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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발우공양의 정신과 그 미학
  • 김재권 능인불교대학원대 교수
  • 승인 2019.09.2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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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의 발우공양
대중문화 자리잡아
정신·미학 계승되길

요즘은 명상에 대한 관심과 웰빙 붐에 힘입어 종교적인 의미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쉽게 명상을 체험하거나, 정갈하고 몸에 좋은 사찰음식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생각할 때 참으로 뜻 깊고 반가운 일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사찰이나 불교계는 발우공양에 담긴 정신과 그 미학을 얼마나 잘 살리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본래 발우공양(鉢盂供養)은 전통적으로 사찰에서 스님들이 함께 행하던 공양의식을 말한다. 이러한 발우공양은 스님들이 매일 행해왔던 것인데, 이제는 생활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절 집안에도 널리 퍼진 탓인지 특별한 경우에만 행하는 공양의식이 된 것 같아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젊은 시절 사찰 수련회에 참가해 지도하는 스님으로부터 발우공양에 담긴 정신을 들었을 때, 머리가 쭈뼛 설정도로 느꼈던 그 감동은 지금도 선연하다.

사실 발우는 스님들이 사용하는 식기를 말하는데, 흔히 바리나 바리때라고도 한다. 발우는 네 개의 그릇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각자 자신에게 적당한 양의 밥·국·물·찬 등을 담는 역할을 한다. 대중공양을 알리는 종이나 목탁소리가 들리면 스님들은 각자 발우를 들고 정해진 자리에 앉는다. 죽비소리에 맞춰 발우를 펴고, 순서대로 천수물(발우를 씻는 물)부터 밥·국·반찬 순으로 정해진 발우에 담는다. 그리고 죽비소리에 맞춰 음식을 받기까지의 여러 인연공덕을 생각하는 오관게 등을 합송한 후 합장 반배하고 밥과 국·찬 등이 담긴 발우를 각기 들어서 조용히 공양을 한다.

이런 발우공양은 허기진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만 먹는 것이 아니라 도업을 성취하기 위한 자양분임을 일깨워준다.

인도에서 발우공양은 부처님 당시부터 탁발문화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오늘날에도 미얀마나 태국 등지의 남방불교권에서는 대중들이 함께 걸식을 한 후 모여 평등하게 음식을 나누어 공양을 한다. 이러한 문화전통은 수행자의 무소유 정신과 부처님의 뛰어난 정법을 계승하는 수행자의 몸가짐과 마음자세를 자연스레 익히게 한다.

하지만 인도와 달리 중국을 비롯한 한국이나 일본 등의 대승불교권에서는 문화적인 관습이나 시대적 식생활의 변화와 함께 각기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왔다. 이처럼 문화권에 따른 걸식문화의 전통적인 차이는 있더라도, 수행자가 발우공양을 통해 매일 되새기고 다짐하는 무소유의 정신과 도업을 성취하고자 하는 그 마음자세는 같다고 생각된다.

아쉽게도 오늘날 발우공양의 정신은 불가에서도 점차 생활문화의 변화와 편리함을 중시하는 시대적 풍조에 따라 소홀히 여겨지거나 퇴색해가는 실정이다. 최근 명상이 종교적 색채를 벗어나 일반인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듯이, 발우공양도 불가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 속으로 가깝게 다가와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래 발우공양이 가지고 있는 정신과 그 미학을 간과한 채, 단순히 몸에 좋은 건강한 음식이나 외형적으로 맛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이제는 발우공양이 현대인의 식생활에 자리 잡기를 기대하고 싶다.

김재권 능인불교대학원대 교수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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