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밝음과 어둠은 동일체”
새해아침 복(福)을 여는 즈음에 그 가운데 부처님의 진리(眞理)가 있느냐, 없느냐? 있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것이 새해에 복을 여는 것이냐?
집집마다 아이들은 색동옷을 입고 뛰어 놀고 어른들은 사랑방에서 서로 술잔을 건냄 이로다.
경자년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금일 아침 떠오르는 밝은 태양의 빛이 번뇌를 지혜로 바꾸고, 무명을 깨달음으로 바꾸는 전신(轉身)의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진여법계에는 만덕이 갖추어져 있으니, 수용(受用)과 묘용(妙用)이 자재합니다. 내가 그대로 우리가 되고, 이기심이 그대로 이타심이 되며, 아만심이 그대로 자비심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고 보면 세간법과 불법(佛法)이 둘이 아닙니다. 진리의 광명은 항상 시방세계를 비추니 나와 남이 원래 없으니 옳고 그름이 원래 없습니다. 밝음 가운데 어둠이 있고 어두움 가운데 밝음이 있으니 밝음과 어둠이 동일체(同一體)입니다.
종교는 인간내면의 정화(淨化)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인 지혜와 자비가 정치와 사회의 기본이념이 되어 생명존중과 인류의 행복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모든 국민들이시여!
일상생활하는 가운데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하고 이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면 몰록 ‘참나’를 깨닫게 됩니다. 참나 속에는 걸림 없는 대자유가 있고, 참나 속에는 참된 평화가 있고, 참나 속에는 변치 않는 정의가 있고, 참나 속에는 밝은 지혜가 있고, 참나 속에는 영원한 행복이 있습니다.
필경(畢竟)에 진리의 한 마디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고휘연하처멱(萬古徽然何處覓)고.
두두물물현고풍(頭頭物物現古風)이로다.
만년토록 빛나는 것을 어느 곳에서 찾을꼬?
두두물물이 고풍의 진리를 드러냄이로다. 

 

진각종 총인 경정 정사

“화해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정토”
새해 새날이 밝았습니다.
온 누리에 충만한 대일(大日)의 서광(瑞光)이 중생의 심전(心田)에도 늘 함께하여 화해와 소통의 새날이 항상 하길 서원합니다.   
진각(眞覺)의 무진원(無盡願)이 법계에 충만하여 공사(公私)가 바로 서서 진실을 실현하고 세상에 화해가 넘치고 소통이 순조로워서 참회와 용서의 터전이 되기를 서원합시다.
심성은 본래 화해의 궁전이여서 진리와 화해하여 하나가 되고 자기와 화해하여 주인공을 찾아 중생과 화해하여 더불어 살아갑시다.
화해의 기운으로 살면 인생은 안락하여서 화해의 마음으로 느끼면 세계는 만다라요, 화해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정토이며, 화해의 귀로 들으면 천지는 화음의 자리입니다.
종교가 사법(邪法)을 정화하여 정법를 세우면 정치는 정쟁을 쉬고 정도로 걸어가고 경제는 독식(獨食)을 넘어 풍요를 나누며 사회는 분쟁을 풀어서 화평을 누립니다. 새해 새 세상은 화해의 만다라 중에서 마음 다해 손잡고 수행하며 웃어봅시다.

 

종지종 종령 법공 정사

“자비·보리심 키우는 수행해야”
금년에는 가정과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 평화와 자비가 넘쳐나고, 고난과 괴로움을 부처님의 가르침과 지혜로써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를 희망하며, 온 지구촌이 빈곤과 가난, 질병과 고통에서 해탈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발원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겪는 고통은 탐욕과 그로 인한 대립과 반목에 기인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는 자비심과 보리심을 길러내어야 합니다. 
자비심은 발고여락(拔苦與樂)이라 하여 다른 이를 기쁘게 하고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이며, 보리심은 깨닫고자 하는 마음임과 동시에 상대를 자비로써 대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자비심과 보리심을 일언(一言)하야 이타심이라 하며, 그러한 행을 이타행이라 합니다.
경자년 새해를 맞이하여 모든 불자들에게 자비심과 보리심을 길러내는 수행의 실천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안하오니 용맹정진하시기를 서원합니다.
첫째,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한시라도 가져서는 아니 됩니다. 증오와 원망심은 악(惡)의 가장 큰 씨앗입니다. 남을 내 몸과 같이 여기고 이웃을 내 가족과 같이 대하는 마음이 인간의 본성(本性)이요, 그러한 마음으로 산다면 모두가 즐겁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세계가 될 것입니다.
둘째, 나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청정하게 해야 합니다. 모든 일의 시작은 나의 선(善)에서 출발합니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이에게 더욱 선한 마음, 건강한 생각, 깨끗한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모든 것이 바르게 서고, 바르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과제를 한 해의 실천서원으로 삼아 정진해 나간다면 불국토에 들어가는 문이 되고, 복전(福田)을 일구는 일대불사가 될 것입니다.
날마다 좋고 좋은 날이오, 달마다 기쁘고 행복한 한 달, 한 해가 되시기를 발원합니다.

