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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나7_장문교 요리사"어쩌다 알게 된 한식 매력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어요"
  • 글·사진 정현선 기자
  • 승인 2020.01.1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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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으로 풍족해지면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최근 10여 년 사이 우리나라도 음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정부는 ‘한식의 세계화’를 외친지 오래고, TV에는 연일 ‘먹방’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으며, 유명 요리사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렇다보니 고등학교 때부터 진로를 요리로 정하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이번 호에 소개할 장문교 씨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장문교(23) 씨와 어렵게 인터뷰 일정을 잡았는데, 사진감이 마땅치 않았다. 무리한 부탁인 줄 알면서도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측에 부탁해 견지동 소재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 내 사찰음식교육관 ‘향적세계’를 한나절 빌려 요리하는 모습을 찍기로 했다. 

인터뷰 전날 나름의 고민 끝에 촬영용 식재료를 준비했고, 당일에는 이를 바탕으로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앞에 놓인 재료를 두고 잠시 고민하더니 무를 채 썰고 고수를 다듬었다. 아마 기자가 준비한 적당하지 않은 재료 궁합에 당혹스러웠겠지만 망설임 없이 고춧가루·식초·조청 등을 넣고 야채에 버무렸다. 그사이 프라이팬에는 연근이 기름에 튀겨지고 있었다. 그녀는 사진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그릇에 양념으로 버무린 야채를 담고, 그 위에 방울토마토와 연근칩을 정갈하게 담아냈다. 요리사진 촬영을 마치자 시식을 권했다. 고수를 고명으로 얹어 한입 크게 먹으니 향긋한 풍미가 입 안 가득 퍼졌다. ‘음~’하는 감탄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동생 떡볶이 해주며 키운 꿈

“아마도 TV에서 본 셰프의 모습이 어린 제 눈에는 세련되고 멋있게 보였나 봐요. 커서 제가 만든 음식을 사람들에게 뽐내고 싶었어요. 어쩌면 막연하게 셰프라는 직업에 대해 환상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렇게 생긴 관심이 아직까지 변하지 않고 이 길을 가게 한 시발점이 됐어요.”

장문교 씨는 경북 안동 출신이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막연하게 장래에 ‘셰프’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면 요리를 좋아하는 엄마를 도와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사소한 경험들이 전부였다. 어린 시절부터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엄마가 맞벌이를 하는 몇 년 동안 세살 터울의 여동생을 위해 밥을 해주는 게 전혀 싫지 않았다. 부모님은 어린 자매를 두고 맞벌이를 나갈 때면 안전을 이유로 가스레인지와 부엌칼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는데, 숨겨놓은 주방집기를 찾아내 떡볶이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동생이 좋아하는 볶음밥 위에 오밀조밀 데커레이션을 꾸몄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털어놨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그녀는 진로를 고민하고 결정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떠올렸다. 그 결과 ‘요리’라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음식을 만드는 순간이 즐거웠고, 누군가 맛있게 먹어줄 때 행복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부모님과 진지하게 의논했다. 부모님은 요리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알아보라.’고 격려해주셨다. 

“공립 전문특성화 학교인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 식품과학과에 진학했어요. 입학 후에는 3년간 제과·제빵을 배우는 친구들과 창업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직접 빵을 만들어 학교 내 매점에서 판매도 해보고, 축제 때 판매금액을 장학금으로 지원받기도 했지요. 이때 셰프를 꿈꾸던 선후배와 협력하면서 실습에서 판매까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이 창업동아리 활동이 요리사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인터뷰 당일, 기자가 무작위로 준비해간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채 썬 무와 고수를 소스에 버무린 야채 샐러드를 선보였다.

그녀는 현재 한식·중식·일식·양식 조리기능사 자격증과 커피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요리사가 되는데 조리사자격증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지만, 취업스펙 열풍이 거세다보니 요즘에는 거의 필수자격 요건이 되었다. 

