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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그땐그랬지6_할아버지의 도깨비와 머슴들의 도깨비281호

“도깨비들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성정을 가진 족속이다. 도깨비는 암수를 불문하고, 평생 동안 십대 청춘들처럼 피가 끓기 때문에 성정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도록 산만해서 가만히 놔두면 인간 세상에 문득 끼어들어 엉뚱한 사고를 저지르곤 한다. 도깨비는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고 감성적인 존재들이다.”

나의 할아버지는 우리 민족의 삶 속에 깃들어 있는 도깨비의 존재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했다. 

도깨비들의 울력 

도깨비나라 정부는 기운이 넘쳐나는 도깨비들을 관리해야 한다. 도깨비들은 인간 세상에 기생하면서 인간 세상의 질서를 헝클어놓곤 하는 것이다. 도깨비는 시기 질투와 심술이 많다. 가령, 인간의 어떤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도깨비들은 심술을 부려 방해를 한다. 농사가 너무 잘 되면 그것을 짓밟아놓기도 하고, 고을원님이 배고파 허리띠 졸라매고 사는 백성들을 동원해서 기껏 성을 쌓아놓으면 허물어뜨려 놓기도 하고, 물을 가두기 위해 쌓아놓은 둑을 허물어뜨려 놓기도 한다. 그런데 그 도깨비들을 잘 이용하기만 하면, 심술이 나서 기껏 허물어뜨린 성이나 보(洑)를 다시 쌓아놓기도 한다. 

도깨비나라 왕은 부하 도깨비들이 친 사고 때문에 옥황상제한테 자주 꾸중을 듣곤 한다. 도깨비나라 왕은 부하들이 그 엉뚱한 짓거리나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도깨비들에게 밤마다 힘든 울력을 시킨다. 도깨비들은 계속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어야만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므로. 

전라남도 장흥에 위치한 덕도와 우산도 사이에는 두 개의 둥그런 섬이 있는데 하나는 ‘큰 도리섬’이고, 다른 하나는 ‘작은 도리섬’이다. 두 섬 사이는 어른 걸음으로 한 천 걸음쯤 떨어져 있다. 

이 땅의 도깨비나라 왕은 그 두 개의 섬을 이용해서 도깨비들을 관리하곤 했다. 하룻밤 사이에 두 개의 섬을 하나로 만들어놓으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항상 힘이 넘쳐나는(광기어린) 도깨비들은 충직하면서도 우직한 데가 있어서 자기네 왕의 명령에 따라 미친 듯 열심히 일을 한다. 지성이 없는 그들은 왜 이 일을 해야 하느냐고 따지지도 가리지도 않는다. 그들은 한밤중에 두 섬을 한 개의 섬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이 순간 도깨비나라 왕은 일을 마친 도깨비들이 흩어져서 사람들을 해치는 엉뚱한 사고를 칠까봐, 하나로 만들어놓은 섬을 다시 둘로 갈라 만들어놓으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도깨비들은 “아니 왜 기껏 하나로 만든 것을 다시 둘로 갈라놓으라고 하느냐?”하고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왕의 지시에 따라 그것을 다시 둘로 만드는 작업을 미친 듯이 한다. 그 일을 먼동이 틀 때까지 완성한다. 해가 뜨면 햇빛으로 인해 (어둠 속에서만 힘이 넘치는 성정인) 도깨비들의 기가 급격히 약해지므로 그들은 그늘 속으로 숨어들어 잠을 자야 한다. 그늘로 스며들어 잠을 자지 않으면 그들은 소멸되는 존재들인 것이다. 

도깨비나라 왕은 그의 부하들이 밤마다 ‘큰 도리섬’과 ‘작은 도리섬’을 하나로 만들었다가 다시 둘로 되돌려놓는 동어반복의 울력이 인간들에게 발각될까 걱정이 되었다. 부하 도깨비들이 엉뚱한 짓을 하여 인간들을 괴롭히지 않도록 밤이면 어떤 중노동인가를 시키기는 시켜야 하는데, 인간들이 많이 살지 않은 외딴 곳으로 이끌고 가서 일을 부려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도깨비나라 왕은 동해에 있는 독도와 비슷한 섬을 점찍었다. 어느 날 왕은 도깨비들에게 동해의 그 섬으로 몰려가서 울력을 하라고 명령했다. 충직한 도깨비들은 모두 그리로 몰려갔고, 그 뒤부터 덕도와 우산도 사이의 두 개의 섬은 지금의 모양을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  

“사실 도깨비들은 지금도 독도 비슷한 두 개의 섬을 밤새도록 하나로 만들었다가, 그것을 해 뜨기 직전까지 다시 둘로 갈라놓는 작업을 하곤 한단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나는 도깨비의 존재와 그들의 성정에 대하여 늘 생각하곤 했다. 우리 선인들은 어떻게 그러한 도깨비의 존재를 만들어냈을까? 우리 인간에게도 그 도깨비들의 성정이 내포되어 있지 않을까? 

