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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월을 향한 순례와 대화3_스콜라스티카와 노힐부득계율과 자비 사이에서 번뇌하다
  • 글  ·  사진 이도흠
  • 승인 2019.09.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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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라스티카 수도원의 회랑에서 바라본 종탑.

성인의 몸과 마음속으로 들어가다

베네딕토 성인이 욕정을 없애기 위하여 장미 넝쿨에 몸을 뒹군 수도원에서 욕망과 깨달음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어두울수록 별이 더욱 맑게 반짝이듯 고통이 클수록 깨달음이 깊어지지만, 모든 맥락에서 그럴까? 금욕과 자비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과연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금욕은 깨달음에 이르는 사다리인가? 장벽인가?

우리는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솟은 수도원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마치 베네딕토 성인의 몸 안을 순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인이 수행한 동굴인 사크라 스페코와 수도원의 벽과 천장에 가득한 그림에 깃든 서사와 관련된 말을 떠올리며, 성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보았다. 무엇보다 좁은 동굴에서 모든 욕망을 억누른 채 묵상하고 기도한 그 지극한 절제의 삶을, 〈베네딕토 규칙서(Regula Benedicti)〉에 담긴 은수자(隱修者)의 삶과 수행의 원칙에 한 자락이나마 다가가려 하였다. 〈베네딕토 규칙서〉 ‘머리말’의 한 구절이 계속 떠올랐다.

“주(主)의 가르침에서 결코 떠나지 말고,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그분의 교훈을 항구히 지킴으로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인내로써 한몫 끼어 그분 나라의 동거인이 되도록 하자.”

수도원의 벽과 천장은 기억과 말이 응축된 의미의 곳간이었다. 예수님과 베네딕토 성인이 이룩한 여러 기적들이 프레스코화로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었다. 13~15세기의 시에나 계파(Sienese School)의 그림들은 입체감과 원근감은 부족했지만, 장중하고 아름답게 예수님과 성인 베네딕토의 거룩함을 전해 주었고, 16세기의 페루지노 계파(School of Perugino)의 그림들은 원근법, 피라미드 모형, 명암대비를 통해 사실적이면서도 입체적으로 예수님과 성인의 모습과 관련 서사들을 재현해 아름답고도 성스러운 세계로 이끌었다.(〈영문 위키피디아〉·〈Uffizi Gallery-art, history, collections〉 참고)

스콜라스티카 수도원과 성녀 스콜라스티카의 동상. 베네딕토 성인은 성녀의 영혼이 비둘기가 되어 승천하는 환시(幻視)를 보고 누이동생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내용을 표현하고자 비둘기를 조각해 손 위에올렸다.

우리 일행을 가장 먼저 맞은 건 예수님·요한·마르코(마가)·루가·마태 등 네 사도였다. 예수님께서는 붉은 상의와 푸른 하의를 입은 채 왼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오른손은 엄지·검지·중지를 모아 삼위일체(Trinity)와 성육신(Incarnation)을 표시하고 계셨다.

사도 마태는 복음서를 기술하다가 옆의 천사가 들고 있는 잉크병에 펜을 담근 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사도 마르코(마가)는 금색 하의와 보라색 상의를 입고서 심각한 표정으로 복음서를 읽고 있다. 심각하기는 그 옆에서 호위하는 사자 또한 마찬가지다. 사도 요한은 반은 독수리 날개에 복음서를 받치고 평안한 표정으로 복음을 기술하고 있다. 금색 상의와 붉은 색 하의를 입은 사도 루가는 복음서의 한 구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데, 지진으로 벽 일부가 훼손된 바람에 루가 사도의 수호동물인 소는 발만 보였다.

