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월간금강 연재
불제자가 된 왕6_밀린다왕
밀린다왕이 나가세나 스님에게 질문을 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밀린다왕은 3일 동안 236개의 질문을 했고, 나가세나 스님은 모든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을 했다.

나가세나 스님과 토론 끝에 
모든 의문 풀고 불교에 귀의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원정(B.C. 327) 이후 서북 인도는 한때 그리스 왕에 의해 통치됐다. 기원전 2세기 후반 그 지역을 통치한 왕은 그리스계 메난드로스(Menandros)다. 메난드로스는 팔리어로 ‘밀린다(彌蘭陀)’로 번역된다.

밀린다왕은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인근에서 태어났다. 왕위에 오른 뒤 영토 확장에 힘을 쏟아 여러 나라를 합병했으며, 유화정책으로 민중의 선망을 얻었다. 또 타고난 경제적 감각으로 부강한 나라를 건설했다. 

|   나가세나 스님을 만나다

밀린다왕은 젊은 시절부터 합리와 논리를 추구하는 그리스 철학을 비롯해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했다. 그는 대화와 토론을 즐겼으며, 특히 피지배층의 종교인 불교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다. 밀린다왕은 평소 수행승들에게 질문을 해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들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대론(對論)을 통해 자기의 의문점을 풀어줄 수 있는 수행자가 인도에는 아무도 없다고 하며 항상 아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하인 데바만티아가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시여, 인도불교 교단에 나가세나(Nagasena, 那先)라는 젊은 스님이 지혜롭고 뛰어나 당해낼 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시지요.”

“이 나라에 과연 나와 이야기를 나눌 자가 있단 말인가? 당장 그 스님을 만나러 가야겠다.” 

나가세나 스님은 히말라야 중북지역에 있는 한 바라문촌 출신으로 베다(Vedas)와 그 외의 학문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 로하나 존자를 좇아 출가해 논장을 연구했다. 그 뒤 아사다 존자를 찾아가 공부를 계속하며, 삼장을 연구했다.

데바만티아의 추천에 밀린다왕은 나가세나 스님을 만나러 갔다. 이 둘의 대담은 인도 전역에 소문이 났다. 만남을 지켜보기 위해 수많은 승려와 그리스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가세나 스님을 만난 밀린다왕이 먼저 물었다.

“존자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하지만 나가세나 스님은 묘하게 답했다.

“대왕이시여, 나는 나가세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의 동료들도 그렇게들 부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의 부모가 내게 준 이름일 뿐, 나가세나든, 수라세나든, 비라세나든 그런 것들은 다만 명칭일 뿐이고, 관념일 뿐이며, 습관으로서의 이름일 뿐입니다. 거기에 인격적 개체는 없습니다.” 

나가세나 스님의 말에 밀린다왕은 놀라서 외쳤다.

“이 자리에 있는 수많은 대중들이여, 지금 이 나가세나라는 스님이 나에게 ‘인격적 개체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나와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는 당사자가 자기는 인격적 개체가 아니라고 하니, 그럼 나와 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며, 듣는 사람은 누구란 말입니까? 지금 스님의 말을 어떻게 수긍할 수 있겠습니까?”

|   존재에 대한 질문과 대답

왕은 그러면서 나가세나 스님에게 되물었다. 

“그럼 나가세나로 불리는 존재는 도대체 누구인가요? 당신의 동료들은 당신을 ‘나가세나’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혹시 당신의 머리카락이 나가세나 인가요?”

“대왕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몸에 있는 털들이 나가세나 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밀린다왕은 치아·피부·장기 등 신체를 구성하는 모든 부위를 언급하며 따지듯 물었지만, 나가세나 스님은 모두 아니라고 부정했다. 나가세나 스님이 끝내 존재의 단적인 것을 말하지 못하자 밀린다왕은 마침내 나가세나 스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꾸짖었다. 

“존자여, 제가 지금 여러 가지 질문을 했지만, 당신의 대답에서 ‘나가세나’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가세나’는 단순한 소리에 불과한 것입니까? 그럼 지금 내 앞에 있는 나가세나는 대체 누구입니까? 당신은 내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진정 나가세나는 없었습니다.”

이에 나가세나 스님이 반론을 시작했다.

“대왕이시여, 당신은 이곳까지 오는데 걸어오셨습니까? 아니면 수레를 타고 오셨습니까?”

“저는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수레를 타고 왔지요.”

“대왕이시여, 수레를 타고 오셨다면 무엇이 ‘수레’인지 저에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굴대’가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그렇다면 ‘바퀴 축’이 수레입니까? 아니면 ‘깃대’가 수레입니까?”