어른이 된 다음, 어느 날 문득 내 속에 도깨비를 닮은 검은 그림자 같은, 어둠 속에서 힘이 넘치는 무언가가 들어 있음을 느꼈다. 나도 알 수 없는 어떤 에너지였다.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의 무의식 세계에 들어 있는, 또 다른 나의 힘이기도 하고, 그리스로마신화 속에 나오는 디오니소스(바쿠스) 신 같은 존재.  

그것은 훗날 나의 단편소설 <물 아래 긴 서방>과 장편소설 <도깨비와 춤을>의 한 원소가 되었다.

방안퉁수 방지법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방에서만 사는 유순한 내가 방안퉁수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 듯싶었다. 나에게 동무를 널리 사귈 줄 알아야 한다고, 할아버지 방에서만 사는 국민학교 4학년생인 나를 마을의 사랑방으로 내몰았다. 

<삽화=전병준>

“사람은 동물이라, 이리저리 움직여야 분수가 있지, ‘방안퉁수(외부 사람들과 사귀지 않고 방에만 콕 박혀 지내는 사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살면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도, 능수능간(能手能幹)도 생기지 않는다. 농투성이나 머슴들한테서도 배울 것이 있는 법이다.”

아버지는 큰아들인 형은 할아버지의 방에서 자도록 놔두고, 작은 아들인 나만 밖으로 내몰았다. 큰아들인 형과 작은 아들인 나에 대한 그 차별은 이후 계속되었는데,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어 하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저녁밥을 먹은 다음 책보자기를 들고 마을의 한 사랑방으로 갔다.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오막살이집 동무들과 십칠팔 세 전후의 머슴(총각)들이 모여 자는 사랑방이었다. 마을에서 두 번째 부자라는 집의 사랑방이었는데, 쇠죽 쑤는 부엌에 딸린 방이므로 초저녁부터 방바닥이 후끈후끈했다. 그 집 머슴이 불을 잘 지펴놓은 것이었다.  

방 앞의 툇마루 옆에 커다란 질그릇 오줌통이 있었다. 머슴들은 문을 열어놓은 채로 그 통에 오줌을 갈겼는데, 시큼한 오줌 냄새가 방으로 곧장 날아 들어오곤 했다. 집 주인은 오줌통이 가득 차면 그것을 측간 합수통으로 옮겨 부었다가 밭에 뿌리곤 했다. 

몇몇 아이들이 나처럼 책보자기를 들고 왔지만, 그 사랑방은 공부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그 방에 모여든 머슴들은 방귀 시합을 하고, 방귀에 불을 붙이는 놀이를 했다. 보리밥에 깍두기김치를 먹는 머슴들은 방귀를 자주 뀌었다. 편을 갈라서 방귀시합을 한 결과로 두부 사내기, 국수 사내기를 했다. 방귀를 뀌는 순간 성냥불을 항문 가까지 대면 파란 불꽃이 일어났다. 파란 불꽃이 일어나면 모두 손뼉을 치며 웃어댔다. 

머슴들은 수가 많았으므로 가새질러 칼잠을 잤다. 잠을 자면서는 한 머슴이 이야기를 했다. 그들 가운데는 이 사랑방 저 사랑방을 옮겨 다니곤 하는 머슴이 있어, 거기에서 듣고 온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마을의 머슴들 가운데는 상머슴이 있고, 새끼머슴이 있었다. 상머슴은 상머슴끼리, 새끼머슴은 새끼머슴끼리 어울려 또래의 머슴아들(사내아이)과 더불어 사랑방을 점유했다. 

머슴들의 도깨비 

머슴들도 도깨비 이야기를 했다. 머슴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도깨비의 성정과 역할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할아버지가 들려준 도깨비의 그것과 많이 달랐다. 

한 고을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의 어구 움막에 두 과부가 살았다. 시어머니 과부와 며느리 과부였다. 젊은 며느리 과부는 모퉁이 방에 살고, 시어머니 과부는 안방에서 살았다. 며느리 과부는 밤마다 슬프고 외로워서 소리를 죽여 느껴 울었다. 시어머니는 누군가가 며느리의 방에 드나들세라 귀를 쫑그린 채 잠을 사로자곤 했다. 

시어머니는 날이 새면 아침을 먹자마자 며느리를 앞세우고 콩밭에 김을 매러 갔다. 고구마 순을 놓기도 했다. 밭은 소나무 숲과 잇닿아 있었다. 음흉한 장난을 즐기는 도깨비는 젊은 과부의 그림자 속에 모습을 감추고 따라다녔다. 

두 과부가 한창 밭을 매는데 밭둑에 깃들었던 꿩이 푸드덕 날아갔다. 며느리 과부가 “아따 저놈 잡아 꿩탕을 해묵었으면 좋겄네.”하고 혼잣말을 했다. 그녀는 소갈증을 앓고 있었다. 소갈증은 오랫동안 고기를 먹지 못하여 어지럽고 묽은 침을 흘리곤 하는 증세였다. 

