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밥그릇에 담긴 불심

유금순 어르신이 강북노인복지관에서 배식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봉사활동은 또 하나의 내 인생
“즐거워서 멈출 수가 없어요.”

유금순(69) 어르신은 천태종복지재단 산하 시립강북노인복지관(관장 종세 스님)에서 15년째 봉사를 하고 있는 왕고참 자원봉사자다. 지난 10월 23일 점심 배식봉사를 하는 유 어르신을 만났다. 그녀는 매주 수요일 복지관에서 배식봉사를 하고 있다. 

“남을 돕는 일을 ‘봉사’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고, 몸이 먼저 움직였어요. 아마 어릴 때 항상 어머니를 등에 업고 다니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혀서 누군가를 돕는 게 습관이 됐나 봐요.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누군가를 도울 기회들을 피하지 않게 되더군요.”

유금순 어르신은 전남 곡성의 산골마을에서 칠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녀를 임신했을 때 불의의 사고를 당해 혼자서는 걷지 못할 정도로 다리가 불편했다. 그녀는 어릴 때 간혹 ‘네가 아니었다면, 어머니 다리가 불편해지지 않았을 거다.’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내가 어머니를 잘 돌봐야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를 늘 업고 다녔는데, 동네에 가정적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유금순 어르신은 29살이 되던 해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부부가 함께 의지하며 살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남편은 술을 좋아했는데, 간혹 술이 과할 때는 폭력적으로 변해 그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기도 했다. 남편이 일을 하지 않고, 술에 의지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가정형편도 덩달아 어려워졌다. 일자리를 수소문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나중에는 이웃의 아이를 봐주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봉사로 우울증 극복

오랜 세월 몸과 마음이 지치다보면 병이 생기기 마련. 남매를 둔 그녀가 오십줄에 접어들었을 무렵, 당뇨와 함께 우울증이 찾아왔다. 하지만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싶지 않아 더 밝게 행동하고 웃으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동네 어귀에서 한 국숫집 사장님이 ‘칼국수면’을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그녀는 국수를 나눠주는 사장님에게 따뜻한 커피를 건네며 “고생이 많으세요. 좋은 일 하시네요.”하며 말을 걸었다. 그리고 “왜 면을 무료로 나눠 주느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만두를 만들고 남는 밀가루가 그냥 버려지는 게 아까웠다.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국수 한 그릇 대접하자.’는 생각에 면을 나누게 됐다.”고 대답했다.  

어르신은 ‘봉사활동이 즐거워서 멈출 수가 없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마음속에 어떤 울림 같은 게 느껴졌어요. 그날 이후로 그 사장님이 국수를 나눠줄 때 한두 번씩 돕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국수를 나눠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도 하고, ‘맛있게 드시라’고 덕담을 건네면서 우울증 증세가 점차 나아졌어요. 결국 봉사활동을 통해 우울증을 극복한 거죠.” 

남편은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러 다니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엄마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우울증이 나은 걸 아는 남매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우울증이 나았잖아요.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게 훨씬 좋지요.”라며 엄마 편을 들어줬다. 

주변에서도 “좋은 일 한다.”고 칭찬 일색이었다. 그녀는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후 매일이 즐거웠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건강은 더 좋아졌다. 원체 사람을 좋아했는데, 봉사활동은 그런 성격과도 잘 맞았다. 그렇게 봉사활동은 그녀에게 또 하나의 세상으로 다가왔다. 

복지관 배식봉사만 15년째

유금순 어르신은 복지관 배식 봉사 외에도 다른 날에 다른 봉사조직과 함께 △거리 청소 △국수 나눔 △푸드뱅크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녀에게 봉사활동은 또 하나의 인생이자 삶의 에너지원이다.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별의별일을 다 겪게 된다. 배식 받으려 줄을 선 사람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어떤 이유로 고함을 치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청소를 하는 앞에서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던지고 가는 사람도 있다. 봉사활동을 하는 입장에서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

“봉사활동을 한다고 항상 즐거운 일만 생기지는 않아요. 자신이 당연한 권리를 누리는 듯 행동하는, 예의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도 많아요. 그래도 그런 사소한 일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아요. 봉사활동은 그 자체로 행복이고, 보물이니까요. 저의 행복(봉사활동)을 지키려면 제가 좀 더 단단해져야 하지 않겠어요?”

유금자 어르신의 긍정 에너지는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녀가 봉사활동을 함께 하자고 권유했을 때 손사래 치던 사람이, 지금은 같이 가자고 먼저 찾아온다. 또 그녀가 신바람 나게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자발적으로 따라나서는 사람도 생겼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렇게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난 덕분에 5년 전 ‘우리가족봉사단’의 단장을 맡게 됐다.

유금순 어르신은 배식봉사를 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도 하고, ‘맛있게 드시라’는 덕담을 건네기도 한다.

우리가족봉사단은 15년 째 매주 수요일 강북노인복지관에서 어르신들 배식봉사를 담당하는 팀이다. 활동하는 단원 중에는 어르신과 십여 년 동안 함께 봉사활동을 한 지기도 있다. 총 12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맏언니가 78세 막내가 52세다. 

유금자 어르신은 봉사활동을 가지 않는 날 더 분주해진다. 김치를 담가 이웃과 나누기도 하고, 혼자 사는 어르신을 찾아가 말동무도 해드리고 청소도 돕는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잘 먹고, 잘 살다 다음에 또 만나자.”가 좌우명이라는 유금자 어르신. 그녀는 자신의 힘이 닿을 때까지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남은 인생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채우고 싶다고도 했다. 봉사활동이 즐거워서 멈출 수 없다는 유금자 어르신의 환한 미소가 한 송이 연꽃처럼 아름답다.

시립강북노인종합복지관은?

서울시가 2000년 개관했으며, 2009년부터 천태종복지재단이 수탁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60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회원제로 운영 중이다. 현재 복지관은 노인사회활동지원·주거환경개선사업·데이케어센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복지관 이용을 원하는 사람은 신분증을 가지고 복지관에 방문하면 된다. 

후원계좌(예금주ㅣ시립강북노인복지관)

신한은행 100-033-317008
기업은행 310-058500-01-354 
우리은행 1005-103-479323 
후원문의 02-999-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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