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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식의 알면 도움되는 노후준비6_心身의 건강
<삽화=박구원>

존경 받는 어른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자

공자는 서른에 뜻을 세우고 마흔에 미혹되지 않는 불혹(不惑)의 경지에 이르렀고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아는 지천명(知天命)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했다. 나는 60이 넘었지만 지천명의 경지는 고사하고 아직 불혹의 경지에도 도달 못한 것 같다. 내 친구는 식당에서 젊은이들이 노인을 욕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과거에는 나이가 들면 세상의 어른으로서 젊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는데, 나 자신을 포함해서 노인세대는 어쩌면 과거의 노인과는 달리 존경을 받을 수 없는 세대로 추락해버린 것이 아닐까? 나 자신부터가 지천명은 고사하고 불혹의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나는 요즘 과거보다도 훨씬 더 열심히 운동을 한다. 바쁘더라도 이틀에 한 번은 꼭 하려고 노력한다. 나이가 들면서 두뇌가 건강하지 않으면 존경은 고사하고 경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체운동은 특히 뇌에 혈액을 잘 공급해주기에 치매도 예방되고 사고력도 증진된다. 과거에는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 조금만 건강이 나쁘면 모두 사망했었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하다보니 과거에는 전혀 생존하지 못했을 사람이 살아 남게 되고, 그만큼 존경할 수 있는 노인의 숫자가 줄어든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억측을 해본다.

불교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허무주의적 종교라는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업을 소멸하기 위해 부단히 정진하는 종교다. 밤을 새워하는 스님의 용맹정진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허무주의적 색채는 조금도 없다. 불교를 흔히 행의 종교, 즉 실천의 종교라고 한다. 경전을 열심히 읽고 수행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지만 열심히 운동하여 노후를 건강하게 보내야 한다. 

우리는 흔히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본다. 몸은 더럽고 본능적이고 탐욕적이며 마음은 깨끗하고 고귀하다고 보는 사람조차 있다. 불교는 무엇이든 이분법을 경계한다. 불교의 핵심교리는 연기다. 연기법에 의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독자적 실체가 없으니 몸과 마음이라는 것도 독자적 실체가 없다. 몸과 마음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운동을 한 뒤에 인내심과 균형 감각이 생기고 마음이 더 평온해진다. 반대로 마음이 불안하면 몸도 위축되고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을 해친다. 연세대 전용관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체육활동에 많이 참여하는 청소년일수록 행복도가 더 높았다. 안구를 자주 움직이면 창의력이 높아진다고 하니 몸이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양팔을 하늘로 쭉 뻗는 동작을 2분 정도 유지하면 자신감을 향상시키는 호르몬이 증가한다. 뇌를 다치면 착하고 배려심이 많던 사람이 갑자기 난폭하고 자기 중심적인 괴물로 돌변한다. 이처럼 몸과 마음은 서로 구분이 모호하고 상호의존적이며 상대에 의해 존재하기에 우리는 ‘마음몸’, ‘몸마음’이라고 부르는게 좋다. 우리는 마음이 몸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는 사실은 많이 알고 있다. 특히 스트레스가 많은 세상이다보니 스트레스가 몸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기사가 수시로 언론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몸이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이제는 너무 ‘마음 마음’할게 아니다.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이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마음에 의해 모든 것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마음은 몸과 구분이 어렵다. 만약 뇌를 다친다면 마음은 어떻게 될까? 도대체 마음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몸의 일부분인 뇌에서 나오므로 몸과 마음이란 구분하기 어렵다. 따라서 좀 더 정확한 구분은 ‘일체유심신조’라고 몸과 마음에 의해 모든 것이 만들어진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좀 더 나아가서 인간에 의해 모든 것이 만들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이 넘어서도 운동을 하면 몸과 마음이 달라진다고 한다. 나는 미국 수영장에서 휠체어를 타고 어떤 노인이 풀장 끝에 다가와서 휠체어를 세워 놓고 풀에 뛰어들어 매우 불편해보이는 동작으로 수영을 하는 것을 보았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였지만 나름 수영을 한 후 아주 힘들게 휠체어에 올라타고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몸과 마음을 단련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호흡하고 음식을 소화시키는 생물체에 불과한 인생 후반부를 살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이 둘 다 중요하다면 운동과 아울러 책을 읽고 생각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노후에 충분히 가져야 한다. 그래야 개똥철학이라도 정립할 수 있고 자칫 허무해질 수 있는 노후에 가치와 의미가 부여된다. 불교경전이야 말로 독서하기에 가장 훌륭한 책이 아닌가?

식욕을 관장하는 뇌영역이 훼손되면 옆에 음식이 있어도 우리는 굶어죽는다. 따라서 욕망은 우리에게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나 욕망은 동시에 우리에게 고통의 근원이기도 하다. 욕망을 가진 존재로서 인간은 노후가 되어서도 죽는 날까지 욕망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욕망이 소멸되었다고 느낀다면 어쩌면 생명이 다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 지혜롭고 관대하며 통찰력이 있는 어른으로 늙어갈 수 있다면 젊은이의 존경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높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어쩌면 현명하지 못할 수가 있다. 인간을 너무 훌륭한 존재로 상정하면 오히려 노후가 뒤틀어진다. 인간은 욕망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진화해 왔기 때문에 욕망 앞에 정직해야 한다. 인간이 욕망의 존재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금욕도 탐닉도 아닌 불교적 해법으로 노후를 살아야 한다. 우리가 욕망이 없다면 불교도 필요 없을지 모른다.

나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고 노력하는 오래된 교수친구가 있다. 어느날 그가 자신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가구를 버리기 아까워서 가구를 가져갈 사람을 찾았더니 어느 부부가 찾아왔다고 한다. 옷차림새도 허름하고 많이 배운 것 같지도 않지만 무언가 분위기와 느낌이 예사롭지 않더란다. 대화를 해보니 불교가 체화된 환경미화원이었다고 한다. 그 친구는 ‘불교가 원인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우리가 노후에 운동하고 독서하고 경전을 읽고 생각하고 대화하고 수행하는 이유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수를 감동시킨 환경미화원 부부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윤성식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고려대와 미국 오하이오대 졸업 후 일리노이대에서 석사,UC버클리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또 동국대에서 불교학 석 •박사를 받았다. 2004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과 국회 공직자윤리위원장,미국 텍사스대학(오스틴) 경영대학원 교수를 맡은 바 있다. 저서로〈부처님의 부자 수업〉•〈예측불가능한 시대에 행복하게 사는 법〉등 다수가 있다.

 

글·윤성식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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