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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차밭기행1_중국 무이산 대홍포 차밭중국 오룡차의 원류 10대 명차로 손꼽혀
중국(中國) 복건성(福建省)과 강서성(江西省) 경계(境界)에 있는 무이산은 36개의 봉우리, 72개의 동굴, 99개의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 남동부 해안에 위치한 복건성(福建省)의 첫 인상은 ‘덥고 습하다.’였다. 아열대기후의 덥고 습한 날씨는 차나무가 생육하기 더없이 좋은 기후다. 실제 복건성을 다니다보면 야생차(野生茶)와 찻집, 차를 덖거나 다듬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차를 논할 때면 복건성을 결코 빼놓을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바로 무이산(武夷山)에 자생하는 대홍포(大紅袍) 때문이다.

무이산은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

중국 10대 명산 중 하나인 무이산은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는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아열대림 중 하나다. 또한 한나라의 수도가 있는 등 훌륭한 고고학적 유적도 간직하고 있어서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자연유산+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차는 통칭 ‘무이암차(武夷巖茶)’로 불린다. 무이산은 붉은색의 사암(沙岩)으로 뒤덮여 있다. 이런 토양에서는 차나무가 잘 자라는데, 이런 곳에서 자란다고 해서 ‘암차’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중국 오룡차는 무이산 암차가 그 원류다. 무이암차는 여러 품종이 있는데, 그 중 최고의 품종이 바로 대홍포다. 

한동안 국내에서는 보이차가 유행하면서 중국 차를 이야기할 때 운남 지역을 떠올렸지만, 중국 10대 명차 중에는 중국 동남쪽 지역에서 생산되는 차가 8종이나 포함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10대 명차는 무이암차 외에 △절강성 서호용정(西湖龙井) △복건성 안계철관음(安溪铁观音) △안휘성 기홍(祁紅) △강소성 동정벽라춘(洞庭碧螺春) △안휘성 황산모봉(黃山毛峰) △호남성 군산은침(君山银针) △복건성 백호은침(白毫银针) △운남 보이차(普洱茶) △사천성 몽산차(蒙山茶) 등이다.

무이암차는 혀 위아래로 묵직하게 감겨오는 보이차와 달리 가볍게 피어오르는 향과 꾸준하게 입안을 맴도는 맛을 지니고 있다. 개인적으로 무이암차가 으뜸이라는 사람을 자주 만났는데, 그들의 말을 빌리면 무이암차는 중국 차 중에서 균형을 가장 잘 맞추고 있는 차다. 음색으로 표현한다면 베이스가 묵직하면서도 고음이 명징한 진공관 스피커 같다고나 할까?

무이산 일대는 해발 700m가 넘고, 연평균 기온이 17.5℃, 연평균 강우량이 2,000mm이상이며, 골짜기에는 안개가 자욱해 80% 정도의 습도를 유지한다. 자연환경이 차 재배에 최적인 셈이다.

무이산 여행에 큰 기대를 품었던 건 무이암차 재배지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무이산은 복건성 하문에서는 차로 5~6시간 거리인데, 상해에서 출발할 때도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또 무이산까지 가는 비행기나 기차도 있는데, 이렇게 교통수단이 발달해 있다는 건 무이산이 중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 무이산 풍경구는 중국국가여유국이 지정한 5A급 관광지다. 중국은 관광지의 수준에 따라 ‘A’를 부여하는데, 5A급은 최고 단계를 의미한다. 

무이산과 관련된 기록을 찾아보면 뜻밖의 내용을 접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한 중국 여행지라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 1130~1200) 때문이다. 무이산은 주자의 고향이다. 주자는 이 지역에서 태어나 스승인 유자휘 아래에서 공부했고, 말년에는 이곳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했다. 무이산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낸 그가 무이산의 아름다움을 시로 남겼는데, 그게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다. 그 중 일부다.

武夷山上有仙靈  山下寒流曲曲淸
欲識個中奇絶處  棹歌閑聽兩三聲

무이산 위에는 신령한 신선이 살고
산 아래 차게 흐르는 물 굽이굽이 맑다. 
그 중에서도 빼어난 절경 보려 하는데
뱃노래 한가하게 두세 곡조 들려오네.

九曲將窮眼豁然  桑麻雨露見平川  
漁郞更覓桃源路  除是人間別有天  

구곡이 다하려니 눈앞이 트이네
뽕·삼나무에 안개비 내리니 평야 보이네.
어부가 다시 무릉도원 가는 길 찾지만
이곳이 바로 인간세상 별천지로구나.

인민군이 지킨 대홍차 母樹 여섯 그루

중국인은 무이산을 설명할 때 36개의 봉우리, 72개의 동굴, 99개의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무이산은 그만큼 넓고 볼 게 많다. 실제 이 산은 550km에 걸쳐 있다. 관광객이 무이산 풍경구에서 보는 무이산의 풍광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풍경구는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아홉 굽이의 물줄기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주자도 ‘무이구곡가’에서 이 아홉 굽이의 물길과 산의 절경을 묘사하며, 무릉도원을 떠올렸다. 

