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에세이

인도 북부를 가로지르는 갠지스강. 인도인들은 이 강에서 목욕을 하면 죄를 씻을 수 있고, 죽은 뒤 뼛가루를 흘려보내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라디오방송을 듣다 보면 재미있는 사연들이 많다. 남편이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을 챙겨주지 않아 서운하다는 이야기는 단골 메뉴다. 나는 그런 사연을 들을 때면 ‘꼭 남편이 챙겨주어야 하나? 스스로가 선물을 마련하면 되지않나.’ 그런 생각을 한다.

어느 날 동창모임에 갔더니 입담 좋은 친구가 질문을 던졌다.

“남편에게 선물은 받고 사느냐? 결혼기념일과 생일에 어떤 선물을 받는지 궁금하다.”

그러면서 먼저 자기 이야기를 풀어냈다.

“기념일에 꽃바구니 받는 여자들이 너무 부러웠어. 남편에게 몇 년 동안 졸랐는데 감감소식이야.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내 이야기를 무시한 건지……. 그런데 올해 결혼기념일에 꽃바구니가 배달되어 왔어. 나는 하늘을 날 듯이 기뻤지. 근데 오후에 또 꽃바구니가 배달된 거야.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어. 그런데 남편의 말에 김이 다 빠져버렸어.”

“꽃바구니가 그렇게 소원인데 한꺼번에 두 개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어. 이젠 소원 풀었지?”

“남편의 말에 꽃바구니가 갑자기 보기 싫어졌어. 나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은 눈곱만큼도 없잖아. 형식적으로 보낸 꽃바구니라 생각하니 더 서운했어. 다음 달에 날아온 카드대금 명세서 보고 속마저 쓰렸지. 이젠 꽃바구니는 물론이고 선물타령도 안해.”

친구의 말에 나는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을 챙겨달라고 떼를 쓰는 것도 젊은 날의 이야기지. 세월이 흐르면 내 생일도 잊어버리게 되던데.”라고 말했다. 친구들은 그렇게 재미없이 살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여자들은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에 선물을 받고 싶어 한다. 이날이 아니면 선물 받을 일도 별로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결혼기념일에 남편은 케이크와 꽃다발을 들고 왔다. 나도 동네 빵집에서 케이크를 사고 와인과 과일을 준비했다. 식탁에 두 개의 케이크를 올려놓고 조촐하지만 축하파티를 열었다. 결혼기념일과 내 생일은 약 한 달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내 생일에도 남편은 똑같은 케이크와 꽃다발을 들고 왔다. 케이크를 자르면서 ‘낭만도 없고 멋도 없는 남편이 의무감으로 매년 이렇게 사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그 다음 해에도 결혼기념일과 내 생일에 케이크와 꽃다발을 준비했다. 미리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물어보기라도 해야지. 겨울에 꽃값이 비싼 것은 알지만, 빈약한 꽃다발에 감동은커녕 서운함마저 일었다. 장미꽃 백 송이는 바라지도 않지만 적어도 장미 스무 송이 정도는 받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앞으로 결혼기념일과 내 생일에 이런 선물은 받고 싶지 않아. 그 대신 일 년에 한 번 2박 3일 여행을 보내주면 좋겠어. 나 혼자 여행가는 거야.”

‘그래도 섭섭하지 않겠느냐?’ 이 정도는 물어줘야 하는데 남편은 “알았어.”라고 짧게 대답했다. 케이크와 꽃다발은 선물이면서도 선물이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진심이 묻어나지 않는 형식적인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두 번 챙겨주는 꽃다발조차 거부하는 내가 낭만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선물을 거부한 지 5년이 흘렀지만 나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은 없다. 아니 혼자 떠날 용기가 없었다. 그때 한창 인도여행이 인기 있을 때라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33일 인도 네팔 배낭여행’에 대한 정보를 접한 후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꼭 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내 가슴은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여행 기간도 길뿐더러 여행경비도 만만치 않았다. 문득 내가 발행한 선물 티켓이 생각났다.

“그동안 결혼기념일과 생일선물 티켓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한 번에 다 사용할 거야. 인도·네팔 여행을 보내줘요.”

남편은 ‘언제 내가 생일선물 티켓을 발행했지?’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허락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지만, 나는 막무가내로 인도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나의 반격에 남편은 놀란 얼굴이었다.

결국 내가 발행한 선물 티켓으로 인도·네팔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두려움은 컸지만, 며칠 지나니 두려움과 걱정은 사라졌다. 그리고 배낭여행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33일 동안 오롯이 자유인으로 살아본 그 느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결혼기념일과 생일선물을 포기하고 여행을 선택한 나의 탁월함에 쾌재를 불렀다.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라는 글이 생각난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본연의 취향을 억누르며 돈을 써대고 있다. 멋진 자동차를 소유하고, 멋진 저녁식사를 대접할 수 있느냐에 따라 이웃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기보다 멋진 자동차를 굴릴 여유가 있지만, 그 돈으로 여행을 즐기거나 서재를 꾸민 사람이 결국에는 훨씬 존경받을 것이다.”

러셀 할아버지의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존경 받는다.’는 말 대신에 ‘훨씬 행복할 것’이라고 바꾸면 더 좋을 것 같다.

인도여행을 다녀와서 인도·네팔 여행기 〈신들의 땅에서 찾은 행복 한 줌〉이란 책을 출간했다. 그리고 여행작가가 되었다. 나는 물질을 포기하고 나서 더 큰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 후엔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파키스탄·터키 등을 여행했고, 몇 권의 여행책을 더 썼다.

설사 결혼기념 선물이 다이아몬드일지라도 나는 자유를 선택할 것이다. 다이아몬드를 최고의 보석이라 말하지만 그래봤자 돌에 지나지 않는다. 나 혼자 여행하면서 느끼는 자유를 결코 물질의 가치와는 비교할 수는 없다. 낯선 땅에서 잠시 이방인으로 지내보는 것,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내는 기쁨을 어찌 포기할 수 있으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내 안에서 쉴 새 없이 일렁인다.

나는 물질에 대해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이것만 가지면 행복할 것 같아도 그 물건을 소유한 후 며칠만 지나면 시들해진다. 그런데 여행은 다녀오고 나서도 몇날며칠, 아니 몇 달 동안 행복에 잠긴다. 여행하는 동안 느꼈던 기쁨과 즐거움이 세포에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생일선물 티켓이 바닥난 지 오래다. 이젠 미래를 담보로 당겨서 사용한다. 아직도 가고 싶은 나라가 많다. ‘다리 떨리기 전에 여행가야 한다.’면서 미리 내 생일과 결혼기념일 선물 티켓을 발행한다. 백 세 시대라고 하지만, 난 150세까지 살아야 할 것 같다.

문 윤 정

〈에세이 문학〉으로 등단. 서울교대 평생교육원에서 ‘여행작가’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답일소〉·〈걷는 자의 꿈, 실크로드〉·〈터키, 낯선 시간에 흐르다〉·〈세계문호와의 가상 인터뷰〉를 비롯해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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