그녀 역시 조리국가자격증 학원을 다니면서 요리 인생의 첫발을 내딛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한식 조리기능사 실기시험을 보고 나오는데 엄마가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라고 대답은 했는데, 엄마 말로는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단다. 마음과 달리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음 해 중식 조리기능사 자격증시험에 도전했을 때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시험장 개수대가 칸막이로 나뉘어서 앞사람과 공용으로 쓰고 조리대는 각자 쓰는 구조였는데, 마늘을 씻다가 놓쳐 앞사람 개수대까지 굴러간 걸 막을 새도 없이 그 사람이 집어서 써버리는 게 아닌가. 시험 종료 20분을 남겨놓은 채 어찌나 울었는지 심사위원이 다가와 위로를 해줬다. 다행히 마늘 꼭지가 손에 남아 있어서 다시 한 알을 받아 탕수육과 고추잡채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찰음식조리사 이어 왕실 상차림 배워

대학 진학 시 전문학교 호텔조리과를 선택한 이유도 그녀에게는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전문대학은 일반학교에 비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실습수업이 많을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 전문대학은 호텔·한식당 등 외식업 종사자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이 전국에서 모이다보니 다양한 문화권의 요리를 접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전공에 필요한 자격증은 취득했지만 상대적으로 현장경험이 부족했던 그녀는 선후배들에게 뒤처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주말에도 학교에 나가 실습을 했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여느 친구들처럼 구직을 위해 지원을 했는데, ‘2019 미슐랭 가이드 1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사찰음식전문점 ‘발우공양’이었다. 엉겁결에 면접까지 보고 합격했다는 연락도 받았지만 고심 끝에 출근하지 않기로 했다. 당장의 돈보다 배움을 통해 실력을 쌓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9년 12월 11일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발급하는 ‘사찰음식 전문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오른쪽 끝에서 맨 위)

지난해 12월에는 불교문화사업단이 주관하는 ‘사찰음식 전문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국가기술자격증인 ‘떡제조기능사 자격증’ 시험에도 도전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궁중음식연구원에서 18~19세기 조선 왕실의 상차림과정을 배우고 있다. 한류 바람을 타고 전 세계 사람들이 한식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그녀 역시 한류로 커진 전통음식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알리는데 일조할 수 있게 되길 소망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한식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우리나라 전통 한식은 워낙 손이 많이 가고, 조리법도 까다롭거든요. 그러다 특별한 한식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렇게 잘 차려낸 한식 만찬은 처음이었어요. 그릇과 음식, 섬세한 테이블 세팅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어요. 깊이와 정성이 빚어낸 한식을 맛보고 난 후 많은 사람들과 이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어졌어요.”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이 뚜렷해질수록 욕심이 앞서고 마음이 조급해지는 게 사실이다. 아직 취업의 문턱조차 넘어서지 못하다보니 친구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불안에 휩싸이곤 한다. 이럴 때 마음을 추스르는 방법은 ‘아직 배우고 있다.’는 자기 암시다. 

남들보다 일찍 요리사라는 길을 선택한 만큼 선택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그녀의 몫이다. 조급함에 마음이 초조해질 때면 사찰을 찾아 마음의 안정을 찾기도 한다. 고향인 안동에 위치한 유하사(遊夏寺)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찾아가 앞마당을 놀이터 삼아 뛰어 놀던 정감어린 사찰이다. 부처님오신날이면 공양간에서 신도들에게 나눠줄 비빔밥 만드는 일을 돕기도 했다. 지금은 서울 생활로 인해 자주 찾아가지 못하지만 고향에 내려갈 때면 들러 스님과 차담을 나누며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열심히 경험을 쌓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면 한식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파인다이닝(Fine Dining, 훌륭한 서비스와 함께 제공되는 정찬요리점)을 열고 싶어요. 복잡한 서울이 아닌 고향인 안동에 제 이름을 내걸고 그동안 배우고 익힌 경험을 녹여서 음식부터 스타일링까지 책임질 수 있는 한식전문 레스토랑을 열고 싶어요.   

서두르지 않고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익히다보면 언젠간 제가 투자한 시간 이상의 성과가 되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해요. 식당을 찾은 소중한 사람들이 제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는 걸 떠올리면,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져요.”

23살, 그녀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아직 멀다. 속도가 조금 느리더라도, 우직한 소걸음으로 한 발 두 발 내딛다보면 분명히 가까운 시일 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열정 자체가 행복이란 걸 알고 있는 장문교 씨, 훗날 정성스레 음식을 만드는 그녀의 손끝에서 한식의 세계화가 활짝 피어날 것만 같다.

장문교(맨 오른쪽) 씨가 대학교 졸업작품전의 일환으로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인터뷰 당일, 망설임 없이 만들어준 샐러드. 고수를 고명으로 얹어 한입 크게 배어 무니 향긋한 풍미가 입 안 가득 퍼졌다.

글·사진 정현선 기자  honsona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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