무이산 일대는 차밭이 가득 메우고 있다. 해발 700m가 넘고, 연평균 기온이 17.5℃, 연평균 강우량이 2,000mm이상이며, 골짜기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보통 습도 80%를 유지한다. 기온과 습도 등 자연환경이 차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무이산 차밭은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눠지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축을 이루는 지역이 대홍포다. 원래 대홍포는 무이산에서 자라는 야생차나무를 일컫는 이름이었다. 무이산의 계곡 깊숙한 안쪽, 절벽 아래 자리한 여섯 그루의 나무가 이 지역에서 나오는 모든 차의 시조인 대홍포다. 

무이산풍경구는 중국 관광지 중 최고단계인 5A급 관광지여서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다.

대홍포란 이름이 생겨난 데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봄에 찻잎이 처음 나올 무렵에 햇살을 받은 그 모습이 마치 ‘불에 타오르는 것 같다.’고 하여 이름 붙였다는 설이 하나이고, 명나라 황후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을 때 이 차를 마시고 병이 깨끗이 나아 황제가 자신에게만 허락된 붉은 두루마기를 차나무에 하사한데 기인한다는 설이다. 실제로 이 지역에는 11세기부터 16세기까지 황실의 차 농장이 있어서 황실에 진상할 대홍포를 생산했다. 하지만 이 차나무는 2007년 7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차를 생산하지 않는다. 과거 이 나무에서 딴 차의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지금도 품질 좋은 대홍포는 100g에 수백 만 원을 호가한다. 물론 그만큼 향과 맛이 뛰어나다. 

차밭이라고 전남 보성의 차밭처럼 드넓은 평원 또는 구릉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무이산 대홍포 차밭은 거대한 바위 협곡 사이로 사람이 걷는 길과 차밭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다. 완만한 산책로를 따라 차밭을 거니는 중국 특유의 이국적 운치는 일품이다. 

대홍포 품종의 시원이 되는 모수(母樹)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수령 350~4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1년 생산량이 350g밖에 되지 않았다. 귀한 탓에 가격이 비싸다보니 이 나무의 찻잎을 노리는 사람이 많았다. 이럴 경우 경비 인력을 세워서 나무를 지키는 게 일반적인데, 중국 정부는 파격적으로 인민군 1개 중대 병력을 무이산에 주둔시키며 대홍포 모수를 지키게 했다. 어쩌면 중국이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현재 일대가 관광지로 변하면서 군대가 모두 철수했는데, 대신 10여 대의 CCTV가 군대를 대신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淸 초기부터 茶市 열렸던 하매촌

무이산 풍경구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오래된 마을이 있다. 하매촌(下梅村)이라 불리는 이 마을은 청나라 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옛 마을이다. 이 마을이 주목받는 이유는 명·청대의 가옥이 지금까지도 완벽에 가깝게 보존돼 있다는 점과 함께 이곳이 차상(茶商)의 마을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대를 이어 지금까지도 차를 만들고 거래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간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울을 중심으로 펼쳐진 하매촌 전경.

중국인 관광객은 일부러 이 마을을 찾기도 하는데,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좀처럼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다. 무이산을 몇 번씩 다녀갔다는 한국 관광객 중에서도 이 마을을 가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관광지라기보다는 일반 마을이기 때문인데, 이 마을에서는 무이산에서 따서 덖은 차를 구입할 수 있다. 명산을 여행하며 중국의 내밀한 모습을 살펴보기에는 이보다 더 적합한 곳도 드물다. 

필자가 무이산 여행을 할 때 이 마을 초입에 숙소를 정했는데, 틈나는 대로 마을을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은 저녁이 되면 모여서 춤을 추기도 했고, 장날에는 이른 새벽부터 복건성 각지에서 모여든 상인들이 직접 수확한 농산물을 내다놓고 팔았다. 세상 어디든 사람 사는 모습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매촌을 찾았던 첫 날, 해질녘 오후 햇살에 비친 마을이 온통 주홍빛으로 반짝이던 풍경은 지금도 생생하다. 얼마 후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마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냇가 근처로 나올 무렵, 마을 전체는 차향으로 가득 물들었다. 좀체 보기 힘든 평화로운 시골마을 정경에 빠져 해가 진 후에도 한참동안 마을 곳곳을 걸어 다닌 기억이 난다. 

