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서비스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마중물 같은 존재죠."

이웃과 나눔 주고받으며 살맛나는 지역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그녀, 조미화 사회복지사가 번동5단지 종합사회복지관 앞에서 웃어 보이고 있다.

마중물은 깊은 땅속에 있는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한 바가지의 물이다. 그 한 바가지의 물이 없다면 아무리 펌프질을 해도 물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물 한 바가지를 붓고 펌프질을 하면 지하에 고여 있던 수십 배의 물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지역사회 곳곳에서 이웃들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도 우리 사회의 마중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종합사회복지관은 주로 사업 특성에 따라 사례관리팀, 지역사회조직팀, 서비스제공팀으로 나누어 운영한다. 번동5단지 종합사회복지관도 이와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 중인데, 이번 호의 주인공 조미화(30) 씨는 서비스제공팀에 속해 아동·청소년 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을 위한 신규 서비스 발굴 등 특성화 사업을 개발하기도 한다.

|   요양원 봉사활동의 인연

조미화 씨의 어렸을 때 꿈은 사회복지사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운동을 좋아해 사회체육학과를 목표로 지도자 과정을 밟으려했는데,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차선의 선택을 한 게 사회복지학과였다. 그녀는 초등학생 시절 장래희망을 적는 곳이 있으면 항상 ‘축구선수’라고 적어 넣고는 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운동을 계속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무릎에 통증이 심해져 병원에 갔더니, 연골이 중년 이상의 손실 상태라고 설명했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치료를 받으면서 운동을 지속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녀는 운동을 하며 일로 지친 스트레스를 푼다. 서울특별시사회복지사협회 여자풋살대회 경기 직전 모습.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축구심판을 하셨어요. 30대 초반부터 20년 넘게 지금도 하고 계시죠. 아버지를 따라 축구장에 자주 놀러 가다보니 운동 중에서도 특히 축구를 좋아했어요. 그 외에도 농구·양궁·씨름·검도·볼링 등 안 해 본 운동이 없어요. 운동하는 걸 반대하셨던 엄마 모르게 축구테스트를 보러 갔다가 혼이 나기도 했어요. 지금 와 생각해보니 경제적으로 힘들어 부모로써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해줄 거라는 판단에서 그러셨던 것 같아요.”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중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러 시민요양원에 갔다가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선생님’으로 불리던 당시 사회복지사를 도우면서 뭔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특별하게 맡은 역할은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즐거웠다. 초등학교 때 봉사활동을 다니던 부모님을 따라 영아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베이비박스(버려지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박스)에 유기되어 영아원에 오게 된 갓난아기들을 보면서 화가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어쩌면 그 경험이 인생의 항로를 결정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집안 환경도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빚보증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는데, 부모님은 그녀가 스스로를 챙기도록 가르쳤다. 특히 어머니는 일찍 할아버지를 여의면서 의지할 곳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1남2녀 중 장녀인 그녀에게 ‘부모가 평생 옆에서 지켜줄 수 없다.’며 자립을 강조했었다. 그 덕에 만화방부터 주유소·편의점·음식점 등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했다. 나름 바쁘고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기에 사회복지사가 되면 꿈을 잃은 아이들에게 꿈을 찾아줄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공부를 시작했다. 운동을 하느라 다른 친구들에 비해 공부가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각 과목 선생님들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기초를 다졌다.

그녀는 지역 내 보호가 필요한 저소득 청소년의 방과 후 활동사업과 한부모가족지원사업 등을 담당하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진로상담 때 사회복지학과를 가겠다고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수업에 없던 0교시를 만들어 공부를 시켜주셨어요. 당시 선생님께 ‘경제적으로 어려워 알바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자 라이온스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장학금을 받게 해주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 사비를 털어 마련한 ‘특별 장학금’이었어요. 인생에 멘토 한 명만 있어도 인생이 바뀐다고 하는데 저에게는 두 명의 멘토가 있어요. 시민요양원에서 만난 사회복지사가 씨앗을 주었다면, 고3 담임선생님께서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게 해주셨지요.” 

|   다양한 서비스 위해 자격증 획득

복지관에 찾아오는 이용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복지사 업무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전문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연결해주는 업무도 사회복지사의 역할이다. 결국 그녀는 원하는 분야로 나아가기 위해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부푼 꿈을 안고 들어간 첫 직장은 충남 아산 음봉면에 위치한 초원지역아동센터였다. 15개월 간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현장에서 실무경험을 쌓았다. 2015년 3월에는 다양한 복지현장을 경험해보기 위해 의정부 루시아참요양원에 지원했다.

