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 간들 생사고통서 벗어날 수 있겠나?”

내가 고향을 떠나온 지 수 세월.
벌써 12월, 항상 연말이 되면 자네의 얼굴이 그리우이.
이제 내가 번듯한 집도 장만하고 살만하니 자네를 서울로 정식으로 초대하겠네.
서울에는 맛있는 음식이 얼마든지 있으니 실컷 먹여주겠네.
고향 청리역에서 김천으로 와서 다시 KTX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리게.
시계탑 앞에서 기다리겠네.

-고향 떠난 서울 쥐가-

또랑 친구인 서울 쥐의 편지를 받은 시골 쥐는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정말 몇 년 만에 보는 친구의 얼굴이 그리웠지만, 그것보다는 처음 가보는 서울 구경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도시 나들이. 무섭게 달리는 열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시골 쥐가 서울역 시계탑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 서울 쥐가 달려왔습니다. 

“서울 입성을 환영하네.”

“아이고, 정신이 없네.”

“서울은 처음이지?”

“…….”

시골 쥐는 부끄러웠습니다. 

“우선 서울 구경을 해야겠지?”

서울 쥐는 시골 쥐에게 서울 구경을 시켜 주기로 하였습니다.

시골 쥐 앞에 펼쳐진 서울 거리는 호화찬란했습니다. 역시 서울은 달랐습니다. 영화에서 본 거리 같기도 하고, 매일 뉴스에 나오는 바로 그  풍경이었습니다.

“서울은 정말 좋은 곳이군.”

“좋기는? 대신 시골보다 좀 바쁘긴 하지.”

시골 쥐는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들을 바라보며 놀랐습니다. 하늘 높이 솟은 빌딩은 아무리 쳐다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저렇게 급하게 뛰어다녀?”

“바빠서 그렇지.”

“뭐가 바빠?”

“글쎄 이곳은 바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지.”

“그게 무슨 소리?”

서울 쥐의 대답이 쓸쓸했습니다.

“저렇게 바빠도 돈벌이를 못하는 때가 많으니까.”

둘은 으리으리한 남대문도 구경하고 대한문을 지나 종로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우와! 마침 토요일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집회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투쟁이다!”

“물러가라!”

머리에 빨간 두건을 두른 사람들은 저마다 주먹을 들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세찬 호루라기 소리와 줄을 지어 분주한 경찰들. 도무지 마음 놓고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휴, 빨리 집에나 가세.”

“서울 와서 남산하고 남대문 시장도 구경 않고?”

“안 봐도 대충 알겠어.”

“그래도 조금 더 구경을 하지?”

“아니야. 잘못하면 사람들 발에 밟혀 죽겠어.”

그들은 무수한 사람들 틈을 헤치고 서울 쥐의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따뜻하고 먹을 것도 많겠지?”

그런데 서울 쥐의 대답이 이상했습니다.

“우리 집은 초록색이야.”

“응?”

“도로에서도 가까워서 교통도 아주 좋고…….”

서울 쥐가 마지못해 늘어놓는 집 자랑을 듣고 있자니 어딘가 조금 독특합니다. 그래도 시골 쥐는 우뚝 솟은 양옥집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버스정류장 옆 높은 곳에 위치한 좁은 문까지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서 기어 올라가야 하는 집. 도대체 서울 쥐가 사는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요?

그곳은 바로 종로3가 도로가의 헌옷 수집함이었습니다.  

“이 집은 무엇보다 고양이로부터 자유로운 게 장점이지. 차가 많이 다녀서 무서운 고양이들이 접근을 못하거든. 그리고 잠잘 땐 헌 옷을 이불로 덮고 잘 수도 있고, 가끔 먹을 것이 없을 땐 바로 옆의 음식물 수집함의 비닐을 뜯어 그 안의 잔반을 먹을 수도 있다네.”

시골 쥐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서울 쥐의 체면을 생각해서 한 마디만 툭 던졌습니다.

“위치가 좋다.”

“그럼, 이만한 곳은 없지. 나도 이 집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다른 쥐들이 수시로 이 집을 노려.”

“막아내려면 힘들겠군.”

“이만한 집에 사는 서울 쥐는 드물지. 다들 부러워 해.”

시골 쥐는 별로 부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부러운 척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배고프지?”

“응.”

“그럼, 식당으로 갈까?”

“식당이 따로 있어?”

“그럼, 없는 음식이 없어.”

그러면서 서울 쥐가 시골 쥐를 데려간 곳은 바로 옆 고깃집 식당 부엌이었습니다.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팠던 시골 쥐는 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온갖 음식이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자아, 마음껏 먹게나.”

그러나 음식을 먹으려 할 때마다 사람이 들어오는 바람에 쉴 새 없이 도망치느라고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동작이 느린 시골 쥐는 그만 고기를 맛있게 먹던 손님들의 눈에 띄고 말았습니다. 난데없는 시골 쥐의 등장에 식당은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쥐다!”

“식당에 쥐가 있으면 어떡해요!”

손님들이 우루루 식당을 나갔습니다. 

조그마한 시골 쥐가 무서워 벌벌 떠는 사람들, 하지만 시골 쥐 입장에서는 사람들이야말로 커다란 공포였습니다. 그 사이 식당 주인은 시골 쥐를 잡기 위해 몽둥이까지 들고 나섰습니다.
그토록 소원했던 서울 구경, 시골 쥐는 어서 빨리 시골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마나 간신히 도망쳐 비좁은 골목으로 도망 나온 시골 쥐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아아, 서울은 무섭다. 무서운 곳이다! 자네는 친절하지만 초록집도 무섭고, 사람들도 무섭다. 헌 옷 구멍으로 서울 구경은 꽤 한 셈이니, 이제는 어서 달아나야겠다.”

서울 쥐는 울상이 되었습니다.

“맛있는 것이 아무리 많다 해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없는 여기보다 초라하더라도 속 편하게 살 수 있는 우리 시골이 훨씬 더 낫겠네.” 

시골 쥐는 인사 한 마디 없이 쌩 돌아가 버렸습니다.

한참 후.

고향으로 돌아온 시골 쥐는 한 통의 편지를 받고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떠난 후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뿐이었지.

그러나 자네가 본 서울은 자네가 살 곳은 못 되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여기서 행복하다네.
봄이면 곱게 피는 남산의 진달래며 언제나 달이 뜨고 별이 지는 한강의 물결을 바라볼 수 있다네.
자네가 사는 시골이 한가롭다고 하지만
그곳에도 무서운 들고양이와 자네를 노리는 쥐덫이 왜 없겠나?

중요한 건 우리가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사는 곳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린 게 아닐까?
세상 어디에 간들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나?
언제 시간이 나면 나도 자네와 나의 고향으로 한번 내려가겠네.
자네도 다음에는 편안하게 우리 집을 다시 한 번 와 주게나.

참, 자네가 그렇게 떠난 후로 
난 한적하고 아름다운 제1 한강다리 철교 밑으로 이사를 했다네. 

- 자네의 영원한 친구 서울 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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