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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설법> 자기 직분에 충실하라
  • 천태종 운덕 대종사
  • 승인 2019.11.26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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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도 어느덧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맘 때면 한 해를 돌아보며 자신이 해놓은 일과 하지 못한 일들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돌아보면 뿌듯한 일도 있을 것이고, 아쉬움도 남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성찰(省察)과 반조(返照)의 시간을 통해 사람들은 또 다른 희망의 새해를 설계합니다. 

캐나다 출신의 엘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 1925~)는 인간은 창조적이며 의도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존재로 파악했습니다. 인간은 환경에서 오는 외부 자극에 대해 자신의 인지능력을 활용하여 창조적인 사고를 함으로써, 합리적 행동을 계획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러한 창조적 사고와 합리적 행동을 저버리는 일이 끊이지 않고 반복되고 있습니다. 국내 굴지의 유명 쇼핑업체는 최근 채용비리와 기부금 유용 등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기업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고, 한 지자체에선 집배송센터 인허가 비리로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기소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또 유명 대기업 노조위원장 선거에선 자녀 취업비리가 이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종 비리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이유는 자기 직분(職分)에 충실하지 않은 데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직분은 직무상의 본분으로, 마땅히 해야 하고 지켜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지켜야 할 일을 지키지 않으면 직분을 일탈하는 행위입니다. 직분을 일탈했을 때 받아야 할 대가가 이처럼 각종 비리로 터져 나오게 되고 결국 패가망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선 전기의 문신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자신의 저서인 〈사가집(四佳集)〉 ‘수직(守職)’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물에는 각각 직책이 있다. 소의 직책은 땅을 갈아 농사짓는 일이고, 말의 직책은 물건을 싣고 사람을 태우는 일이며, 닭은 새벽을 알리는 것이 직책이고, 개는 밤을 지키는 것이 직책이다. 자기의 직책을 잘 수행하는 것을 ‘직책을 지킨다(守職)’ 하고, 자기 직책을 잘 수행하지 못하면서 다른 직책을 대신하는 것을 ‘직책을 넘는다(越職)’ 한다. 직책을 넘으면 이치에 어긋나게 되고, 이치에 어긋나면 화(禍)를 받는다.”

당시 서거정이 이런 글을 쓰게 된 데에는 직분을 뛰어넘어 행동하는 한 벼슬아치가 거슬렸기 때문이었던 듯합니다. 그 벼슬아치는 요행히 연줄이 닿아 공신 대열에 참여하여 관계(官階)가 1품에 올랐습니다. 그는 직책이 대간이 아닌데도 소장(疏章)을 올려 다른 사람을 탄핵하고 공격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공격이 지나쳐 급기야는 상소와 상소를 거듭하면서 삼정승과 육경을 두루 탄핵하여 조정에 온전한 사람이 없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에 서거정은 글의 말미에 “그가 능력이 있다면 있고 재주도 있다면 있으며 글도 한다고 하면 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직책을 넘어서 일을 따지기를 좋아하니, 나는 아무래도 닭이 밤에 울다가 제물(祭物)의 희생이 되는 화가 있을 듯싶다.”고 적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얼마 가지 않아 조정의 사대부가 붕당(朋黨)을 지어 국정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훈적(勳籍)이 박탈되고 먼 지방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자기 직분에 충실할 때 신뢰와 화합이 도모됩니다. 따라서 훈훈하고 투명한 사회를 위해선 제각각 맡은 직분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부처님을 시봉했던 제자 아난다는 우리에게 아주 좋은 교훈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연로하셨을 때 어느 날 제자들에게 옆에서 도와 줄 시자(侍者)를 추천해 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부처님이 아난다를 마음 속에 두고 있음을 눈치 채고 그에게 찾아가 시자가 되어주길 청했습니다. 아난다는 처음엔 정중히 거절했으나 계속된 간청에 못 이겨 세 가지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첫째는 새 옷이건 헌 옷이건 부처님이 입었던 옷이면 받지 않겠다는 것이며, 둘째는 부처님이 공양을 초청 받아 가실 때면 함께 가지 않겠다는 것이고, 셋째는 정해진 때가 아니면 부처님을 만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난다의 이러한 세 가지 조건을 부처님께 말씀드리자 부처님은 “아난다는 참으로 지혜로운 수행자다.”라며 칭찬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아난다는 시끄러운 문제를 미리 예방하고 있다. 비구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아난다가 옷 때문에 시봉한다고 할 것이며, 또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하여 시봉한다고 할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시비를 미리 예방하고 있다. 아난다는 또 어느 때 여래를 만나는 것이 좋은지 알고 있다. 그는 매우 지혜로운 사문이다.”라고 이유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권력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아난다가 만일 교단의 최고 어른이신 부처님을 등에 업고 시자로서의 본분을 저버린 채 자신의 잇속 챙기기에 급급했다면 부처님과 끝까지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난다는 부처님이 입멸하시기까지 승가공동체의 화합과 위상을 도모하며 시자로서의 역할을 조용히 묵묵히 해냈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십대제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아난다를 통해 직분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천태종 운덕 대종사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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