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밥그릇에 담긴 불심

원각사무료급식소 앞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모두 점심을 먹기 위해 번호표를 받으려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탑골공원은 노인들의 휴식처,
 급식소는 무료한 생활 활력소”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0월 7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 탑골공원 북문에 위치한 원각사무료급식소 앞에는 배식시작 시간이 한 시간 반이나 남아 있음에도, 배식 번호표를 받으려는 어르신 수십 명이 늘어서 있었다. 오전 11시부터 번호표 250장을 나눠준 후 11시 30분부터 배식을 시작하는데, 배식이 부족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뒤늦게 줄을 서면 자칫 배식을 못 받을까하는 걱정에 대부분 줄서기를 서두른다. 유법종(83) 어르신도 그곳에 우산을 쓰고 서 있었다.

점심 한 끼 먹으러 새벽에 집 나서

“나이가 드니까 자꾸 아픈 데만 늘어요. 젊은 사람도 직장 구하기가 힘든 판에 여든 넘은 노인을 써주는 곳이 있을 리 없고, 그렇다고 하루 종일 집에 있기는 무료해서 친구도 만날 겸 운동 삼아 나왔다가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먹고 있어요. 가족들이 집에 모이는 특별한 날이 아니고선 주말과 공휴일에도 나와서 점심을 먹고 들어가곤 합니다.”

유법종 어르신은 가족이 집에 모이는 특별한 날이 아니고선 주말과 공휴일에도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그는 서울 군자역 인근에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매일 새벽 5시 32분 군자역에서 첫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역에 내려서 탑골공원으로 나온다. 무료급식을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 종로에 나와 조계사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기도 하고, 광화문 광장에 가서 나눠주는 신문을 읽기도 한다. 간혹 창덕궁 옆 원서공원에 설치된 야외 운동기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유법종 어르신은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짓다가 40대 중반에 강원도 삼척 도계탄광에서 석탄을 캤다. 땅 밑 수백 미터 아래 갱도로 내려가 막장에서 석탄을 채굴하는 작업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자칫 갱도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는 어두운 탄광에서 석탄가루를 마시며 열악한 환경을 참고 버텨냈지만, 정작 그를 견디기 힘들게 한 것은 부모형제의 걱정이었다. 

“30년 전만 해도 석탄산업이 번성할 때라 연탄을 안 쓰는 집이 없었어요. 수요가 많은 만큼 작업환경도 좋아야했지만, 현장은 그렇지 못했어요. 항상 사고위험에 노출돼 있다 보니 현장에만 나가면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실제 제가 일을 할 당시만 해도 사고가 발생해 사람이 여럿 죽어나갔어요. 정확히 3년 3개월 5일 만에 그만두고 나왔어요.”

보통 평일에는 250여 명, 휴일에는 300여 명의 어르신들이 끼니를 해결하기위해 원각사무료급식소를 찾는다.

그는 탄광촌에서 나와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동생의 손위처남이 근무하던 서울의 한 건설사였다. 손재주가 뛰어났던 덕분에 그는 건설현장에서 장비의 고장이 발생하면 수리를 도맡아 처리했다. 타일·벽지도배·천장공사 등 건축현장의 다양한 분야에서 웬만한 전문기술자 못지않았다. 그렇게 신축현장을 오가며 20여 년 넘게 일하다가 현직에서 물러났다. 슬하에 2남 1녀를 뒀는데, 모두 자리를 잘 잡아서 곧잘 용돈도 보내온다. 

솜씨가 좋은 아내는 젊어서 옷 만드는 일을 했다. 그 덕에 일감이 끊이지 않아 지금도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쓰고 재봉틀로 도포 따위를 만들어 용돈벌이를 한다. 국가에서 나오는 연금에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보태면 생활에 부족함은 없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원각사무료급식소를 찾는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원각사무료급식소를 찾아가는 건 아니에요. 나이가 들면 잠도 줄기 마련인데, 시간은 남아 돌다보니 너무 무료했어요. 탑골공원에 가면 또래 노인들이 무척 많아요. 바둑과 장기를 두는 이도 있고, 무리지어 낮술을 한 잔씩 걸치는 이들도 있지요. 이런저런 모습을 지켜보다보면 내가 늙었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몸에 활력도 생깁니다. 
급식소에서는 가끔 특식도 나옵니다. 후원자들이 음식을 보내올 때도 있고, 생일을 맞은 어르신의 가족이 음식을 보내오기도 해요. 형편이 어려워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나오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처럼 집에 있기 심심해서 나오는 노인들도 꽤 되나 봐요.” 

