스리랑카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싱할라인이 불교를 신앙하는데 비해 타밀족은 힌두교를 신봉하는데, 훗날 독립을 목적으로 내전을 일으키는 타밀족은 실론계 타밀족이다.

엘라로 갈 때는 가급적 산악기차를 이용하는 게 좋다. 그중 하푸탈레를 지나는 구간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한 여행객이 기차에서 바깥 경치를 촬영하고 있다.

홍차의 나라, 스리랑카

스리랑카는 1972년 이전까지만 해도 ‘실론(Ceylon)’이란 국가명으로 불렸다. 이로 인해 스리랑카 홍차는 흔히 ‘실론티’라고 불리게 됐다. 스리랑카의 홍차는 인도 다즐링, 중국 기문과 함께 세계 3대 홍차로 꼽히며, 주 생산지는 캔디(Kandy)에서 엘라(Ella) 사이의 중부 고산지에 펼쳐져 있다. 캔디는 부처님 치아사리가 모셔진 불치사(佛齒寺)로 인해 더욱 유명한데, 그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다.

캔디부터 엘라까지는 기차로 7시간 남짓 소요되는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을 만큼 경치가 일품이다. 미국 CNN과 영국 BBC도 푸른 융단처럼 멋진 차밭 풍경을 소개한 바 있는데, 이로 인해 성수기(2~3월)에는 기차표 구하기가 쉽지 않다. 기차가 달리는 철로는 19세기 중반 영국 식민지 시절, 수도인 콜롬보까지 커피와 차를 실어 나르기 위해 건설했다고 한다. 여행객들은 달리는 기차 난간에 매달려 소위 ‘인생 샷’을 찍기도 하는데 위험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2019년 2월경 스리랑카를 방문했던 필자 역시 일주일 전에 기차 예매를 시도했지만 결국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버스의 소요시간은 기차와 비슷한데, 이름만 고속버스일 뿐 우리나라의 옛 완행버스처럼 곳곳에 세우고 시끌벅적했다.

스리랑카 홍차는 고도에 따라 세 종류로 나뉘는데, 고도 600m 이하의 낮은 곳에서 생산되면 로우 그로운(Low Grown), 이보다 높은 산간지대에서 생산되면 미디엄 그로운(Medium Grown), 그리고 1,200m 이상에서 생산되면 하이 그로운(High Grown)이라고 부른다. 기차의 출발지인 캔디는 해발 473m이지만, 이어지는 누와라 엘리야(Nuwara Eliya)는 해발 1,830m, 하푸탈레(Haputale)는 1,400m, 엘라는 1,041m에 달할 정도로 고도가 높아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홍차는 하이 그로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스리랑카의 차밭.

생산지에 따라 이름이 붙기도 하는데, 누와라 엘리야와 약간 북쪽에 위치한 딤블라 지역에서 생산되는 홍차는 지역 명칭에서 이름을 따왔고, 하푸탈레와 엘라에서 생산되는 홍차는 우바 주에 속한다고 해서 ‘우바(UVA)’라고 불린다. 7대 홍차 산지를 꼽을 때는 세 곳과 함께 우다푸셀라와·캔디·루후나·사비라가무와가 더해진다. 이외에 잎의 크기, 분쇄과정 등 여러 기준에 따라 홍차 종류를 나누기도 한다.

타밀족 여인이 보여주는 찻잎. 상처투성이 손에 눈길이 더 간다.

누와라 엘리야와 하푸탈레

‘빛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누와라 엘리야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홍차의 도시’답게 숙소의 창문을 통해 내다보이는 전경이 모두 차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을 맞은편에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높은 피두루탈라갈라산(해발 2,524m)이 우뚝 솟아있는데, 그 아래로 끝없는 차밭이 펼쳐져 있다. 세계인들이 날마다 마시는 홍차의 60%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와라 엘리야는 식민지배 때 영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던 휴양지였다. 지금도 넓은 영국식 정원과 튜더 양식의 건물, 승마장, 골프장 등이 곳곳에 있어, 스리랑카 속의 작은 영국으로 불린다. 규모가 큰 도시는 아니지만 ‘실론티’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도시다.

이에 비해 하푸탈레는 뒤늦게 알려진 곳이다. 작은 시골마을이어서 특별한 볼거리는 없지만, 새벽 안개와 어우러진 비탈진 언덕을 따라 펼쳐진 차밭은 스리랑카 최고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몇 해 전 CNN에서 ‘아시아에서 가장 간과되고 있는 여행지’ 중 하나로 선정하면서 유명세를 타고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곳의 호텔이나 식당에서는 대부분 아름다운 차밭 풍경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풍경은 ‘립톤 싯(Lipton’s Seat)’이다. ‘홍차의 왕’으로 불리는 토머스 립톤(Thomas Lipton, 1848~1931)은 하푸탈레에 있는 거대한 농장을 사들여 직접 차를 재배했다. 이 차는 품질이 좋았고, 그는 마케팅에도 뛰어났다. 차를 여러 단위의 작은 분량으로 나눠 포장한 후 ‘실론티’라는 라벨을 붙여서 상점에서 팔았는데, 더 높은 가격을 받았다. 립톤은 광고를 통해 영국은 물론 미국 차 시장과 국민들에게까지 실론티를 널리 알렸다. 이를 통해 영국 상류층이 주로 즐기던 차 문화가 중산층과 노동자 계층까지 확대되었다.

