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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오란체책 씨 가족지구촌은 한 송이 연꽃
오란체책 씨 가족이 몽골 전통복장을 입고 찍은 가족사진.

“라마불교 믿는 불자 절반 이상 
사찰 부족, 집안 불단서 기도”

저의 이름은 오란체첵입니다. 현재 주몽골대한민국대사관 영사과 행정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는 새해가 되면 35살이고, 가족과 함께 몽골에서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데 올해 40살이 됩니다. 남편을 처음 만난 건 10년 전인데, 현재 아들과 딸 하나씩 있습니다. 아들은 여섯 살로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될 예정이고, 딸은 두 살로 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유목생활 하며 불교 신앙한 민족

저는 몽골 서쪽에 위치한 호브드(Khovd)라는 지역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 지역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로 올라왔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따라 옷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국립과학기술대학교 의상학과를 전공했습니다.  

아버지는 호브드 지역에서 한평생 경찰관으로 근무를 했으며, 현재 정년퇴직을 하신 후 세계자연보호단체의 지사에서 환경보호자로 근무를 하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러시아의 전문대학을 졸업하시고 국영의류공장에서 일을 하시다가 개인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현재도 개인 의류공장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제 위로 오빠와 언니가 있고, 저는 막내입니다. 저의 고향인 호브드는 울란바토르에서 1,500km나 떨어진 곳입니다. 자동차로는 2일이 걸리고, 비행기로 2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입니다. 제가 대학교를 다닐 때는 거리상 집에 자주 내려가지는 못했고, 방학이 되면 자동차로 어렵게 내려가곤 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방학 때마다 할머니 집에 내려가서 지냈는데, 당시 할머니는 유목생활을 하셨습니다. 시골에 사는 친척들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자랐는데, 이런 경험 때문인지 가축을 키우면서 생활하는 유목생활을 친숙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제가 결혼해서 살고 있는 곳은 수도인 울란바토르인데, 항울구에 위치한 아파트가 우리 가족의 집입니다. 그렇다보니 가끔은 고향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울란바토르는 겨울에 매연이 심하고 인구밀도가 높아서 차도 많이 막히는 편입니다. 울란바토르에는 몽골의 인구 중 약 50%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집 근처에는 자이승 승전탑(Zaisan Memorial, 할흐강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한 기념으로 세운 탑)이 있는데, 위로 올라가면 울란바토르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승전탑 옆에 위치한 공원에는 한국의 지원으로 세워진 부처님 동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가끔 가족들과 함께 놀러 가서 식사도 하고, 공원 산책도 하고, 근처 쇼핑센터에서 쇼핑도 합니다. 

또한 집 가까이 복드(Bogd)칸의 박물관도 있습니다. 이 박물관은 자주 찾지는 않지만 가끔 건너편에 있는 영화관 및 상가에 가서 영화를 보고 한국음식점을 가고는 합니다. 우리 집 아파트에서는 창문으로 울란바토르의 가장 큰 강인 톨(Tuul)강이 잘 보이는데 경치가 무척 좋습니다. 여름에는 아이들이 강가로 나가 산책을 하고 놀기도 합니다. 겨울에도 꽁꽁 언 강에서 놀기도 하지요.  

몽골은 ‘불교의 나라’라고 할 만큼 오래 전부터 불교문화가 익숙한 나라입니다. 유목생활을 하면서 불교를 신앙했는데, 불교가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따라 불교를 신앙하고 살았으며, 저 역시 부모님을 따라 불교를 신앙하며 살았습니다.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에는 반드시 부모님과 함께 사찰을 찾고는 했습니다. 사찰에 가서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스님들로부터 법문을 들었습니다. 몽골 불교는 티베트불교의 영향으로 스투파들이 많은데, 사찰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스투파를 돌며 기도를 합니다. 

금강대 한국어학당 자매 차례로 다녀
 
울란바토르에 있는 대학을 다니면서 ‘몽골불교학생연합’이 설립된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같이 관심을 갖고 찾아갔고, 불교학생회 창립멤버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몽골불교학생회는 한국의 지원으로 설립된 단체입니다. 여름에는 한국에서 대학생들이 와서 합동캠핑도 했는데, 제가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때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업을 하는 남편,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들과 함께.

몽골불교학생회 설립에 도움 주셨던 한국인 선생님 두 분은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울란바토르에서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어렵게 생활을 하던 당시에 대학생인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는 불교학생회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학비를 내기도 했습니다. 

친언니는 대학교에서 한국어학을 전공했는데, 한국의 천태종에서 세운 금강대학교에 교류학생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에는 자비를 들여서 금강대학교 한국어학당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저도 언니의 영향을 받아서 대학교를 졸업한 후 자비를 들여 금강대학교 한국어학당에 입학해서 다녔습니다. 저의 첫 한국생활은 이렇게 시작됐고, 그곳 부처님으로 인해 제 삶은 새롭게 거듭났습니다.  