오후 1시가 되자 급식소에서 식사를 마치고, 따뜻하게 속을 채운 어르신들이 탑골공원 곳곳으로 흩어졌다. 유법종 어르신도 이들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1년 365일 운영하는 어르신들의 쉼터 

사회복지법인 원각(대표 원경 스님, 심곡암 주지)이 운영하는 원각사무료급식소는 이용대상을 특별히 제한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르신들 외에도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탑골공원에 나왔다가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유법종 어르신도 그런 분들 중 한 분이다.

10월 14일 메뉴로 부드러워 씹기 좋은 강된장 비빔밥이 나왔다. 메뉴에서도 치아가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한 배려가 엿보인다.

원각사무료급식소는 1년 365일 운영한다. 그렇다보니 봉사단체와 자원봉사자의 수도 많다. 현재 34개 단체, 45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순번을 정해서 무료급식을 돕고 있다. 자원봉사팀은 불교계 단체와 일반 단체가 반반 정도 되는데, 주로 비빔밥과 덮밥을 제공한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칼국수나 부대찌개를 제공하기도 한다. 

10월 7일에는 ‘무빙템플’팀이 자원봉사를 맡아 햄야채비빔밥을 제공했다. 채 썰어서 볶은 햄과 비름나물 무침에 무생채를 더해 먹음직스럽게 밥 위에 얹어 냈다. 거기에 홍합미역국 한 그릇을 더하니 진수성찬이다. 10월 14일에도 급식소를 찾았는데, 중앙로타리클럽팀이 자원봉사를 맡아 부추와 치커리를 얹은 강된장비빔밥에 북엇국을 곁들여 내놨다. 

간혹 기업에서 빵·두유·요구르트 등의 후원물품을 보내오면 식사를 든든히 한 후 두 손에 먹거리를 들고 급식소를 나서기도 한다. 급식소에서 식사를 하는 어르신이 생일인 날에는 그 가족이 떡을 보내와 고마움을 전달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동료 어르신들의 생일축하가 쏟아진다. 

번호표를 받은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고영배 사회복지원각 사무국장에 따르면 평일에는 250여 명, 비가 오는 날은 200여 명, 휴일에는 300여 명의 어르신들이 급식소에서 식사를 한다. 지난 9월에만 총 8,157명이 급식소를 다녀갔다. 연간으로 따지면 어림잡아 7만 명분의 식사를 제공하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고령화사회를 넘어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빠른 속도다. 전국의 기초생활수급자 180만 명 중 상당수는 생계가 막막한 어르신들이다. 그들에게 무료급식소는 몸과 마음의 안식처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겉으로 표현을 하지는 않지만, 날마다 자신들의 식사를 준비해주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유법종 어르신과 같은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탑골공원에 나오면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도 있고, 오가며 운동을 할 수도 있어서 정말 좋아요. 날마다 이곳을 찾다보니, 자꾸 고마운 마음이 무뎌지는 것 같은데, 이번 기회(인터뷰)에 모든 자원봉사자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원각사무료급식소의 점심 한 끼는 단순한 밥 한 끼가 아닙니다. 그 밥그릇에 자원봉사자 여러분들이 정성과 사랑이 듬뿍 깃들어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원각사무료급식소는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어르신들의 점심을 책임지고 있다.

원각사무료급식소는? 

사회복지원각이 운영주체로, 정부의 지원 없이 후원을 통해 운영해오고 있다. 1993년 노인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며 무료급식을 시작했는데, 2015년 임대계약 문제로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현재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어르신들의 점심을 책임지고 있다.

후원계좌(예금주ㅣ사회복지원각)

농협 301-0168-4929-11
국민은행 006001-04-282872
후원문의 02-762-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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