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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길 순례1_정선 정암사 ‘자장율사 순례길’
  • 글·사진 이강식 기자
  • 승인 2020.01.1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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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율사 순례길 초입. 정암사 수마노탑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순례길이 나온다.

불교가 한반도에 도래한 이후 수많은 고승대덕이 배출됐고, 이 선지식들에 의해 한국불교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근래 지방자치단체에서 전통문화유산 선양과 보존을 위해 고승의 이름을 딴 순례길을 잇따라 조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원효대사를 비롯해 신라에 계율종(남산종)을 개창한 자장율사,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선사,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치고자 앞장섰던 사명대사, 한국불교의 다도(茶道)를 중흥시킨 초의선사 등 선지식 여섯 분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길을 순례하며 그분들의 생애와 업적을 되짚어보려 한다.

오녕일일지계이사(吾寧一日持戒而死)
불원백년파계이생(不願百年破戒而生)

“하루 동안 계율(戒律)을 지키다가 죽을지언정,
100년 동안 계율을 어기고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자장정률(慈藏定律)’조

“(조정으로)나오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는 왕의 칙명(勅命)에 찰나의 고민도 없이 이와 같이 대답한 이는 1,500여 년 전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다. 이 일화는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의 지계 정신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삼국유사〉 ‘자장정률(慈藏定律)’조에 따르면 자장율사의 아버지는 진한(辰韓)의 진골 출신으로, 소판(蘇判)이라는 관직에 있던 무림(茂林)의 아들이다. 무림은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이 없어 불교에 귀의해 천부관음(千部觀音)에 일심으로 득남을 기원하면서 “아들을 낳으면 내놓아 법해(法海)의 진량(津梁)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꿈에 별 하나가 떨어져 품안으로 들어왔다. 이내 태기가 있어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일인 (음력)4월 초파일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훗날 자장율사다. 부모는 아이의 이름을 ‘선종랑(善宗郞)’으로 지었다.

자장율사, 당나라서 진신사리·대장경 모셔와

만항재공원 설경. 자장율사 순례길 끝은 만항마을이지만, 만항재에서 회향하는 순례자도 더러 있다.

자장율사는 부모를 여읜 후 세속의 번거로움이 싫어져 처자를 버리고 수행자의 길을 택했다. 홀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머물며 수행하던 그는 고행(苦行)의 하나인 고골관(枯骨觀)을 닦았다. 고골관은 몸에 집착하는 생각을 없애기 위해 시체가 썩어서 피부와 근육이 다 없어지고 백골만 남을 때까지 관찰하는 수행법이다.

자장율사는 왕이 여러 차례 조정으로 불렀지만, 산문을 나가지 않고 수행에 더욱 매진했다. 그는 작은 집을 짓고 주변을 가시덤불로 둘러 자신의 바깥출입은 물론 타인의 접근도 막았다. 그런 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행했다. 들보에 머리카락을 매달고, 미동(微動)에도 가시에 찔리게 하는 등 죽음을 각오하고 정진했다.

수행을 이어가던 자장율사는 이상한 새가 과일을 물고 와서 공양하고, 천인(天人)이 와서 오계(五戒)를 주는 꿈을 꾼 후 속세로 나와 중생교화에 힘썼다. 율사는 636년 제자 10여 명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청량산 등 전국 각지에서 화엄(華嚴) 등을 공부했다. 신라 선덕여왕이 당 태종에게 자장율사의 귀국을 요청해, 율사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대장경 등을 모시고 신라의 수도 서라벌(현재의 경주)로 돌아왔다.

이후 궁중에서 대승론(大乘論)을 강했고, 황룡사에서 보살계본(菩薩戒本)을 가르쳤는데, 만년은 강원도에서 보낸다. 자장율사는 당시 강릉군에 수다사(水多寺)를 짓고 머물러 수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기이한 스님을 만났다. 자장율사는 그 스님이 가르쳐준 장소에 이르렀는데, 그곳에 문수보살이 기다리고 있어서 친견을 했다. 그 자리에서 자장율사는 문수보살에게 법요(法要)에 대해 물었다. 이에 문수보살은 “태백산 갈반지(葛蟠地)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긴 뒤 자취를 감추었다.

자장율사는 시자와 함께 태백산으로 가서 문수보살이 일러준 곳을 찾다가 마침내 나무 밑에 큰 구렁이가 있는 곳을 보고 그곳이 갈반지임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곳에 석남원(石南院)을 세웠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 스님은 이 석남원이 바로 ‘정암사(淨岩寺)’라고 기록했다.