몽골이 공산주의 아래에 있을 때는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국민들에게 ‘종교는 미신’이라고 하면서, 혁명의 달성이라는 미명 아래 많은 사원을 파괴했고 승려들을 살해하거나 환속시켰습니다. 아직도 간단사 이외에는 큰 사찰이 없는 이유입니다. 

간단사는 울란바토르의 가장 큰 사찰이며, 몽골불교의 중심 사찰이기도 합니다. 정기적으로 법회를 열고 있지만 사람이 너무 많이 찾아오고, 대부분이 불교인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신도들에게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몽골의 불자들은 어려운 일이 있거나, 고인의 사십구일 제사 때 간단사를 찾아가서 절을 올리는 정도로만 사찰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요한 시험이나 결혼식, 특별한 날에도 절을 찾아가 부처님께 절을 올립니다. 신도들이 많이 찾지만 공간이 부족하고, 신도들을 위한 프로그램 등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지 못한 게 활발한 신행활동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도들이 사찰에 가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간단사에 있는 수많은 비둘기들에게 좁쌀을 주는 일입니다. 이 행동은 동물들한테 먹이를 주면서 공덕을 쌓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필요할 경우에는 스님이 법회에서 법문을 할 때 보시를 올리고 절을 하기도 합니다. 대부분 사원 경내에는 상담을 담당하는 스님이 상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상담하는 신도를 위해 그 자리에서 간단한 점복과 염불, 기도를 해줍니다. 

신도들은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기도를 직접 골라서 해당 기도비를 계산원에게 내면 이름이 입력됩니다. 그러면 다음 날 아침에 스님이 독경과 기도를 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17세기 초원에 수백 사찰 세워져

현재 몽골은 티베트 불교 신자가 가장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티베트와의 관계가 깊기 때문인데, 종교인 분포는 불교 53%, 이슬람교 3%, 토속종교 3%, 기독교 2%, 무종교 39%입니다. 

필자의 고향 할머니집 뒷산에 핀 대포설련은 해발 3,000m 이상에서만 자란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행복을 상징하는 이 꽃을 좋아했는데, 이 꽃을 건들 경우 하늘로부터 벌을 받는다는 전설이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16세기 말 티베트불교는 몽골 유목민들의 정신세계를 지탱해주면서 초원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17세기 이후부터 1937년 이전까지 몽골은 명실공히 불교국가였습니다. 당시 불교는 모든 종교적 숭배의 대상 중 최상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고, 토착종교인 샤머니즘과 불교의 공존 속에서 몽골 민족의 상징으로서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17세기부터 몽골 전역에 불교가 확산되었는데, 초원에는 수백 개의 사찰이 세워졌고, 수많은 젊은이가 출가를 해 승려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저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사찰에 갑니다. 그 외의 기간에는 집에 만들어진 불단에 절을 올립니다. 몽골불교는 사찰에 자주 가거나, 사찰에 가서 절을 올리는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 중요한 일, 시험, 아픔과 이별 등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  집에 모신 불상에 초 공양을 올리고, 우유·우유차·음식 등을 부처님께 올리면서 가족의 건강과 안녕·소원성취를 빕니다. 

몽골 사찰에서 일년 중 가장 큰 행사는 설날입니다.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 되는 날이어서 뜻깊게 생각하는데, 이날 사찰에서는 가장 큰 법회가 열리고, 신도들도 가장 많이 참석합니다. 신도들은 새로운 한 해를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점복과 염불, 기도를 합니다. 여러 가지 기도 중에 본인에게 필요한 기도가 있을 때는 산스크리트어로 경전을 외우는 스님들에게 부탁해서 대신 부처님께 기도를 해달라고 맡기곤 합니다. 

몽골에서 가장 큰 불교교육기관은 간단사에 소속된 승가대학교입니다. 또는 셀렝게(Selenge) 지역에 있는 아마르바탸스갈랑(Amarbaysgalan)사에 스님들이 출가하고 수행할 수 있는 사찰이 있습니다. 몽골 스님들은 결혼을 할 수 있는데, 대부분 집에서 사찰로 출·퇴근을 하는 대처승입니다. 그 이유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공산당의 강제 환속의 영향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후유증이 아직도 몽골 불교에 그대로 남아 있지만, 조금씩 치유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현재 몽골에는 비구니 스님을 교육하는 사찰도 있고, 어린 동자승을 위한 사찰도 별도로 있습니다. 또한 불교문화를 가르치는 전통불교미술대학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몽골은 현재 100년 전 불교 탄압으로부터 천천히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필자의 큰아들은 몽골 가수의 뮤직비디오에 나온 적이 있다. 촬영 당시 스튜디오에서.

월간 금강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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