번동5단지 종합사회복지관에는 2015년 10월 사회복지사로 오게 됐다. 이 종합사회복지관은 서울 강북구 도선사가 설립·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혜명복지원이 운영주체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지역 내 보호가 필요한 저소득 청소년의 방과 후 활동과 한부모가족지원, 학교 내 교육복지를 위한 협력을 돕는 네트워크 사업 등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종합사회복지관은 모든 주민을 두루 돌봐야 하는 곳이다. 병원으로 비유하자면 모든 진료과가 한 곳에 모여 있는 종합병원처럼 아동·청소년·노인 등 모든 계층을 위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두루 경험할 수 있는데, 그녀는 이를 위해 미술치료사 자격증, 전문코치자격증, 에니어그램 강사 자격증 등을 취득했다. 대중 앞에 서야 하는 일이 많아 레크리에이션 자격증도 땄다.

사회복지법인 혜명복지원에서 주최한 직원 단합회 ‘한마음 볼링대회’에서.

“저는 어린 시절 굉장히 소심한 울보였어요.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할 때면 항상 울음부터 터트렸어요. 사회복지사가 되어보니 주도적으로 앞에 나가 진행해야할 프로젝트가 많아요. 발표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혼자 거울을 보고 대화하는 연습을 하기도 하고, 동영상을 찍어 표정을 보면서 내가 쓴 단어를 대용할 다른 적절한 단어를 찾아보기도 했어요. 그래도 어려워서 상대방 미간과 인중에 점을 찍어 이야기를 해보기도 했어요. 다행히도 지금은 상대방 눈을 보면서 말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요.”

사회복지사는 ‘사람’을 상대로 일하는 휴먼서비스(Human Services)다. 그렇다보니 인간관계에서 뿌듯함을 얻기도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기도 한다. 같은 서비스를 제공해도 과도한 요구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왜 나에게만 도움을 적게 주느냐고 화를 내는 사람, 거기에 쌓여가는 업무로 야근이 많아질 때면 일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한다.

특히 사회복지사가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힐 때는 곤란을 겪기도 한다. 이럴 때는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의 감정에 최대한 공감을 표하며 돕고자 하는 진정성을 보여 주면,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더라도 고맙다는 인사가 돌아온다. 안타까운 사연을 듣다가 감정에 휩싸이면 눈물을 쏟기도 한다. 그럴 때는 선배들에게 야단을 맞는다. 상대의 마음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복지사가 마음이 약해지면 명철하게 대처해야 할 일을 앞에 놓고 정작 중요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조치를 취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응원 한마디, 복지사에 큰 힘

지금도 가끔 위기의 순간이 찾아올 때면 처음 사회복지사를 시작할 때 받았던 한 통의 전화를 떠올리곤 한다. 그 전화 한 통은 사회복지사가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특히 꿈을 키우는 아동·청소년의 인생을 조금이지만 긍정적으로 바꿔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게 했다. 

어느 날 밤 9시쯤, 한 남학생이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도 선생님 같은 사회복지사가 되어서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돕고 싶다는 요지의 전화였다. 당시 휴가를 보내고 있던 그녀는 자신이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 큰 희망이 되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그날 나눴던 전화 한 통을 떠올리는데,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조미화 복지사는 ‘내가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괴롭고 힘들었던 시간보다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도움을 줬던 학생이 멋진 청년이 되어 찾아와 감사인사를 전해줬을 때 큰 보람을 느꼈어요. 그럴 때면 사회복지사를 하길 참 잘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업무가 많아서 힘든 순간에도 가슴 뿌듯한 몇 장면을 떠올리면 다시 또 힘이 샘솟곤 하지요.”

이외에도 고맙다는 인사를 아끼지 않는 마음 따듯한 학생들을 만날 때 굉장히 뿌듯하다. ‘처한 환경 때문에 어렵고 힘들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생각을 바꾸게 됐다.’는 편지 한 장, 선생님 덕분에 꿈을 키워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 어머니들의 응원이 담긴 쪽지 한 장은 그녀가 신이 나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살아오며 받았던 감사한 것들을 언젠가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조미화 씨. 그녀는 향후 모교인 남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의 선배이자 교육자로서 강단에 서고 싶다. 그녀는 이를 위해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과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 사회복지사는 메마른 대지에 샘물을 솟아나게 하는 마중물처럼 밝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녀의 소박하면서도 듬직한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돈다.

“제가 하는 일이 세상을 조금 맑고 밝게 만드는데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회복지사는 말 그대로 우리 사회가 인정(人情)이 넘치는 동네, 힘들어도 살만한 세상이 되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나눔을 주고받을 이웃을 찾아 열심히 뛰어다니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요. 천천히 오래, 조바심 내지 않고 가려고 해요.”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