립톤 싯은 립톤이 날마다 차밭 정상에 올라와 풍경을 즐긴 장소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립톤은 훗날 홍차의 대중화와 빈민구제 사업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가 차를 마시며 앉아있던 자리에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현재 작은 카페가 운영되고 있어서 관광객들도 홍차를 한 잔 마시며 여유 있게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제임스 테일러와 토머스 립톤

필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저녁 안개가 짙어지면서 찻잎 향이 차밭에 가득했다. 아침햇살과 안개에 둘러싸인 차밭이 절경이라고 했는데, 찻잎 향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아침풍경을 보여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툭툭이 기사와 느긋하게 홍차를 마셨다. 그는 각설탕처럼 생긴 설탕 덩어리 몇 개를 입안에 물고 홍차를 홀짝였다.

하푸탈레의 한 공장에서 홍차를 만들고 있다. 〈사진=김봉수〉

지금도 하푸탈레에는 립톤이 1890년에 지은 홍차 공장 ‘담베테네 티팩토리(Dambatenne Tea Factory)’가 운영되고 있다. 개별적으로 관람할 수는 없고, 유료가이드 투어를 해야 한다. 홍차의 발효와 건조, 절단 등 홍차 생산의 전 과정, 홍차 등급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하푸탈레 인근에는 여러 곳의 홍차공장이 있는데, 그 중에서 담베테네의 규모가 가장 크다.

하푸탈레의 명소 립톤 싯의 간판.

립톤 경이 홍차의 왕으로 불렸다면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 1835~1892)는 ‘실론티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는 18살 때 스리랑카로 건너와 인도에서 차 재배과정을 배운 후 캔디 인근에 위치한 룰레콘데라 농장에서 차를 심고, 새로운 종자를 개발했다. 이 차 농장은 스리랑카 최초의 상업적 다원이다. 테일러는 차의 가공에도 뛰어나 흙난로와 팔뚝을 이용해 맛좋은 홍차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가 살았던 통나무집은 현재 작은 박물관이 되어 있다.

하푸탈레 홍차 공장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여행객들.

찻잎 따는 타밀족 여인

엘라는 하푸탈레와 이웃한 도시다. 엘라는 하푸탈레보다 일찍 여행자들에게 알려지다 보니 여행객들의 입맛에 맞춘 다양한 음식과 이색적인 카페 등 서양의 문화가 많이 유입돼 있다. 엘라에서 툭툭이를 타고 불교사원과 힌두사원을 거쳐 반다라웰라 마을을 지나면 이곳에서도 드넓은 차밭을 만날 수 있다. 차밭의 산허리에 걸쳐 있는 운무는 목가적이면서도 몽환적이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다.

툭툭이를 타고 초록이 우거진 다원을 따라 산길을 따라 올라갈 수 있는데 칠이 벗겨지고 바랜 힌두사원과 시멘트로 지어진 낡은 집들을 만나게 된다. 녹슨 함석지붕 위에 올라가 빨래를 걷는 소녀, 낡은 사리를 입고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 강아지와 뛰노는 어린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면 그들도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준다.

찻잎을 따고 있는 타밀족 여인들.

차밭에서는 거친 손으로 차를 따는 여인들을 만날 수 있다. 등 뒤에 매단 마대자루에 갓 따낸 찻잎을 가득 담아 운반하느라 분주하다. 툭툭이 기사에게 이곳의 여인들이 피부가 유난히 가무잡잡해 보이는 이유를 물어보니 영국 식민시절 찻잎을 따기 위해 인도 남부 타밀지역에서 이주해 온 타밀족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스리랑카 중남부 고산지대의 차밭은 이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투성이 산을 개간했고, 뱀과 독충이 우글거리는 곳에서도 차나무를 가꿨다고 한다. 오늘날 우아하게 펼쳐진 차밭에는 타밀족 여인들의 눈물과 땀이 거름이 된 셈이다. 여인들이 둘러맨 마대자루의 무게는 20kg 남짓이라고 하는데, 하루 종일 땡볕에서 일하고 우리 돈 2,000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이들은 스리랑카에서도 저소득층에 속해 삶이 녹록지 않다고 한다.

검게 탄 얼굴에 고단함이 묻어난다.

스리랑카에서 생산되는 차는 90% 이상 유럽과 미국 등지로 수출된다. 그 양은 약 3억kg에 달한다. 그 중에서도 최고급 홍차는 대부분 캔디·누와라 엘리야·하푸탈레·엘라에서 생산된다. 스리랑카에는 어디를 가나 슬로건처럼 벽에 붙어있는 ‘Chill Out’이란 글귀를 볼 수 있다. ‘긴장을 풀다’, ‘흥분을 가라앉히다’라는 뜻으로 휴식과 여유를 품고 있는 스리랑카의 정서와 잘 어울리는 말이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다음 일을 하기 위해 각성을 하는 시간이라면, 홍차를 마시는 시간은 차와 함께 휴식을 즐기는 여유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둘러맨 마대자루의 무게는 20kg에 달한다.

김봉수
중남미 전문여행사 비욘드코리아의 영업이사와 중남미 항공사(AR, Z8, P9) 한국 총판 CEO를 맡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했다. 하나투어 미주팀 팀장·참좋은여행 미국&FIT·LAN Airline GSA(총판) 판매 및 마케팅 총괄·AVIANCA Airline GSA(총판) 디렉터를 역임했다.

글 김봉수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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