시에네 계파의 그림.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받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들은 르네상스의 황금기를 아로새긴 페루지노 계파가 그렸다. 자연을 원근법으로 묘사한 배경에 네 사도를 피라미드 구도로 배치한 후 인물의 표정, 옷자락의 주름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질감과 양감을 모두 살렸다. 채색은 너무 화려하지도 질박하지도 않다. 얼굴 표정도 희로애락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묘사했다. 4대 복음서에서 기술한 바에 따르면, 예수님은 죄 많은 인류를 대속(代贖)하고 구원하러 온 구세주로, 모든 권력을 사랑으로 녹이는 왕으로, 인류를 선과 구원과 거듭남의 길로 인도하는 목자로, 길 잃은 양을 더 편애하는 자비심 많은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

페루지노 계파가 예수님을 그린 프레스코화.

이 수도원에서 가장 감동적인 곳이 사크라 스페코라면 프레스코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예수님 십자가형(刑) 장면, 프란치스코 성인의 초상화, 성녀 스콜라스티카의 에피소드를 그린 그림이다. 수도원 안으로 들어오자 예수님 십자가형 장면이 아치형의 천장 위에 장엄하게 그려져 있었다. 예수님은 죄수 2명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매달려 있다. 수많은 천사들이 날아들고, 실신한 성모 마리아는 성녀들이 돌보고 있다. 서민·상인·부자·말을 탄 기사 등 여러 계층의 남녀노소가 애도하는 가운데 악의 세력으로 묘사된 아랍과 터키의 군인과 상인도 몰려들고 있다.

위 수도원에서 아래 수도원으로 내려오다 보면 오른편에 사크라 스페코가 있고, 그 아래로는 계단이 있다. 이 계단이 바로 ‘거룩한 계단’이다. 고바오로 신부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는 위에서 아래로 힘들지 않게 왔지만, 순례자들은 아래로부터 무릎을 꿇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기어서 올라왔다고 한다. 필자 또한 몇 걸음 그리 하다가 이내 고통스러워 ‘사진을 더 찍어야 한다’는 말로 합리화하고는 일어났다.

페루지노 계파가 사도 요한을 그린 프레스코화.

거룩한 계단의 벽 한 귀퉁이에 예수님 다음의 성인의 위상을 갖는 프란치스코의 유일한 생전 초상화가 있었다. 1244년에 프란체스코 성인은 베네딕토 성인의 고독과 고통의 한 자락이라도 느끼기 위하여, 깨달음이나 거룩한 거듭남에 이르기 위하여, 베네딕토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적을 이루기 위하여 이곳을 찾은 모양이다. 그가 무엇을 얻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초상화가 전하므로 이런저런 상상을 해 볼 뿐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순수하고 커다란 눈망울, 내리뻗은 코, 야윈 볼, 꽉 다문 입을 한 채 방문객을 바라보고 있다. 한 발을 푸른빛의 수도복 밖으로 빼고 있는데 맨발이다. 왼손에 들고 있는 양피지에는 누가복음 10장 5절 “PAX HUIC DOMUI(이 집이 평안할 지어다)”이 적혀 있다. 그는 140센티 밖에 안 되는 작은 몸으로 세상의 모든 고통 받는 이들을 품었고, 결국 예수님의 표지(標識)인 다섯 군데의 상처[五傷]를 받은 성인이 되었다.

1244년에 프란치스코 성인이 베네딕토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초상화. 왼손에 들고 있는 양피지에는 누가복음의 “PAX HUIC DOMUI(이 집이 평안할 지어다)” 구절이 적혀 있다.

하나님은 왜 성녀의 기도에 응답했을까?

스콜라스티카 성녀는 베네딕토 성인과 쌍둥이였다. 둘은 1년에 한 번 만났다. 어느 날 성 스콜라스티카가 성 베네딕토를 방문했는데, 성녀가 수도원에 들어갈 수 없어 수도원에서 약간 떨어진 한 집에서 성인과 만났다. 둘이 만나 영적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밤이 되었다. 성녀는 진리와 은수, 천국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오라버니에게 다음 날 아침까지 머물며 더 많은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성인은 수도회 규칙을 지켜야 한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이때 성녀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러자 바람이 불고 비가 몰아치고 번개가 쳤다. 어쩔 수 없이 베네딕토 성인은 성녀와 밤새도록 영적인 삶과 영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가고 나서 3일 후에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선종(善終)했다. 베네딕토 성인은 자신을 위해 몬테카시노 수도원 내에 마련해 두었던 무덤에 누이동생의 시신을 안장했다.(손태섭 편역, 〈베네딕토 성인〉 참고)

