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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월을 향한 순례와 대화4_보나벤투라와 지눌부처님과 하나님께 어떻게 다다를 것인가?
지진으로 무너진 욕조 모양의 분지에 솟은 벼랑 위 마을 치비타 디 바뇨레지오(Civit. di Bagnoregio).

|   벼랑 위의 성지, 바뇨레지오 

시차적응을 하지 못한 탓인지, 낯설음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 밤을 꼬박 새웠다. 그것이 아니라 해도 네댓 시간이 적정수면인 탓에 여행을 가면 새벽에 노트북을 들고 호텔 로비로 가는 것이 일과다. 이번 순례의 짝인 동국대 박경준 교수와는 이미 세계불교학대회 때 여러 날 동침한 경험이 있다. 넓은 도량을 지닌 분이라 그냥 방에서 작업하라 말하지만, 숙면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약간 피곤하기는 했지만, 졸리지는 않았다. 덕분에 밤새 인터넷을 뒤질 수 있었다. <하나님으로 나아가는 정신의 여정(The Journey of the Mind Into God)> 등 보나벤투라의 저서들을 PDF 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었다. 머리통은 수면부족을 호소하며 아우성인데 몇몇 문장들은 늘어진 뇌신경세포들에 환하게 빛을 밝혔다.

우리 일행은 스콜라스티카 수도원에서 빵과 치즈 위주로 정갈한 점심식사를 하고는 베네딕토 성인과 스콜라스티카 성녀의 말씀을 채 가슴에 담기도 전에 치비타 디 바뇨레지오(Civit. di Bagnoregio)로 향하였다. 르네 마그리트의 <피레네의 성>처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안개바다 가운데 가파른 섬처럼 벼랑이 솟아 있고 그 위에 돌집 몇 채가 놓여있던 사진 속의 정경을 발로 디딘다 하니, 아니 그 바다 한 가운데서 원환(圓環)의 사유를 하며 우주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보나벤투라 성인의 생가를 방문한다고 생각하니 설랬다.  

관련 자료와 고파올로 신부의 말을 종합하면, ‘civit.’는 도시, ‘bagno’는 ‘목욕탕’, ‘regio’는 ‘지역(regione)’을 가리키니, ‘목욕탕 지역의 도시’란 뜻이다. 1695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마을 대부분이 내려앉아 욕조처럼 변하였고, 그 욕조에 막대기를 꽂은 것처럼 몇몇 집만 벼랑 위에 간신히 버티고 서 있다. 다리로 섬이 된 벼랑 마을을 잇고, 전기와 수도를 끌어들이고 강철재로 지반을 보강하면서 주민 10여 명이 거주하고 그 기이한 모습에 매료되어 관광객이 몰려들게 되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바뇨레지오 입구의 주차장에서 내렸다. 몇 발자국을 내딛자마자 치비타 디 바뇨레지오의 낯설고 신비스런 정경이 눈을 떠나 가슴을 가득 채웠다. 우선 잠실종합운동장의 열 배는 됨직한 거대한 분지가 눈에 들어왔다. 높고 너른 고원이 욕조처럼 푹 꺼져 광대한 회색분지를 만든 위로 황금빛 흙기둥이 불쑥 돌출하여 있고 그 위로 돌집들이 쓰러질 듯 무너져 내릴 듯 얹혀 있는데 성 도나토(Saint Donato) 성당의 종탑이 고고하게 하늘을 향해 솟아있었다. 이미 몇 백 년 전의 일이라 분지엔 응회석의 흰 속살 사이로 나무와 풀들이 무성한데, 칼로 내리친 듯 잘린 수직 벼랑은 금빛 속살을 지층 모습 그대로 내보여주고 있다. 어떤 집은 온전했지만, 어떤 집은 반만 걸쳐 있었다. 