정암사 창건과 관련해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한다. 자장율사가 사북리 불소(佛沼) 위의 산정에 불사리탑(佛舍利塔)을 세우는데, 세울 때마다 붕괴되어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 칡 세 줄기가 설상(雪上)으로 뻗어 지금의 수마노탑(水瑪瑙塔) 자리까지 뻗어와 멈추었다. 자장율사는 그 자리에 탑과 법당과 본당(本堂)을 세우고, 이 절을 ‘갈래사(葛來寺)’라고 했다는 설이다.

정암사에서 만항마을까지 4.2km 구간

자장율사 순례길 표지판.

불자는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는 자장율사의 철저한 지계 정신과 가르침, 문화유산을 보존·계승하고자 정선군은 2019년 6월 8일 정암사를 중심으로 자연친화적인 탐방로인 ‘자장율사 순례길’을 조성했다.

자장율사 순례길은 정암사에서 열목어 서식지, 적조암터(자장율사의 열반지로 전하는 암자), 뾰족바위(자장율사의 유골을 안치한 바위로 전해지는 곳)를 거쳐 만항마을까지 이어져 있다. 거리는 편도로 4.2km 구간이다. 만항마을에서 순례를 멈추지 않고 만항재까지 가서 회향하는 순례자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자장율사 순례길 안내 리본이 길 곳곳에 걸려 있다.

순례길의 출발지는 정암사이다. 순례를 떠나기 전 자장율사가 창건한 정암사와 이 사찰에 남아있는 율사의 자취를 먼저 만나보기를 권한다. 그래야 순례길을 걸으면서 왜 자장율사가 그토록 철저하게 계를 지키려고 했는지, 목숨을 걸고 고행을 했는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암사에는 자장율사가 건립한 수마노탑(보물 제410호)과 적멸보궁(강원도문화재자료 제32호), 그리고 율사의 주장자에서 새싹이 돋아 나무가 되었다고 알려진 주목(朱木)이 남아 있다. 정암사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 한 곳이다. 적멸보궁으로 불리는 이유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모셔온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수마노탑이 있기 때문이다.

수마노탑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배를 타고 귀국할 때였다.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신심에 감화돼 마노석(瑪瑙石)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 신통력으로 갈래산에 감추어 놓았다. 용왕은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마노석으로 탑을 건립하게 했다고 해서 ‘마노탑’이라 불렀다. 여기에 더해 물길을 따라 이 돌이 반입됐다고 해서 ‘수(水)’자를 붙여 수마노탑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순례길 돌계단 위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또 정암사에는 금탑과 은탑 전설이 전한다. 정암사 북쪽의 금대봉과 남쪽의 은대봉 사이에 금탑·은탑·마노탑 등 3보탑이 있다고 한다. 마노탑은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으나, 금탑과 은탑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다. 자장율사가 후세의 사람들이 탐심(貪心)을 부려 탑을 훔쳐갈까 우려해 불심이 없는 중생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비밀스런 곳에 감추어 놓았다고 전한다.

자장율사의 주장자에서 싹이 나 자라고 있다는 주목. 정암사 경내에 있다.

경내에는 수마노탑이 일직선으로 바라다 보이는 곳에 적멸보궁이 있다. 수마노탑에 봉안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지키기 위해 건립한 전각으로 알려져 있다. 자장율사가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양산 통도사 진신사리탑 앞의 대웅전과 마찬가지로 적멸보궁에도 불상이 없다. 적멸보궁 입구에는 주목 한 그루(자장율사 주장자)가 있다.

적조암터에 있는 옛 건물지.

경내를 다 둘러봤으면, 본격적으로 순례에 나서보자. 2019년 12월 14~15일 이틀간 자장율사 순례길을 걸었다. 정암사 수마노탑과 적멸보궁 등 경내를 둘러본 뒤 순례길 입구를 찾는데, 아는 사람이 없었다. 순례길 방향을 표시해놓은 표지판이 없어서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정암사에 주석하는 한 스님에게 길을 물었고, 마침 스님도 산행을 한다고 해서 동행을 하게 됐다. 정암사에서 수마노탑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은 수마노탑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왼쪽길이 순례길 입구다.

정암사 수마노탑.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돼있다.

동행한 스님에 따르면 봄·여름·가을에는 순례길을 걷는 이들이 많지만, 겨울에는 순례자가 거의 없다. 특히 눈 내린 즈음에는 순례자나 등산객이 전무하다. 14일 새벽 내린 눈이 응달진 곳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사람이 오간 흔적은 고사하고 산짐승들의 발자국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적한 숲길을 오르내리고, 개울을 건너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보면 이름 모를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 겨울날 쌩쌩 불어대는 산바람 소리, 얼음이 녹아 물속으로 빠져드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자연의 소리에 빠져 길을 걷는 즐거움이 저절로 느껴진다.

