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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 경전 속 쥐 이야기
  • 김종만/불교언론인
  • 승인 2019.12.2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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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지신도-자신 관비라대장<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성실한 동물로 묘사, 희망·풍요의 상징

올해는 경자년(庚子年)으로 십이간지의 첫 번째 동물인 쥐의 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쥐는 풍요와 희망, 기회를 상징한다고 전해져왔다. 동물의 생태학적 특성에서 알 수 있듯이 쥐는 번식력이 왕성하다. 쥐를 한자음인 ‘쥐 서(鼠)’로 표기하지 않고 ‘자식 자(子)’로 쓰는 이유도 다산(多産)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산은 곧 풍요를 의미한다. 또 쥐가 희망과 기회를 상징하는 이유는 미래를 예시하는 영물(靈物)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과거 쥐불놀이 등을 통해 한 해의 농사가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거나 꿈에 쥐가 나오면 재물과 행운이 주어진다는 해몽 등이 그 근거다.

그렇다면 불교경전 속에서 쥐는 어떠한 모습으로 비춰질까? 경전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쥐 이야기는 ‘안수정등(岸樹井藤)’이다. ‘안수정등’은 인생을 설명하는 최고의 비유다. 이 ‘안수정등’의 출전(出典)에 대해선 박경훈 전 역경위원의 글이 널리 알려져 있다. 박 위원은 ‘안수정등’의 출전을 〈빈두로돌라사위우타연왕설법경(賓頭盧突羅爲優陀延王說法經〉에서 찾고 있다. 〈빈두로돌라사위우타연왕설법경〉은 5세기 중엽 인도출신의 학승 구나발타라가 한역한 1권으로 된 경이다. 빈두로돌라사 존자가 우타연왕에게 속세의 향락과 부귀영화에 매달리지 말고 불도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설법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 경에서 빈두로돌라사 존자는 이렇게 설한다.

“대왕이여, 옛날 어떤 사람이 광야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크고 사나운 코끼리를 만나 쫓기게 되었습니다. 미친 듯이 달렸으나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마침 언덕 위에 있는 우물을 발견한 그는 우물 속에 들어가 나무뿌리를 잡고 몸을 숨겼습니다. 그런데 그가 매달려 있는 나무뿌리를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가며 갉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물의 네 벽에는 네 마리의 독사가 그 사람을 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또 우물 아래엔 큰 독룡(毒龍)이 있어 무서움에 벌벌 떨어야 했습니다. 겁에 질려 있는 그 사람에게 때마침 나무에 있는 벌집에서 꿀이 세 방울 떨어져 그의 입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나무가 무너져 벌집을 무너뜨렸습니다. 벌들이 날아와서 그 사람을 쏘아댔습니다. 그런데 또 들에 불이 나 그 사람이 붙잡고 있는 나무를 태워버렸습니다.

대왕이여, 광야는 생사(生死)를 비유하고, 그 남자는 범부(凡夫)에 비유하며, 코끼리는 무상(無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또 언덕 위의 우물은 사람의 몸을, 나무뿌리는 사람의 목숨을 비유합니다. 흰 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을 비유하며, 쥐들이 나무뿌리를 갉아먹는 것은 순간순간 사람의 목숨이 줄어드는 것에 비유합니다. 또 네 마리 독사는 사대(四大)를, 꿀은 오욕(五慾)을 비유하며, 그 사람을 쏘는 벌들은 나쁜 생각과 견해(見解)를 비유한 것입니다. 이외에도 들불이 타는 것은 늙음을 비유하고 우물 아래의 독룡은 죽음을 비유합니다. 그러므로 오욕의 맛은 지극히 적고, 고통은 지극히 크다는 것을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생로병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리낄 것이 없으니 세간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매우 고통스럽게 되며, 귀의할 곳이 없고 온갖 고통의 핍박함이 매우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마치 번개와 같아 이는 근심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응당 오욕에 애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김유신 묘의 십이지신상 중 쥐신상 탁본.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본생경(本生經)〉에는 ‘쥐가 갉아먹은 옷’ 이야기가 나온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옷으로 점을 치던 한 바라문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이다. 왕사성에 어떤 바라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자신의 새 옷을 쥐가 갉아먹은 것을 발견하고 불길한 징조라 여겨 내다 버리려 하였다. 마침 묘지를 지나던 부처님이 그 바라문이 깨달음의 근기가 무르익어 있음을 아시고 그를 제도하시고자 그 옷을 건네받았다. 바라문이 부처님에게 옷의 불길한 징조를 고하며 만류하자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우리는 출가한 사람이다. 우리에게는 묘지나 거리, 또는 쓰레기장에 버려진 옷들이 알맞다. 그대는 이번 생뿐만이 아니라 전생에도 이 같은 그릇된 견해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자 바라문이 부처님에게 전생이야기를 들려달라고 간청하였다. 부처님은 바라문에게 다음과 같이 들려주셨다.

