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의 목적은 공동체의 행복임을 명심해야”

2020년 경자년(庚子年)을 앞둔 구랍 18일, 천태종총무원장 문덕 스님을 서울 관문사에서 만나 다사다난했던 기해년 한 해를 돌아보고, 경자년 새해를 맞아 불자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말씀을 들어봤다. 편집자

“머리 둘 달린 어리석은 새 교훈으로 삼아
 이해와 배려 가득한 세상 만들어 나가자.”

△오는 4월이면 천태종 제18대 총무원장에 취임하신지 만 2년이 됩니다. 기해년 한 해 동안 국내외 정세가 살얼음 위를 걷듯 긴박한 국면이 이어졌고, 불교계 안팎으로도 어수선한 상황이 계속돼 온 게 사실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천태종은 내실에 집중하면서 ‘믿음직스러운 종단’의 이미지를 보여주셨는데요. 종교 지도자 입장에서 지난 한해 우리 사회를 지켜보신 소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001년부터 ‘교수신문’에서는 전국의 대학교수를 대상으로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해 발표해오고 있는데, 올해는 ‘공명지조(共命之鳥)’가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올 한해 동안 벌어진 상황과 잘 어울리는 사자성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단체든 간에 의견이 엇갈릴 수는 있습니다. 그 대상이 종교단체가 될 수도 있고, 정당이 될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견이 상충되는 상황이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이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올 한해를 되돌아보면, 각자의 이기심으로 인해 갈등이 심화되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공명지조’는 〈아미타경〉을 비롯해 여러 불교경전에 등장하는 우화입니다. 몸 하나에 머리가 둘 달린 새가 있는데, 머리 하나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런데 낮에 일어난 머리가 몸에 좋고 맛난 열매를 먹자, 이를 질투한 나머지 밤에 일어난 머리가 독이든 열매를 먹어서 결국 모두 죽게 됐다는 내용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관용과 포용과 배려가 사라진 곳은 분쟁과 갈등만 남게 됩니다. 그 결과는 머리 둘 달린 어리석은 새와 같겠지요. 새해 벽두를 맞아 국민 모두 반성해보아야 할 점인 것 같습니다.

△2019년은 천태종복지재단이 설립 20주년을 맞이한 뜻 깊은 한 해였습니다. 학술대회를 비롯해 다채로운 행사도 열린 바 있는데요. 복지재단 설립과 그동안의 성과, 향후 방향에 대해서도 들려주십시오.

천태종이 복지사업을 시작한 시기는 1999년입니다. 당시는 1997년 말 발생한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절입니다. 하루아침에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고, 가정이 파탄 났으며, 도시에는 노숙자들이 넘쳐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천태종은 큰 사회적 책임감을 느꼈고, 서둘러 복지재단을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나라와 국민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국난 극복을 위해 적극 나서는 행위는 천태종의 3대 지표인 애국불교·생활불교·대중불교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국가 전체로 보면 작은 힘일지라도, 사회안정망이 취약한 상태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국민들에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올해 천태종복지재단 결산자료를 살펴보니 20년 전 복지법인 창립발기인으로 참석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설립 당시에 비해 예산은 700배나 증가했고, 전국에 걸쳐 800여 명에 달하는 종사자가 하루 1만4,500여 명의 회원들에게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애써주신 관계자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고령화 등 복지환경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다보니 아직도 부족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천태종 복지재단만의 특성을 살리는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천태종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줄을 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구인사 대조사전 앞에서 교성곡 〈묘법연화경〉 전품을 초연한 무대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최근에는 청주 명장사에서도 교성곡 전품을 공연해 큰 관심을 끌었는데요. 이 교성곡을 제작하게 된 배경과 의의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법화경〉은 천태종의 소의경전입니다. 천태종의 신도라면 〈법화경〉을 항상 수지 독송하겠지만, 불자들 중에는 이 경전을 제대로 독송해보지 않은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경전에 담긴 수승한 가르침을 일반 국민들을 비롯해 보다 많은 분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음악으로 승화시킨 게 바로 교성곡 ‘법화광명의 노래’입니다.