마침 산행을 한다며 동행한 스님이 순례길을 안내해주고 있다.
정암사 적멸보궁. 내부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았다.

안내 리본 의지해 순례길 완주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자칫 미끄러져 부상을 당하는 사고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장율사는 산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화두를 떠올리며 길을 오갔을까?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 한숨 돌리려 바위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봤다. 잡념이 머리에 들어오자 돌 위에 쌓인 눈에 미끄러져 여러 차례 넘어질 뻔했다. 이런 경험을 하고나니 ‘자장율사는 딴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조심 길을 걸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다시 길을 재촉해 적조암 인근까지 갔지만,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15일 오전 순례길의 종착지인 만항마을로 이동해 차를 세워두고 전날 가지 못한 적조암까지 왕복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쪽 길도 만만하지 않았다. 시작은 비교적 평지에 가까운 오르막이어서 무난했다. 그러나 만항마을 입구에서 300m쯤 지나자 경사가 심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됐다. 더구나 사람과 산짐승 발자국 하나 없는 눈길 위를 걸어야 했기에 약간의 두려움마저 생겼다. 1,500여 년 전 함백산에는 호랑이를 비롯해 야생의 맹수들이 우글우글 거렸을 터인데, 자장율사는 이 길을 어떻게 지나다녔을까?

험한 길을 빨리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는지 어제처럼 눈에 미끄러질 뻔했다. 겨울철엔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이라 더욱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이 길을 오간 이들이 소원을 담아 쌓아올린 돌탑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그 간절한 마음 때문인지 폭풍한설에도 끄떡없는 작은 돌탑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고 구도의 마음으로 순례길을 걸었다.

한 걸음씩 나아가다보니 적조암에 이르렀다. 최근 세운 것으로 보이는 스님의 부도 1기가 하얀 눈밭 위에 서 있었다. 그 아래 허름한 가건물이 현재의 적조암이다. 가건물 위쪽으로 눈에 덮여 있는 옛 건물 초석들이 보인다. 안내판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곳이 적조암 옛터일 것 같았다.

적조암은 자장율사가 머물다가 입적한 암자라는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자장율사의 입적과 관련한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자장율사가 석남원에서 수행하고 있었는데, 남루한 도포를 입고 칡으로 만든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고 온 늙은 거사가 찾아왔는데 문수보살임을 알지 못했다. 뒤늦게 알아채고 쫓아가다가 따라가지 못하자 결국 몸을 던져 죽었고, 화장한 뒤 유골을 석혈(石穴)에 봉안했다는 내용이다.

적조암과 만항마을 사이에 뾰족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 자장율사의 유골을 봉안했다고 한다. 뾰족바위를 찾기 위해 길을 왕복하며 유심히 살폈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자장율사 순례길 종착지인 만항마을.

순례길 곳곳에 뾰족 솟은 바위가 여럿 있어 어느 바위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안내판이라도 있었으면 누구라도 찾을 수 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자장율사가 금탑과 은탑을 불심이 약한 중생들에겐 보이지 않게 숨겨놓았다는 전설처럼 이 뾰족바위도 그렇게 한 것일까? ‘나의 불심이 많이 약한가?’, ‘나는 왜 위험을 무릅쓰고 겨울에 순례길을 걷고 있는가?’하는 생각이 연이어 들었다. 자신에게 끝없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시간, 바로 순례길을 걷는 참 의미가 아닐까 싶다.

눈 속에서 생명이 자라듯, 1,500년이 지나도 자장율사의 지계정신은 살아있다.

눈 쌓인 산길을 따라 목적지까지 가기가 쉽지 않았다. 길 안내를 해준 건 이 길을 먼저 다녀간 이들이 나무에 매달아 놓은 ‘자장율사 순례길’이란 안내 리본이었다. 만약 이 리본이 없었다면 혼자 눈 쌓인 순례길을 완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장율사는 우리 중생들에게 안내 리본과 같은 길 안내자요, 지혜를 깨우쳐 주는 선지식이다. 길을 걷는 것만으로는 지혜를 얻을 수 없겠지만, 자신을 되돌아보는 뜻 깊은 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4시간 30분가량 순례를 하면서 마음으로 생각으로 자장율사를 만났다. 율사는 새소리와 바람소리, 때로는 미끄러짐으로 기자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하루를 살아도 계를 지키고 살겠다.’고 당당한 목소리로 외친 자장율사의 지계 정신과 목숨을 내건 수행력을 본받아 만분의 일이라도 실천하자는 다짐, 그것이다.

순례자들이 쌓은 돌탑.

글·사진 이강식 기자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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