옛날, 마가다국 라자가하에 신분이 높은 바라문 계급의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매우 유복하였으며 하인도 많이 거느리고 호화스럽게 생활했다. 그는 미신을 깊이 믿었는데, 옷으로 길흉을 점치고 있었다. 어느 날, 이발과 면도를 끝낸 바라문은 산뜻한 기분에 모처럼 새 옷이 입고 싶었다. 하인에게 새 옷을 가져오도록 명하자 하인은 옷장을 열었다. 그런데 새 옷을 쥐가 갉아먹어 입을 수 없을 정도로 옷이 상해 있었다. 하인은 이 사실을 바라문에게 고하였다.

그러자 바라문은 그 옷상자를 즉각 가져오라고 명했다. 옷으로 길흉을 점치는 바라문은 옷이 얼마나 상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인이 가져온 옷을 이리저리 살피던 바라문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졌다.

“큰일이다. 점괘가 좋지 않아. 이대로 옷을 집에 두었다간 반드시 우리 집에 재난이 닥칠 것이다. 또한 이 옷을 만지는 자는 누구든지 재난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바라문은 옷을 어디에 버릴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곤 인가가 없는 공동묘지에 버리기로 했다. 그런데 또 옷을 버릴 인물을 선정하는데 깊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이 옷을 만지는 자는 재난에 빠질 터인데, 하인에게 버리라고 시켜도 되겠지만 도중에 욕심을 내서 제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라도 하면 그 또한 재난을 당할 것이 아닌가?”

고민 끝에 가장 적당한 인물이 아들이 제격이라 생각하고 아들을 불렀다. 그리곤 아들에게 일의 경위를 상세히 설명한 뒤 당부했다.

“그러니 너도 이 옷을 절대 만져서는 안 된다. 지팡이 끝에 걸고 가서 묘지에 버리고 오너라. 버린 뒤에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깨끗이 씻어야 할 것이다.”

아들은 지팡이에 옷을 걸고 묘지로 버리러 갔다. 마침 그 곳엔 한 수행자가 있었다.

수행자가 바라문에게 물었다.

“그 옷을 어찌하려 하는가?”

“묘지에 버리려 합니다.”

“왜 옷을 버리려 하는가?”

“쥐가 갉아 먹었습니다. 따라서 이 옷을 만지는 사람은 엄청난 재앙을 입게 될 것입니다.”

수행자는 바라문의 아들이 극구 말렸지만 버린 옷을 주워들고 묘지를 떠났다. 이 말을 전해들은 바라문은 그 수행자를 수소문 끝에 찾아내 자신의 점괘를 들려주며 재앙이 닥칠 것이라면서 옷을 버릴 것을 거듭 재촉했다. 이에 수행자가 바라문에게 말했다.

“사람의 인상과 손금, 그리고 꿈으로 점치는 온갖 미신이 만연해 있다고 해도 미신을 뛰어넘어 고통의 근원이 되는 미혹의 번뇌를 끊으려 노력하는 일이 근본사이거늘. 바라문이여, 눈을 뜨라. 올바른 가르침에 귀의하라.”

이상과 같이 전생 이야기를 들려준 부처님은 바라문에게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길흉의 징조나 꿈, 관상의 생각들에서 벗어난 이는 이미 미신의 허물을 벗어나 더불어 일어나는 모든 번뇌를 항복받고 다시는 나고 죽는 윤회의 몸을 받지 않는다.”

이 본생담에서 쥐는 미신에 대한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說一切有部毘奈耶破僧事)〉에는 부처님이 쥐로, 데바닷타가 족제비로 그려진 전생담이 전한다.

한때 부처님이 쥐로 태어났을 때, 큰비가 멈추지 않고 7일 동안 내렸다. 동물들은 동굴로 피하게 되었고, 그곳을 지나던 쥐와 뱀, 족제비도 비를 피해 한 동굴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자 족제비가 쥐를 잡아먹으려 하니, 뱀이 족제비를 말리면서 싸움을 하기 보다는 쥐에게 먹을 것을 구해올 것을 청한다.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씨’의 쥐는 이들을 위해 먹을 것을 구하러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그동안 동굴 속의 족제비는 쥐가 먹을 것을 구해오지 못하면 대신 쥐를 잡아먹자고 뱀을 설득한다. 뱀은 족제비가 쥐를 잡아먹을 생각인 것을 간파하고 쥐에게 몰래 이 이야기를 전한다. 쥐는 그 말을 듣고도 더욱 열심히 뱀과 족제비를 위해 먹을 것을 찾아 백방으로 뛰어다녔으나 먹을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쥐는 결국 뱀에게 이별을 고하고 자리를 떠난다. 경전에서는 이 쥐가 부처님의 전생이며, 족제비가 데바닷타의 전생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12가지 명호도 각각의 동물로 배치되는데, 만월보살의 화신으로 쥐가 형상화되어 있다. 만월보살은 달에 광명의 물을 채우는 역할을 하는데 악마가 계속 그 물을 먹어치우자 악마를 잡기 위해 쥐의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고 한다. 악마를 무찌르는 동시에 광명의 물을 채우는 만월보살은 부지런함의 상징이다. 

김종만/불교언론인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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