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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속 동물마음 엿보기1_원숭이우리는 사람 흉내 내지만 그들은 우리 마음 흉내 내요!

너무 추웠습니다.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면 위험한 줄 알고 있었지만 그날은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원숭이들에게 추위는 치명적입니다. 나는 달달 떨면서 온기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발견했습니다. 연기가 있다는 건 불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그 연기에 이끌렸나 봅니다. 나뭇가지들을 양손으로 번갈아 붙잡으며 날듯이 그곳으로 나아갔습니다. 

그곳에는 움막이 있었고, 부자 사이로 보이는 어른 남자와 소년이 있었습니다. 따뜻하게 모닥불을 피워 놓고 아버지로 보이는 어른이 누워 있었고, 소년은 그의 발을 주무르고 있었습니다. 그들 곁으로 다가가 불을 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저 어른인 사내가 원숭이인 나를 쫓아낼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마 돌팔매질도 당할 것입니다. 그래도 저 따뜻한 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방법이 없을까…….

나는 소년을 살펴봤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라서 어쩌면 그 아이의 눈은 속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두리번거렸습니다. 아하, 대충 몸에 두르면 수행자처럼 보일 것 같은 나무껍질로 만든 누더기가 저기 한 벌 놓여 있네요. 나는 그 누더기를 몸에 둘렀고, 긴 나뭇가지를 지팡이로 삼아 다가갔습니다.  

세상의 동물 가운데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녀석이 우리 원숭이 말고 또 있을까요? 나는 수행자처럼 머리를 조금 숙이고 천천히 불 곁으로 다가갔지요. 내 정체가 드러날까 봐 가슴이 쿵쾅거렸지만 극심한 추위에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소년이 나를 보았습니다. 천으로 온몸을 휘감았기에 두 손도 두 발도 그리고 머리도 드러나지 않은 나를 보더니 소년이 몸을 움직였습니다. 마치 불가 따뜻한 자리로 나를 초대하는 듯 했습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밤새 꽁꽁 얼었던 몸이 따뜻해지면서 이제야 좀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벼락같은 호통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소년의 아버지였습니다. 그가 나를 보더니 소리쳤습니다.

“썩 꺼져라. 이 원숭아. 어디 감히 사람의 흉내를 내고 있느냐.”

정체가 탄로 났습니다. 따뜻한 온기에 막 취하려던 찰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게 친절하게 불가 자리를 내어준 소년의 낯빛이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한눈에도 소년은 당혹하고 민망스러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소년을 보기가 민망해 나는 허겁지겁 도망쳤습니다. 그 아버지가 소년에게 호통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들아, 사람에게서 이런 얼굴을 본 적이 있느냐! 너는 어떻게 사람과 원숭이도 구별하지 못하느냐. 이렇게 지혜롭지 못해서야, 원 쯧쯧…….”(〈본생경〉)

사람들은 이런 나를 또 무엇이라 비난할까요?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소년을 속이기 좋아하는 교활한 존재라 손가락질할 테지요. 그리고 이런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사람과 원숭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소년에 빗대어 어리석음을 새롭게 규정하게 되겠지요. 사람 흉내를 너무 교묘하게 잘 낸 나의 탓입니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의 한 초등학교에 있는 부처님을 등에 태운 원숭이상.

하지만 그걸 아시나요? 나는 사람을 흉내 내지 않았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을 뿐입니다. 이리저리 꾀를 내고 그걸 행동에 옮겼던 것입니다. 체코의 작가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는 이런 나를 단편소설 주인공으로 삼기도 했지요. 멀리 떨어진 대륙에서 산채로 잡혀 좁디좁은 쇠창살 케이지(Cage)에 갇힌 채 유럽 대륙으로 실려 와야 했던 원숭이, 그 원숭이는 사람 흉내를 내면서 인기를 얻게 되었고, 사람도 아닌데 사람처럼 보인 까닭에 자신의 행동을 해명하는 보고서까지 학술원에 제출해야 했지요. 그렇습니다. 〈학술원에의 보고〉라는 짧은 단편소설이 그것입니다. 

그 원숭이는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좁은 케이지에 갇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을 쳤습니다. 자유를 꿈꿨다고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저 그 좁은 케이지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를 찾으려 했습니다. 나가기만 하면 됐습니다. 자유라니요. 그 황송하기까지 한 상태를 어찌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살기 위해 발버둥 쳤고, 사람의 흉내를 내야 살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란 존재가 그렇더군요. 자신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면 너그러워 지더군요. 원숭이인 내가 사람의 옷을 입고 사람처럼 엉덩이를 흔들며 걸으면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내 지명도가 높아지고 대중의 관심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자 사람들은 급격하게 나를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마음이란 것,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어찌나 파도처럼 요동을 치든지. 