 

삼론종 종정 혜승 스님

삼독심 버리면 누구나 불보살

산상백운백우백(山上白雲白又白) 
산 위의 흰 구름은 희고 또 희고
산중류천적우적(山中流泉滴又滴) 
산속에 흐르는 물은 흐르고 또 흘러
수인해간백운용(誰人解看白雲容) 
누가 흰 구름의 모습을 이해해 보나  
내변운외청산벽(那邊雲外靑山碧) 
저쪽 구름 밖에 청산이 파랗구나

새벽 아침 깨달음의 노랫소리로 시방세계 신세계가 열립니다.
사찰마다 집집마다 청정한 불자들의 정진으로 세상의 복덕이 절로 쌓이니 나날이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입니다. 청정한 향기를 머금은 법우는 산과 세상 구분없이 내려 행복으로 열리는 매일매일의 나날들을 축복합니다. 
산에서도 세속에서도 도를 깨닫는 마음 더욱 높으니 눈앞이 바로 정토요 불국토입니다. 가는 곳곳마다 깨달음의 노랫소리 들리고 유마는 빙긋이 미소 지음입니다. 
잠시 품은 삼독심을 버리면 우리 누구나 부처 성품 있어 보살이 되고 부처님이 됩니다. 
이 세상 스쳐 지나간 온갖 성인 바라만 볼 게 아니라, 오늘 이 자리 숨 쉬고 정진하는 살아가는 이들이 모두 부처임을 노래 부릅시다.

 

원효종 종정 고산 스님

“남 탓 말고 자비희사 실천”
밝아오는 경자년을 맞아 항상 웃는 얼굴로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길 기원합니다. 
〈잡아함경〉에는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차기고피기(此起故彼起)’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내면 상대방도 나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내주고, 내가 먼저 웃어주면 상대방도 나에게 웃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 나 홀로 된 것은 없습니다. 모든 인연은 내가 만드는 것이며, 그 열매를 수확하는 것 또한 내가 될 것입니다.
권략과 이기심과 욕심으로 고통 받는 주변사람들을 외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직시하고 지혜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또한 남을 탓하지 말고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나와 가족 그리고 온 세계가 자비광명(慈悲光明)이 가득하고 고난과 괴로움이 없는 밝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채필묘공공불염(彩筆描空空不染) 
물감으로 허공을 칠한들 허공이 물들며
이도할수수무흔(利刀割水水無痕) 
칼로 물을 나눈들 물이 잘리랴.
인심안정여공수(人心安靜如空水) 
사람 마음 안정됨이 허공과 물 같으면
흥물자연무원오(興物自然無怨惡) 
만물을 마주한들 밉고 고움이 있겠는가.

 

대한불교법화종 종정 도정 스님

“부처의 중생놀음은 내 탓”

불로책피(不好責彼) 
남의 허물을 꾸짖기 좋아 말고
무자성신(務自省身) 
힘써 내 몸을 되살펴보자.
여유지차(如有知此) 
이렇게 깨달은 이에게
영멸무환(永滅無患)  
괴로움은 여여 다시 없으리라.

붉은 금괘가 사자후의 홰를 치며 웅비하는 경자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아침의 태양은 사바세계에 가득한 갈등과 모든 어둠을 몰아내고 희망의 광명을 우리에게 비추어 줄 것입니다. 여래와 조사를 스승이라고 부르는 사부대중 구성원은 누구라도 절대로 ‘사자 몸속의 벌레’를 자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남의 잘못을 보기 전에 먼저 자신을 되돌아 보는 진정 ‘맑고 청정한 수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중생이 부처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내 속에 있고 부처가 중생놀음 하는 것도 타인이 아닌 바로 나의 탓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날로 급변해가는 선진과학화 시대에 발맞추어 부처님의 법음을 제대로 포교할 수 있는 역량있는 우리 불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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