벽화를 보면 표현이 재미있다. 식탁에는 반쪽만 자른 빵과 칼과 컵이 널브러져 있어, 막 저녁을 먹던 참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성인을 모시는 수사는 떠날 채비를 하다가 갑자기 비가 오자 손을 이마에 올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베네딕토 성인은 갑자기 내리는 비에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내젓고 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기도하면서 살포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스콜라스티카 성녀를 시봉하는 수녀는 왼손으로 주전자를 잡은 채 마치 성녀의 뜻대로 된 것을 축하하는 듯 슬며시 성녀의 등을 두드리고 있다. 하늘에는 비가 마치 폭죽처럼 흩어지고 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삼국유사〉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설화가 떠올랐다. 신라 성덕왕(聖德王, 재위 702년 ~ 737년)은 백성들에게 ‘모든 동물의 살생을 하지 말라’는 교서를 내릴 정도로 불교 이상 국가를 구현하려 했다. 이 무렵,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부귀영화를 누린다 한들 깨달음을 얻는 즐거움만 못하다며 경남 창원의 백월산 무등골로 들어가 암자를 짓고 수행했다.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성덕왕 8년(709) 4월 8일, 해질 무렵에 만삭의 아리따운 낭자가 박박을 찾아가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했다. 박박은 “이곳은 청정함을 근본으로 삼으니 당신이 가까이할 곳이 아니다.”라며 문을 닫았다. 여인은 건너편 부득의 암자를 찾았다. 부득은 한참을 번민하다가 밤길에 산을 내려가다가 변을 당할 것을 염려해 여인을 암자로 들였다. 낭자는 그날 밤 해산을 한데 이어 목욕하기를 청했다. 부득이 낭자의 몸을 씻겨주자 향기가 피어오르며 물이 황금빛으로 변했다. 여인은 부득에게도 목욕할 것을 권했고, 목욕통 옆에 홀연히 피어오른 연화대에 앉으라 했다. 부득이 거기 앉자 낭자는 “나는 관세음보살인데 대사를 도와 큰 깨달음을 이루게 하러 왔노라.”하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박박은 부득이 파계를 했으리라 생각하며 그의 암자를 찾았는데 부득은 연화대에 앉아 금빛 미륵존상을 이루어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박박은 탄식하고 성찰하며 부득의 권유대로 남은 물에 몸을 씻고 아미타불이 되었다. 하지만, 물이 모자라 금빛이 완전하지 못하고 얼룩이 생겼다. 사람들이 몰려와 경배했다. 소문을 들은 경덕왕이 백월산에 금당과 강당을 짓고, 백월산 남사라 이름 지은 후 두 분을 미륵불과 아미타불로 모셨다.(〈삼국유사〉 탑상 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조 요약)

경상도의 설화 중에는 이와 유사한 내용과 구조의 설화가 많다. 특히 그 중 원효산 설화는, 여인의 방문 등 내용은 거의 같고, 성불(成佛)하는 대신 도를 깨우치게 한다. 그 도를 일러 원효 스님은 대승(大乘)이라 하고, 의상(義湘) 스님은 소승(小乘)이라 지적하는 게 다르다. 그런데 왜 신라 민중들은 노힐부득과 원효 스님의 손을 들어주었을까?(이도흠,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참고.)

계율과 욕망의 절제는 깨달음과 어떤 관계일까? 베네딕토나 선묘낭자의 유혹을 내친 의상 스님의 수행은 계율과 규칙을 지키는 것이, 이를 통해 탐욕과 집착을 말끔히 없애버리는 것이 깨달음과 구원으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인간은 선(善)과 이타심도 갖고 있지만, 탐욕과 이기심, 분노와 어리석음, 집착으로 물들어 있다. 지극한 수행과 정진을 통해 이를 말끔히 없애지 않는 한 인간은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이는 단호하고 엄정해 진리의 고고함과 거룩함을 지켜내는 중심축이다. 북극성처럼 지표가 분명해 흔들림 없이 도의 길을 갈 수 있다. 엄격한 계율로 모든 탐욕은 물론 나 자신까지 버릴 때 깨달음에 이르거나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 계율과 규칙을 지키는 것은 구속이 아니라 자유다.