나가세나 스님은 왕이 자신에게 질문했던 방식으로 ‘멍에’인가, ‘채찍’인가, ‘빗장’인가 등 무엇이 수레인지를 물었지만 왕은 계속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나가세나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

“왕이시여 제가 여러 가지 질문을 했지만, 저는 수레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수레는 단순한 소리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 수레입니까. 왕께서는 저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진정 수레는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지금 왕께서는 분명 자신이 수레를 타고 여기 왔다고 말했소. 하지만 수레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고 하자 그 존재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대중들은 나가세나 스님을 찬탄하며 밀린다왕의 대답을 기다렸다.

“존자여, 나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수레’라는 명칭은 바퀴와 바퀴살, 깃대와 빗장, 멍에 등에 의존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들이 모여 ‘수레’라는 명칭이, 관념이, 습관이 생기게 됐습니다. 다만 이름이 ‘수레’ 일 뿐이지요…….”

왕은 대답을 끝까지 하지 못한 채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나가세나 스님이 말을 받았다.

“맞습니다. 왕께서는 수레에 대해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 나가세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서른두 부분과 오온(五蘊)에 의지해 ‘나가세나’라는 명칭이, 관념이, 습관이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궁극적 견지(見地)에서 나란 ‘사람’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마치 여러 부분이 모여 ‘수레’라는 말이 생기듯 다섯 가지 구성요소[五蘊]가 존재할 때, 생명 있는 ‘존재[有情]’라는 이름이 생기는 것입니다.”

나가세나 스님은 밀린다왕의 논법을 뒤집어 그대로 왕에게 반문을 한 것이다. 스님의 말을 들은 밀린다왕은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존자 나가세나여, 당신은 정말 훌륭합니다. 저의 질문에 정말로 훌륭하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이곳에 계셨다면, 당신의 대답을 인정하시고, 또 무척 칭찬하셨을 것입니다.”

|   독실한 불자가 되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밀린다왕과 나가세나 스님은 전생부터 인연이 있었다.

과거 가섭불시대, 인도 갠지스강 근처에 많은 비구들이 수행을 하며 살고 있었다. 계율과 본분을 잘 지키는 비구들의 첫 일과는 빗자루를 들고 마음속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외우며 경내 청소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쓰레기가 엄청 쌓여있던 걸 본 한 비구가 지나가는 어린 사미에게 치우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미는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 버렸고, 이에 화가 난 비구는 사미를 쫓아가 빗자루로 때렸다. 사미는 억울한 마음에 울며 청소를 했다. 그리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려 발원을 했다.

“이 쓰레기를 치우는 공덕으로 열반에 이르기 전에 어디에 다시 태어나던지 빛나는 태양처럼 커다란 위력과 광채를 갖게 해주세요.”

사미는 청소를 다 마치고 갠지스강으로 목욕을 하러 갔다. 거기서 그는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두 번째 발원을 세웠다.

“다음 생에 어디에 태어나더라고 강물이 저렇게 막힘없이 세차게 흐르는 것처럼 변재(辯才)를 얻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때 사미를 때린 비구가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하던 중 우연히 그 말을 듣게 됐다. 비구는 마음속으로 ‘어린 사미도 강물을 보고 저런 발원을 하는데 나도 발원을 하리라.’ 생각하고 자신만의 발원을 했다.

“열반에 이르기 전 어디에서 태어나더라고 갠지스강의 이 힘찬 물결처럼 다할 줄 모르는 말재주를 갖게 해주시고, 저 사미가 묻는 모든 질문과 난제를 막힘없이 풀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주십시오.”

세월이 흘러 그때의 어린 사미는 밀린다왕으로, 비구는 나가세나 스님으로 태어났다.

밀린다왕의 얼굴이 조각된 주화. 왕은 자신의 얼굴이 조각된 주화에 불교의 법륜(法輪)을 함께 새겼다.

밀린다왕과 나가세나 스님은 앞에 언급한 ‘이름(존재)에 관한 문답’ 외에도 3일 동안 영혼론과 윤회·선악·업보 등 개인적인 문제부터 △지식론 △심리현상 고찰 △해탈과 열반에 대한 실천 방법 △수행자가 지켜야 할 덕목 등 불교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밀린다왕은 나가세나 스님에게 모두 236개의 질문을 했고, 스님은 왕의 모든 질문에 대해 명쾌한 대답을 했다.

그리스인이었던 밀린다왕은 나가세나 스님과의 대담 후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었다. 왕은 자신의 얼굴을 조각한 주화에 불교의 법륜(法輪)을 함께 새겼으며, 자신이 죽은 뒤에는 부처님처럼 탑을 건립해 자신의 뼈를 나눠 보관하라고 신하들에게 명했다. 그는 이후 부처님의 제자가 돼 평등한 정치를 위해 노력했고, 사후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밀린다왕은 훗날 인도에 알려진 그리스 왕 40여 명 중 인도 문헌에 등장한 유일한 그리스계 왕이 되었다.

조용주 기자  smcomnet@naver.com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용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