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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시론> 과소비는 도둑질·살생과 같다
  •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2.2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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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 정신 입각해
과소비 풍토 반성하고
우리 삶·세상 바꾸자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옷을 아껴 입으면 50년은 더 입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과장된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 먼 옛날은 아니지만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시절, 구멍 난 양말에 전구를 넣어서 기워 신고, 내복도 여기 저기 기워 입던 때가 불과 몇 십년 전이다. 그 시절은 왜 그렇게 추웠던지 생각하다 보면, 아마도 복장이 시원찮고, 집의 방한과 난방설비도 시원찮았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 시절의 쓰임새로 돌아간다면, 우리가 지금 가진 옷으로 50년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옷을 예로 들었지만, 지금 우리 삶은 얼마나 넘치도록 풍족한가? 이것을 단지 풍족하다고 표현해서 될 것인가?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의 몇 십 배를 소모하면서 사는 이 삶의 모습을 풍족이라고 표현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것은 분명한 낭비요, 과소비이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자본주의 문명은 낭비와 과소비를 계속 부추기는 구조 위에 성립하고 있다. 그것을 그치면 그 문명구조 자체가 붕괴할지 모르는, 어디가 종착점인지 모를 위험한 질주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핸드폰과 같은 문명의 이기를 새 모델로 바꾸고 난 뒤의 만족감이 얼마나 가는가? 다시 새 제품을 사기 위해 애쓰는 반복되는 삶 속에서, 삶을 살아가기 보다는 끌려가면서 삶을 당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개인의 삶이 이렇게 계속되는 것을 넘어, 이런 현상이 전 인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양상을 생각해보라. 그렇게 쓸 수 있는 물건을 계속 버려 가면서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낭비와 과소비를 토대로한 자본주의 문명구조가 유지되고 굴러가고 있다. 이를 인간 본위로 생각하면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모든 생명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세상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심각한 이야기가 된다. 지구상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한정된 자원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야 할 생명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할 터인데, 인간만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많은 것을 소비하고 낭비한다는 것은 다른 생명들이 누려야 할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그렇다. 반성 없이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바로 다른 생명의 몫을 도둑질하는 구조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도둑질이라는 구조는 단순히 도둑질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생존경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치열한가? 우리에게 자신의 몫을 빼앗긴 생명들이 그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답은 당연히 ‘그럴 수 없다.’이다. 그것은 그러한 생명들이 생존경쟁 속에서 도태되어 죽어나간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반성 없이 과소비와 낭비를 일삼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수한 생명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과소비는 도둑질이고 살생이다. 불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오계(五戒) 가운데 두 가지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계율을 너무 확장 적용하는 것도 문제가 있을지 모르지만, 계율의 정신에 의거한 삶을 살아가려는 태도는 불자들의 삶에 바탕이 되어야 한다. 물론 자본주의 문명구조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계율의 정신에 입각하여 그것을 비판하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처님의 지혜가 우리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길은 가장 기본적인 계율을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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