고파올로 신부는 이번 순례단의 단장이자 이탈리아에서 약 7년 정도 신비신학을 공부한 프란치스코회 수도자이다. 그는 산타마리아 성문 앞의 다리 끝 갓길에 우리 일행을 모이라 하고는 치비타와 보나벤투라의 사상에 대해 설명하였다. 지금껏 주로 실내에서 노출시간이 긴 사진을 찍느라 잘 듣지 못하였는데, 고 신부의 박식한 말씀을 경청할 수 있어서 좋았다. 20세기 초기까지는 죽은 도시였으나 독일 사람들이 수도·전기를 놓자 다시 마을이 살아났으며, 10년 전에는 버스도 없고 입장료도 받지 않았단다. 산타마리아 성문에는 추기경을 상징하는 독수리가 가운데 자리하고 양 옆에 사람머리를 누르고 있는 사자가 호위하고 있었다. 그 사자들은 예전에 이곳 주민들이 성주의 탐학에 저항하여 승리한 상징이라고 한다. 

오른 쪽 골목과 벼랑이 만나는 지점에 보나벤투라의 생가가 있다.

|   보나벤투라, 망아의 사유로 진리를 찾다

우리는 보나벤투라 성인(St. Giovanni Fidanza Bonaventura: 1221∼1274)의 생가 앞에 섰다.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둔수 스코투스(Duns Scotus)와 함께 중세 신학의 정점을 이룬 13세기를 대표하는 학자”(파울 틸리히, <그리스도교사상사>)이다. 신학자와 농부, 직조공을 수호하는 성인으로 가톨릭교도들은 매년 7월 15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한다. 돌담 사이로 철문만 보인다. 철문 너머로 약간의 담과 마당인 듯한 공간이 있고 그 너머는 낭떠러지다.

그 벼랑 아래로 사다리가 있다. 고파올로 신부는 신학생 때 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생가의 남은 부분들을 보았다고 한다. 성인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과 마당은 저 아래로 떨어져 흙부스러기로 변하여 이 벼랑마을을 받치고 있을 게다. 

보나벤투라는 예수 다음의 성인인 성 프란치스코와 세 차례에 걸쳐 인연이 닿았다. 1217년 경 조반니 디 피단자(Giovanni di Fidanza)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성인은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중병을 앓았다. 신앙심이 돈독한 어머니 마리아 디 리텔로(Maria de Ritello)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에게 찾아가서 아들을 장래에 수도원에 보내겠노라고 서약을 하고 이에 프란치스코가 응하자 그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프란치스코 성인이 “좋은 소식이로다.(bona ventura)”라고 말한 데서 ‘좋다’는 ‘bona’와 ‘행운’이란 뜻의 ‘ventura’를 결합한 보나벤투라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둘째 인연은 성인이 1236년 파리대학에 있을 때 헤일스의 알렉산더(Alexander of Hales)라는 저명한 교수가 프란치스코회 회원이 되었는데, 신학부장이었던 그분은 성인의 스승이었다. 이에 성인도 이 회원으로 입회하였고 이때부터 보나벤투라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폴 루트, <프란치스코와 보나벤투라>) 셋째 인연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예수님처럼 오상(五傷)을 받은 라 베르나 수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묵상하며 지혜를 얻은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그의 대표작인 <하나님께 나아가는 정신의 여정(The Journey of the Mind Into God)>을 집필하였다. “보나벤투라는 프란치스코를 그의 중심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태양이자 사명으로 삼았다.”(같은 책)

산타마리아 성문(The Gate of Santa Maria). 가운데 독수리는 추기경을 상징하고, 양 옆의 사람머리를 누른 사자는 주민들이 성주의 탐학(貪虐)에 저항하여 쟁취한 승리를 상징한다.