사실 천태종은 2003년 11월에 교성곡 ‘천태종 중창조 상월원각대조사’를 제작해 초연한 바 있습니다. 이후 2011년 상월원각대조사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 1,200명이 한 목소리로 교성곡을 합창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종단의 소의경전인 〈묘법연화경〉을 대형 교성곡으로 창작해 불자들의 신심과 원력을 고취시켜보자는 의견이 나온 게 발단이 되었습니다.

교성곡 ‘법화광명의 노래’의 제작에 들어간 시기는 2017년 8월입니다. 이때 작사가와 작곡가를 선정했고, 10월에 ‘서품’과 ‘방편품’을 시작으로 작사·작곡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데 이어 전국 천태종 사찰합창단원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거쳐 연습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9월 15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제13회 천태예술제에서 ‘서곡’, ‘서품’, ‘방편품’ 등 11곡을 선보였지요.

〈묘법연화경〉 전품을 모두 무대에 올린 건 지난 8월 구인사 대조사전 앞 특설무대에서 열린 음악회 ‘묘음으로 피어나는 하얀 연꽃’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날 음악회에는 천태종 사찰합창단에서 선발된 천태합창단원 1,300여 명과 마하연국악단·솔리스트·남성중창단·국악인 등이 무대에 올라 ‘법화광명의 노래’ 전곡을 불렀지요.

이 공연 후에 불교문화 저변의 확대는 물론 한국불교음악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칭찬을 여러 곳에서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법화경〉의 높은 가르침을 근간으로 삼아 천태종의 수행종풍을 대외적으로 드날린 뜻깊은 음악회였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천태종 재가불자들이 구인사를 비롯해 전국 사찰에서 한 달 안거에 들어가 있습니다. 천태종은 재가불자의 수행을 위한 안거제도도 독특하지만, 수계와 지계의 생활화를 위한 ‘신도수계산림’과 ‘법화삼매참의’도 여느 종단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특징에 대해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다른 종단에서는 불자가 삼귀의계나 오계를 받을 때 어떤 전제조건도 없이 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태종의 경우에는 계를 받으려면 한 달 안거를 몇 차례 이상 이수해야 하는 등 일정 자격을 갖추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계를 받은 후에도 수계자가 계를 잘 지키고 있는지 매년 점검하는데, 그것이 바로 ‘법화삼매참의(法華三昧懺儀)’입니다. 법화삼매참의는 천태 지의대사가 육근(六根)으로 지은 나쁜 업을 모두 드러내어 참회하도록 한 수행법입니다.

계는 불자가 선(善)을 쌓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의 규범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를 받지 않은 불자도 지계를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나라 안팎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청정한 계율에 의지하면 큰 힘이 됩니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오계를 수지하고, 날마다 참회하면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우리 사회를 살펴보면 여전히 보수-진보의 이념 갈등이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빈부 갈등과 노사 갈등은 물론 고령화로 인한 세대 갈등, 남녀 성 평등과 관련한 젠더 갈등까지 사회 전반에 걸쳐 이런 갈등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불자들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은 ‘물질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구조를 살펴보면 물질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물질을 가치판단의 척도로 삼고, 쫓다보니 여러 형태의 갈등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한 생각을 돌리면 그곳이 바로 피안(彼岸)”이라고 가르치셨지만, 물질이 눈앞을 가리다보니, 누구도 한 생각을 돌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조금 더 상대를 이해하고, 조금 더 배려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흔히 우리가 사는 사회를 ‘경쟁사회’라고 부르는데, ‘경쟁’의 목적은 사회공동체의 행복과 발전에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어떤 갈등이든 간에 갈등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상대를 향한 이해와 배려가 전제돼야 합니다. 이해와 배려가 각자의 몸에 배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손가락 한 번 튕기는 사이에 960번 움직인다고 설하셨는데, 이런 마음이 변덕스레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아 두어야 합니다.

서두에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언급한 바 있는데, 경자년 새해에는 우리 사회와 국민들이 모두 머리 둘 달린 새의 어리석은 행동을 교훈으로 삼아 이해와 배려심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무리 복잡하게 얽혀있어도 풀리지 않는 실타래는 없습니다. 새해에는 모든 불자님들이 ‘이해’와 ‘배려’란 단어를 화두 삼아 가슴 깊이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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