스콜라스티카의 구도열과 형제애, 요석공주를 품은 원효 스님의 삶은 계율과 규칙마저도 고통 받는 인간의 편에 서서 회통해야 함을 보여준다. 고통 받는 인간을 외면한 채 이루는 깨달음은 공허한 것이고, 오히려 하나님이나 부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라 말한다. 〈가톨릭 사회교리서〉에서 지적한 대로, ‘가난한 자를 위한 편애적 선택(The 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을 하는 것이 인간의 얼굴을 한 성직자의 길이다. 이런 수행은 인간의 삶 가운데 있다. 범인들과 한데 뒹굴며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을 때, 범인들도 능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거룩하지 못한 만큼 비속(卑俗)할 수 있고, 지표가 분명하지 않아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스콜라스티카 성녀가 베네딕토 성인과 하룻밤을 더 보내기 위해 기도를 하자 비가 쏟아졌다. 성인이 당황한 반면 성녀는 살포시 미소를 짓는 장면을 표현한 프레스코화.

금욕과 자비 사이에는 무엇이 있나?

그럼, 계율과 인간 사이의 딜레마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세친(Vasubandhu, 316∼396)보살은 〈불성론(佛性論)〉에서 “지혜로 말미암아 애욕에 대한 생각은 버리고, 큰 자비로 말미암아 타인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일어나게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혜가 있기에 부귀영화를 비롯한 세속의 탐욕이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다고 생각하며, 온갖 탐욕을 버리고, 마음의 평안함을 추구하고, 더 나아가 고행하며, 수행한다. 더불어 우리는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도 갖고 있기에, 설령 당장 천국이나 극락에 갈 수 있을지라도 이를 미루고 그 사람을 돌본다.

베네딕토나 의상 스님이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타자(他者)다. 타자 없이는 나도 없다. 타자가 없다면 버려야 할 탐욕 또한 형성되지 않는다. 타자에 대한 인식과 공감과 자비 없이 내 안에 악의 씨앗을 없애고, 선의 씨앗을 싹트게 할 수는 없다. 중생들이 화탕지옥의 세상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선방에서 홀로 수행하여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면 깨달은 것인가? 수행의 목적은 깨달음이 아니라 열반이고, 열반은 중생구제를 전제로 한다. 원효 스님의 말대로, “저 아름다운 연꽃이 높은 언덕에 피지 않는 것과 같이 …… 열반의 성에 머무르지 않으며,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는 것과 같이 …… 세간을 구제한 뒤에 열반을 얻는다.”(원효, 〈금강삼매경론〉·〈한국불교전서〉 제1책 중에서) 〈유마경〉의 가르침대로,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 엘리 위젤(Elie Wiesel)의 말을 다시 빌리면 “우리 몸의 중심은 뇌나 가슴, 배꼽이 아니라 아픈 곳이다.” 손가락을 조금만 다쳐도 온 정신이 그리 쏠린다. 백혈구와 산소와 영양분과 복원 세포가 그곳으로 모여 세균을 퇴치하고, 새살이 돋게 하고, 결국 몸을 치유한다. 그렇듯 수행자에게는 난민, 굶주리는 어린이, 해고노동자, 빈민, 병자가 있는 자리가 우리 몸과 세상의 중심이어야 한다. 그들을 구원할 때 이 세상 또한 구원되고, 나도 그 순간에 비로소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현재 지순협 대안대학 이사장,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 한국언어문화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   한국기호학회 회장    ·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 한국학연구소장  ·  〈문학과 경계〉 주간을 역임했다. 원효학술상  · 유심학술상 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 〈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등이 있다.

글  ·  사진 이도흠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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