기독교의 신도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천국에 가서 영생을 누리기를 바란다면, 신학자는 프란치스코처럼 하나님과 진리를 만나거나 그에 이르는 길을 해명하기를 열망한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후자에 주목하였다. 인간은 하나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으므로, 우리 인간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자신, 곧 하나님의 모상이 빛나는 우리의 영혼 안으로 들어가서, ……  우리는 거울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바로 그곳에서 진리의 빛이 우리의 정신의 얼굴 위에 빛나고 있으며, 가장 축복받은 삼위일체가 다시 빛나리라.”(Saint Bonaventure of Bagnoregio, <The Journey of the Mind Into God>) 거울을 쳐다보았을 때, 얼굴은 나의 모습이지만, 그 거울에는 하나님의 빛도 비추고 있으므로, 또 유한한 인간은 무한을 향하여 초월하려 하기에 ‘망아(忘我)의 사유’로 바라보면 얼굴 너머로 내 몸 안에서 빛나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이 감각세계의 모든 피조물이 관상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의 영혼을 하느님에게로 이끌 수 있음을 알게 된다. … 신성한 것들이 반짝이는 우리의 마음의 거울에 외부에서 주어진 이 빛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자리에 놓인다.”(The Journey of the Mind Into God.)

모든 피조물에는 하나님의 본성이 깃들어 있다. 예술작품에서 예술가의 뜻을 읽듯, 우리가 그 피조물들에 깃든 하나님의 기원의 빛 안에서 피조물을 바라보고 이해하려 한다면, 그 피조물 속에 하나님이 존재하기에 그를 관찰하고 묵상하고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현존을 발견하고 체험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그 피조물과 관계를 맺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그 사물과 내 마음에 깃든 ‘하느님의 빛’을 읽어야 한다. 이는 인간의 이성만으로 부족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갈망함으로써 다가갈 수 있다. 이는 기존의 가치관과 편견, 아집에서 완전히 벗어난 망아적 사랑(ecstatic love)과 인식을 해야만 가능하다. 마치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접신(接神)의 경지에 이른 샤먼처럼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진리에 도취되어 황홀경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 진리에 다가간다. “명백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 오직 하나님 안에만 근원적이고 참된 즐거움이 있으며, 우리는 모든 즐거움으로부터 이 즐거움을 누리라고 요청하는 하나님의 손에 이끌린다.”(같은 책)

하지만, 하나님과 진리에 다가가는 것은 인간 혼자만의 노력으로 불가능하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존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홀로는 이룰 수 없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가 내적 향상을 아무리 잘 이루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도움이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부터 온유하고 경건하게 그것을 갈망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도움을 주신다.”(같은 책)  

그럼 어떻게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것인가. “이는 눈물의 골짜기에서 그것을 간절히 염원하는 것으로, 열렬한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같은 책) 프란치스코 성인의 하나님께로 가는 여정은 성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시작되었다.

기도를 하면 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가? 하나님은 완벽함 그 자체다. 하지만, 보나벤투라는 여느 신학자처럼 그를 초월적 절대자로 보지 않았다. 하나님은 나와 관계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며 그 매개는 갈망과 사랑이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은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을 더 깊이 소중하게 여기도록 우리를 이끌고, 우리가 일부분을 이루는 이 세계로부터의 분리가 아니라 관계를 맺도록 안내한다.”(폴 루트, <프란치스코와 보나벤투라>) 

하나님을 갈망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의 본성은 최고의 선이고, 그 선 가운데 최고는 사랑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선으로 충만하다. “완전한 사랑은 다른 모든 것을 완전으로 이끈다.”(보나벤투라, <세 가지 길>) 완전한 사랑으로 충만한 하나님은 기도를 통하여 인간과 소통하며 사랑으로 불완전하고 미숙한 인간을 껴안고 은총을 베푼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사랑을 통하여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은 진리에 다가가게 되고, 그 사랑 속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한다. 이 사랑은 이성적 사고가 아니라 감성의 체험 속에서 일어나기에 그 사랑 속에 있는 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성 도나토(Saint Donato) 성당의 종탑과 그 앞 광장.

|   지눌의 돈오점수와 비교

보나벤투라의 책을 읽으면서 거의 같은 시대에 멀리 고려의 땅에서 비슷한 주제로 번민을 했던 지눌(知訥, 1158~1210) 대사가 떠올랐다. 