바로 이 대목에서 나는 또 한 번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어느 한곳에 진득하게 안주하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을 우리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타고 다니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지요? ‘심원의마(心猿意馬)’라는 그 말, 마음은 원숭이처럼 쉴 새 없이 요리조리 돌아다니고, 뜻은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길길이 날뛴다는 뜻이지요. 마음이란 녀석이 그렇습니다. 단 한 순간도 안주할 자리를 찾아 쉴 새 없이 뛰어다닙니다. 그렇다고 마냥 허공을 돌아다니는 건 아닙니다. 마음은 허공에 안주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 원숭이가 한쪽 손으로 나뭇가지를 붙잡는 순간 ‘영차’하고 몸을 움직이며 반대쪽 손을 내뻗어 다른 나뭇가지를 붙잡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도 그렇지 않나요? 쉴 새 없이 움켜쥘 대상을 찾고 그 대상이 보이면 순식간에 움켜쥡니다. 

수행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마음을 비우는 과정이라기보다 마음을 어떤 지점에 제대로 안주시키는 연습이 아닐까요? 우리 원숭이도 그렇게 쉬지 않고 나뭇가지를 붙잡으며 온 숲을 돌아다니다가 단단한 나뭇가지를 만나면 그곳에서 쉬곤 하니까요. 

우리 원숭이 세계에는 이런 전설도 전해집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우거진 숲을 거닐고 계셨습니다. 모두들 지니고 있던 발우를 맨땅에 내려놓은 채 숲에서 한가한 여유를 즐기고 있었지요. 그때 원숭이 한 마리가 그 많은 발우들 중에 딱 하나를 집어 들더니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 발우는 바로 부처님의 발우였습니다.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원숭이를 붙잡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진정시켰지요.

“침착해라. 저 원숭이가 발우를 깨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원숭이는 부처님 발우를 집어 들고 재빠르게 사라나무 위로 올라가더니 벌꿀을 발우에 가득 담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공손히 올렸지요. 그런데 부처님은 그걸 받아들지 않았습니다. 중생이 올리는 공양을 받지 않는 건 드문 일입니다. 법답게 수행하는 이를 공양하는 일은 큰 복을 짓는 일인데, 발우를 받아들지 않는다는 것은 복 짓는 걸 반대한다는 뜻입니다. 원숭이는 발우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니다.

‘왜 받지 않으실까?’

그러다 꿀 속에 벌레 한 마리가 들어 있는 걸 발견했지요. 원숭이는 조심스레 그 벌레를 집어냈고 다시 꿀이 담긴 발우를 부처님께 올렸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여전히 그 발우를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원숭이는 다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면 여래께 공양을 올리는 큰 공덕을 쌓을 수 있을까? 부처님은 내게서 뭘 바라는 걸까?’

산치 대탑 북문에 있는 원후봉밀 조각.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기던 원숭이는 맑고 깨끗한 샘물을 떠다 그 발우에 부었습니다. 마시기에 딱 좋게 희석된 꿀물을 내밀자 부처님은 가만히 두 손을 내밀어 발우를 받았습니다. 원숭이는 행복했습니다. 진리의 스승에게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시원한 꿀물을 올렸고, 부처님은 말없이 그 발우를 받아 들었기 때문입니다. 원숭이는 행복에 겨워 부처님을 주위를 빙빙 돌며 춤을 췄습니다. 아마 ‘꺅꺅’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면서 날뛰었을 테지요.(〈중아함경〉) 이 원숭이는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나 수행자가 되어 아라한의 경지까지 올랐다고 들었습니다.(〈현우경〉)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물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원숭이는 인간을 가장 많이 닮아 늘 오해와 조롱을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 원숭이에 대해 너그럽게 평하는 경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원숭이가 머물 곳을 찾을 때는 매우 신중해진다는 점입니다. 원숭이는 가지가 무성하고 피난처로 삼을 만한 커다란 수목에 거처를 구하는데, 이런 행동처럼 수행자라면 자신의 행동을 삼가고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위엄을 지키며 훌륭한 스승을 찾아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원숭이가 언제나 나무에 기대어 지내고 나무에서 밤을 보내는 것처럼 수행자라면 세속의 번잡한 곳을 떠나 숲에서 머물고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밀린다왕문경〉)

원숭이 같이 한 순간도 쉬지 못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시여! 번뇌의 나뭇가지 사이로 이리저리 마음이 날뛴다지만, 그 나뭇가지에 의지해 하룻밤을 편히 쉬는 원숭이처럼, 번뇌 속에서 번뇌를 딛고 서서 평화롭기를! 

이 미 령

동국대학교에서 불교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전번역가이자 불교대학 전임강사, 북 칼럼니스트이다. 현재 BBS불교방송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 〈붓다 한 말씀〉·〈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이미령의 명작산책〉 등이 있다. 또 〈직지〉·〈대당서역기〉 등 많은 번역서가 있다.

글 이미령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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