며느리의 말을 들은 시어머니가 “우리가 남의 살 맛본 지가 언제, 언제 적 일이냐?”하고 넋두리하듯 말했다. 순간 젊은 며느리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도깨비가 짓궂은 일 하나를 생각했다.
그날 밤, 그 도깨비는 자기 동무들과 함께 가엾은 과부 시어머니와 과부 며느리를 도와주기로 했다. 읍내 푸줏간으로 가서 은밀하게 갈비 한 짝을 훔쳐 가지고, 두 과부의 집으로 달려와 부엌문 앞에 놔두고는, 바야흐로 날이 새고 있었으므로 측간의 검은 그늘 속으로 숨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지으려고 나간 며느리 과부는 부엌문 앞에 놓여 있는 쇠갈비 한 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대목에서 다른 머슴이 끼어들어 이야기를 전혀 다른 쪽으로 이끌었다. 부엌문 앞에는 짓궂은 도깨비들이 가져다 놓은 남근 한 무더기가 쌓여 있었는데, 그것은 공동묘지의 남자들 무덤에서 도깨비들이 발굴해 모아온 것이었다고.

이렇게 잠시 두 머슴 사이에 입씨름이 벌어졌는데, 처음 이야기를 시작했던 머슴의 입심이 더 좋았다. “도깨비라는 놈들이 세상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야하게 사는 족속이 아니고 다분히 의기 있는 족속”이라는 쪽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하지만 도깨비들이 부엌문 앞에 가져다 놓은 것이 남자들의 남근이라고 한 머슴은 지지 않고 대들었다. 그는 “도깨비들은 음험한 의지를 가진 족속”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이 가장 많은 머슴이 나중에 끼어든 머슴에게 “주둥아리를 닫으라.”고 꾸짖었고 처음 이야기를 시작한 머슴이 주도권을 되찾았다.

부엌문 앞에 떨어져 있는 쇠갈비 한 짝을 발견한 며느리는 시어머니 방문 앞으로 달려가 “어머님 이것이 뭔 일이라요? 누가 쇠갈비 한 짝을 가져다가 놨소.”하고 고했다. 

시어머니는 간밤 한밤중에 무언가 마당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듯싶었다. 그렇다면 ‘나 몰래 며느리와 정을 나누고 사는 어느 놈이 간밤에 다녀가면서 가져다가 두었거나, 아니면 고마운 도깨비들의 짓이거나 하리라.’ 생각했다. 시어머니는 근엄한 목소리로 “너 이리 들어오너라.”하고 말했다. 만일 어느 놈이 며느리와 정을 나누고 갔다면 아직 며느리의 몸에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남녀가 운우의 정을 나누고 나면 여자의 몸에 오래도록 남자의 냄새가 묻어 있는 것이다. 

<삽화=전병준>

며느리가 방으로 들어오자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몸 여기저기에 코를 가져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아무리 맡아도 불쌍하고 외롭게 찌든 과부 냄새밖에는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깨비의 짓이 분명하다고 시어머니는 생각했다. 쇠갈비를 가져다 준 도깨비는 필시 멀리 가지 않고 근처에 은신해 있으리라 생각했다. 시어머니는 그 도깨비에게 들으라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아이고 아이고, 우리 뒷골 다랑이 논에 쇠두엄을 좀 뿌려야 농사가 되거나 말거나 할 터인디, 소도 키우지 않은 우리가 무슨 수로 그리 할 꺼나. 둘 다 과부인 우리 처지에는 꼭 좋은 수가 하나 있기는 있는디. 아이고 아이고.”

‘대관절 무슨 좋은 수가 있기는 있다는 것인가?’하고 궁금해 하면서도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달래느라고 “어머님, 우리가 이때까지 무슨 요행을 바라고 살아왔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않든가요? 고정하시고 잠시 기다리십시오. 갈비탕이나 푹 끓여 올께라우.”

시어머니는 아직도 울면서 말했다.

“이 세상의 모든 길바닥이란 길바닥에 깔려 있는 개똥 쇠똥을 모두 주워서 우리 논에 깔면 농사가 아주 잘 될 터인데, 아이고 아이고.”

그 날 삼시세끼 모두 갈비탕을 맛나게 먹고, 다음날 아침에 뒷골 논엘 가보니 논바닥에 쇠똥과 개똥들이 꺼멓게 깔려 있었다. 측간에 숨은 도깨비가 동무들을 데리고 다니며 세상의 모든 쇠똥과 개똥들을 주워 뿌려둔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을 알아챈 시어머니는 논바닥에 주저앉아 울면서 말했다. 

“아이고 하느님, 고맙고 황공하옵니다. 그런데 우리 두 과부는 힘이 없어 땅을 파 일구지도 못하고, 소 부리는 인부를 사서 일굴 수도 없는데 어떻게 농사를 짓겠어요? 그래도 어쩔 것이요? 내일부터는 우리 과부 둘이서 죽으나 사나 괭이로 일구어 봐야지요.”

다음날 아침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가보니 그들의 다랑이 논바닥이 비단결같이 잘 일구어져 있었다. 그들은 도깨비 덕분에 그해뿐 아니라 평생토록 쇠고기를 맛있게 장복하고 살면서, 농사를 잘 지어먹고 살았단다. 그것은 시어머니가 도깨비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한승원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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