 “참 마음의 본체에는 두 가지 작용이 있는데, 첫째는 자성의 근본 작용이요, 둘째는 인연을 따르는 응용작용이다. 이는 마치 거울과 같으니 거울의 성질이 자성의 본체요, 거울이 밝게 비추는 것은 자성의 작용이며, 밝음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그림자는 인연에 따른 작용이다. … 이것을 마음에 비유하면 마음이 항상 고요한 것은 자성의 본체요, 마음이 항상 아는 것은 자성의 작용이요, 그 알음으로 말하고 분별하는 것 등은 인연에 따른 작용이다.” (지눌, <法集別行錄節要 幷入私記>, <한국불교전서> 4권)

거울이 지닌 본성은 자성의 본체다. 나무가 자신이 지닌 본성에 따라 광합성을 하듯, 거울이 모든 사람과 사물을 그 모습 그대로 밝게 비추는 것은 그런 거울의 본성이 작용한 것이다. 거울이 빛과 대상 사이의 연기적 관계에 따라 그림자를 드러내는 것은 인연에 따른 작용이다. 마음이 항상 고요한 것은 자성의 본체다. 그런 본성에 따라 마음을 부려서 이치를 깨닫는 것은 자성의 작용이다. 사물 및 타자와 관계에 따라 말하고 분별하는 것은 인연에 따른 작용이다. 지눌은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에서 문답을 통하여 까마귀와 까치의 우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로 들어가서 어떤 소리도, 분별도 얻을 수 없는 공(空)한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체론적 사고가 압도하는 기독교 사상계에서, 폴 루트가 “관계성이 그의 인식론의 중심”이라 평가할 정도로 보나벤투라가 관계를 중시하면서 불교와 통할 수 있는 ‘틈’을 마련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눌 대사와 보나벤투라 성인은 모두 부처님이나 하나님을 만나고 참 진리에 이르는 길을 놓고 번민하였다. 꽃과 풀에 불성(佛性)이나 하나님이 깃들었다고 보며 거기서 부처님이나 하나님, 진리나 실재를 찾는 것은 보나벤투라와 지눌이 서로 통한다. 부처님 또는 하나님이 이성 저 너머에 있다고 보고 참된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도 유사하다. 차이라면, 보나벤투라가 망아적 인식·감성·사랑을 한데 아우르고자 한다면, 지눌은 해오(解悟)와 증오(證悟)를 진여(眞如)에 이르는 두 방편으로 삼는다. 깨달음과 수행을 종합한 것도 비슷하다. 보나벤투라가 망아적 인식과 기도와 묵상, 수행을 통하여 하나님과 진리에 다가가고자 하였다면, 지눌은 단번에 깨우치는 돈오(頓悟)와 그럼에도 번득이는 번뇌를 없애는 점수(漸修)를 하나로 아울렀다. 하지만, 보나벤투라는 관계를 중시하였지만 연기적 인식으로 나아가지 못하였고, 사물들의 체(體)가 인연에 따라 작용을 하고 상(相)을 형성하고 이것이 다시 체를 품는 역동적인 관계를 파악하지는 못하였다. 

아무튼, 치비타로 향하는 노정은 바로 하나님과 부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여정이었다.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완전한 사랑은 다른 모든 것을 완전으로 이끈다.”라는 말을 얻은 것만으로도 행복한 여로였다.

집의 대부분이 지진으로 무너져 내려 돌담과 철문만 남은 보나벤투라 생가.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현재 지순협 대안대학 이사장,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 한국언어문화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한국기호학회 회장•〈불교평론〉편집위원장•한국학연구소장•〈문학과 경계〉주간을 역임했다. 원효학술상•유심학술상 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화쟁기호학,이론과 실제〉•〈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등이 있다.

글·사진 이도흠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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