마을을 돌아볼 때 가장 많이 눈에 띤 건 차를 파는 가게다. 원래 이 마을은 청나라 초기부터 차시(茶市)로 이름이 높았다. 매계(梅溪)라 부르는 시냇물을 중심으로 청나라 때 지어진 가옥 수십 채가 늘어서 있고, 목조·석조·전조(塼造)의 품격이 지금도 살아 있다. 하매촌이란 이름은 매계 아랫마을이란 뜻인데, 이 마을은 추(鄒) 씨 집성촌이다. 원래 추 씨는 산동에서 비롯한 성씨다. 이 마을에는 1694년 강서성에서 그 일족이 흘러들어와 정착했다. 

무이산에서 채취한 찻잎을 손질하는 주민들.

마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사당은 하매촌의 시초가 된 일가를 기리고, 추 씨 집안의 정신을 되새기는 장소이다. 사당은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옛 정취를 그대로 품고 있다. 인공의 불빛을 배제하고 햇살을 안으로 받아들여 사위를 밝히고 있다. 대문부터 위엄이 넘친다. 문 양쪽에는 목본(木本)과 수원(水源)을 전각해 놓았다. ‘나무는 뿌리, 물은 근원이 있으니 초심을 잃지 말라.’는 선조의 엄중한 전언이다. 사당 안의 기둥과 들보를 치장한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예의유공(礼仪惟恭, 예의와 의식은 지극히 공손히 행하라)’ 편액이 마음에 와 닿는다. 

유럽까지 이름 떨친 무이암차

사당을 살펴보고 옆문으로 나오니 큼지막한 지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만리차도(萬里茶道)’로 불리는 지도인데, 복건성 무이산에서 생산된 차가 세상 어디까지 전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안내도인 셈이다. 그 전래범위에 말문이 막혔다. 아래로는 동남아의 싱가포르, 위로는 고비사막을 건너 시베리아-모스크바를 거쳐 유럽의 초입인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런 엄청난 위업을 달성한 인물은 1704년에 태어난 추무장(鄒茂章)이란 인물이다. 

그는 차를 재배해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데 매우 능숙했다고 전한다. 사업수완도 뛰어나 열네 살이던 1718년 경륭호(景隆号)를 창업했다. 이 회사는 날로 번성해 1755년 산서성에서 온 상인과 합작을 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세계시장에 진출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게 된다. 경륭호의 유례없는 대성공은 다른 상인들에게 큰 자극이 됐다. 이들이 부지런히 차를 길러 만든 상품은 무이산 차의 명성을 드높였고, 하매촌 전체가 차를 거래하는 마을로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무이암차가 중국 10대 명차로 이름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골목을 따라 걷다가 추 씨 종손이 운영하는 차 가게로 들어가 보았다. 9대 종손이 운영한다는 이 가게는 건물 전체가 청나라 시대에 지어진 가옥이다. 낯선 이의 발걸음에 나온 집안의 9대 종부 양천풍 씨가 고개를 내밀어 인사를 건네 온다. 당찬 목소리, 위엄 서린 몸짓에 자부심이 느껴진다. 집안 구석구석을 구경 시켜준 그가 “하매촌의 역사를 만든 차를 맛봐야하지 않겠느냐?”며 다실로 이끈다. 경륭호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부터 만들었던 대홍포, 그중에서도 육계 품종의 차를 우려내자 청명한 공기를 타고 실내에 차향이 퍼져나갔다. 그가 내준 차를 한 모금 마시자 따스한 온기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면서 은은한 차향을 몸 구석구석까지 퍼트렸다. 첫 맛도 끝 맛도 거슬림 없이 지극히 부드러웠다. 

하매촌의 옛 영화를 기억하는 할아버지와, 아이가 귀한 하매촌의 후손.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 차상도 점점 줄고 있다.

“차에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반드시 차를 깨운 뒤에 차를 우려야 합니다. 차는 완전히 깨어나야만 온전히 제 맛을 보여줍니다. 차에는 마음이 있어서 당신이 차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차도 그에 상응하는 만큼 마음을 내어서 당신을 상대합니다. 차인이라면 한 잔의 차를 한 사람의 일생처럼(一杯茶一輩子) 다뤄야 합니다. 저는 그 마음으로 평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차는 차를 우리는 사람을 닮는다고 했던가? 추 씨 종부의 말에서 무이산에서 사는 차인의 마음가짐을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왜 대홍포가 명차로 불리는지, 무이암차의 온화한 맛이 결코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란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정 태 겸

여행작가. 불교계 언론사에서 기자로 재직했으며, 현재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를 주로 여행하고 있다. EBS ‘세계테마기행-중국 천하제일 풍경구’ 편에서 무이산을 비롯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중국의 여행지를 소개했다. MBC라디오 표준FM ‘별이 빛나는 밤에’ 고정패널로 출연했으며, 현재 KBS 포항-라디오 ‘생방송 동해안 오늘’에 패널로 출연해 국내외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다. 공저로 〈중국여행〉·〈더 오래가게〉 등이 있다.

글·사진 정태겸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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