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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조고각하, 성찰의 지혜
  • 김재권 능인불교대학원대 교수
  • 승인 2019.12.2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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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있을지라도
사회 통찰 지혜 필요

해가 갈수록 세월의 무상함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진다. 불교적 진리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제행무상, 즉 인연을 따라 생기는 모든 현상들은 무상하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새삼 실감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치에 너무 큰 기대를 걸면 걸수록 더 큰 배신감을 맛본다는 교훈을 실감하고 있기에, 올 초에는 북미관계를 비롯한 남북한 화해분위기에 너무 기대를 걸지 않으려고 내심 애를 썼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두 동강난 우리 민족의 허리가 다시 소생하여 경의선을 통해 중국 대륙이나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내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희망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역시나 그러한 기대를 품기에는 우리 민족 앞에 놓인 역사적·정치적 현실의 장벽이 왜 이리 높은지 적지 않은 실망감에 마음이 무겁다. 요즈음 대학가에는 조기졸업이나 정상적인 졸업을 미루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큰 희망과 드높은 이상에 부풀어 있어야 할 젊은 청년들이 이구동성으로 무한경쟁 일변도의 냉엄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헬조선’이라 부른다. 이러한 시대적·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듯 불투명한 미래에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 신세가 되는 서글픈 현실을 피하기 위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도 일부러 조기졸업을 멀리한 채 휴학을 당연시하는 안타까운 풍토가 만연하다. 이러한 시대에 대승의 보살들이 대학시절이나 사회생활을 한다면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갈지 자못 궁금하다.

일찍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죽음을 성찰하는 지혜로운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죽음의 상태가 다가옴을 모르는 것은 동물의 삶에 가깝고, 죽음의 상태가 다가옴을 시시각각 느끼는 것은 신의 삶에 가깝다.” 역설적이게도 인생살이에서 죽음이란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는 젊은 청춘들에게는 그리 쉽게 다가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청춘들 가운데는 냉혹한 현실 속에 놓인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한번쯤 죽음을 떠올려본 친구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이러한 청년들이 걱정스러운 것은 이들이 자신이 처한 현상을 너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라는 기우 때문이다.

불교교리 중에 4성제가 있다. ‘4성제’란 ‘고제(苦諦)·집제(集諦)·멸제(滅諦)·도제(道諦)’라는 4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말한다. 젊은 시절 4성제 중 고제가 그리 잘 와닿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고제는 4가지 괴로움(四苦)과 8가지 괴로움(八苦)으로 설명된다. 이 중 가장 핵심적인 4가지 괴로움은 ‘태어남(生)·늙음(老)·질병(病)·죽음(死)’이라는 삶에서 겪게 되는 본질적 고뇌의 문제(苦苦性)를 말한다. 이러한 4가지 실존적인 괴로움은 인간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불교가 해결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문제이자 통찰이다.

결국 4성제에서 말하는 고제는 갈애와 집착(집제)으로 인해 생기는 것으로, 실존적인 괴로움의 원인을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강조하는 것이다. 어리석게 삶의 소용돌이에 그저 파묻히지 말고 그 실존적인 괴로움의 원인을 통찰해야 한다. 불가에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연기적인 존재이다. 어리석게 자신의 안위만을 살필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함께 되돌아 볼 줄 아는 지혜와 통찰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김재권 능인불교대학원대 교수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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