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서
‘대혜선사 글씨 보고 쓴 글’ 등 한시 2점 총 7점

사명대사가 승려 엔니에게 지어 준 법호.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사명대사 유정(四溟大師 惟政, 1544∼1610) 스님이 일본 흥성사 주지 원이 스님에게 내린 친필 법호 등 흥성사가 보관해온 사명대사의 유묵(遺墨)이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은 BTN불교TV와 함께 10월 15일 오전 11시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 로비에서 ‘일본 교토 고쇼지 소장 사명대사 유묵 특별전’을 개막했다. 개막식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밀양 표충사 주지 법기 스님, 일본 흥성사 주지 모치즈키 고사이 스님 등이 참석했다.

이날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개막식에서 사명대사의 업적을 조명하며 “우리는 오늘 포로로 잡혀간 3000여 조선 백성을 구하기 위해 1604년 망망대해, 대한해협을 건넌 사명대사의 결기ㆍ고뇌와 마주하고 있다.”면서 “사명대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쟁으로 무너진 선린우호를 회복하고 200년 동안 평화시대를 연 400년 전 그날처럼 반목과 갈등으로 대립하는 한일 양국에 이 전달식은 소통과 평화의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일본 흥성사 주지 모치즈키 고사이 스님은 “사명대사 유묵전을 통한 일한 양국 간의 문화적 교류는 서로를 위한 것이자 두 나라를 잇는 큰 힘이 될 것”이라며 “일본과 한국이 앞으로도 평화로운 관계가 구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도 “이번 ‘교토 고쇼지 사명대사 유묵 특별 공개’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백성을 구하고 조선과 일본 양국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면서 진정한 깨달음을 추구한 사명대사의 뜻을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공개되는 유묵은 사명대사로 잘 알려진 유정 스님이 임진왜란(1592-1598) 후 강화와 포로 송환 협상을 위해 일본에 갔을 때(1604-1605) 교토에 머물며 남긴 것이다.

상설전시실 1층 중근세관 조선1실에서 11월 1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특별전은 사명대사 진영(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과 고쇼지에 소장된 ‘사명대사 관련 유묵’ 등 총 7점이 선보인다. 그 중 5점은 사명대사의 유묵으로, 한시 2점(최치원의 시구, 벽란도의 시운을 빌려 지은 시)과 ‘대혜선사의 글씨를 보고 쓴 글’, ‘승려 엔니에게 지어 준 도호’, ‘승려 엔니에게 준 편지’ 등이다.

전시품 중 고쇼지를 창건한 승려 엔니 료젠(円耳了然, 1559-1619)이 쓴 <자순불법록>과 ‘승려 엔니에게 지어 준 도호’, ‘승려 엔니에게 준 편지’는 사명대사가 교토에서 일본 승려들과 교류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특히 ‘벽란도의 시운(詩韻)을 빌려 지은 시’는 임진왜란부터 10여 년 간 사명대사의 감회가 담긴 시로, 일본에서의 사명을 마무리한 뒤 속세를 정리하고 선승의 본분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명대사의 의지가 드러나 있다.

또 ‘사명대사가 대혜선사의 글씨를 보고 쓴 글’은 사명대사가 교토 고쇼지에 소장된 중국 남송의 선종 승려 대혜 종고(1089~1163)의 전서 글씨를 보고 감상을 적은 글이다. 사명대사는 이 글에서 중생을 구제하라는 스승 서산대사가 남긴 뜻에 따라 일본에 왔음을 강조하며, 사행의 목적이 포로 송환에 있음을 밝히고 사행을 떠나기 전 입적한 스승에 대한 절절한 추도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이끈 승병장이기도 했지만, 전란 중에도 전란 후에도 조선과 일본 양국의 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한 외교승이기도 했다. 결국 사명대사는 1605년 교토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담판을 지어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000여 명을 데리고 함께 귀국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개막식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일본 흥성사 주지 모치즈키 고사이 스님.
개막식 후 전시실 관람을 하고 있는 내빈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