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여실지견’의 태도로
기업인 윤리 성찰해야

이른바 ‘조국 사태’에 가려졌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이 일어났다. 현대·SK에 이어 CJ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가문’ 3, 4세들이 마약을 밀반입하거나 상습적으로 투약한 사실이 곰비임비 드러났다. 각각 고 정주영·이병철·최종현의 후손이다.

비단 ‘사내’들만 마약을 즐긴 것이 아니다.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도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됐다. 그만큼 그들 사이에 마약이 보편화해 있다는 추정은 ‘합리적 의심’이다.

문제는 바로 그들이 내일의 대기업을 물려받는 데 있다. 한국 경제는 대기업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그들이 흔들릴 때 곧장 국민 전체의 경제생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기업인들의 윤리가 다시 도마에 오르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불교는 기업인 윤리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 알고, 있는 그대로 보라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은 기업인 윤리를 성찰할 때도 큰 도움을 준다. 한국에선 대기업의 세습 경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정견이 아니다. 2세에서 3세, 4세로 이어지는 대기업의 세습 경영은 지구촌에서 결코 당연한 현상이 아니다.

기업 환경에 변화의 파고가 높은 21세기에 들어서는 더욱 그렇다. 당장 삼성전자와 국제적 경쟁이 한창인 애플을 짚어볼 일이다. 애플을 창업하고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사람은 스티브 잡스다. 그는 암으로 투병 끝에 숨졌는데 어떤가.

애플의 CEO는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국제기업으로 키운 동료가 맡았다. 미국의 글로벌 기업에서 이뤄진 기업 승계 방식이다.

물론, 세습 경영이 성공한 국제 사례도 있다. 이를테면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이 대표적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금융·건설·항공·가전·통신·제약 사업까지 스웨덴 주식시장 시가 총액의 40%, 국내 총생산의 30%를 점유하고 있다. 한국의 삼성 못지않은 거대기업이다.

그런데 ‘복지국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웨덴에서 발렌베리 가문에 국민적 반감은 거의 없다. ‘재벌’로 지탄받지도 않는다. 150년 넘게 5대에 걸쳐 가족이 경영권을 세습해 왔는데도 그렇다.

발렌베리 가문의 세습 비결은 무엇일까. 한때 삼성 이건희 회장이 발렌베리의 가족경영에 큰 관심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비밀의 핵심은 발렌베리가 가업을 물려받는 조건으로 내건 후계자의 자격이다. 발렌베리에서 후계자는 장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후계자의 자격으로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라’거나 ‘노동조합을 존중하라’는 원칙이 시퍼렇게 살았다. 학교 진학이나 학비, 생활비를 부모에 의존할 때는 후계자 자격이 없다.

한국 기업인들의 세습 경영은 세계적으로 보편적 현상이 아니다. 자녀에게 경영 능력이 없어도, 심지어 마약을 상습 복용해도 후손이라는 이유로 세습 체제를 구현해 간다면, 그들 가족이 탐·진·치의 굴레에 매몰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대기업 중심의 한국경제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세계화 시대의 경영 흐름은 기업인들에게 더 엄격한 윤리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 기업인들에게 여실지견의 지혜를 들려주어야 할 이유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