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단상

한일 관계가 악화되기 전에 둘째 아들이 일본 동경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물가도 비싸고, 학비도 비싼 나라에 가는 걸 아는지 장학금을 받으려 애썼고, 아르바이트 자리도 열심히 알아보곤 했다. 1학년 겨울방학이던 지난해 1월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했다며 조언을 구해왔다. 일본인에게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였는데, 그 상대가 전직 의사로 팔순이 넘은 할아버지이다 보니 첫 만남에서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눠야 할지에 대해 물어와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며칠 뒤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수업 장소는 동경 시부야 인근의 고급요양원이었고, 첫 수업에는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와 며느리, 아르바이트를 중계해준 회사의 직원이 동석했다고 한다. 무척 긴장을 했지만, 다행히 1시간 남짓 대화를 잘 이끌어 한국인 대학교 1학년 유학생의 영어회화 실력을 의심했을 며느리와 아르바이트 중계회사 직원의 테스트도 통과했다고 말해주었다. 그 후 한 달에 두세 차례 영어회화 아르바이트가 이어졌다.

그런데 지난 연말, 아들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다가 두어 달 전에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됐다. 평소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는 80대 중반의 할아버지가 어떤 목적으로 영어회화를 공부하는 걸까?’ 궁금해 하면서도 ‘건강이 좋아지면 해외여행을 가려나보다.’ 하고 속단을 했었는데, 그는 영어회화 공부, 즉 자기 발전을 위한 과정 자체가 목적이었던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은 혼자 뒤처져 있다고 불안해하고, 나이에 비해 이뤄놓은 게 없다고 걱정을 하면서 “이미 너무 늦었어.”, “이 나이에 무슨 …….” 하며 새로운 시작과 도전을 망설이고, 포기한다. 불안과 걱정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커지고, 자신이 맡은 일에 집중할 때 작아진다. 일이 됐든, 공부가 됐든, 놀이가 됐든 간에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보낸다면 인생을 돌아볼 때, 후회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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